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고양이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에서 생각하기에 그럴뿐, 사실은 가만히 있다 갑자기 풀쩍 뛰어오른 고양이가 날벌레를 잡았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꽤 자주 있곤 하니까. 물론 그게 사람에게까지 적용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하지만 마굿간 고양이 신드롬처럼 조금씩 미세하게 영향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접혀진 파라솔 위에 앉아 고양이 마트료시카를 만지작거리는 그녀 또한 딱히 이상할 일은 없을 것이다.
"......"
그래도 바다쪽 별은 나름 예쁘다고 했던가. 멀리 수평선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걸친 별무리들을 보면서도 손은 계속 움직이기 바빴으니, 어쩌면 그녀는 들고 있는 것을 심심풀이용 장난감처럼 여기며 여름이 되기 전의 일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 물론 첫번째는 고양이의 이름과 같은 도넛이었지만 자신이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혹은 고양이를 키우는 건지 알고 그랬던 모르고 그랬던 고양이에 연관된 물건을 몇번 보내주었던가... 그걸 알고 있어도 신기하고 모르고 준거라면 더 신기했기에 살짝 복잡해진 마음에 먼곳을 바라보듯 살짝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하지만 때때로 음식처럼 생겼지만 음식이 아닌 것들에 대한 욕구는 참기 힘들었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받아들이지만 눈이, 그리고 입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맛있어보이는 것들은 입에 넣어보고 싶어지니까... 그래도 어찌어찌 잘 참아내고 있는걸 보면 이 증상(?)을 치료하는데 문제는 없어보인다.
"모르는 소리! 바삭하게 구우면 과자처럼 된다구! "
해본 적 있다는 말투로 자신만만하게 대꾸하는 것에 묘한 신빙성이 느껴졌다.
" 당연하지. 고기에 볶음밥에 된장찌개라니. 너무 완벽해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방긋 웃으며 아랑이 만들어낸 볶음밥과 된장찌개를 먼저 한 입씩 맛보았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서 그것을 음미하고는 삼키고서 울먹거렸다.
" 맛있어... 너무...... "
" 매일아침 나한테 된장찌개를 끓여줘... "
그게 어딘가에서는 청혼하는 말이라는걸... 연호가 과연 알까? 하지만 그만큼 맛있었다는 이야기일테니 특급 칭찬이라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이다.
" 다행이네. 고기 굽는건 내 특기라서. "
하긴, 그가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뭔들 안해봤을까. 굽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는 말 처럼 그는 정말 모든 것을 시도해 봤을 것이다. 그 중에서 선정된 굽는 방법이니까 믿을만 하지. 다 먹고도 부족하다면 아직 고기가 남아있으니 얼마든지 구워줄 수도 있을테다.
" 바다에서 내가 직접 구워먹으니까 더 좋다. 더 맛있고. "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으며 아랑을 보다가, 해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색의 파도가 밀려와 부숴지는 것을 달빛이 은은하게 비춰주었다. 그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눈을 감았다. 그런 와중에도 입은 쉴새없이 고기를 탐하고 있었지만.
"일단 주변을 제대로 훑어본 후라면 괜찮을거야. 꼭 유리조각이나 조개조각이 있다는 법은 없으니까."
말을 마치며 하늘은 무릎을 굽힌 후에 괜히 주변의 모래를 살살 손으로 훑어내렸다. 딱히 조개나 유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그는 괜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럼에도 결국 어떻게 할지는 그녀의 몫이라는 듯, 그는 굳이 더 말을 이어가진 않았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가 그런 위험한 것을 밟지 않는 것을 속으로나마 기도해주는 것 뿐이었으니까.
아무튼 춤추는 사람 영상을 봤다는 그 말에 그는 괜히 고개를 갸웃했다. 영상 속 사람이 맨발로 모래를 밟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하긴, 동영상 사이트를 보면 그런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그는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갈색 모래라는 그 말에 하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갈색 모래라면 뭔가 파묻혀있을 위험이 아무래도 백사장보다는 덜할테니 그런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백사장은 깊은 곳은 그냥 발이 쑥쑥 들어가니 말이야. 아무튼 안전성만 따져보면 신는게 낫다고 생각을 하지만..."
뒤이어 그는 괜히 무릎을 굽힌 후, 다시 한 번 모래를 살살 손으로 훑어보다가 괜히 손을 안으로 넣어보기도 하면서 잠시 발을 움직였다. 모래 속에 손을 넣고 있는만큼 걷는 속도가 상당히 느릿했다. 그러다가 손을 밖으로 빼낸 후, 그는 손을 가볍게 털어보이며 이야기했다.
"적어도 이 근방은 딱히 그런건 안 느껴지니, 이 근방이라면 괜찮을거야. 아무튼 춤이라도 추려고? 방해한 건 아닐까 모르겠네. 그러면 미안! 별이나 볼까 해서 나왔다가 어디가 좋을까 싶어서 해변으로 나왔거든. 별 보긴 여기만큼 좋은 곳도 없어서 말이야."
