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에 비릿한 맛이 감돌았기 때문에 단태는 비틀거리며 몸을 추스르는 와중에도 고개를 틀어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크루시오를 맞는 순간에 입안을 씹었든 혀를 씹었든 어딘가를 씹기는 한 모양이다. 그 와중에도 단태의 탁하게 가라앉은 암적색 눈동자는 자신에게 크루시오를 날린 사람을 향해 똑바로 고정되어 있었다.
"너,"
주변을 둘러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단태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양반탈을 향했던 팡이 끝을 다른쪽으로 돌리며 낮게 중얼거리다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양반탈이 잠깐 쓰러졌고, 나한테 크루시오를 날린 놈은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러라고 지팡이가 단단한 건 아닐텐데.
윤의 목소리에도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볼 겨를도 없다. 그는 살아있는 몸에 관심을 가진적도 없다. 그는 숨을 씨근덕대며 입안의 비린 피를 풀더미에 대충 뱉는다. 제법 거친 태도였다. 쓰러지는 감 선생을 본 그는 한참동안 침묵한다. 그는 사람을 믿지 않고 누군가 쓰러져도 그러려니 할 사람이다. 참지 않으면 살인이다. 3번 참으면 살인을 면한다지 않은가. 그렇지만 살인 한번이면 3번 참을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데려가기로 한 녀석부터.
그는 오랭지를 향해 손가락을 뻗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무언 마법이었고, 섹튬셈프라는 가장 큰 장기중 하나다.
연이어서 마법이 빗나가니 애써 수그러들었던 화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 것 같다. 뒤집힌 이 상태도 마음에 안 든다. 슬슬 짜증으로 미간이 찡그려지던 중 윤의 주문과 함께 거꾸로 매달렸던게 풀렸다.
"!"
순간적으로 놀란 그녀는 저를 안아주려 하는 윤에게 매달렸다. 옷을 정리하는 건 그 다음이었고. 한손으로 윤을 붙들고 남은 손으로 얼른 얼른 옷을 내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정돈한다. 그대로 윤이 양반탈에게 공격을, 아니, 제재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걸 가하는 걸 보고나서 작게 소곤거린다.
"그래서, 봤어요? 봤죠? 응?"
손으로 가렸대도 완전히는 아니었으니까. 킥킥 웃고 윤에게 안긴 채 흘끔 다른 학생들 쪽을 본다. 누가 저를 봤나 하는 그런것 보다 그저 어떤가 둘러보는 듯한 시선은 다른 이들보다 발렌타인에게 좀더 길게 머무르고 넘어갔다. 이제 이 재미 없는 상황을 끝낼 때가 왔다.
철저하게 '윤'으로 행동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자리가 어찌되든 이대로 더 놀려주고 싶지만 그녀도 일단 눈치라는게 있어서 말이다.
마지막까지 말을 안 듣는 마법을, 아니, 지팡이를 보며 이참에 한번 꺾고 새로 만들까 하는 생각 뒤로 다른 학생들의 공격이 각자의 목표에게 적중했다. 조종당하던 마법사들도 양반탈도 모두 쓰러지는 걸 보고 그녀는 약간 의문이 들었다. 인사만 하러 온 거라 하지 않았나? 톡 튀어나온 의심의 싹은 순식간에 크기를 키웠고 양반탈에게서 탈과 케이프가 날아가는 걸 보고 아, 하는 작은 소리를 내었다.
그런 거였나.
멀쩡히 사라지는 진짜 양반탈을 보고 헛웃음을 흘린 그녀는 따라오라는 사감들의 말에 그쪽을 흘끔 보고, 모두가 이쪽을 안 보는 틈을 타 윤에게 발돋움을 해 볼에 입맞춤을 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겠지.
