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순히 정답을 맞춘 이유를 말하는 사하를 물끄러미 보던 시아가 가느다란 검지를 펴서 자신의 입가로 가져가선 쉿 하는 소리를 낸다. 그리곤 가볍게 윙크를 해보이며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대답을 돌려준다. 굳이 운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는 듯 장난스레 사하의 말을 고쳐준다. 그래도 뿌듯해보이는 사하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드는 시아였지만.
" 뭐, 확실히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라고 말해버리면 범주가 넓어지긴 하네요. "
시아는 자신의 질문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의 범위가 꽤나 넓었다는 것을 깨닫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지금도 재밌다는 사하의 덧붙이는 말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불만족스러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 네, 엄청 즐겁고 두근거리고.. 앞으로도 잊지 못할거에요. "
장난스럽게 물어오는 사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던 시아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이내 두손을 공손히 모아선 자신의 뺨에 가져다대며 눈을 지그시 감은 시아가 미소를 머금은 체 자그맣게 속삭인다. 지금 되새김질을 해보아도 분명 기쁘고 즐거운 한편의 추억이었다는 것처럼.
" 그러니까 선배도 이번 기회에 그런 기억을 하나쯤은 만들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시간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테니까요. "
회상을 하듯 눈을 감으며 미소 짓던 시아는 천천히 눈을 뜨곤 초콜릿색 눈동자로 사하를 바라보며 조곤조곤 대답을 이어간다.
" 적어도 헤어져서 각자 방으로 가기 전까지 꽤나 많이 들을거에요, 이렇게 예쁜 선배를 보는건 정말 기쁜 일이니까요. "
슬그머니 한걸음 더 다가가 두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힌 시아가 고개를 젖히며 웃어보인 사하의 볼이 불그스름해진 것을 보곤 짓궂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상냥하게 말한다.
슬혜의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태연하게 말을 이어가는 시아였다. 당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웃어보이는 그 모습은 시아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저 순수한 미소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바라는 갈망이 담긴 미소인지는 시아만이 알 수 있을테니까.
" ... 나는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슬혜의 예쁜 모습. "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돌린 당신이 하는 말을 들은 시아는 살풋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리곤 하염없이 따스한 눈으로 슬혜를 바라본다. 귀끝이 붉게 물든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한결 부드러워진, 그러면서도 조금 열기가 담긴 목소리로 살며시 속삭였다. 왠지 슬혜의 흔치 않은 모습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지는 것은 욕심이나 다름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도착한 모래사장의 한켠에서 돗자리를 펴고, 가방을 내려놓은 시아는 기다렸다는 듯 걸치고 있던 옷들을 벗어던진다. 물론 안에 수영복을 입고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분명 대담해보이는 일이었으리라. 슬혜만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슬혜를 위해 입고 왔다는 것처럼 시아는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준다.
" 괜찮다니 다행이다~ 슬혜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심사숙고해서 골라온 수영복이니까. 살 때도 꽤나 용기가 필요했다구. 그대야가 내 용기를 잘 알아줬으면 좋겠네. "
슬그머니 나름대로 어디선가 본 포즈를 취해보이며 입가에 살짝 손을 얹은 슬혜를 유혹하듯 윙크를 해보인다. 그리곤 천천히 다가가 자연스레 허리를 감싸안은 시아는 슬혜의 귓가에 속삭였다.
확률이 높은 건지, 아니면 운이 상당히 좋은 건지. 하늘은 바닷가 근처 카페 이용권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명 동반이 가능한 모양인데 다른 이에게 권할지, 아니면 그냥 혼자 갈 건지 자연히 그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제 소꿉친구를 불러서 가겠으나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이외에 누가 같이 갈만한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는 와중, 문뜩 낯익은 분홍 머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쟤도 왔었던가. 그 정도의 인식이 박혀있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하늘은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
"금아랑. 지금 시간 있어?"
