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c 제갈 윤💗펠리체 W. 스피델리(연플/비동거/미공개) ─ 2021.06.28 / 8판 / 일상으로 성사. 제갈 윤의 정체는 매구였음이 공개 되었으며, 펠리체는 매구임을 감내하고 연인 사이가 되었습니다. 일명 퐉스 커플. 현재 펠리체는 매구의 호크룩스를 소유중이며, 그의 본명을 알고 있습니다. 매구=윤임을 아는 플레이어는 펠리체가 유일합니다.
Npc 백정💜발렌타인 C. 언더테이커(연애 확정X/동거/미공개) ─ 2021.06.29 / 8판 / 일상으로 성사. 이게..연애는 아닌데 절애하고 삶에 품어내는 관계를 축약해서 부르는 단어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나 만들어주실 분은 레스 남겨주세요.(...) 미등록 애니마구스인 백정은 발렌타인 방에서 매의 모습으로 동거중입니다. 백정이 발렌타인과 동거하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플레이어는 현재 없습니다.
Npc 부네🍩레오파르트 로아나(스승-제자/미공개) ─ 2021.07.08 / 13판 /일상으로 성사. 부네, 버니 립시츠는 레오파르트 로아나를 하나의 패로 키우고 있습니다. 부네는 각종 금지된 마법을 레오에게 알려주고 있으며, 의뢰를 주기도 합니다. 레오가 이벤트에서 남몰래 크루시오를 쓰기도 했습니다. 부네와 레오의 관계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오로지 Npc인 탈만 알고 있습니다.
서주양💙주단태(연플/비동거/미공개) ─ 2021.07.25 / 20판 / 일상으로 성사. 쌍방으로 목줄을 잡은 관계. 단태가 집착하고 주양이가 집착하는..삶의 목표를 위한 관계? 제가 해석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mm) 주양과 단태는 아직 서로 연인관계임을 공표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 플레이어는 현재 알지 못합니다. 예전에 이노리라는 캐릭터가 알긴 했지만 시트를 내렸어요...🙄
스토리 정리 [시간순으로 큼직한 레이드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일부 수업과 미니이벤트는 제외합니다.]
1. 입학식 / 2021.06.18 / 2판 교수진의 소개와 무기 사감의 면접이 있었습니다. 이때 알려진 사실은 없으나 캐릭터들이 컬러피플이 되었습니다..
2. 부네&백정 레이드 / 2021.06.19 / 3판 부네와의 맛보기 레이드가 있었습니다. 매구의 생존이 확인 되었습니다. 이후 단체 크루시오를 사용할 수 있는 백정의 난입으로 부네의 제압에 실패합니다.
4. 양반&각시 레이드 / 2021.07.09 / 13판 양반탈과 각시탈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각시탈은 사람을 홀려 식인을 할 수 있는 여러 신비한 동물(체, 고조)을 내세워 학생을 위협했습니다. 최면에 걸린 모브 학생과 교수가 잡아먹히기 직전, 매구의 명령으로 할미탈이 나타나 퇴각합니다.
5. 선비 레이드 / 2021.07.18 / 17판 현궁의 6학년 학생 '윤 현성'이 선비탈로 밝혀집니다. 상대를 절망에 밀어넣는 것을 좋아하는 어긋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아즈카반에 수송되나 탈옥에 성공합니다. 후속 독백으로 마법부의 상층부 인원이 부패했음이 드러났습니다.
6. 중&초랭이 레이드 / 2021.08.01 / 22판 초랭이와 중이 나타났습니다. 머글 학생에게 크루시오를 쓰던 초랭이와 달리 중은 소극적입니다. 중의 정체는 신비한 동물 돌보기 담당 교수 백혜향으로, '학생의 안전'을 위해 탈이 되는 대가로 깨트릴 수 없는 맹세를 했음이 드러났습니다. 탈은 학생에게 살인 저주를 사용할 수 없음이 밝혀집니다. 학생들의 분열이 시작됩니다.
7. 이매&선비 레이드 / 2021.08.07 / 24판 아즈카반에서 탈옥한 선비가 나타나고, 제갈 윤의 패밀리어가 이매로 밝혀집니다. 둘의 공격이 계속되던 찰나 플레이어 '서주양'은 MA를 불러내(일상에서 MA와 내기하여 승리했고, 대가로 소원을 얻었습니다.) 이매를 살해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충정을 잃은 매구의 분노가 드러납니다.
8. 각시 레이드 / 2021.08.15 / 26판 각시가 다시금 학생을 홀렸습니다. 제압에 실패하고 할미탈이 나타나 사과합니다. 할미탈은 유일한 양심입니다. 다만 매구의 양심임을 유념합시다. 이 레이드의 여파로 모브 학생이 총 10명이 사망했고, 추모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14 심해로 가시면 안 돼요! 하지만 그때의 도전이 있어서 지금의 퐉스가 있는 걸요!🥰 맞아요. 하루의 시작이 근사하니 나머지 요일도 행복할 거예요! 이제 화요일이 기다려질 거고, 화요일엔 수요일이...저는 금요일과 일요일까지 행복해질 거랍니다.😊 그렇지만 귀여운 건 아직 익숙하지 않아요..🙈
>>16 (심해로 가려다 돌아옴)(부빗) 하긴 ㅋㅋㅋㅋ 부끄럽긴 하지만 후회 없는 도전이긴 했지! >:3 매일매일이 행복해질거라 말하는 벨주도 넘 뽀송포근하고 귀여워.... 벨주는 정말 언어의 마술사야...! 히히 익숙해질 필요 없다구 그건 그거대로 매번 부끄러워하는 벨주를 볼 수 있어서 개이득(???)
Defunctis requiem da, et sine fine dolores vivorum.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이라 알려진 이 문장은 언더테이커 가문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도문으로써, 죽은 자의 넋을 기리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삶에 새기고자 만들어졌다. 가문에서 은어 내지 속담과도 같이 사용되는 일상 관용구로, 공적인 상황에서는 두가지의 용도로 쓰인다.
첫째. 시체를 발견하거나 관에 안치했을 경우.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할 경우 사용되며, 이 용례가 가장 흔하고 일상적이다.
둘째. 곧 죽을 자에게 쓰이는 경우. 비단 사고를 목격하는 상황이 아닌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에게 쓰인다면..명복을 빈다. "내 손주야, 이름이 샬럿이라 하였나요?" "그렇습니다." "내가 기도문을 외운 날이 궁금하다고 했지요?" "예." "그렇다면 알려드려야지요. 마법사 전쟁 도중 순혈주의 마법사가 가문 내부에 들어온 적이 있답니다. 협조를 부탁했고, 당연히 나는 거절했지요. 그리고 내 옆에 있던 수행원이 아바다 케다브라에 쓰러지지 뭔가요. 헬레나가 숭고한 죽음이 아니라며 어찌나 크게 비명을 지르던지." "유감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읊고 산채로 관에 넣어 화장터로 밀어넣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번쩍 들고 초상화를 가만히 쳐다봤다. 초상화는 변함없이 온화하게 웃고 있다.
"그때 비명소리를 소노루스 마법으로 키우자 다시는 순혈주의자가 가문 내부로 오지 않았지요. 지금도 그런가요?" "이젠 아무도 안 옵니다." "잘 됐군요! 이제 아무도 고통받지 않을 거예요."
라온의 월식 주막은 오늘도 왁자지껄했다. 교정과는 다르게 몇배는 활기차고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평소에는 잔을 맞대는 소리와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무알콜 막걸리와 스테이크의 진한 향기가 그도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듯 식욕을 조금이나마 돌게 했다. 원래는 두명이 왔어야 했지만 주막에 도착해 빈 자리로 가자 어머니의 패밀리어, 디어가 날아왔다.