다행인지 유감인지, 그녀는 새빨간 머리카락의 남학생이 별안간 모래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기묘하고도 진귀한 장면을 눈에 담지 못했다. 심지어 그 학생은 같은 반이기도 했으니 여간 당혹스러운게 아니겠지만 한편으론 이해할수 있는 부분일까?
종종 사람의 범주를 넘어선 비범한 행동을 보이는데 머리만 내놓고 모래 속에 있던 사람이 들고 일어나는게 게양대를 타고 오르는 것보단 더 가능성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 남학생, 그러니까 당신이 먼저 이쪽을 눈치채고선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오자 그녀 역시 돌아보며 한손을 살짝 들어보였다.
"별일이네요. 이시간까지 놀고계셨다니,"
아니면 단순한 밤산책일까,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그 뒤에 들려온 말에 잠깐 놀랐는지 마트료시카의 윗부분이 손에서 튕겨져나갔을까? 그걸 또 휙 낚아채선 다시 텁 하고 조립하는 모습도 태연하기 그지 없는 행동이었다.
"헤에... 그런가요? 역시, 같은 반이라서 이런걸 쉽게 캐치해내신 거려나..."
자신의 마니또가 당신이었다면 어느정도 말이 된다 생각했는지 스스로 몇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있는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굴려보길 두어번 반복하고나서 다시 당신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웃는다 보기엔 좀 애매했지만 그래도 나쁜 표정은 아니었을까? 마니또로서의 이름을 당신과 대조해보면 전혀 쌩뚱맞은 것 같지만... 원래 들키지 않으려고 지어내는 이름이니 어느정도 성공한 셈이겠지.
"꽤 마음에 드는 선물이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답니다."
물론 대형견만한 글쎄에게 밟힐 뻔하고 물릴뻔한 것만 몇번인지 셀수도 없는 위기에 처한 마트료시카였지만 꿋꿋하게 흠집 하나 없이 잘 있는게 용할지도,
경아는 자연을 제법 좋아하는 편에 속했다. 어쩌면 아이들 사이를 빠져나온 경아가 해변가까지 걸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뭇가지가 늘어진 숲길을 따라 바닷바람이 부르는 쪽으로 가다보면, 금세 검은 하늘과 바다가 보인다. 달이 밝다. 해수면이 잔잔히 흔들리며 제멋대로 빛난다. 흰 포말이 발치에 와 부서진다.
바람이 불어오며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다. 경아는 엉망이 된 머리를 고칠 생각도 않고 바다를 바라본다. 여름임에도 서늘한 기분이 들어, 가져온 가디건을 걸친다. 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몇 번 눈을 깜박이자 어둠에 적응한 시야에도 흰 포말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별들이 저마다 제자리를 찾는다.
그 모습이 사뭇 아름다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혹은 제 생각 속에 깊이 빠져 그러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다가온다 해도 모를 것이 분명하다.
// >>174 늦었지만, 답레는 언제 줘도 괜찮아요, 규리주. 푹 자고 좋은 꿈 꾸길 바라요. 내일 뵈어요~
문하의 얼굴에 또 다시 새롭게 피어나는 표정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던 새슬이, 다시금 눈을 휘며 웃는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서 콕, 하고 소년의 볼을 찍어 보려 하는 것이다. 그대로 부루퉁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오는 시선과 눈을 맞추고 있다가,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에 기분 좋게 헤ㅡ 하고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자전거ㅡ. 배워 놓는 게 좋을까아.”
자주 타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눈을 감은 채 쓰다듬는 손길을 만끽하며,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곧이어 한참 잠꼬대라도 하는 양 어떡하지,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고민하던 새슬에게서 나온 답은 ‘나중에 배우고 싶어지면 배울래’ 였다. 있잖아, 처음은 역시 하가 먼저 태워주라.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뻔뻔하게 부려 보는 작은 응석.
“핸드폰은, 왜?.
그렇게 물으면서도, 제 주머니를 뒤져 순순히 핸드폰을 건네 주었다. 주인의 성질을 입증하기라도 하는 양 여기저기 구르고 긁혀 엉망진창이 된 낡은 스마트폰. 자ㅡ, 하며 커다란 금이 중앙을 가로지른 화면을 켜 내밀고는, 문하가 제 핸드폰을 살펴 볼 동안 새슬은 천천히 문하를 살필 것이었다. 절반쯤 이마를 덮은 흰색 머리칼이라던가, 살짝 내리깔린 속눈썹이라던가, 화면의 불빛이 머물고 있을 흑색 눈동자 같은 것들을ㅡ 멍한 눈으로 그저 가만히.