가벼운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카페 이용권이 하나 있고 한 명 동반이라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제안에 그녀가 동의했고 자연히 하늘은 앞장서서 카페가 있는 그 위치로 걸었다. 이용권 뒤에 가는 길이 약도로 그려져 있었기에 장소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별 의미 없는, 하지만 그렇기에 소중한 담소를 이어가며 길을 걸어가니 저 앞쪽에 2층 크기의 카페가 보였다. 생각보다 크네. 하긴, 근처에 콘도도 있으니 당연할까. 그런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며 하늘은 살짝 속도를 올려 ㅡ허나 동행자와 너무 떨어지지 않게ㅡ 카페를 향해 발을 옮겼다.
딸랑-
찰랑한 방울 소리가 조용히 울리고 하늘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상대가 괜히 또 문을 열지 않도록 문을 잡다가 상대가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놓으니 문은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흔들리다가 닫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밖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는 대조적인 느낌이었으나, 그 시원한 만큼은 같았다. 아직 땀은 흐르지 않았으나, 괜히 시원하다고 느끼며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카운터로 향했다.
"이용권인데 이거 이용되나요?"
그의 물음에 직원이 이용할 수 있다고 답해왔다. 무엇이든지 편하게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나 정말로 마음대로 먹기에는 역시 마음 한구석이 살짝 가로막고 있었다. 그냥 가볍게 음료와 디저트 하나만 주문할까 생각을 하다 동행한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살며시 옆으로 지켰다.
"먼저 주문해도 괜찮아.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골라."
나도 김에 조금 생각해보고 싶거든. 뭐 먹을지. 메뉴판을 보고 고민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하늘은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살짝 올리다가 가라앉혔다. 공짜라고는 해도 뭘 먹는 순간에는 자연히 고민하기 마련이었다. 일단 그녀가 고를 때까지 자신은 카페의 디자인이라도 볼까 싶어 하늘의 눈동자가 차르르 굴렀다. 바다의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는지 벽지에는 푸른 파도가 담겨있었고, 창가 너머로는 바다 풍경이 바로 보였다. 느긋하게 뭐 먹긴 딱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치 여름을 그대로 담은 듯한 그 에메랄드빛 카페의 벽지를 좀 더 눈으로 쫓던 와중 옷자락이 살짝 잡히는 감각이 그의 팔을 통해 전해졌다. 아무래도 자신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잡혀있는 옷자락을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나 떨어뜨리진 않았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블루베리 타르트와 쿠엔크 케이크를 하나씩 짚으며 뭐가 맛있을 것 같냐는 그 물음에 하늘은 잠시 고민했다. 애석하게도 같은 반이라고는 하나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다지 없었다. 당연히 그녀의 입맛 취향도 알 길이 없었다. 물론 큰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금 생각하다 그는 물음에 대답했다.
"개인적으로는 블루베리 타르트. 블루베리가 되게 맛있을 것 같거든. 그래도 이건 내 취향이니까 새콤달콤한 것을 좋아하면 타르트로 가고, 그냥 달콤한 것을 좋아하면 케이크로 가는 건 어때? 어차피 제한은 없을 것 같으니 그냥 하나하나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취향이지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저 그런 조언 아닌 조언을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머지않아 그녀의 주문이 마무리되었다. 음료는 아이스 녹차. 그리고 디저트는 그녀의 취향일지, 아니면 자신의 선택을 듣고 참고했을 무언가. 이젠 자신이 주문할 차례였다. 그제야 하늘은 메뉴판을 눈으로 훑었다. 다 괜찮아 보이는데 뭐가 좋을까.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 하늘은 수박 에이드와 아이스크림 와플을 하나 주문했다. 땀은 흘리지 않았다고 해도, 기왕이면 여름이니 시원한 것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렸다가 아래로 내렸다. 과연 어떤 맛일까. 눈동자 속에 그 기대감이 빛을 보이다가 은은하게 사라졌다.