[일이 있다는 걸 깜빡했지 뭔가요. 오러가 늘 그렇죠. 미안해요, 이건 사죄의 용돈.]
기껏 시간도 아끼고 왔더니! 그는 디어가 갈레온이 든 주머니를 쥐어주고 저 멀리 날아가자 앓는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오러다. 바쁜 건 이해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바빠도 괜찮은 건가 싶다. 슬슬 그만두실 때가 됐기 때문이다. 굴레를 끊어야 하지만 이미 그까지 대물림 되지 않았나!
그는 식기를 준비하는 주모의 손길에 상념에서 깰 수 있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6년새 한국 정서가 어느정도 스며들었는지 식기가 나온 이상 빈손으로 나갈수도 없다! 젠장, 왜 학생에게 술을 안 파는 지! 일단 대체품으로 버터맥주를 시켰다. 버터맥주를 기다릴 때, 주모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합석 시켜도 될까요?" "예." "고마워요, 학생."
그는 합석하든 말든 알코올 하나 없는 무알콜 시늉내기 맥주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었다. 상대를 보기 전까지는.
그 날 그녀는 줄이 끊어진 기타를 남매에게 맡기기 위해 라온을 찾았었다. 적당히 보내도 됐겠지만 이 청개구리 같은 쌍둥이들이 굳이 오겠다고 해서 말이다. 덕분에 그녀는 그 큼지막한 기타집을 메고 라온으로 와, 눈에 띄지 않게 귀곡탑 근처로 가느라 고생 좀 했다. 오는 것도 좀 제대로 오지 왜 그쪽으로 오느냔 말이다. 그 불만을 그녀의 손윗 남매들에게 털어놓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왜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느냐는 잔소리와 더불어 무자비한(?) 손길로 잔뜩 쓰다듬고 매만져졌다.
"빨리 표정 안 풀어? 응? 이래도 그러고 있을래?" "앗...아니 그만, 그으만...!" "어? 더 해달라고? 알았다 알았어. 아직 애라니까."
그래도 가족이라고 차마 격한 반격은 하지 못 하는 그녀를 실컷 놀린 후에야 남매들은 만족하고 가버렸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면서. 오지 말라고 하고 싶긴 했지만, 줄을 바꾼 기타를 가져다 주기 위해 온다는 거라 그 말도 못 했다. 결국 가지고 놀아지기만 했다며 한숨을 푹 쉰 그녀는 빈 몸으로 터덜터덜 돌아나왔다.
용건도 마쳤으니 학원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라온까지 나왔는데 그냥 가기는 또 아쉬워 월식 주막으로 향했다. 학원과 대조적으로 왁자지껄한 거리를 걸어 주막 근처에 다다랐을 쯤, 왠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가는게 보였다. 이런 곳에 온 걸 보면 누군가의 패밀리어겠지. 아니면 메신저거나. 그녀와는 상관 없을 거라 생각하며 주막 안으로 들어가니 이게 왠 걸, 때를 잘못 찾았는지 온 테이블이 꽉 차있었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했는데 합석도 괜찮다면 자리가 있단다. 그래서 괜찮다고 하니 안내 받은 자리가 발렌타인이 먼저 앉은 테이블이었다.
딱 한 순간, 그녀는 답지 않게 고민했다. 이대로 돌아서 나갈 것인가. 당당히 앉을 것인가. 그냥 나가자니 그녀가 발렌타인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피하는 건 좀 억울하다. 절벽 다이빙 건은 뭐, 설마 한참 지난 일로 이제와서 뭐라 하진 않을거고. 아마. 그래서 신경 쓰지 않고 맞은편 빈 자리에 앉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자리가 없어서 실례 좀 할게요."
설마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식사를 하려던 원래 예정을 바꿔 버터맥주만 주문했다. 알콜도 없는 유사맥주지만 가끔은 괜찮다. 일단은 마시면서 어떡할지를 생각하기로 하며,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발렌타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 가온에서 만났을 때 처럼.
"이런데까지 식사하러 오시는 줄은 몰랐네요. 혹시 일행이 오기로 한 거면 그 전에 자리 비워드릴게요."
그녀가 발렌타인을 대하는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를게 없었다. 그를 성가시게 하지 않을테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생각을 내비춘 듯한 표정을 하고서 얌전히 주문한게 나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아직은.
그는 버터맥주를 기다렸다. 당연히 진짜 맥주는 아니다. 버터스카치 맛이 나는 무알콜 음료지만 이걸로라도 만족해야 했다. 진짜 술은 성인에게만 팔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점이 아쉬웠다. 본가였다면 코냑이라도 한잔 마시고 잠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본가에서나 해당되는 일이다. 여기는 라온이고, 본가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단맛이 나니까 그걸로라도 만족하기로 했다. 그는 합석을 기다리며 한 팔로 턱을 괸다. 은줄에 매달린 로켓을 소맷단에서 꺼내 만지작거렸다. 딸깍대며 안을 확인할까 하던 찰나 그는 시선을 흘끔 올린다.
"마음대로 하게."
운명이 있다면 참 야속하기도 하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면 단숨에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의 분홍색 시선이 다시 은줄로 향했다. 손을 내리자 절그럭하는 소리가 났다.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의 감각이 들어 괜히 등골이 오싹했다. 솔직히 두번은 겪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을 아끼기로 했다. 괜히 좋지 않은 기억을 상기시켜봤자 좋을 일 하나 없기 때문이다.
"오, 자네군."
그는 자세를 고친다. 양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깍지를 낀다. 그가 고개를 슬쩍 기울이자 당신이야말로 이런 곳에 올줄 몰랐다는 시선이 느껴졌다.
"일행은 없으니 편하게 마시고 가도 되네만. 방금 약속이 파토난지라."
안타깝게도 일행이 있었는데, 없다. 차라리 이 상황이 와서 다행이다. 어머니가 계신데 합석을 했다면 난리가 날게 뻔했다. 학교의 인간은 처음 본다며 호기심을 가지고 감 사감처럼 세상에, 기숙사가 다르다고요? 다른 기숙사까지 있다니! 살아있는 인간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일 줄이야! 를 외칠 어머니를 떠올리니 골이 아팠다. 속내 시커먼 사람 둘이 합석한 음험한 순간에서 가장 간단한 메뉴인 맥주는 기가 막히게도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살다보면 찰나의 순간 스치는 감이란게 가끔 생긴다. 예를 들면 방금 그녀가 자리에 앉는 순간, 무언가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든 것처럼.
그녀는 그게 발렌타인이 절벽 건을 언급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눈치껏 살펴보니 그건 아닌 거 같았다. 오히려 그가 손을 움직일 때 난 소리가 신경쓰였다. 두번 뿐이지만 마주쳤을 때 저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묻기엔 둘 사이를 가로지는 테이블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흥미는 가지만 그걸 건드릴 한 걸음이 부족하다고 할까. 뭐, 됐다. 남의 일에 너무 깊게 파고들어도 좋지 않은 법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용건만 해결하고 가려고 했다. 마침 자리를 빨리 비워야 할 이유도 없어졌고.
"그것 참, 저한텐 반가운 얘기긴 하네요. 그럼 사양 않고 느긋히 있을게요."
