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섯 명 중에서 제일 촐싹대는 것처럼 보이는 한 명이 뭔가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이 눈을 치뜨며 얼씬얼씬 웃었다. 연호가 입고 있는 게 산들고 교복이라는 걸 알아본 모양이다.
-○○아, 저 새○ 저거 왜 급발진했나 했더니 그냥 좀 놀러 가겠다는 말이 아니꼬웠던 모양이다. -실화냐. ○신 새○. 갑자기 왜 시빈가 했더니.
그들이 시시덕거리는 동안, 문하는 연호가 스트레칭을 하며 꺼내어놓는 말에 응, 하고 대꾸하면서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비웃는 소리가 두어 마디 더 날아왔다.
-야, 모기랜다. 어후 오그라들어. -지가 뭔 만화 주인공이라도 된 줄 알지.
문하가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을 한 채로 그들을 응시하고 있자, 그들 중에서 덩치가 제일 큰 녀석이 자신들의 수적 우위가 믿음직스러웠던 건지 얼굴에 당당한 비웃음을 띤 채로 앞으로 걸어나왔다.
-니들이 뭐 오해를 좀 하고 있는 모양인데 놀러 간다는 게 뭐 별로 좀 특별한 말은 아니거든. -우리 학교 학생 비율이 좀 많이 형평성이 안 맞단 말야... 그런데 너희 학교도 좀 형평성이 안 맞다며. 양들이 물이 그렇게 좋다고 들었는데. -긴 말 안 할게. 좀 나눠먹자. 어때?
"내가 보통 이럴 때는 경찰을 부르거든... 그런데 말하는 걸 들어봐서는,"
문하는 저지에 달려있던 후드를 끌어올려서 푹 뒤집어썼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치 깜빡이는 것처럼 그의 자세가 변했다.
"경찰 부르면 안되겠다." -뭐라는 ㄱ 뚜각.
─쌔액, 하고 사람의 주먹이 날아가는 소리라기엔 너무도 매섭고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소리와 거의 동시에 뚜각 소리가... 주먹이 사람 얼굴을 후려갈긴 소리라기보단 도끼가 늙은 호박을 박살내는 듯한 흉측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앞으로 걸어나왔던 덩치가 순식간에 끈 떨어진 꼭두각시처럼 무릎이 풀려 주저앉았다.
"교육에 적절한 시간이네."
문하도 해적 만화를 접해본 적이 있으되 그런 대사 하나하나까지 다 일일이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그 주방장의 대사를 따라해버렸다.
>>409 여담으로 몰래 분홍 대럼쥐도 만들어 봤습니다만.... 혼자 간직해야지... (데굴)
>>412 흐 에 엑..... (너무 눈이 부셔 시력을 잃러버린듯 하다)
아참 문하주! 이번 일상 한정으로 약간의 캐조종이 기능하다고 해도 될까요...? 큰건 아니구 그 막 연계플레이할때 필요한거 있잖아요... (뒤에서 공격하면서 '숙여!' 한다덩가 둘중 하나가 방심했을때 잡고 끌어내면서 공격 한다덩가...) (설명이 조잡해서 알아들으실지 모르겠다...) 혹시나 불편하시다면 응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연호는 마음껏 써주시구요! :D
연호가 얘기하는 동안 저만치에서 들려오는 비웃음들은 깡그리 무시했다. 아니, 애초에 듣지도 않았다. 연호는 그들이 하는 말을 '사람의 언어' 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그저 의미불명의 소리를 짖어댈 뿐인 무언가로 인식하고서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렸다. 애초에 들을 필요도 없어보였다.
" 와우. "
감탄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대충 설명이 끝나고서 문하가 후드를 뒤집어쓰더니, 갑작스럽게 난 소리에 연호는 연신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 말고도,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주방장의 대사가 나온 것에 만족해서 감탄사가 연달아서 터졌다.
" 그치. 경찰이 개입하면 너무 싱겁게 끝나잖아. "
그러면서 걸어나가는 연호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이제부터 싸우러 가는 사람의 발걸음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무엇보다 생각하면서 걷는 모습은 꽤나 무방비해보였다. 그 덕분에 만만하게 보인걸까, 문하의 한 방에 얼을 빼고있던 녀석들 중에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날쌔보이는 녀석 하나가 연호에게로 달려들었다. 연호는 생각하는 얼굴 그대로 몸만 비틀어서 360도 돌려차기를 상대의 허리에 선사하고서, 그대로 주욱 밀어 문하쪽으로 날려버린다.