주문을 마치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하늘은 아랑을 바라보며 2층으로 가보자고 권유했다. 1층의 풍경도 좋으나 2층의 풍경도 그리 나쁘진 않을 테니. 아니, 오히려 이런 곳이라면 더 먼 곳을 볼 수 있을 테니 좋으면 좋았지, 절대로 나쁠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보여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도 민폐였고 자신에게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찔리는 것은 없었으나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자신 역시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귀찮은 버릇의 발현이었다.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는 번거로우니 하늘은 음료와 디저트를 챙겨갈 테니 먼저 올라가서 자리만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음료를 만드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은 필요 없었고, 디저트 또한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꺼내오는 것일 테니까. 아랑을 먼저 계단으로 올려보낸 후, 하늘은 벽에 등을 기대며, 다시 한번 벽지를 바라보며 눈을 감으니 절로 하늘의 입에서 고요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아무도 듣지 못할, 혹은 정말로 가깝게 다가와야만 겨우 들릴 그런 멜로디는 하늘이 알고 있는 피아노곡 중 하나였다. 나중에 음료와 디저트 먹으면서 들어볼까. 그러면 역시 아랑에게 실례겠지. 그런 상반된 마음이 흔들리며 어느 한쪽으로 살며시 기울었다.
"주문하신 음료와 디저트 나왔습니다. 추가 주문하실 거면 얼마든지 주문해주세요."
완전히 무한 제공은 아니나 일정 금액 내에서라면 좀 더 주문할 수 있다는 말에 하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금액을 계산해보니, 아직 몇 개는 더 주문할 수 있었다. 조금 전에 그렇게 고민을 하던 이에게 이 희소식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트레이를 들고서 하늘은 2층으로 계단을 통해 천천히 올라섰다. 음료가 쏟아지지 않게, 디저트가 흐트러지지 않게. 그렇게 균형을 잡아 올라가니 그리 멀지 않은 창가 자리에 아랑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여기에 있다는 듯 손을 흔드는 듯한 모습에 하늘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그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으니 저 멀리 바다 풍경이 그대로 눈동자에 담겼고 하늘은 자신도 모르게 절로 작게 감탄했다. 좋은 자리를 잘 잡아줬다고 이야기를 하니 상대의 미소가 눈동자에 그대로 비쳤다. 그 미소를 보니 절로 제 입가에도 미소가 작게 터져 나와 입꼬리가 조금 더 휘어지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가 주문한 디저트와 음료를 내려놓고, 자기 디저트와 음료를 챙긴 후, 하늘은 에이드가 담긴 잔을 집어 제 입으로 가져갔다. 시원하고 상쾌한 수박 향이 입 안에 사르륵 녹아내렸다. 수박 말고 다른 것도 들어간 것 같지만 그것이 무엇인지까진 절대 미각이 아니었기에 하늘로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냥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아 괜히 좋다고 생각하며 다시 쪼르륵 한 모금을 마시니, 여름이 목구멍을 타고 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물어보니 일정 요금 내라면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대. 그러니까 편하게 먹고 싶은 걸 먹어도 될 것 같아. 그렇다고 무리하진 말고.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 나면 결국 손해니까."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 아이스크림 와플을 네 조각으로 자른 후, 하늘은 살며시 접시를 아랑 족으로 밀었다. 그리고 집어 든 포크로 접시를 약하게 툭 치면서 똑같은 크기로 잘려있는 아이스크림 와플 중, 분홍색 체리가 올려진 아이스크림 토핑이 된 와플 조각을 가리켰다.
"먹고 싶으면 먹어도 괜찮아. 나 혼자 먹는 것보다는 역시 같이 왔으니 나눠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 네 꺼 달라는 건 아니야. 그냥 내가 이러고 싶어서."