누가 언제 올까 신경쓰며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 건 일단 좋은 일이긴 하다. 그러니 좀더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버터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그냥 잔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나올 생각을 않았다. 뭐지, 주문한 걸 잊었나? 싶어 주막 안을 보자 테이블마다 가득한 사람이 보인다. 그 중에는 아직 음식을 받지 못 한 곳도 보인다. 요컨데 늦는 건 이 테이블만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하. 참지 못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쉰 그녀는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희미하게 짜증이 담긴 눈으로 주막 안 어딘가를 멍하니 보고 있는가 싶더니, 소리 없이 휙 굴러 발렌타인에게 시선이 향했다.
무심한 목소리가 별거 아닌 듯이, 그저 이 기다림을 흘려보내기 위하듯 적당한 말을 꺼냈다. 나름 생각을 해서 한 말이기도 했다. 들어오기 전에 본 까마귀와 방금 약속이 파토났다고 하는 발렌타인. 그렇다면 그 까마귀는 예상대로 그의 일행이 보낸 메신저의 역할을 한 거겠지. 그녀는 그의 패밀리어도 까마귀란 것을 알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야, 발렌타인이 요즘 빈번히 데리고 다니는 이는.
"패밀리어 하니까, 선배, 오늘은 혼자시네요. 수업에도 동행하던 그는 어디다 두셨으려나?"
자연스럽게 꼬리물기 하듯 이어진 말에서 탐색의 기미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좀전과 같이 무심한 태도였으니 적당히 둘러대도 좋지 않을까 싶을 만한 분위기였다. 보이는 것 만큼은 말이다.
그는 약 한달을 넘게 휴학하고 최근 복학했다. 고작 몇주 보이지 않았지만 달라진 점이 아주 많았다. 청궁의 기숙사 점수를 깎는 빈도가 줄었고, 못보던 장신구를 하고 다니며, 최근에는 매까지 데리고 다녔다. 한달사이 많은게 바뀌었지만 원내가 흉흉해서 사람이 바뀌는것도 쉽게 넘어가게 됐다. 예민해서 더 그러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고, 타인들이 멋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부연설명을 하지도 않을 뿐더러 누군가 물어봐도 답하지 않으니 더더욱 그랬다.
마음대로 하라는듯 그는 시선을 뗀다. 주변 테이블은 여전히 왁자지껄하다. 이미 음식이 나온 쪽에서는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모의 뒷모습을 뒤로하고 그는 다시 적막만 넘치는 곳으로 눈을 굴린다. 바로 여기다. 당신의 한숨을 듣고 다시 시선을 옮겨서 무슨 일인지 봐줄 사람도 아니다.
누군가 그에게서 속된 말로 진짜 광기를 본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이 시끌벅적한 곳에서 인형처럼 한치의 미동 없이 그 자리에 조용히,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지라 더 형형한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참동안, 당신의 말이 나오기 전까지 가만히 깍지를 낀 손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시선을 엄지로 향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렇지. 파토날 줄은 몰랐지만 말입세."
그는 한 팔로 턱을 괴더니 고개를 들어 당신을 응시한다. 이제 보니 로자리오나 묵주를 손에 끼듯 한 손에 은줄이 휘감겨있다. 소리의 원인은 이것인듯 하다. 어머니께서 오늘은 제대로 확인까지 했다 호언장담을 하길래 믿었다. 그렇지만 늘 기대는 사람을 배신하는 법이다. 어머니는 대기근무였고, 방금 발령났다. 아무리 그래도 휴무와 대기근무를 헷갈리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가 가주 일을 떠맡았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되레 그가 제법 깔끔했던 일처리를 배울 정도였다. 나이가 들고보니 사적인 면에서는 이렇게 털털한 사람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속으로 골머리를 앓던 그는 당신을 향해 정확하게 시선을 고정한다.
"쉬고 있겠지."
그는 일전 당신이 탈과 접선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탈과의 전투에서 시선을 느낀 적이 있었으며, 눈을 정확하게 마주친 적이 있었다. 적어도 당신은 그가 데리고 다니는 작은 매가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턱을 괴지 않은 다른 손의 검지를 들었다 내려 테이블을 툭 내리친다.
"자네는 어쩐 일로 백궁 학년 대표랑 같이 안 있고 혼자 여기까지 왔을까?"
능란히 상황을 돌리듯 하며 그때를 회상한다. 분명 그 당시에 윤은 선비탈의 고통을 함께 받았다. 선비탈이 무슨 수를 쓴 것이라면 그 자신 또한 고통을 받았어야 했다. 그 점이, 그 이전의 매구를 모욕했을 때 느꼈던 시선이 여간 신경쓰였다. 그렇지만 상관 쓸 일이 아니다. 졸업만 하면 된다. 그 사람과 함께 떠나면 된다. 어디로 가든 상관 없다. 그는 곧 죽을게 뻔하다. 그 이전에 새로운 것을 많이 보여주고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녀가 붐비는 주막 안을 보며 짜증을 삼키고 한숨을 내쉬는 둥 하는 동안, 발렌타인은 놀랍도록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그녀가 시선을 그에게 향했을 때에도 자세에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데다 시선 역시 고정한 것 마냥 멈춰있었으니. 이 사람은 사실 사람이 아니라 정교한 밀랍인형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흩어진다. 절벽에서 낚아채어 떨어뜨렸던 그 몸은 산 사람이 맞았었다.
산 사람, 살아있다, 라. 몹시 늦었지만 그녀는 기억해냈다. 지금 이렇게 매일 본 사람마냥 마주한 그는 사실 최근에서야 복학했다는 것을. 알음알음 들은 소문으로는 수업 중에 갑자기 뒤로 넘어갔단다. 그대로 병동으로 실려갔지만 차도가 없어서 그의 본가로 이송됐었다고, 떠들기 좋아하는 동급생 혹은 상하급생들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잊고 있던 걸 떠올리니 그녀의 시선에 걱정 한가닥이 슥 걸린다. 그 뿐이다. 그의 상태를 탐색하듯 훑는 일도 그에 대한 안부를 묻는 일도 없다. 그저 천천히 눈을 깜빡이고 담담히 대화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약속이 파토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직전에 그러는 건 드문 일이긴 하죠."
발렌타인이 턱을 괴자 그녀의 시선이 그 손으로 향했다. 손과 옷깃 사이의 반짝임을 본 것이다. 종교적 도구라기엔 그저 흔한 목걸이 줄로 보이는 은줄이 그의 손에 감겨있다. 늘어진 방향을 보니 뭔가 걸려있나보다. 그것이 좀전의 소리의 정체겠거니 넘겨짚고, 턱을 괸 손을 내려 다른 손과 함께 테이블에 얹어놓았다. 비뚤어졌던 자세를 바로 잡은 그녀는 변함없는 어조로 말했다.
"쉬고 있을거라. 기분 탓 같지만, 대답이 꼭 어디서 그러고 있을지 아는 것처럼 들리네요. 뭐, 선배의 방이라던가?"
그냥 방이라고 했지만 복학한 그에게 그녀가 말한 방은 한 곳 밖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현궁, 그 기숙사의 방. 그녀는 정말 알고 그러는 건지 그저 떠보는 건지 모를 태연한 태도를 일관하고 있었다. 그래도 발렌타인이 윤을 언급하자 무의식에 반응하듯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제가 혼자 다니는게 그렇게 궁금할 일인가요? 제가 기억하기로, 선배와 마주쳤을 때는 늘 혼자였었을텐데요. 습격 때야 걱정되니까 그렇게 붙어있었던 거구요."
당연하지 않냐는 듯, 그녀의 말은 청산유수였다. 무슨 의도로 그렇게 물었는지 모르니 적당히 둘러댄 것에 불과하기도 했다. 음, 생각해보니 좀 그렇다. 왜 뜬금없이 윤을 언급했을까? 발렌타인이 저렇게 말할 만큼 그녀는 원내에서 윤과 붙어 다닌 적이 없었다. 몇번의 습격에서 그런 장면들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녀가 매를 언급한 것에 대한 반문으로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녀는 작정하고 하나 떠보기로 했다. 말이 좋아 떠보기지 실상은 짖궂음에 가깝긴 했지만.
