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조금 부끄러울지도,'라는 말을 덧붙인 그녀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대해 꽤나 깊게 생각하는듯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해봐도 이렇다할 결과가 나오진 않았다. 역시 사람의 감정이란건 정해진 수치로는 표현할수 없는 무형의 무언가인 것일까? 어쩌면 그래서 그녀에겐 더더욱 미지의 무언가로 와닿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모든 것에 불편함이나 거부감은 없었으니 그저 담담하게, 하지만 기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언젠가는 웃는 이유도, 화내는 이유도, 우는 이유도, 즐거워하는 이유도 알게 될테니까.
"딱히 대단하다 할 정도까진 아니겠지만요...?"
장난스러운 웃음 뒤, 어깨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가던 손길이 등에 머물러 조심스럽게 움직이자 괜시리 더 굳어버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다는 것이 오래간만이라 잠시 긴장했을뿐 얼마 안가서 편안하게 늘어졌을지도 모른다.
"좋은 모습이라..."
찬찬히 내려가는 궤적을 등에서부터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그녀는 당신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세심한 손길은 경계선을 지나 완만하게 패인 허리를 향해가고 있었고, 그녀 역시 어느정도 생각하고 있던게 매듭지어졌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을까.
"그건 그래요. 저 또한, 그대야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물론 다시 만나고 얼마되지 않아서는 애착보다 죄책감에 가까운 느낌으로 당신을 대했겠지만, 봄이 지나 여름이 되어가면서 그런 후회감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던 그녀였다.
어차피 지나간 일을 후회한대도 그것을 덮어쓸수 없는 일이니까, 세이브로드가 가능한 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일 뿐, 현실엔 그런게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대야만할까요~? 아, 물론 아쉽다면 다른데도 부탁할수 있겠지만요?"
허리 근처까지 닿은 손, 그러면서도 간질거리는 숨결에 덧붙여진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에 사뿐하게 전해지자 그녀 역시 살짝 얄궂은 표정을 지으며 슬쩍 돌아보았다.
" 그대야랑 마음이 맞는 걸 알 수록 기쁘고 설레이는데.... 역시 노력하는 보람이 있네. "
시아는 잠시 말을 곱씹는 듯한 슬혜의 대답을 얌전히 손만 움직이며 기다려주다 들려온 대답에 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대답을 돌려준다. 이제는 정말 둘이서 마음이 맞기 시작한 것 같으니까 분명 초록불이 들어온 것이나 다름 없을테니까. 물론 이제 두사람은 다시 시작선에 선 것인 만큼 노력을 더 해야하겠지만 추진력이 된다는 사실은 틀린 것이 아니리라.
" 흐응, 다른데도 부탁할 수 있는거야? "
시아는 장난스런 자신의 말에 얄궂은 표정을 지으며 돌아본 슬혜의 말에 눈을 한차례 반짝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음을 던진다. 마침 허리부분까지 선크림을 바르던 것이 마무리가 될 즈음이었기에 등에 선크림을 발라주던 손을 이용해 그대로 뒤에서 백허그를 하듯 감싸안는다. 시아의 몸이 슬혜의 등에 맞닿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 다음에는 어디를 부탁하고 싶어? 그대야가 이야기하면 다 들어줄게. "
부드럽고,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슬혜의 배를 톡하고 건드린 시아가 이야기 해달라는 듯 상냥하게 귓가에 속삭인다. 물론 말을 끝낼 즈음, 마지막에 쪽하는 소리를 들려주곤 맑은 웃음을 터트리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홍현은 밝은 목소리로 답하였다. 홍현은 조금 피곤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우 멀쩡한 것 같다가도 가끔씩 조금 피곤해지는게 이상한 기분이었다. 흔쾌히 승낙해준 하늘에게 홍현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러면 같이 들어가자!"
하늘과 손을 살짝 잡으며 바다를 향해 걸어가던 홍현은 이게 다른 남자와 처음으로 악수나 다른 의도 없이 손을 잡아본 경험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왠지 그걸 떠올리니 기분이 오묘해지는 것 같았지만 살짝 손가락만 잡은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손 정도는 잡아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에 그냥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다른 친구들? 약학부라면 같이 오긴 했는데 어딨는진 모르겠어! 아마 저기 어디 있을거야!"
