>>811어둠을 밝히던 담뱃대의 불꽃이 일순 꺼지자, 소영의 눈은 되려 둥글게 뜨였다. 이윽고 겨눠지는 담뱃대의 끝을 눈끝으로 쫓으며 동그란 눈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제법 건방진 말투로 늘어놓는 조금 전 과는 다른 종류의 이야기에 눈을 유하게 누그러뜨렸다. 아무래도 관심이 생겨 호기심을 끌었다고 봐야겠지. 그러나 관심을 빛내는 것과 별개로 소영은 바로 입을 열지는 않았고 소희의 말이 끝나서야 말을 내뱉었다.
"그게 네 진짜 마음이야? 이상한 코스프레 같은 게 아니고 진짜 서희의 마음."
그러다 다시금 말을 셈하는지 입을 가리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특유의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냥하기에 굳이 들여다 볼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웃음. 하지만 그 상냥함 안에는 분명 속내가 있었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던 영역이었겠지만, 상냥한 사람에게도 나쁜 마음 정도는 있었으며... 지금 소영은 조금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기심.
"네 몸에 들어가도 좋다고 했지? 피아노를 치려면 네 몸에 들어가야 한다고. 그렇다는 건 네 몸에 들어가면 살아있는 사람처럼 지낼 수 있다는 뜻이지?"
이후의 말은 짐작할 법 했다. 여느 귀신처럼 네 몸을 내놔라 할 수도 있었다. 다만 소영의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그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불안해 보이는 얼굴은 온갖 잡생각을 피어올리고 남을 쯤에야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장우현이 왜 그런 의뢰를 했는지도 알고 있어? 그 애는... 내가 죽는 모습을 본 첫 목격자거든. 죽은 뒤의 내가 뭘 하고 있을 지, 궁금해 할 이유도 없고. 장우현과는... 인생에서 유일한 실수였다고 할 관계였어."
고작 고등학교 재학 후 3년이 지난 시기의 사회 초년생이 인생에서 유일한 실수였다고 불릴법한 일이 얼마나 있을까. 확실한 건 협주곡을 연주하고 싶다던 바램과 장우현은 아주 먼 관계가 아니라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