"듣고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데 말이에요. 발렌타인 선배. 선배에게 그는 그런 존재인가봐요. 친우, 혹은-"
반려. 라던가.
그녀는 똑똑히 발음하여 말하고 무뚝뚝하던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평소라면 그냥 미소로 보였겠지만 지금은 아무리 봐도 꿍꿍이가 있어보일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잠자코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걱정을 느꼈다. 그는 그 이상의 단어가 나오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내에 추종자가 들이닥쳐 부상을 입는다고 해도 그의 일이다. 누군가 자신을 걱정하느니 그 시간에 주문니나 하나 더 날렸으면 했다. 다행히 당신은 별 말을 더 꺼내진 않는다. 좋은 일이다. 적어도 버터맥주가 나오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날 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테이블을 한차례 내리치던 검지와 달리, 손바닥에 교차된 은줄을 나머지 손가락으로 걸어쥐었다 힘을 뺐다. 테이블에 로켓 부분이 닿기 전에 힘을 뺀지라 달각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은줄이 도르륵 소리를 낸다. 그걸로 끝이다. 그는 새 장신구가 생겼다며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겠지. 창문을 열여뒀더니 날아 들어온지라 내 돌본 것이니 말입세."
그는 남과 대화를 자주 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그 진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백정은 창문으로 날아온 것이 맞아 애니마구스가 아닌 매로 한정해 생각하면 진실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일리있는 말이다. 사람만 보면 기숙사 점수를 무섭게 깎던 그가 패밀리어에겐 한없이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 여신이니 사랑이니, 하물며 이름까지 달링(Darling)것은 현궁의 사신이라는 악명을 높일 정도였다. 이정도 질문은 미리 대처한 효과가 있다. 그의 분홍색 시선이 당신의 손으로 향한다. 그가 테이블 위에 깍지를 끼던 자세로 돌아온다.
"난 또. 선비의 습격 때 고통을 분담하듯 끌어안고 있길래."
그는 그 이후로 휴학했으니 소문이 어떻게 퍼지는 지 모른다. 아직 의심의 씨앗은 거둘 수 없고, 이매라고 불렸던 탈이 죽기 전 윤의 패밀리어로 밝혀졌던 것과 호의적이다 못해 집착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전해 들었으니 그 사실 또한 영 석연치 않았다. 그는 당신의 말에 잠시 침묵한다.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주모는 서글거리며 버터맥주 두잔을 들고 내려놓는다. "미안해요, 늦었으니까 이건 서비스. 당과점에서 공수해왔어요." 하고 나무그릇을 내려놓는다. 무알콜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마냥 나무 그릇에 담긴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를 흘끔 내려다본 그는 주모가 사라지고 나서야 손을 들고 튕긴다. 머플리아토 마법이다.
"일단 들게. 기다렸을 것 아닌가. 건배라도 하길 바라나? 지금은 좀 그렇고, 나중에 하는 편이 좋겠지만 말입세."
서론은 제법 친절하다.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시원한 버터맥주의 유리잔 표면에 송골거리며 이슬이 맺힌다. 이슬이 흐를 무렵 그가 잔 손잡이를 쥔다. 그리고 한모금 쭉 들이킨다. 차가운 버터맥주는 말 그대로 달고 시원한 버터 스카치 맛이 났다.
"패밀리어는 평생을 함께 할 반려가 맞는 법."
잔을 내려놓자 그는 바로 손을 모아낸다. 양 손가락 끝을 맞대고 엄지에 턱을 괸다. 차라리 짓지 않았으면 하는 그 쎄한 미소를 지어내고 이젠 눈까지 휘었다. 입매만 해도 쎄했던 것이 두배가 됐다.
"다만 그때 눈 마주쳤으면 끝이지. 자네가 아둔한 사람이 아닌 건 내 절벽 덕분에 아주 잘 알고 있네만. 뭘 원하지? 단순한 대답? 제안? 질나쁜 농담과 웃어줄 사람?"
그녀는 본래 말보다 은연중에 드러내는 사람에 가까워, 묵묵히 있으면서 눈으로 많은 것을 내보이곤 했다. 염려하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시선에는 한가닥이나마 걱정을 담거나 발렌타인의 손이 은줄을 휘감고 놓는 것을 유심히 보면서도 그것에 대해 묻지 않는 점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늘 말을 아끼기만 하는가. 그것 역시 아니었다.
"흐음."
툭 던져본 말에 돌아온 대답은 그녀에게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창을 열어두었더니 날아들어왔다? 매의 모습을 하였으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왜 하필 발렌타인의 방으로 갔을까? 그가 탈이라면, 주인을 찾는 것이 당연할텐데. 앞선 의문을 해소하기 전에 새로운 말이 콕 하고 그녀의 의식을 찌른다. 고통을 분담하듯, 이란 말에서 그녀는 발렌타인이 자신을 떠보는 건가 싶었지만, 그 역시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짧게 대꾸했다.
"아파하는데 해줄 수 있는게 그것 뿐이었던 거에요."
당시 그들에게 윤이 아파하는 건 이유 모를 증상으로 보였을테니, 그녀로서도 어찌 할 바를 몰라 그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듯 말한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한달여간 휴학했던 발렌타인이 어디까지 알고 어느 정도까지 의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섣부른 말은 삼가해야겠다고.
이제 작정하고 던진 질문의 대답을 들으려는 찰나, 주문한 버터맥주가 나왔다. 늦은 서비스라는 명목의 강낭콩 젤리도. 기껏 가져다 준 주모에게 미안하나 그녀는 그 젤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왔을 때 눈길을 준 뒤론 젤리에 손끝도 대지 않고 맥주잔 손잡이를 쥐었다. 건배라도 하길 바라냐는 겉치레에 픽, 하는 웃음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버리긴 했지만.
"안 그렇게 생겨서 농담을 참 잘 하신단 말이죠. 나중에 해요. 나중에."
과연 그럴만한 관계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은 직후 입가에 댄 잔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맥주와 함께 삼켜냈다. 마시는 것은 그녀보다 그가 빨라, 잔을 내려놓는게 한박자 늦었다. 그렇다고 말을 듣는 것까지 늦지는 않았다.
조금 전 손가락을 튕기는 걸로 방음 마법을 쳤는지 발렌타인의 말은 꽤나 직설적으로 돌아왔다. 턱을 괴고 온 얼굴에 쎄한 웃음을 피워낸 그를 보고 이번엔 그녀가 등골이 오싹해졌다. 일부러 저렇게 웃는 거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물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소름 돋은 걸 내색하지 않으며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의 웃는 얼굴로 말을 시작했다.
"잘 알아주시니 얘기가 빨라서 좋네요. 다만, 딱히 뭘 원해서 그걸 유도할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 서로가 묻고 대답하기 나름이겠죠. 이 자리가 그저 그런 환담으로 끝날지, 그 이상 혹은 그 이하가 될지."
애시당초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자리다. 그런 우연한 자리에서 그녀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잘 되면 좋은거고 아니면 아닌거다. 그리고 그것을 정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발렌타인의 대답 여하일테니. 알아서 하고싶은대로 대꾸해라, 라는게 그녀의 말에 숨은 의도 되시겠다.
"그럼 질문을 바꿔볼까요. 패밀리어는 분명 평생을 함께할 반려가 맞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패밀리어가 아니죠. 이미 주인도 있는 몸이고. 그런 그가 선배와 깊게 어울리다가 행여나 변심을 하면 어찌하나 싶더라구요. 그래서 말인데."