그렇게 말하며 홍현은 어딘가를 가리켰지만 정확히 어딜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현은 먼 해변을 바라보며 잠깐 멍을 때리다가 손을 내리곤 말했다.
손을 잡은 채로 바다에 발을 담그니 시원한 감촉이 발목을 스치다가 빠져나가는 것이 하늘에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조금 큰 파도가 오자 그보다 조금 위쪽, 종아리 부분까지 젖다가 다시 빠져나가자 괜히 간지러운 듯, 그는 다리를 살짝 움찔했다. 바다에 올 때마다 느낄 수 있는 파도의 작은 재미였다. 아무리 크게 온다고 한들, 이 정도겠거니 생각을 하며 하늘은 전방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셨다. 짠 바다향이 입과 코를 통과하는 것을 느끼며 괜히 기분이 좋아 그는 미소를 머금었다.
"......?"
어딘가를 가리키는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의 기분 탓이었을까? 멍을 때리는 모습도 슬며시 보이는 것 같다고 느끼며 하늘은 정말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는 본인만 알 수 있었으나,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살짝 움직이던 하늘은 조심히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괜찮아? 물이 어려우면 굳이 힘들게 들어올 필요는 없는데."
자연히 하늘의 시선이 해변으로 향했다. 잡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긁적이다 하늘은 눈을 감고 숨을 약하게 내쉬면서 홍현에게 이야기했다.
"힘들면 다시 나가도 괜찮아. 기왕 바다까지 왔는데 괜히 무리할 건 없잖아? 시험도 끝나고 놀려고 온건데."
자신의 쓸데없는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말하는 것은 알아줬으면 하는 것. 그렇기에 하늘은 자신에게 전달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없었기에.
>>972 잠시 바닷물을 느끼던 홍현은 하늘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느꼈다. 그리곤 얼마 안가 왜 그랬는지 짐작하게 됐다. 아마 자신이 멍을 때리고 있거나 손을 떨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늘 그랬다. 강장제를 먹으면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듯 사람이 바뀌었지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면 불편하듯 친구들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그보다도 많이 마신 까닭에 부작용이 좀 더 심해진 것 같다. 자신을 걱정하며 조심히 물어보는 하늘의 말에 홍현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 괜찮아! 어.. 이게 강장제를 먹으면 친구들도 좀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고 했거든. 이번에는 한꺼번에 많이 마셔서 그런 것 같아! 헤헤..."
홍현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이마를 짚으며 심호흡을 했다. 그래도 진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강장제를 바라보며 하늘의 동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볍게 흔들렸다. 물론 사람마다 약 효과가 드는게 다르다고는 하지만 불안정해보일 정도라면 조금 위험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 돌아갈 때 한 병 부탁해도 되냐는 말은 취소하기로 하며 하늘은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역시 함부로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탄하나 상대에게 직접 들려줄 말은 아니니 하늘은 그 말까지는 차마 밖으로 뱉지 못하고 애써 목소리를 꿀꺽 집어삼켰다.
"네가 괜찮다면 괜찮아. 정말로 강장제 때문이라면 말이야."
약간의 여지를 남겨주며 하늘은 허리를 살며시 굽혔다. 바닷물 아래 쪽에 작은 소라가 하나 있었다. 겉은 진한 갈색이나 속은 주황빛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무지개색이 살며시 보이는 그 소라의 물기를 가볍게 털어낸 후, 하늘은 한쪽 귀에 그 소라를 가져갔다. 특유의 소리가 가만히 울리는 것을 말 없이 들으면서 하늘은 만족스럽게 소라를 귀에서 떼어냈다.
"너도 들어볼래? 바다에 오면 이렇게 듣는 것도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난 늘 들어."
받아들인다면 그녀에게 소라를 전달했을 것이고, 거절한다면 조금 더 듣다가 바다 속에 놓아줬을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껍데기라고는 하나, 나중에는 누군가의 집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이마를 짚던 홍현은 이마를 땠다. 조금 진정된 것 같았지만 언제 또 전처럼 흥분할지 모르는 것이었기에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밀려오며 발에서 느껴지는 바다 파도가 약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강하지도 않았기에 딱 기분 좋은 정도였다. 하늘이 소라를 주워 귀에 대고 소리를 듣다가 홍현에게 건네주었다.
