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반전도 없다. 저녁이 되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호출하면 삼삼오오 몰려나오는 아이들. 행사 이전의 교장선생님의 개최사 몇 마디. 오늘은 뭔가 잔뜩 기대를 하는 아이도 있었고, 잘 쉬던 와중 불려나와 짜증을 부리는 아이도 그 짜증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묻어 있다. 마치 오늘 밤은 무언가 신나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는 듯.
그러나 오늘 밤의 특별한 무언가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반 아이(반 아이들보다 같은 체육특기생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서, 반 아이들이 오히려 낯설다)가 너는 누구와 출 거냐고 건네어오는 질문에 문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출 줄도 모르고, 애초에 이번 여행에 이런 행사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걸. 하는 예절바른 대답을 하고, 문하는 삼삼오오 짝을 찾아가면서 뒤섞이기 시작한 인파 사이로 유령처럼 고요히 빠져나왔다.
애초에 이런 행사가 있다는 것인 줄 알았으면 이 여행을 오지 않을 걸 그랬다- 바닷가가 보고 싶다는 얄팍한 마음으로 변덕을 부려보았는데, 역시나, 이번 여행은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행이었다.
문하는 캠프파이어가 벌어지는 광장에서 빠져나왔다. 오늘 행사가 몇 시까지인지는 안다. 호텔 마당을 지나 다른 출구로 나오면 저쪽으로, 물 위로 길다랗게 수놓이는 낙일이 그려진 멋진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산책로가 나온다. 한낮에는 온통 여름바다를 즐기고자 하는 아이들로 시끄럽게 붐벼서 도무지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이 노을만이 드리워 고즈넉한 게 문하의 마음에 꼭 들었다.
괜찮은 피난처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얀 후드집업을 목 끝까지 올린 문하는, 운동화를 신은 채로 산책로로 사박사박 발을 옮겼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 확성기로 증폭된 피아노 소리와 여러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멀리서 어렴풋이 들린다. 문하는 벤치 하나에 대충 걸터앉아 이어폰을 꽂고 동영상을 뒤적여보기 시작했다. ...포크 댄스와 관련된 동영상이었다.
별로, 부럽다거나, 저 안에 섞여 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 포크댄스라는 게 뭐 하는 건지 궁금해서. 알게 되면, 별 거 아니었네- 나와는 관계없는 거였네- 하는 말로 털어내버릴 수 있기 때문에.
# 상황과 배경을 설명해야 하는 첫 레스이기 때문에 길어졌지만 새슬주는 짧게짧게 줘도 좋아... 88
>>282 아이디어가 잔뜩은 아니었지만... (만족스레 쓰담당함) ㅋㅋㅋㅋㅋㅋㅋㅋ레드조합도 나쁘진 않지요... 대신 주변 아이들이 넘나 레드한 색깔에 눈이 아플지도... 앗 1학년 아랑이였군요! 장발에 트윈테일이라니... 역시 귀해요... 네넵 저도 복장 한번 찾아볼게요~
숙소 전체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소란스러웠다. 아마 지나가면서 들은 이야기론 포크 댄스라던가. 그런 것 따위 알 리 없는 새슬은 그저 포크를 가지고 하는 무언가거나, 그와 비슷한 것이겠거니 하고 일찌감치 신경을 꺼 버렸다. 그런데 웬걸, 밖에는 커다란 장작들이 타고 있고, 그 주변에는 인파가 잔뜩 쏠려 정신이 없는 것이다. 그런 류의 흥겨운 분위기를 싫어하는 건 또 아니었지만, 글쎄. 이상하게도 오늘 새슬은 틈에 섞여 신나게 즐기는 것보다 바다가 보고싶어졌다. 고요한 파도소리, 수면에 떠 다니는 달빛 조각, 그런 것들을.
가까스로 사람들의 틈새를 빠져나온 새슬의 발걸음이 묘하게 가벼워졌다. 조용히 흥얼거리는 콧노래, 바다내음을 머금고 스치는 바람,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떠올랐다 가라앉는 치맛자락. 모래사장을 지나 산책길로 들어서서 얼마정도 더 걸었을 때. 새슬이 저 멀리서 익숙한 인영을 발견했다.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흰 남자아이. 새슬이 일순 장난스런 웃음기를 머금고 살금거리며 다가갔다.
바닷가로 놀러온지도 며칠이 지났다. 별로 올 생각도 없었는데 타의로 와버린 것이라 이곳에서 노는게 흥미가 떨어져버린 나는 이젠 거의 숙소 안에서만 생활했다. 친구들은 같이 나가자고하는데 밖은 더워서 싫은데다가 귀찮기도 했고.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숙소 안에서 할 일을 하고 있다. 놀러온 학생들이 잘 있나 체크하는 것. 다들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이 되어있으니까 걱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이다.
" 졸리다 졸려 ... "
학교에 제출할 서류들을 하나씩 만들어놓다가 몸이 뻐근해서 잠시 스트레칭을 한다. 집중이 풀리자 주변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오는데 오늘은 확실히 더 시끄러웠다. 무슨 행사라도 하는가 싶어서 밖을 보니까 감미로운 음악들과 함께 사람이 두명씩 짝을 지어 모여있다. 춤이라도 추려는거야? 싶었는데 진짜 춤 추네. 생각해보니 오늘 포크댄스를 추는 날이라고 했던 것 같다.
" 청춘이네 청춘. "
발코니에 기대서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들떠보이는 얼굴이 재밌어보이는구만. 여기서 누군가는 원하는 사람과 되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아니었겠지. 그래도 다들 즐기고 있는듯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난 사람 많은 것도 별로 안좋아해서. 아는 사람이 있나 살펴보니 드문드문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저기는 저렇게 페어기 나왔네. 음료수를 오른손에 들고 큭큭대며 바라보던 나는 남은 음료수를 한번에 원샷 때리고 들어가 자기로 마음먹었다.
" 잠이나 자야지. "
일어나면 끝나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나서 핸드폰을 가지고 나온 나는 이 광경을 찍어서 저장했다. 나중에 제출할 서류에 첨부하기도 하고,
" 좋은 추억이니까. "
각각 찍어주고싶지만 그건 귀찮아서 불가. 진짜로 자러가야지. 그렇게 발코니에서 나와 미닫이 문을 닫아버린다. 에어컨 틀고 잘꺼야!
>>324 부회장님. 참가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전 상관없는데. (눈물) 아무튼 일단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는 전할게. 하지만 다음에는 해인주가 참가했으면 하고 다시 말할게. 고맙긴 하지만 역시 내가 기획한건데 나 때문에 누군가가 빠진다는 것은 조금 힘들어서. 아무튼 나도 이 이상은 말하지 않을게. 이 이상 말해봐야 진짜 의미없는 짓이고 해인주의 배려도 무시하게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