과장된 말이지만 과장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가 가끔씩 보여주는 가라앉은 모습을 제쳐둔다면, 그는 거의 24시간을 쉬지 않고 놀러다닐 수 있었다. 다만 그건 놀러다닌다는 가정이 있을때다. 재미없는 수업에라도 들어간다면 곧바로 배터리가 0%를 찍고 잠들어버리는 그를 발견할 수 있을테다.
" 그러는 슬혜야말로 이시간까지 뭐했어? "
그냥 보면 마트료시카를 가지고 놀고있는것 같지만... 설마 지금 이 시간까지 저것만 만지작거리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하기에. 그리고 지금까지 혼자 있지만은 않았을테다. 연호 자신이 그랬던것처럼 슬혜도 다른 누군가를 만나 함께 놀았겠지.
자신이 마니또라는 말에 마트료시카를 놓치고, 또 그걸 다시 낚아채는 모습에 그는 감탄한 듯이 가볍게 손뼉을 몇 번 쳤다.
" 응? 어떤거? "
그는 슬혜가 뭘 말하는건지 캐치하지 못했다. '이런거' 라니. 자신이 선물해준 것들 중에서 슬혜의 무언가를 캐치했다고 할만한게 있었던가? 고양이와 관련이 있었다는것 말고는 캐치하지 못했다. 사실 슬혜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거나?
" 뭐 아무튼. 내가 그 아메리카노였다는 말씀이야. 나름 힌트를 심어놨는데 몰랐으려나? "
몰랐을 만 하다. 그것은 한 번 꼬아진 힌트였으니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커피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건 거의 불문율의 수준이다. 하지만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의 붉은색 칵테일도 있다. 같은 이름이지만 커피와 술의 차이는 크다. 미성년자가 그걸 알아내는것도 신기하지. 바텐더가 꿈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내기란 힘들 것이다.
"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나름 고심해서 고른건데. "
연호의 입장에서 일반 마트료시카들은 귀여움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그래서 제일 귀여운 고양이로 타협한 것이다. 슬혜를 보면 어딘가 고양이가 연상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것도 한몫 했을까?
노력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잘하는 거지이. 덧붙이며 빵긋 웃었다. 그리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 ...그래도 역시 과자랑은 다른 거얼. ”
아랑도 바삭하게 구워는 봤다. 과자랑 비슷... 비슷할 순 있다고 쳐도 역시 과자랑 고기는 다르다.
*
칭찬이라면 기쁘지만, 그건 너무 과장된 대답인걸.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냥 연호가 먹는 모습을 보는데... 울먹... 거린다...?
-맛있어... 너무......
-매일아침 나한테 된장찌개를 끓여줘...
“ 누가 굶겼니이...? ”
며칠 만에 – 혹은 몇달 만에 - 처음으로 집밥 먹어본 사람 같네에. 청혼대사 같은 말 -청혼대사 같다고도 생각 안 했다. 금아랑네 아버지는 ‘끓여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끓이게 해줘.’ 라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보다 울먹거림 쪽을 좀 더 신경 쓰며 고기를 좀 더 연호 쪽으로 밀어 주었다. 2~3인분 기준으로 잡고 요리하고, 내 걸 0.7인분으로 담길 잘했지. 후라이팬에 남은 밥과 냄비에 남은 국도 연호한테 주는 게 좋겠다.
“ 으응, 특기라고 해도 될 것 같아아. ”
천천히 느긋하게 고기를 먹는다. 0.5인분으로 담을 걸 그랬나 봐.
“ 직접 만들어서 보람을 느끼는 거 아닐까~? ”
원래 야외에서 먹는 건 평소에 끓여먹던 라면이어도 2~3배는 더 맛있다고들 하니까. 그 탓도 없진 않을 것이다. 연호가 해변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고 아랑도 해변에 시선을 주었다. 파도가 밀려와 부스러지는 소리, 그리고 달빛이 내리는 밤바다와 백사장은 퍽 낭만적인 광경이다.
“ ...응, 나도 그래. ”
조금 대답이 늦었을까. 낭만적인 배경을 두고 너무 귀염성 없는 대사를 했을까?
“ 좀 더 귀염성 있게 말해주자면,”
“ 같이 먹는 게 연호 너라서 평소보다 더 맛있게 느껴져. ”
방금 거 귀염성 있었니? 연호와 마주 보는 상태에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을 반쯤 둥글게 접는다. 반쯤 접힌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오묘하게 반짝거리는 게 낮에 보는 것과도 노을이 질 때와도 다른 느낌으로 아름다웠을까.
아랑은 고개를 바로하며 샐쭉 미소했다. 그리고 볶음밥을 냠 떠먹었다. 귀염성 있는 대사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낯간지럽게 들리기도 해.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으므로. 말을 더 걸지 않으면 밥 먹는 데에 집중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