" 잠깐 어깨좀. "
그리고 날아가는 녀석에 신경을 돌릴 문하의 옆으로 다가가, 문하의 어깨에 손을 올려 지지대 삼아 묵직한 니킥을 무릎꿇은 덩치에게 날렸다. 덩치가 늑대인것 같긴 하지만, 능력이 '맷집' 이 아닌 이상에야 금방 일어나는건 불가능할테다.
" 자, 그럼. "
니킥을 먹이고 자연스럽게 빙글 돌아 문하의 옆에 서고서, 남아있는 4명에게 눈길을 주었다. 자신이 아까 토스했던 녀석은... 문하가 잘 처리했을거라 믿고서.
" 감자 하나랑 당근 둘이랑 양파 하나... 어떻게 나눌래? "
각각 '좀 과하다싶은 근육을 가진 덩치', '꺽다리 둘', '제일 먼저 깝죽거리던 조그만한 녀석' 을 칭하는 단어들이었다.
돌려차기를 맞고 자신의 쪽으로 날아오는 꺽다리의 목덜미를 문하는 덥석 거머쥐고는 그대로 등으로 업어 땅에 태질을 쳐버렸다. 그 동작에는 분명히 유술의 그것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그 엎어진 꺽다리는 문하의 발에 너무 가까운 지점에 내팽개쳐져 있었고, 문하는 발을 들어올려서는 그대로 꺽다리의 어깨에 스톰핑을 가한다. 우득, 하고 무슨 샐러리 줄기 꺾이는 것 같은 소리가 섬뜩하게 선명했다. 으아아아악, 하는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잠깐 나더니 잠잠해진다.
어느 것 하나 권투의 동작이 아니다.
문하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오는 연호를 가볍게 쑥 떠밀었다. 그것은 그렇잖아도 강한 연호의 완력에 적절한 탄력을 주었고, 연호의 무릎은 무릎을 꿇고 있던 덩치에게 보기 드문 박력으로 꽂혀들어갔다. 뻑 하고 호박 부러지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그 말마따나, 정말로 늑대 증상이 맷집과 관련된 게 아닌 이상에야 그 정도 타격을 받고 일어서기는 힘들 것이다.
연호가 통렬한 니킥으로 덩치를 완전히 그로기로 만들어놓는 걸 보고는 그 뒤에 남은 네 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3대 1의 전력비가 순식간에 2대 1로 줄어든 것을 본 그들은 약간 기가 질린 기색이었다.
"카레냐?"
말하고 보니 하나같이 카레 재료라는 것을 문하도 알아챘는지, 연호의 촐랑거리는 비유에 가볍게 태클을 넣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문하는 이내 곧 그 농담에 어울려주었다.
"감자. 부탁한다."
나머지 부재료는 내가 요리할게. 하더니, 문하는 순식간에 앞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잔인하고 난폭하기 그지없는 재료손질이 시작되었다.
권투. 엄격한 룰이 제정된 링 위에서 치르는 입식 타격 경기. 수많은 제약과 제한이 걸려, 선수의 움직임과 타격 방법을 엄격히 제한하는 경기. 그 엄격하고 엄정한 룰들은 보통 각종 부상의 위험에서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적어도, 문하의 경우에 한해서만큼은 그 말은 틀렸다. 신성한 격투 경기의 엄정한 규칙들은, 문하를 보호해주는 벽이 아니라 문하를 가둬놓고 있던 쇠철창이었던 것이다.
무릎 바로 위쪽을 찍듯이 내려차 무릎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는 오블리크 킥에서부터, 클린치 상황에서 쇄골을 팔꿈치로 수직으로 내리찍어 버리고, 주먹으로 눈을 후려치고,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땅에 댄 채로 엎어진 상대의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걷어차기까지.
그의 움직임은 맨손의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당근 두 대와 양파 한 알이 손질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 모양이다. 그러나 문하는 감자에 대해서는 완전히 신경을 끄고 있었고, 당연히도 감자는 문하를 제지하려- 그의 뒤통수를 치고 그를 제압하려 움직일 것이다. 그는 정말로 그 감자를 연호에게 완전히 맡길 모양이었다.
한명을 문하에게 토스한것은... 어찌보면 잘한 선택이기도, 아니기도 했다. 연호의 입장에서야 어떻게 되든 상관은 없었다만, 그 꺽다리의 입장에서는 문하가 아니라 연호에게 마는편이 덜 고통스러웠을텐데. 안타깝지만 연호는 전혀 신경을 안썼으니 뭐... 그리고 자업자득이니까. 신경 써줄 이유도 없었다.
" 카레는 재료 상태가 안좋아도 맛있잖아. "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킥킥 웃고는, 문하가 말해준대로 감자를 보았다. 평소였다면 혼자 셋이나 상대하냐며 놀랐겠지만, 어째 처음 본 문하에게 믿음이 갔다. 정말 저 3명쯤은 문제없이 요리할 것이라고. 연호는 잠시 지켜봤다. 문하의 움직임을 하나부터 열까지 유심히 지켜보고 나서, 솔직히 '쩐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무게를 잡는 척을 했다.