어차피 다른 세 조각은 자신의 차지였으니 한 조각을 나눠준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물론 하늘은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그러고 싶었을 뿐이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으나, 언제나처럼 그는 자신의 방식에 따르기로 했다. 싫으면 싫다고 알아서 말할 테고, 그러면 자신이 굳이 더 뭐라고 이야기를 꺼낼 일은 없었을 테니까. 말하지 않는 것은 몰라도 상관없다는 것. 그것은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선이 잠시 바닷가로 향했다. 푸르고 푸른 바다 너머로 보이는 선명한 수평선. 그리고 그 위를 장식하고 있는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 그 모든 것이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고유의 풍경이었다. 지금 이 분위기를 피아노로 연주하고 싶은 충동은 잠시 가라앉힌 후, 하늘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어 이어폰을 하나 꺼낸 후에 핸드폰과 연결했다.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아랑의 뭐하냐는 눈빛과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하늘은 그저 작은 미소만 비추었다. 이어 휴대폰을 조작한 후, 이어폰 두 쪽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춤추기는 힘든 곡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지금 분위기에 딱 좋은 곡일 것 같은데 들어볼래? 사실 아까 밑에서 기다릴 때도 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다가 왔어. 물론 내가 연주한 건 아니고 이미 있는 곡이지만 말이야."
그녀가 받아들일지, 아니면 조금 그렇다고 거절할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듣겠다고 한다면 들려주면 되고 거절하면 다시 집어넣거나 혹은 자신의 한쪽 귀에만 꽂고 들으면 될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자신의 양쪽 귀에 꽂는다는 선택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상대에게 너무 실례되는 행위였으니까. 생각을 마치며 포크로 와플 한 조각을 집어 입에 집어넣으니 아이스크림 특유의 달콤함과 와플 특유의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져 그의 표정이 만족스러움 한 가득으로 바뀌었다.
"좋네. 바다에서 수영도 좋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카페에서 시간 보내는 것도."
딱히 대답을 원하지 않는 혼잣말. 그 혼잣말에 대답해도, 대답하지 않아도 하늘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를 원해서 꺼낸 말이 아니라 그저 작은 감탄사 같은 것이었으니까. 오늘 하루는 이대로 평화롭게, 여유롭게 딱히 하는 거 없이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히 시선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괜히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고 뒤이어 왜 웃냐는 물음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그냥 지금 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아서. 단지 그뿐이야."
카페의 분위기와는 다른 또 다른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는 이 분위기를 곡으로 연주하면 어떤 느낌일까. 작은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하늘은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별 의미 없는 소소한 것이기에, 그 평화로움에 걸맞은 화음이 카페를 채웠다. 그 분위기가 하늘에게는 만족스러웠다.
/그냥 최소한의 내용만 담으려고 해도 너무 길어진 것 같네. (흐릿) 암튼 스크롤 미안하다! 모두들! 일단 캐조종 요소는 최소한으로 줄이긴 했고 혹시나 이건 캐붕인데요? 하는 거 있으면 미안하다! 진짜로! 아무튼 올려두고 지금부터 쉰다! 기다리던 게임도 와서 기분이 좋구만!!
걱정할 것 없이 마음껏 즐긴다는데엔 부정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역시 사람이란게 좀처럼 듣지 못하던 말엔 내성이 없는게 당연한 건지... 알수 없는 무언가와 지극히 사적인 욕구가 한데 섞인듯한 당신의 목소리에서 미열이 전해지자 그녀는 부러 모자의 챙 끝을 쥐어내리며 시선을 돌리려 했다.
그래봤자 소용없는 행동이란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만,
"앞에 그런 말을 하고서 그렇게 훌렁 벗어버리면 저라도 부끄러운건 마찬가지라구요..."
딱히 유교사상에 짓눌린 케이스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그러는건 신경 안써도 다른 사람이 그러는것엔 민감했으니까, 더구나 그 예시가 당신이라면 더이상 남이라고 할수도 없었기에 괜히 애꿎은 파라솔만 힘을 주어 고정시킬 뿐이었다. 그래도 어울리지 않는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찰떡같다 해야 할지, 당신의 이미지에 딱 맞는다 생각했기에 칭찬을 했으면 더 했지 덜할 생각은 없었다.