일부러, 뜸을 들이듯 한차례 말을 끊고 몇초간 발렌타인을 주시한다. 숨기지 않는 짓궂음이 금안을 한바퀴 휘감고 있었다.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그녀의 시선은 묻는다. 뭐라고 대답할건가요? 라고.
"이제 그만 선배의 곁에서 그를 거둬들일까 하네요. 그리고 다신 가까이 가지 못 하게 일러둘까 해요. 뭐, 선배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겠죠?"
마땅히 할 일도 없고 만나야 할 이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에는 너무 지루한 것이라. 스베타는 시간이 빌 때마다 가벼운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멀리 나간다면 학교 앞의 숲 근처까지. 아니면 기린궁의 외각을 따라서 걸었다. 그런 산책을 마치고 대청마루 끝에 앉아 쉬던 스베타는 오가는 다른 기린궁 학생들을 관찰하듯 바라본다. 아낌없이 웃고, 떠들고.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며 약속하며 돌아가는 이들 중 몇 명이나 도사의 길을 택할까. 문득 스베타는 그런 생각을 한다. 다른 이들은 왜 도사의 길을 택했을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은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두었을까. 패밀리어와 지팡이를 버릴 만큼의 각오를 보였으면서, 왜 도사가 되는 길 앞에서는 망설이는 것일까.
답 없이 커져가는 생각에 고개를 내저어 정리해내고서 스베타는 뒤로 눕는다. 주머니에서 당신이 건네었던 비늘을 꺼내어 손가락 끝으로 매만진다. 아직까지도 저번의 온기가 희미하게나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할까. 질문이 달라진 것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조금은 답답한 것이었다.
그는 사람을 재간하지 않는다. 적어도 득실을 따지기 전까지는 그렇다. 머리가 꽃밭인 사람도 아니다. 당신이 묻지 않는다고 해서 저 사람은 배려심이 넘치는구나 하지 않는다. 호감도 품지 않는다. 그저 당신은 그런 사람이고, 그는 그일 뿐이다. 다만 묻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점이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가 예민해하는 질문에 관한 것이다. 적어도 당신을 향해 최소한의 예의는 차리기 때문이다. 그게 겉치레일지언정.
"더 묻지는 아니하지."
그는 이것으로 윤에 대한 언급을 줄인다. 도박수를 던지기에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그는 당신의 작은 웃음 뒤로 잔을 내려놓고 본론을 얘기했다. 저 미소는 그가 아홉살이 넘어 열살이 되고 난 뒤부터 생긴 것이다. 그 이전엔 그도 평범하게 웃었다. 남들처럼 기뻐했고, 사랑했으며, 슬퍼했다. 당신은 그 사실을 모를 것이고, 그 또한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거울을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모르는 상태로, 그리고 흥미로운 눈으로 당신을 쳐다본다.
"이하가 된다면 꽤 곤란할 게지."
그는 우연한 자리에서 만들어졌던 이 환담이 이하가 되는 걸 즐기지 않는다. 사적인 자리에서 틀어진 것은 어떻게 해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의 씨앗이 되면 그것만큼 골치아픈 일이 없다. 비단 인간과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치정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걸 자네가 신경쓴다는 것은 어떤 뜻을 내포한단 것인지는 알고 있나?"
원내가 불안정함과 동시에 한쪽은 확실한 약점을 쥐고, 다른쪽은 불확실한 약점을 쥔 지금 상태에선 더더욱 그렇다. 판도는 물에 먹을 타듯 순식간에 뒤집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가주임이 밝혀지지 않아 언더테이커 가문 안으로 들어가버리면 끝이지만 소문의 온상이 되어 그 이후의 협력관계와 틀어지며 가문의 재정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꼬리자르기를 했다고 공표해도 사상으로 가장 예민한 현재, 한가지의 소문이 가문 하나를 좌지우지 한다면 그만큼 골치아픈 일이 없다. 그는 당신의 질문을 들으며 강낭콩 젤리를 하나 집어 입에 넣는다. 운 한번 더럽게 나쁜 것 같다. 잔디맛이다. 풀 씹는 싱그러운 맛에 그는 다시 버터맥주를 한모금 더 들이켰다.
"스피델리의 여식, 영애라 부르는 것이 낫겠군. 영애."
가문을 신경쓰지 않고 제대로 대화할 의지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가 원내에서 학년대표 일을 맡지 않을 때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지금은 가문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대화고, 사람을 거래선상에 두고 하는 대화는 공적인 부류로 넘어간다. 그의 최소한 남아있는 직업윤리였다.
"영애는 그가 주인의 손을 벗어나든 말든 영애는 나와 마찬가지로 일개 학생일 뿐, 간섭할 권리가 일절 없소. 나 또한 그의 행위를 간섭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를 내 방으로 들였소. 다만 영애가 그를 다시 돌려보낼 만한 권한을 쥔것처럼 얘기한다는 건 적어도 영애에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확신이 있단 소리요. 아니면 도박수를 한참 잘못 던졌거나. 다만 어느쪽이든 실이 되었지 절대 득이 될 리가 없소만."
다시금 손깍지를 낀다. 최근 이녀석이고 저녀석이고 사람의 밑바닥을 한번쯤 보고 싶은 것이 유행인가보다. 그가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미 금지된 저주로 보이는 족족 다 죽여버려 엉클 톰처럼 아즈카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디멘터와 진하게 키스나 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한번 감탄사를 내뱉는다. 오. 당신의 말은 그를 환히 웃게 만들기 충분했다. 분홍빛 시선이 호선을 긋고, 입매를 한껏 당긴다. 긴 속눈썹이 아래로 내리깔리고 끝단은 올라간다. 쎄한 미소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내게 상관이 있어도 뺏어갈 것이 뻔하지 않소. 어차피 그는 주인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오. 붙잡을 수도 없지. 내 이미 한번 매구에 의해 뺏겼는데 두번이라고 뺏기지 못할까? 이젠 받아들여야지. 다만 정정할 것이 몇가지 있소. 깊게 어울려 변심하면 어쩌나 발언하였다는 점부터 짚고 넘어갔으면 하오. 영 석연치가 않아서 그렇소. 내 무얼 했기에 영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는지 이 자리에서 설명해주겠소?"
그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말할 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뿐더러, 그렇다고 부드러운 말로 대화를 이끄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당신에게 타이르듯 조곤조곤 얘기하는 태도는 확실히 누그러져 있었다. 다른 사람과도 같을 정도였다. 평소와 달리 예민하지 않은 것은 분명 예의거나 배려였다.
"혹 당신의 반려를 그날 욕되게 했던 것 때문이오? 그 당시엔 내가 당신의 반려가 원내에 있음을 몰랐으며 한껏 예민하였으니 이 자리를 빌어 사죄하오. 다만 고작 내가 그의 곁에 있다는 것 자체로 그런 것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그렇소."
혹은 그가 화가 단단히 났거나.
"영애. 혹여 그가 나로 인해 변심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주겠소? 미리 선을 그어두지만 나는 혹여라도 그가 변심하면 금지된 마법을 영애에세 사용하라 할 생각이 없고, 매구를 공격하라 할 생각도 없소. 그저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지. 혹 그것이 불만이오? 아니면 매구의 큰 전력이 빠지거나 매구가 상심할지도 모른다 추측하는 게요? 그리하여 불안의 온상으로 추측하여 말을 꺼낸 것이라면 더이상 할 이야기는 없소. 영애도 잘 알 것 아니오. 모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영애의 말을 전부 이해하나, 말대로라면 그는 아랫사람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게요. 곁에 있는 자를 본인의 입으로 낮추는 행동은 하지 마시오. 혹 재미로 꺼냈다면 깊은 유감을 표하오. 내 시체 관련된 농담이 아니면 알아채기 어렵소."