연호는 격투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었다. 그저 감으로, 혹은 영화나 어떤 매체에서 본 것들을 토대로 싸울 뿐이었다. 그의 늑대 증상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테지만, 부득이하게도 늑대 증상이 신체 능력의 향상이었던 덕분에 그것들은 시너지를 일으켜 연호는 달인에 가까운 경지로 만들어 주었다.
감자도 문하의 움직임을 보고서 얼이 빠졌는지 당근 둘과 양파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별다른 반응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무너지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음직이기 시작했지만, 연호도 더이상 무게만 잡고있지는 않았다.
" 돼지감자는 처음인데. "
문하의 뒤에서 공격하는 감자의 주먹을 움켜쥐고서 버텼다. 덩치차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그 주먹은 우뚝 멈췄고, 연호는 가볍게 웃음지으며 감자를 뒤로 휙 밀었다. 감자는 몇 걸음 물러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얼굴을 있는 힘껏 찌푸리며 연호에게 돌진했다. 그때까지 웃고있던 연호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건, 악취미였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주먹과 발을 내지른다. 막지도 않았다. 연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전부 감자와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타이밍에 크로스카운터로 터진다. 하지만 연호는 얼굴에서 웃음을 잃는 일 없이, 모든 공격을 받으며 모든 공격을 적중시켰다. 대략 4~5번의 합이 오가고 나서야 감자가 땅바닥에 묵직한 소리를 내며 널부러졌다.
" 대충 끝났나? "
입안에 고인 피를 퉤, 뱉어내며 문하쪽을 본 연호의 입가에는 여전한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쳐져있었다.
일은 엎어졌다. 기왕 이리된 것, 확실한 공포를 심어놓아야 뒤탈이 없을 것이다. 이들이 공포에 질려 침묵할 수 있도록. 산들고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못하도록. 자신의 주변 사람이 산들고 이야기를 꺼내면 덜덜 떨며 만류하도록. 문하는 마치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라도 된 듯,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 셋을 그대로 무너뜨려 버렸다.
"......"
손을 탁탁 터는 문하의 태도는 마치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쌀가마니 몇 개를 옮겨놓거나, 열기 힘든 문고리를 열어주거나, 청소를 하거나, 정수기 수통을 갈아끼워준 직후에 하는 그런 태도와 별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문하에게 경기만큼 진지하게 임할 가치가 없는 일이었으며, 그저 단순한 정리나 청소 정도의 일이었다. 다만, 그 치워야 할 쓰레기들이 입을 조금 괘씸하게 놀린 탓에... 그들은 자신의 입방정과 태도에 대한 대가를 조금 더 높게 받아낼 수 있었다.
등 뒤로 날아드는 주먹을 문하는 굳이 피하거나 막으려 들지 않았다. 그저 덩치와 연호가 싸움을 시작했을 때, 이제사 시작했냐- 하는 얼굴로 뒤로 여유롭게 돌아서서는 연호가 돼지감자를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떤 기술도 기교도 없는, 순수한 육체의 강인함끼리의 충돌. 서로가 죽어라 부딪혀서 누가 먼저 상대를 부수는지에 대한, 정직하기 그지없는 싸움.
상황이 정리된듯 보이자 연호는 기지개를 쭉 켰다. 오랜만에 몸을 풀어서 그런지 찌뿌둥한듯 했다. 그러는 동안에 문하가 입을 헹구라고 준 물을 고맙다며 받아들고서 입에 머금고 가글하는가 싶더니... 꿀꺽- 하고 삼켰다. 아니 보통 입을 헹구면 뱉지 않나...? 뭐 그래도 덕분에 입도 헹구고 목도 축였으니 다행인걸까.
" 격투기? "
갑작스럽게 들어온 질문에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그는 격투기랑. 거리가 살짝 멀었다. 해본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티비로 여러 격투기들을 관람했었으니 작은 판타지 정도는 있었을까?
" 음.... 아니, "
하지만 대답은 부정이었다. 연호 자신이 보더라도 자신은 격투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느 룰 안에 갇혀있는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 갑갑한건 집 안으로 충분해. "
아, 덤으로 수업시간도. 씩 웃으며 툭 던지듯이 말한 그는 문하에게 손을 슥 건넸다. 악수하자는 요청이었다. 첫만남이었고, 아직 서로 이름도 몰랐지만, 그래도 이 짧은 시간의 첫인상은 연호에게 굉장한 호감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