"그 용기란게 엄청 확실하게 와닿아서 눈둘 곳이 없어요. ...부담스러운 건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시선처리가 되는것 같았지만 그래도 묵묵하게 당신을 마주하려 했다. 그래도 뭐라 해야 할지...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의 다른점을 주시한다는 것도 나름의 용기는 필요한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무언가의 자극을 원하긴 했다만, 이렇게까지 강렬한걸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어딘가 익숙한 포즈를 취하는 것도, 거기에 더해 입가에 손을 얹고서 윙크를 해보이는 당신의 '누가봐도 유혹하는' 모습에서부터 기싸움에 밀렸다고 보는게 가까웠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내면은 그걸 쉽게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본 입장에서 안보여준다 뺄 수도 없는 거니까요~"
당신의 말에 대뜸 반응해 평소의 텐션대로 당당함을 비추었지만 이미 지나갔던 기류 때문에도 단단히 묶어두었던 끈을 푸는 손길은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검은 수영복에 덧댄 것이 얇고 흰 원피스라 이미 실루엣은 보이겠지만 그래도 확연히 드러난 것관 다를테니까,
"......"
무리없이 라인을 받혀주고 있는 홀터넥 비키니는 무늬 하나 없는 검은색이었기에 다소 심플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포인트로 잡혀있는 코르셋이 그나마 속옷같다는 이미지를 해소시켜주었다.
"하, 부추겨도 좋을건 없... 거든요...?"
나름 세게 나오려 했지만 어쩐지 방금 전 당신의 입술이 닿았던 뺨에서 미묘한 간지러움이 느껴졌기에 당당했던 목소리는 금방 사그라들었다.
"아, 그러면 미리 준비한 보람이 있는걸?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다면 나 되게 부끄럽고 자신이 없어졌을거야. "
파라솔을 애써 힘을 들여 고정시키는 당신의 모습에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웃어보인 시아가 새하얗고 가느다란 자신의 팔을 감싸안은 체 말한다. 아주 살짝 떨려오는 것이 어쩌면 방금전까지의 모습에 허세도 섞여있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흘러나오는 말도 어쩐지 거짓말은 아닌 듯 했다. 분명 시아도 시아 나름대로 슬혜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눈 둘 곳이 없다니. 이렇게 사귀는 사람이 그대야를 위해 차려 입었으면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아가야지. "
이미 흔들리고 있는 슬혜의 모습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하다는 듯 장난스럽게 말을 던진 시아는 입꼬리를 올려 아리따운 미소를 지어지어보인다. 그리곤 보너스 라는 것처럼 가볍게 두 팔을 들어올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던 끈을 풀어내린다. 보기 좋은 몸을 부각시키기엔 꽤나 좋은 자세가 아니었을까. 보통 CF에서도 하곤 하는 자세였으니까. 표정은 장난꾸러기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흐응, 역시 슬혜답네~ "
당당한 듯 말하면서도 옷의 끈을 푸는 손짓이 조심스러워진 것을 알아차린 시아는 장난스레 당신을 놀리듯 속삭이며 기대를 담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드러나는 홀터넥 비키니를 걸친 슬혜의 모습에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시아는 새하얀 볼을 살짝 붉은 빛으로 물들이다 천천히 입을 연다.
" 슬혜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뭐. 자~ 그러면 썬크림을 발라보자. 살이 타면 곤란하니까~. "
슬혜의 말에 '호오' 하는 표정을 해보인 시아는 슬며시 슬혜의 뒤로 돌아가선 원피스를 벗어 드러난 슬혜의 새하얀 양 어깨 위에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손가락을 올려 파라솔 그늘이 드리운 돗자리 위에 슬혜를 앉히려 한다. 슬혜가 얌전히 앉았다면 가방을 뒤적거려 선크림 통을 꺼내곤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