"아.. 고마워!"
홍현은 조심히 받아 어색하게 귀에 대보았다. 소라를 귀에 대본다면 소리가 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홍현에겐 딱히 중요하진 않았다. 애초에 바다에 간 적도 없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들려오는 소리는 홍현을 흥분시키지 않고 오히려 진정시켜주었다. 홍현은 잠시 눈을 감고 듣다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하늘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이거 정말 신기하네! 사실 처음 들어봤거든! 그동안 바다에 거의 가본 적이 없기도 했고 말이야!"
그녀가 소라를 받아들이자 하늘은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 궁금했는지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주시했다. 자신이 들은 음과 그녀가 들은 음은 과연 각각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그녀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기에 어떻게 느낄진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들려오는 말로 추정하면 긍정적이면 긍정적이었지, 부정적은 절대로 아니겠거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럼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들어봐. 똑같아 보이는 소라라도 구조가 다르면 그 소리도 다르거든. 파도 소리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음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꽤 흥미롭더라고."
아쿠아리움에 가면 다양하게 들어볼 수 있을 거라고 권유를 해보며 하늘은 다시 자신의 귀에 갖다대고 소리를 듣다가 허리를 줍히고 소라를 바다 속에 집어넣었다. 파도에 흽쓸리며 데구르르 굴러가는 소라는 저 안 쪽으로 들어갔고, 이내 모습을 감췄다. 저대로 어디론가 흘러가다가 멈추고, 다른 게의 집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포크댄스에 참여할거야? 일단 곡을 연주하는 사람이라서 괜히 궁금하거든."
이전 자신과 같은 반인 하에게 물어봤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물어보며 그는 괜히 답을 기다렸다. 아는 이가 많이 참여한다면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을 줘서 연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아는 이가 많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연주를 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피아노와 관련된 일을 대충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글쎄.. 솔직히 지금 강장제를 먹고 업이 된 상태에서도 춤에는 자신이 없어서 말야. 이 상태에서 오히려 사고를 칠 것 같기도 하고. 파트너는 둘째 치더라도 그래서 참여하긴 좀 힘들 것 같아... 미안.."
홍현의 난감한 표정은 미안함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 상황에서 이건 그저 변명으로 들리지 않을까. 홍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걱정했다. 고개를 숙인 홍현은 다시 손이 떨리고 있다는걸 알아채게 되었다. 급하게 손을 뒤로 숨겼다. 홍현은 애써 다시 힘을 내보며 말했다.
"후후후후... 어디 사람생각이 서로 들어맞는게 쉽게 일어나던가요? ...물론 그래서 더 기분 좋은 거지만요~"
같은 마음 같은 생각, 혹은 같은 목표. 그 분류가 어찌되었건 서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지만 그만큼 기쁜 일임엔 분명했다. 가령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상대방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단걸 아는 순간의 만족감은 가히 인간의 원동력이라고 칭할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어디까지나 책에 쓰여진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당신의 말 한마디에 더 과감하게 나아갈지, 아니면 조심스럽게 지켜보기만 할지를 정했으니까. 그래도 정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이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만큼 그녀 또한 그런 적극성이 필요하다는것 정도는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였다. 그 어느쪽이든 그녀는 이기고만 사는 것도, 지고만 사는 것도 질색이었으니까.
"뭐어, 어디까지나 원하신다면요? 그거야 뭐 자유지만..."
자신의 말에 잠깐 눈을 반짝였던 당신이 꽤나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을 던지자 그녀는 그것쯤은 별것 아니라는듯 평소처럼 어깨를 으쓱이다가도 뒤에서 안아오는 느낌이 들자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혹스러움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을까? 단순히 뭘까 싶은 마음으로 살짝 돌아보다가도 등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어쩐지 나른한 기분을 주는 것만 같았다.
"으음..."
