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은 이전에도 연호의 미소를 본 적 있었다. 그 밤, 장난스럽고 부드러운 미소. 그때보다 지금이 더 편안해 보이는 고운 미소인 것 같기도 했다. 내 손에 힘이 살짝 빠져도 네가 조금 더 힘주어 잡아주기 때문에 안심되는 면이 있을지도 몰라.
-맞아. 그 보랏빛도 좋아.
아랑은 연호가 맞장구쳐주는 걸 들으며 가만히 바다를 보고 있었다. 연호가 입을 먼저 떼지 않았다면 밤바다로 변할 때의 남색도 좋아하냐고 물었을까.
-사실 말이야,
그러나 연호가 먼저 입을 떼었기 때문에, 아랑은 밤바다로 옮겨가 있던 신경을 연호의 쪽으로 옮겼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때론, 얼굴을 보지 않아야 편하게 흘러나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난 혼자 있는걸 싫어해서, 바다에 혼자 남겨졌을때부터 컨디션이 별로였어.
그랬구나. 재능을 약간 과하게 써서 컨디션이 떨어진 줄 알았는데, 혼자 남겨져서... 아마도 외로웠기 때문에 컨디션이 별로라고 느꼈던 걸까.
-근데 너 만나서, 네가 손등을 대주었을 때부터 컨디션이 완전 회복됐어.
속인 것처럼 된 건가? 그 말에 손을 빼버리는 것 대신 아랑은 “ 괜찮아, 그건 속인 게 아니니까. 지금 이렇게 말해주기도 했고오. ” 라고 말하며 조금 웃었을 것이다.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 그저 아직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나도 그런 기분은 알아. 아랑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 그래도, 가끔 이렇게 과충전 하는것도 좋을것 같아.
“ 그럼 과충전 하는 김에, 쓰담쓰담도 받고 싶어~? ”
빵긋 웃으며 물어보다가 시선을 내려 잡고 있지 않은 손의 모래 잔량을 확인했다. 어... 어... 별로 없기는 한데, 이 손으로 만지면 충전이 아니라 찝찝해지는 거 아닐까...? 아랑은 모래가 거의 없다시피한 손을 잼잼 쥐었다 펴보았다. 빵긋 웃는 표정에서 점점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가 마침내 자신감이 없어져서.
“ 어... 모래가 거의 없기는 한데에... 어... 이 손으로 쓰다듬으면 안 되는걸까아...? ”
아주 살짝 시무룩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거절하더라도 개의치는 않을 테다. 그야, 모래가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역시 찝찝하긴 할 테니까.
>>20 매점이야 있을테고 취식시설이야 있을테니까 만들어서 먹고 싶다면 그건 자유지 않을까? 개개인의 자유니까 말이야. 음. 그리고 참여 못하는 사람끼리 돌리는 일상에서 허용하긴 힘들 것 같네. 찌르기만 받았다면 모를까. 랜덤도 있는만큼 말이야. 무엇보다 자기 관캐가 안 할 것 같아서 일부러 뺏다가 나중에 관캐에게 슬쩍 우리 돌려요 이렇게 악용할 수도 있는거고. 그래도 바다 일상은 자유롭게 돌리기가 가능하니까 그것으로 합의를 해줬으면..(안됨)
홍현은 그렇게 말하고 하늘의 손을 약하게 잡고 모래사장을 향해 갔다. 그래도 미안하다고 할 것 까진 없다고 해준 덕분에 조금 마음이 가벼워져 너무 힘 없이 있는 건 아닌것 같기도 한 홍현은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나도 시원했어! 몰랐는데 바다도 의외로 괜찮은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다시 웃어보였다.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웃어야 할 것 같았다. 웃고 싶었다. 벌써 2학년이었지만 홍현의 생활은 단조로운 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에선 오히려 이런 바다가 단조로움을 깨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모래사장으로 나온 홍현은 하늘이 기지개를 피며 말하자 자신도 답했다.
"그래..즐기자! 우리도 올해가 마지막이긴 하겠네.. 그래도 이런 추억이 생겨서 다행이야!"
그렇게 웃으며 하늘을 보고 있던 홍현은 문득 아직도 약학부원들이 어딨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제 헤어져야 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홍현은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고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슬슬 약학부원들을 찾아야겠어..! 어쩌다가 떨어진건진 모르겠지만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한 홍현은 벗어놨던 가디건과 내려놓아 놨던 강장제를 든 뒤 하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21 그러네요! >:3 (납득의 끄덕) 바다 일상은 자유니까 시간대를 살짝 바꿔서 밤이어도 낮일상한다거나.. 멀리서 캠프파이어 바라보며 수다나 떨거나.. 해인주가 주신 레스토랑 이용권도 있으니까 레스토랑 가는 일상 가거나... 아직 수영하는...? 튜브 타는 모습은 안 적었으니까 튜브타는 일상을 하거나 다양하네요! <:3 (튜브 검색하다가 예쁜 튜브 발견했는데.... 이게 너무 관종튜브같은 거예요.... ㅇ>-< 평범한 건 또 맘에 차는 게 없어서 더 뒤져봐야 할 거 같아요...) 하늘이는 그냥 튜브 없이 수영하지요...? <:Q (나름 잘한다고 본 거 같다)
아. 홍현주. 이거 묻고 싶은데 내가 쭉 둘러보니까 홍현주는 아직 카페 이용권도 레스토랑 이용권도 없는 것 같던데 하늘주가 카페 이용권 한 장이 남아있거든. 괜찮다면 가져갈래? 만약 가져간다면 막레로 하늘이가 주고 돌아가는 것으로 할까 해서! 어차피 가지고 있어봐야 이미 카페 한 번 갔다왔으니 쓸 것 같진 않아서.