그는 상냥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소맷단으로 숨어버린 은줄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것이다. 끝단에 무언가 담을 수 있는 로켓과도 같은 장식이 달린 은줄을 내려보며 그가 다시금 상냥하게 입을 뗀다.
"잡설은 그만두지. 내 누군갈 타이를 성정은 못 되는 군. 영애도 지키고 싶을 것 아니오. 사람의 목숨은 한순간이오. 영원한 절대자도, 권력도 없소. 최근 탈이 죽었더군. 앞으로 몇이 더 죽고 누가 죽을지 모르오. 적을 만들어봤자 좋을 상황은 아닐 게요. 부디 언행을 주의하시오. 비단 탈이 엮인 나 말고도 사적으로 이 상황을 노리는 개떼는 많소. 언제 이리 트집잡혀 공격 받을지 모르며, 내 일전 말했듯 한번 뺏겨 두번에서는 발악이라도 하고 뺏길지도 모르니. 나는 시체라도 얻어 평생을 함께 하면 되는 일이나 영애는 나와 달리 그런 성정은 아니잖소."
>>16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이 일상 하면서 혹시나 지팡이 들 일이 생기면 과연 벨이 마법을 쓰는게 빠를까 첼이가 상을 뒤엎고 도망가는게 빠를까 생각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르게 생겼...나...? ㅋㅋㅋㅋㅋㅋㅋ 음 암튼 알았어~~
3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자신이 졸업하기 전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근래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에 바닥을 굴렀을 때가 떠올라, 스베타는 눈을 꾹 감으며 길게 숨을 고른다. 진 빚을 갚기 전까진 죽지 말아야 할 텐데. 생각하던 도중 들려온 당신의 목소리에 눈을 살짝 떠낸다. 어찌 제 속을 들여다본 것 같은 말이다. 가늘게 뜬 눈으로 다가온 당신을 보며, 이 생각도 읽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당신은 참 음흉하다고 생각하다가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192 에버노트를 보니 어린아이 벨은 "아! 당신, 언제 죽어요? 나는 그 안이 궁금할 뿐이랍니다?" 하고 물어보는 이상한 애였고..😳 퇴폐 자주 벨은 지금이랑 성격이 비슷한데 훨씬 암울하고..우울했답니다.🙄 벨 언니는..지금 벨 보다 훨씬 까탈스럽답니다. "너 지금 짖었니?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려서.." 하고 물을지도 모를 정도로요..🙄 아마 마지막 벨은..현궁 구석에 틀어박혀서 "당신의 말을 잘 모르겠어요. 돌아가시면 사인이라도 알겠지만...인간의 삶은 무념무상이죠. 당신은 어떤 이유로 살고 계시나요? 지금 한 말과 관련이 있나요?" 같은 소리만 주절거렸을 것 같고..😂
더 묻지 않겠다며 말을 줄이는 발렌타인을 보고 그녀는 그러시라는 듯 작게 고개를 끄떡였다. 이 자리가 환담 이하가 된다면 꽤 곤란해질 거라는 말엔 왜냐는 듯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묻지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이제부터 할 얘기에 비하면 아무래도 좋은 것들이다. 이 자리가 끝난 뒤에 다시 상기시켜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 그녀는 티 나지 않게 자세를 고쳤다. 제 앞에 앉은 그로부터 나올 말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을 다잡아야겠다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물론이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불안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녀는 자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안다는 뜻의 대답을 한 뒤로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반지를 만지던 손도 서로 겹쳐 멈춰놓고서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마주한 발렌타인을 응시하며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물론 그냥 듣기만 한 건 아니다. 기나긴 말을 들으며 나름대로 생각하고 정리했다. 듣다보니 간단히 제 의도만 전하기에는 좀 실례란 생각이 들어버려서 말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등골 오싹한 웃음이 아닌 좋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가 화를 내지도 않았으며 예상 이상의 대답을 듣기도 했다. 덕분에 얘기가 빨라지는 것에 감사한 마음까지 드니, 그에 걸맞은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발렌타인의 상냥한 말이 끝난 뒤에도 섣부르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꺼내놓은 은줄에 달린 로켓을 저게 뭐지, 라는 시선으로 보면서도 말없이 눈을 깜빡이고 맥주만 들이켰다. 그렇게 가늘고 긴 초침이 부지런히 달려 5분을 채울 쯤에야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벙어리 같던 입을 열었다.
"일단은- 말이죠. 대답이라고 할까. 그것부터 하자면, 딱히 선배로 인해 심기가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랬다면 합석 자체를 안 했을거니까요. 이래보여도 좋고 싫음은 확실히 나누는 편이라 눈 밖에 든 사람하고는 아는 체도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저는 선배에게 불편한 감정이 없고, 그럼에도 그렇게 표현한 건 말하자면 미끼를 던진 거죠. 선배는 그걸 단박에 물어버린거고."
히죽. 금빛 눈이 휘어 웃는가 싶더니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환희, 혹은 만족, 그 비스무리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미소다. 마치 어딘가에 나오는 대사를 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기분 탓이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눈을 깜빡이곤 앞으로 할 말들을 위해 맥주로 목을 적셨다. 부디 생각한 대로 혀가 움직여주기를 바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이 자리는 순전히 우연으로 성립된 자리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말을 던지지는 않았어요. 그 매가 누구인지를 알고 곁에 둔 선배라면, 제 목적에 이용할 만 하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갖고 했어요. 감히 그렇게 생각한 점은 죄송하다고 할게요. 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지켜보고 판단한 상태에서 꺼낸 말이었어요."
그가 휴학 전에도 가끔 그 매를 동행했었고, 복학 후에도 여전히 데리고 다님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매에게 하는 행동들이 패밀리어를 대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그리고 앞서 한 말들, 그저 더 편안하게 해주고 싶을 뿐이라는 말에서 그녀는 조금 더 속내를 내보여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선배의 곁에 있는 그가 선배로 인해 변심하기를 원해요. 언젠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주인이 아닌 선배를 택해 탈에서 완전히 빠져주길 바라고 있어요. 생각처럼 잘 될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된다면 죽음이라는 참혹한 일 없이 그들의 수가 줄어들게 되는거니까. 과연 그 사람이 그냥 둘지, 그게 옳은 일인지는 아직 모르지만요."
옳다라는 건 그녀가 하려는 일에 있어서 그 방식이 옳은지 모르겠단 의미였지만 달리 해석해도 상관없는 부분이라 그냥 넘겼다. 그녀는 발렌타인처럼 달변가도 아니었고 생각이 그렇게 깊은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최선을 다해 말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먼저 말하신 것처럼, 저도 이 이상 죽음을 눈 앞에서 보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덜하지만 아직도 꿈에서나마 그날 이매가 죽는 모습이 보일라치면 잠에서 깨버리는걸요. 아는 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시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데 행여나 그게 제 반려가 된다면? 그냥 미치는 걸로 끝나지 않겠죠.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사람의 목적을 방해하고 망가뜨려 종당에는 아무것도 못하게 해버리는게 저에게 좋겠다 싶었어요. 정말 그런지는 모르지만, 선배의 말처럼 수족 없이는 뭔가를 못 하게 된다면 저에겐 매우 반가운 일이에요. 수족들만 치운다면 제 목적은 달성하게 될거고 그렇게 무능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그 사람을 저 하나로만 채울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 선배도 말은 시체라도 평생을 함께 하면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저 질 나쁜 농담으로 치부해버려도 됐을 제 물음 하나에 이토록 정성스럽게 대답해주신 선배를 보면, 살아있는 그가 선배에게 그저 그런 존재일거라곤 생각 못 하겠거든요."