부드러우면서도 장난스럽게, 배에 살짝 손길이 닿는 느낌이 들자 잠깐 놀란듯 눈이 동그래진 그녀였지만 상냥하게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와 쪽 하는 소리가 맴돌다 웃음으로 흩어지자 마주 웃어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게요~? 배를 건드린 댓가로 부탁을 해볼까~ 원래 고양이들은 배를 건드리면 죽음을 각오하라 하지만, 전 사람이니까요?"
제 뒤에 가볍게 이마를 부딪혀오던 당신이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저편에서 부스러지는 파도를 바라보던 그녀가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한층 더 밝은 톤으로 웃어보였다.
"얼른 해치우지 않으면 잔잔한 바다 위에서 물놀이를 해야 할거라구요~?"
게다가 자신만 선크림을 바를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대로 돌려주는건 그녀만의 철칙이었다.
그냥 가볍게 물어본 것이었는데 저렇게 난감한 표정을 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하늘 역시 살짝 당황하며 머리카락을 괜히 긁적였다. 괜히 물어본걸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하늘은 고개를 숙인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급하게 손을 뒤로 숨기는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님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곧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럴까? 그리 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시원했을지 모르겠네. 난 시원했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살며시 뒤돌아서 물밖으로 걸어나가니 첨벙첨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이 크게 튀지 않도록 살살 걸으니 물 속에 잠겨있단 발이 밖으로 빠져나오며 공기와 접촉할 때 느껴지는 그 특유의 시원함이 느껴졌다. 점점 멀어지는 그 시원함이 아쉬워 괜히 고개를 돌려 물을 바라보나, 더 들어갈 기미는 없었는지 편하게 물 밖으로 나온 그는 잡고 있었을 손을 살며시 떼어내며 두 팔을 크게 하늘 높게 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렸다.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 안해도 돼. 정말 그냥 너도 올까? 해서 물어본 거니까. 참여하지 않더라도 집에 돌아갈때까진 즐겁게 보내자. 이런 곳에 오는 것이 흔한 것은 아니잖아? 매년 있는 행사라고는 해도 내년 고3때는 나도 못 올 것 같고."
이 하늘주. 같은 날에 백신 맞은 사람으로서 힘들게 일상 돌리자는 말은 절대 못하는 사람이지! 부작용이 크게 왔으면 일상이 문제가 아니라 푹 쉬어야지! 고로 푹 쉬어라! 규리주!! 그냥 그렇게 안면 튼 것으로 마무리를 짓자! 미안해하지 말아줘. 일상 못 돌리는게 미안한건 아니잖아? (토닥토닥)
시아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당신에게 작게 웃음을 흘리며 답한다. 원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다가가지도 않았을테니까. 슬혜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은 시아가 바랬던 결과였다. 그렇게 살며시 뒤에서 감싸안은 시아가 슬혜의 배를 살짝 매만졌고, '으음..' 하는 슬혜의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지자 활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 자, 그러면 이번에는 슬혜의 배에도 발라줄게. 얌전히 있어야 해. 죽음은 무서우니까. "
시아는 장난스럽게 대꾸를 하곤 끌어안았던 팔을 살짝 풀어선 선크림통을 열어 아까처럼 손바닥에 선크림을 묻힌다. 그리곤 슬그머니 슬혜의 배로 손을 가져가선 천천히 선크림을 펴바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배꼽에서부터 위아래로, 그리고 옆구리까지 천천히 시아의 손이 슬혜의 복부를 휘감고 발라나간다.
물론 이렇게 선크림을 발라주면서도 슬혜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손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과, 슬혜에게 장난을 치고 있다는 즐거움에 빠진 체 웃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 슬혜는 다이어트도 안 해도 되겠어요. 군살도 하나도 없고... 왠지 슬혜는 평상시엔 딱히 먹는 것도 신경을 안 쓸 것 같은데... 나는 엄청 신경쓰거든... "
시아는 부럽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슬혜의 복부에 선크림을 바른다. 세심히 마무리 지은 시아는 천천히 손을 떼어낸다.
" 휴, 다른 곳은 아무래도 제가 발라주기엔 장소도 그렇고.. 슬혜도 부끄러워 할테니 이젠 얌전히 슬혜에게 선크림을 넘기고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네~ "
슬그머니 손을 떼어낸 시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하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슬혜에게 선크림을 발라주고 자기는 물에 들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