당신이 자신의 몸을 터치하는데엔 딱히 거부감이 없었다. 지금처럼 가볍게 뒤에서 끌어안는 것도, 그전처럼 적극적으로 어필해왔던 때에도, 그녀가 거절할 일은 없었겠지. 단순히 무감각하다는 문제는 아니었고, 같은 성별끼리니 거리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에게 있어서 '사랑하게 되는 것'엔 구분이 없었으니까,
그저 당신을 좋아했었던 것 뿐이고, 지금도 당신을 좋아할 뿐이었다.
그 당연한 관점엔 어떠한 틀어짐도 없을테니, 일그러진 진주를 머금고서, 사랑이란 것을 저주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이거 어째 그대야보다 제가 죽을거 같은데요..."
호기롭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은 다시 생각해야 하나 싶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당신이 손에 선크림을 묻히고서 살며시 자신의 배에 가져다 대는 것을 본 순간부터 이미 그럴 때는 놓쳤단걸 알게 되었지만...
그저 간지럼을 안탈 뿐인지, 아니면 그런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극이 무뎌진건지... 라고 하기엔 사소한 스침마저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녀가 그정도로 무덤덤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굴이 약간 붉어진건, 부끄러움 때문일까? 물끄러미 아래쪽을 보려 해도 누워있는터라 제대로 보이진 않으니 그저 이리저리 오가는 손의 감각을 따라가는 것 뿐이었다.
"으음~ 뭐랄까, 저야 많이 먹던 적게 먹던 살이 붙을 곳만 붙어서 신경 안쓰는건 맞긴 한데... 꽤 자주 걸리적거리는거 같기도 하구, 할수만 있다면 떼어다 드리고 싶다구요~ 그거랑 별개로 조금 진심인쪽으로 얘기하면, 그대야는 좀 더 먹는 편은 어떤가요?"
물론 당신 역시 좀 말랐다는 느낌만 빼면 바르게 잡힌 스타일이었기에 반대로 자신처럼 우악스럽다 싶을정도로 굴곡이 있는 체형의 사람들이 부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세상엔 이런 모순 또한 꽤 많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관 별개로, 조금만 힘을 줘도 금방 부서질것 같다던가, 하늘하늘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불안하다는 느낌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물론 제 애인의 낭창낭창한 모습에 걱정을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마침 끝났는지 천천히 손을 떼고선 슬쩍 일어나려는 태세를 보인 당신에게 그녀는 바로 몸을 일으키며 손을 뻗어 가볍게 어깨를 그러쥐려 했다.
"음~ 내빼는 건 좋지 않다구요. 그대야~?"
자신에게 선크림을 넘겨주고 은근슬쩍 먼저 물에 들어가려는듯한 당신의 계획을 알아챘는지 한껏 가느다래진 눈길, 어딜 도망가냐는듯한 익살스러운 표정이 당신을 마주보았다.
"저는 분. 명. 히. 얘기했는 걸요? 받은만큼 돌려주겠다고..."
악의는 전혀 담기지 않았지만, 여름이라면 당연히 있을법한 을씨년스러운 웃음소리가 한껏 굽어진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자... 얌전히 엎드리지 않으신다면 오늘 간식은 물론 물놀이도 없을 거랍니다...? 대신 잔뜩 괴롭혀드릴 거라구요? 후후후후..."
처음에는 되게 소심한 느낌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하늘의 눈엔 그녀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조금 친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그 약 때문인건지. 어느 쪽이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생각을 마무리지었다. 그 이상의 생각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기에.
"소라 소리 듣는 것을 추억으로 쳐준다면 영광인걸? 그럼 나도 추억으로 간직할게. 소라 소리를 들려준 것으로 말이야.'
참으로 사소한 일이었으나, 그런 사소한 일이 반복되면서 추억으로 쌓이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 법이었다. 적어도 하늘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내 약학부원들을 찾으러 가야겠다고 하는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특정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저쪽에서 내가 왔었지만 저쪽에는 딱히 사람들은 없었어. 그러니까 반대 방향이지 않을까? 물론 내가 나온 후에 내가 있었던 방향으로 갔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정도 도움은 줄 수 있을리라. 정말로 그게 도움인진 둘째치더라도 그 이상 깊게 생각은 하지 않으며 하늘은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그녀를 바라보며 덩달아 손을 흔들었다.
"응. 기회가 되면 또 보자.'
그게 내일이 될지, 아니면 또 한 계절이 지나서 가을이 될지. 어느 쪽이라도 그리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하늘은 하늘 나름대로 다시 바다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 편에 보이는 경계선까지 수영을 하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오늘 하루 정도는 정말 신나게 수영을 즐길 생각이었으니까.
혼자만의 해수욕 이후에 찾아오는건,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연주하는 연주자가 되어야했기에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겼다. 자신 역시 최대한 많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