발렌타인이 그녀의 말에서 어디까지 추측하고 어디까지 확신할지는 알아서 판단하도록 두기로 했다. 달리 의문이 들었다면 물어보겠지. 하고 건성으로 생각한 것도 없잖아 있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그녀가 들은 것에 대한 답은 일단 거기까지였다. 그새 마른 목에 맥주를 마시려고 잔을 들다가 이거 잊었다는 듯이 덧붙이는 말이 있긴 했는데-
"아, 이거 깜빡했다. 저 그렇게 싸움꾼 아니에요? 머리 장식 아니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말한다구요. 아무데서나 이런 소리 해서 적을 늘리는 선비탈 같은 취향 전혀 없어요. 혹시라도 비슷하다 생각했다면 미안하지만 화낼거에요."
그런 말이었으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보인다. 덧붙이는 말까지 끝낸 그녀는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젤리를 집으려는 듯 손을 뻗다가 흠칫, 하고 거두었다. 그렇게 거둔 손으로 다시 반지를 만지작거린다. 장황한 얘기를 한 것 치고 꽤나 태연한, 그런 태도를 내보이고 있었다.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화의 흐름이 잘 이어지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할 차례다. 먼저 도박수를 던졌다. 틀린다면 오블리비아테라도 써야한다. 이정도로 큰 도박은 살면서 해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도 사람인지라 이번 일에서는 감정을 누르고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당장이라도 내 아이에게서 손 떼고 간섭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을 상자속에 가두고 사슬로 묶었다. 그렇게 심해 깊은 곳까지 던져넣었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마음은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익숙한 일이다. 그렇게 버린 마음이 수백개가 넘는다. 제법 친절하고 차분한 태도다. 단지 친절할 뿐이다. 상냥하지는 않았다. 가문 내부에서도 예산 관련된 일처리를 할 때 이정도로 침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길거리의 부랑자를 데려와 일을 시키면 훨씬 잘할 것 같다며 어깨를 토닥여줬을 것이다. 그만큼 마노라는 사람이 그에게 있어 중요한 존재란 뜻이기도 하다.
그는 인내한다. 1분은 맥주를 한모금 마셔 목을 축이고, 강낭콩 젤리를 집어 입에 넣는다. 확률과 계산만을 생각하고 사는 그였기 때문일까, 행운의 여신이 이번에도 굽어살피지 않고 그에게 비누맛을 선사했다. 그는 내색하지 않고 다시 맥주를 마신다. 사실 내색하지 않았다 했지만 단 두번 씹고 바로 삼킨걸로 봐서 좋은 맛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다시 손에 깍지를 끼고 기다린다. 밀랍인형이 된지 그로부터 4분이 지났다. 당신의 대답은 예상 밖의 것이다. 심기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제대로 입이 꿰였군."
환희, 혹은 만족이 드러나는 미소를 마주본 그의 표정은 꽤 복잡했다. 꼭 당황한 그 나이의 소년 같기도 했고, 득실을 계신하는 어른 같기도 했다. 농담을 던지긴 했지만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쪽이었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릴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미끼를 물었다는 점이 신경쓰였지만 부끄럽지는 않아 서 참 다행이다. 만약 부끄러웠다면 이 이후의 말이 전부 꼬여 들렸을 것이다! 미끼, 그래도 부정적인 의미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더 듣다보면 이해할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이해하네."
그는 당신의 사과에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도 없이 한순간으로 판단했더라면 얘기가 달랐을 것이고, 경멸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처럼 지켜보고 판단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아무리 괴팍하고, 행동만 친절하다 해도 기본적으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누군가의 고심에 간섭해서 바꿔놓으라 엄포를 놓을 정도로 고압적인 사람도 아니다.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서 눈치채기 전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나오겠나. 그정도로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가 마노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어떤 목적이 있어서라고 봤을 수도 있다. 그의 삶이라고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음침하고, 괴팍한 발렌타인 언더테이커인데.
"……."
침묵. 당신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다. 그는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가늠했다. 무슨 목적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불신했고, 불과 몇달 전까지 마노를 불신했다. 인간을 좋아할 수 없는 상처받은 성미는 결코 편한 삶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고, 이 말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여러 경우의 수를 한꺼번에 생각하며 그는 눈을 내리깐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믿고 싶은 말이다. 그를 택하게 하고 싶다.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 반지를 준 것도 그 때문이다. 죽음 없는 평화를 원한단 말이 들리자 귀가 먹먹했다. 삶은 동화같지 않다. 사랑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피를 봐야만 풀리는게 요즘 세상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것만이 이 두 속내 알 수 없는 사람이 바라는 최고의 길이다.
그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는지 손을 들어 입가를 덮어 가린다. 무례한 행동임을 알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돌리고 다른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영애는…어머, 아. 아하하! 미안하네. 미안하구나. 오, 맙소사. 죽음이여! 맙소사!"
그리고 결국 소리내어 웃는다. 이렇게 소리내어 웃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원내에선 광증을 앓았을 때 빼곤 없었다. 날선 송곳니 뒤로 그의 표정이 볼만했다. 긴 속눈썹이 눈을 덮어 분홍색 시선이 희미하게 보일 때까지 눈이 접혔고, 입가의 손은 가지런하다. 눈가엔 눈물까지 맺혔다. 잠깐 웃었는데도 벌써 배가 당기는지 힉, 하고 숨을 몇번 들이마시고 내쉰 뒤에야 기도를 하듯 손을 모아낸다. 그리고 한쪽 손등에 턱을 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우아한 태도지만 그 태도가 절대 세상에서 사람들이 정해놓은 남성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다. 꼭 잘 교육받은 규수처럼 그는 나긋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웃어서 미안하군. 이렇게 야망에 찬 사람 중에 살아있는 사람을 만난 건 또 처음인지라. 용기있고, 대담하고, 실현할 능력까지 있다니. 오.. 눈물겹기도 하지.. 신이 있다면 분명 굽어살폈을 게 분명해. 죽은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시랍화¹ 되어 형체가 온전한 시체를 만났을 때보다 더 놀라운 발견이야. 가문의 영애가 아니었다면 무능한 가문원을 던져버리고 당장 집어가고 싶을 정도군."
그의 비유는 섬뜩했지만 눈은 할로윈 사탕 바구니가 가득 찬 아이처럼 각종 희열과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차있다.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휘어진 눈동자는 흥미로 가득 차있다. 지금껏 야망에 차놓고 돌아오는 건 시체였던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이런 부류의 사람은 언제라도 환영이다.
"네 말이 맞지. 그렇게 만드는 일도 방법이지. 내 온전히 그를 가져오고, 영애는 최악의 상황을 제하고. 서로의 이득을 취할 방법이겠군. 나 또한 죽음을 눈으로 보는게 일이지만, 주변 사람의 죽음은 이제 그만 보고 싶네."
