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하는 그녀였지만 그 뒤는 굳이 꺼내지 않겠다는듯 곧장 입을 다물고선 당신의 말에 따라 저편에 있는 바다로 눈길을 주었다. 괜한 소리를 했다간 언제 또 역공을 당할지 모를 일이니까, 그래도 그런 긴장감 또한 쏠쏠한 재미였으니 비록 어설프다곤 해도 그런 느낌과 감정 자체에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등뒤에선 선크림 뚜껑이 열리는 소리, 조곤조곤 들려오는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가 파도와 어우러지면서도 뒤늦게 터진 당신의 웃음엔 역시 뜨끔했는지 살짝 움츠러드는 느낌이 있었다.
능청스러움을 뒤로하며 낭랑하게 알린 시작신호에 그녀는 잠깐 몸이 뻣뻣하게 굳다가도 이내 낮은 한숨을 쉬며 편안하게 등을 맡기기로 했다. 물론... 우선 시작된건 등에 낙서를 하는듯한 가벼운 손장난인 모양이지만 말이다. 감각에는 제법 민감한 편이었기에 손가락으로 그려나가는 궤적이 고양이였음을 짐작했던 그녀는 보이진 않는대도 살짝 뚱한 표정을 짓다가 지워나가듯 손바닥으로 펴바르며 물어오는 목소리에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어나갔다.
"관리... 라고나 할까요? 사실 그렇게까지 에스테틱쪽으로는 신경을 쓰진 않아서..."
허구헌날 그런 모습을 봐왔던 그녀에게 있어서는 피부관리를 따로 하는건 불필요한 자기만족이라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저 일상에서 조심하는 것들 뿐이었을까? 요리라는 취미의 특성상 자칫하면 피부컨디션이 나빠질수도 있기에 조심할만도 하건만, 회복이 빠른 편이라는걸 변론삼아 기피하는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대야는 어떤 편인가요? 따로 관리하는 거라던가, 유독 신경쓰이는 부분이라던가..."
그렇다면 내심 궁금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 어느쪽에도 걸쳐지지 않은 자신과는 다르게 온전히 여성스러운 면모를 가진 이들의 관점은 항상 호기심거리였으니 말이다.
제품명 : ANDROID-DFCA2548 등록된 제품명 : 【현슬혜】 보고된 오류내용 : 설정된 「가족」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원인검증결과 : 감정 리소스의 누적. 해결책 제안 : 자립형 감정 프로세스 설정 해제 #shindanmaker #안당오 https://kr.shindanmaker.com/1039103
가족 포함 자기 족보와 친척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품은건 맞지만... 원인검증 결과랑 해결책이 정반대야!!!! 감정 리소스가 거의 텅텅 비었는데요! 자립형 감정 프로세스가 너무 고급세팅으로 맞춰져있어서 조절은 필요하겠지만! ...그럼 감정 리소스가 좀 늘어나긴 하려나? 🤔🤔🤔 절대자립맨에서 자립못해맨으로...
>>624 >>626 🤔🤔🤔🤔🤔🤔🤔🤔🤔🤔 평행세계 양아치... 성격 들쭉날쭉한건 공통점이지만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편이라... 진짜 뭔가 일 하나 거하게 쳤을거 같은데...? 가령 '아무도 내 감정을 이해 못해!'라면서 사랑의 도피를 한다던지... 안그래도 주말 저녁드라마 같은 애가 평일 아침드라마가 되었다...
>>637 색다른 관점 맛있어오... 어릴때부터 자립맨이어서 양아치는 개인주의야! 해버렸던 거라면? 너무 자립맨인 나머지 감정조차 자립해버려서 초월체가 된거라면? 사실 양아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게 아니라 심적으로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 이미 해탈해서 초연해진 거였다면? (적폐회로에 기름칠함)
같이 해 볼까, 하는 해인의 답이 돌아온 순간. 새슬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와ㅡ정말? 신난다아. 그러고서는 해인의 말에 네ㅡ( ᐛ ) 하고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대답하더니, 얌전히 첫 모래가 쌓일 때까지 근처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대하던 첫 번째 젖은 모래. 손가락으로 쿡 찌르니 축축한 바닷물의 촉감과 함께, 모래 사이에 작은 구멍이 남는다. 한 번에 쌓이는 모래의 양이 그리 많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었기에 새슬은 조금 더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만들 모래성의 대략적인 이미지를 그려보기로 했다. 문제는 그 이미지가, [(새슬의 말로 묘사해 보자면)짱 크고, 짱 멋있고, 어쨌든 완전 화려한 거ㅡ]였다는 점.
다행히 살뜰한 해인의 충고 덕에, 새슬의 원대한 <모래사장에 내 집 마련하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ㅡ안 되는구나ㅡ. <:3. 새슬이 조금 풀 죽어 움츠린 어깨로 모래사장 바닥에 몰래 반항하듯 ‘내 집’ 따위의 글자를 손가락으로 끄적이다 슥슥 지워내고는, 그 자리에 젖은 모래 두어 줌을 덜어 쌓기 시작했다. 천천히 토닥거리는 손놀림.
“모래성같은 거 잘 만들어? 해인이는.”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은 건지, 원래 그런 것을 만들 예정이었는지 모를 작은 모래 언덕을 계속해서 토닥거리면서, 해인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쯤 새슬이 물었다.
아랑이 예쁘게 웃었다. 연호는 바닷바람이 마리를 헝클어뜨려 빗어넘기는 것을 느끼다가, 고개를 돌려 아랑과 눈을 맞추었다. 아랑이 웃는 모습에 그 자신도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평소처럼 이를 드러내며 씩 웃거나, 입을 크게 벌려 하하 웃는것이 아닌, 입에 호선을 그리고 눈은 곱게 휜 미소를.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웃음도 아랑처럼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랑의 손에 살짝 힘이 빠진것을 연호는 캐치해냈다. 그것을 깨닫고서 그는 오히려 손에 힘을 조금 더 주려했다. 그 편이 더 안심된다는 듯이.
" 맞아. 그 보랏빛도 좋아. "
사실 바다라면 다 좋은게 아닐까, 싶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아랑도 바다를 보고있었고, 아랑의 옆모습을 보고있던 연호도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아랑의 말대로 이제 주황빛 바다가 점점 어두운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정말 잠시라도 눈을 뗐다간 그 두 색이 섞여가는 모습은 보지 못할테다.
" 사실 말이야, "
그래서 그는 지금 입을 열었다. 아랑이 이쪽을 보지 않을거라는걸 알았으니까. 애초에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였으니.
" 난 혼자 있는걸 싫어해서, 바다에 혼자 남겨졌을때부터 컨디션이 별로였어. "
점점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노을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때 즈음부터, 그는 홀로 고독을 씹으며 청승맞게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이제 그것도 질려 다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까 하던 차에 아랑을 만난 것이다.
" 근데 너 만나서, 네가 손등을 대주었을때부터 컨디션이 완전 회복됐어. "
속인것 처럼 된건가? 라며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는 혹시나 이 말을 듣고 아랑이 손을 빼버릴까 얼른 뒷말을 덧붙였다.
" 그래도, 가끔 이렇게 과충전 하는것도 좋을것 같아. "
그렇게 말을 마친 그의 눈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아름답게 보랏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바다? 저 멀리서 바닷물을 일렁이게 만드는 물고기들? 그 위에서 먹이를 노리고 있는 갈매기들? 그것도 아니라면, 바로 곁에서 손을 잡고있는, 아랑? 아랑이 그를 보고있는 상태가 아니어서야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어디를 보고있던간에 그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둥굴게 휘어있는 눈이, 사라지지는 않았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