"안 다쳐서 다행이네요."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는 흐지부지 해두고 누군가 돌아보기 전에 사감과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아아, 안 맞아서 다행이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어린 학생 두명이 인생에 대해 논의하는 시덥잖은 건배사, 끝까지 깐족거리는 여인과 수치심에 몸부림치는 그. 나름의 공모 관계를 구축한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 어느 한쪽도 기를 쓰며 핏대를 세우지 않았던 좋은 결과였다. 이제 누구도 죽지 않을 상황을, 아니, 누군가는 죽겠지만 일단 이 속내 모를 두명이 아끼는 사람은 죽지 않을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어떻게든 될 일이다. 지금까지도 죽지 않고 살았으니 앞으로 더 노력하면 될 것이다. 그는 곧 죽을 팔자를 타고났고 변수가 없는 한 졸업까지는 이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다. 그는 계약 조건대로 내색하지 않기로 했고, 돌아오고 나서 마노를 집요하게 노려보며 Hate를 외치는 달링을 달랬다. 평상시와 같은 날을 보내는 것으로 아무일도 없이 잘 마무리 되는 하루였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여인은 간식거리를 소복하게 담고 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예의상 하는 말이겠거니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 "이런 선물을 줄 거라곤 예상치 못했네만." 하며 거절하려 했지만, 반짝거리는 사탕과 상자에 담긴 초콜릿을 물끄러미 보고 결국 받아들고 말았다. 각종 간식이 그를 불렀다는 핑계였다. 그는 몰랐지만 초콜릿을 향한 시선이 유달리 생기가 만연했다. 히죽히죽 웃고 내빼는 모습이 얄미웠지만 나중에 다른걸로 돌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복수는 나중 일이다. 두고보자.
간식이 든 바구니를 들고 방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Oreo를 먹고 있을지, 아니면 Mars를 먹을지, Skittles를 먹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달링이 날개를 펼치고 다가와 바구니 손잡이에 턱 앉는다. "선물 받았단다." 하고 짧게 운을 뗀 그는 달링을 능숙한 손길로 긁어준다. 기분이 좋은지 고양이가 골골대는 소리를 어색하게 따라하고는 횃대로 다시 날아간다. 바구니에선 좋은 향기가 났다. 사탕의 과일 단내, 초콜릿의 부드러운 향, 오, 이건 쿠키인가? 가장 위에 보인 작은 유리병을 집어들어 위로 들어올려 본다. 유리알 같은 사탕은 빛에 비추니 속이 비쳤다. 한눈에 봐도 얇아보였다는 뜻이다. 아마 이게 겉은 사탕이고 시럽이 톡 터져서 눅진하게 단맛이 스미는 사탕일 것이다. 같이 먹으라고 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만약 감정표현이 풍부했다면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그는 사탕을 한번, 당신을 한번 본다. 그냥 입에 넣어주고 자신도 하나 먹으면 될 일인데 작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가 10살 많아졌을 적 인간의 온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주제에 호기심과 절애를 품어 재앙을 초래했으면서도 이번에도 같은 일을 반복하려는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사탕을 주는 것은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고, 절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고쳐야 하고, 당신에게 상처가 됐을지도 모르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마음 한켠에는 차라리 자신으로 덮어버리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욕심이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양심이냐, 욕망이냐.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사탕이 든 병을 들고 조심스럽게 당신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욕망이 이겼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가, 이것 보렴. 사탕을 받았단다."
그는 사탕 병을 가볍게 흔들고는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하나를 집어들고는 고개를 기울인다. 검은 머리카락이 한터럭 흘러내린다. 흐린 경계의 눈동자 뒤로 그가 고민하듯 당신을 가만히 마주보더니 운을 뗀다. 아마 당신의 무릎 위로 가볍게 올라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신을 내려다보며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겼을 것이고, 사탕을 입에 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요컨대 그가 어떤 모습을 보였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내 아직 사탕을 먹는 법이 익숙치 않은데. 가르쳐주지 않으련."
얌전한 고양이는 부뚜막에 올라가는 편이며, 그는 원내에서 제법 얌전한 고양이에 속했다. me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