그는 로켓을 테이블 중앙에 끌어온 뒤, 웃었던 표정을 가다듬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로켓이 열린다. 로켓 안에는 물빛 머리카락이 8자를 그리듯 꼬여있다. 당신은 이 머리카락의 주인에 대해 알고 있다. 절벽에서 주인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의 주인은 금방이라도 웃으며 청궁 학생들과 이 월식 주막에 들어와 무지막지한 양을 먹고 갈지도 모르는, 누구보다도 활기차고 밝은 사람이다. 잠시 유발함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수심에 잠겼다. 깊은 심해속에서 꺼내온 감정의 상자는 못이 박혀있다. 상자 밑으로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그는 고정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인다. "10명의 희생자 중에 있었네. 머리 빼고는 상태가 온전치 못한 축이었어." 하고 말하고는 그가 미리 손사래를 친다. 동정은 필요없단 뜻이다. 그가 가주가 된 이후로 만났던 첫 삶이자 숨이 꺼졌다. 고개를 든 그는 수심을 벗어내 생글생글한 낯이고, 이 안에 담긴 광증과 분노가 어느 정도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그조차도.
"살아있는 뮤즈는 그 자체가 다른 삶이지만, 글쎄. 죽음 뒤에는 새로운 문이 있는 법. 단지 이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술로 날을 지새우긴 하겠군. 곧 따라갈지도 모르고. 영애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비슷한 상황이지. 그러니 협력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 말입세."
그는 유발함을 닫고 맥주를 들이킨다. 여전히 차가운 버터스카치 맛이 난다. 그는 잔을 내려놓고 싱글벙글 웃었다. 젤리를 종용하듯 그릇을 당신 쪽으로 밀어보인다. "들게. 설마 까나리 맛이 걸리겠나."
"영애가 아둔하지 않음은 이 결과를 보고 말할 수 있겠지. 선비와는 다른 걸 대화 하며 알았으니 말입세. 나도 모처럼 만난 야망찬 살아있는 인간을 그런..취향만 거창한 동정과 같은 취급은 하고 싶지도 않네만. 다만 내 한가지 제안해도 되겠나? 만일 떼어낼 생각이라면 모두 살려야 하는 상황은 제해주시게. 각시는 내 손으로 보내고 싶으니." ¹) 진흙이나 늪 등 공기 흐름이 어느정도 차단된 환경에서 발견되는 시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으로, 시체 부패 중 습기가 냉각제 역할을 해 효소의 활동이 멈추고 지방분자가 떨어져 나와 하얀 덩어리로 굳어지는 현상. 쉽게 말해 시랍(시체 지방)이 갑옷처럼 시체를 둘러싸 수십년 내지 수세기동안 지속될 수 있다.
그녀가 말을 시작한 뒤 발렌타인은 생각보다 여러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냥 듣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생각은 한참 짧다는 듯 조금은 당황스러울만한 반응도 나왔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이었음은 틀림없으리라.
심기가 불편하지 않았다는 말이 의외였는지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 하면서도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입이 꿰였다며 농담 같은 말을 툭 던지더니 그녀의 잘못을 이해한다고도 했다. 그의 반응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면서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해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 다소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 발렌타인이 침묵했을 때 이번엔 그녀가 밀랍인형 비스무리한 상태가 되어 슬금 눈치를 보았다.
"...?, ???"
맥주를 마시는 것도 잊고 기다리니 대뜸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아니었다. 발렌타인에게서였다. 그는 참기 힘들다는 듯 폭소했고 숨쉬는 것까지 힘들어했다. 그녀의 말 중에 우스운 부분이 있었나? 아니면 저렇게 웃을만큼 어이없었나? 그의 웃음이 잦아들 때까지 그녀는 불안과 의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었다. 웃음을 멈춘 발렌타인이 턱을 괴며 말을 하고서야 겨우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나 싶었지만 그의 비유가 다시금 그녀의 표정을 미묘하게 만들었다.
"그...거 칭찬이죠? 시체랑 비교당하니까 기분이 묘하긴 한데, 음..."
시랍화 20년산 시체를 봤을 때보다 놀랍다 하니 이게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모욕인가 싶다가도 전혀 그런 기미가 없는 저 표정을 보면 아닌거 같다. 그, 언더테이커 식 농담인걸까. 아까도 시체가 언급되지 않는 농담은 이해를 못 한다고도 했으니까.
"잘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요."
여태 생각만 하던 걸 처음으로 입 밖에 낸 거니 아직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려던 그녀의 입이 테이블 한가운데에 열린 로켓으로 인해 다물렸다. 로켓 안에는 물빛 머리카락이 고이 담겨있었다. 유려하게 담긴 그것의 의미를 그녀는 본 적은 없지만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떠올리는게 늦었고, 그나마도 가물가물한 기억을 선명하게 만든 건 발렌타인의 말이었다. 그 날 희생자 중에 있었다는 그 말, 물빛 머리카락, 고인의 머리카락을 담는 로켓, 주변 사람의 죽음. 아. 그녀는 소리 없이 입을 벌렸다가 꾹 다물며 동시에 눈 역시 감았다. 행여나 눈에 내비칠 동정과 미안함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그 날, 그녀가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희생자는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라는 생각이 거칠게 속내를 후려쳐 쓰라리다. 동시에 조금 더 결심이 굳어진다. 이 이상 무의미한 죽음은 늘리고 싶지 않다는 결심이.
조금 뒤 그녀가 눈을 뜨고 본 건 깊은 수심 대신 미소를 내보이는 발렌타인의 얼굴이었다. 웃고 있지만 어딘가 오싹한 느낌이 든다. 저도 모르게 팔을 한번 쓸어내린 그녀는 제 앞으로 내밀어진 젤리들을 보고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은 건 싫은거다. 대신 잔을 들어 몇모금을 들이키고서 말했다.
"슬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비슷한건지, 아닌지. 협력이라고 해도 딱히 뭘 해달라고 하진 않을거에요. 그가 선배를 선택하게 하는 건 온전히 선배에게 달린거니까요. 이제 제가 무슨 계획을 갖고 어떻게 하려는지 대강 알게 되었으니 그 다음은 선배가 알아서 하시겠죠. 혹시 모르니까 그에게는 절대, 절대 내색하지 마세요. 만에 하나 이 계획으로 제가 그 사람에게 밉보여서 내쳐지게되면 더는 손 쓸 수가 없을거에요."
남은 맥주를 마시고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렸지만 손잡이를 쥔 채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직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 어린애를 너무 높게 평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개인적인 복수도 저는 관여하지 않을거지만, 최소한 모든 상황이 끝난 후로 해주시면 좋겠어요. 도중에 또다시 쓸모있는 탈이 죽어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수를 쓸지 몰라요. 이전의 습격도, 그래서 일어난거니까."
순간적으로 떠오르려는 이매와 짐승들의 잔상을 털어버리려 고개를 작게 흔든 그녀는 다시 맥주를 마시려 했지만 잔이 빈 걸 깨닫고 발렌타인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말하지 않아도 잔을 쥐고 빤히 보는 모습이 한잔 더, 를 표현하고 있었다.
본능이 반응한다라. 본능적으로 남이 고민에 빠져 있음을 당신은 감지할 수 있다는 걸까. 그것이 그저 사소한 고민이라 하더라도 당신은 결국 그것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지. 방금 전의 당신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능을 거역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테고, 그럴 때마다 당신은 피곤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 사당으로 가자는 당신의 말에 스베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구겨진 옷을 펴낸다. 아무래도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은 이곳에서 면담을 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두 번이나 사당에 오를 수 있다니. 영광이네요."
스베타는 그리 말하며 당신이 앞서 걸음을 옮기면, 그 뒤를 조용히 뒤따르기 시작할 것이었다.
그는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나 내심 편했다. 서로 기를 세워대며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짐승같이 싸운 일이 지금껏 얼마나 많았는지! 지팡이를 꺼내지도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천천히 대화하기를 바랐던 적도 있다. 살면서 무뎌지고 이젠 어떻게 돼도 상관 없는 행동이 됐다. 새삼 지금 그 행동을 하고 있다는게 느껴지니 낯설다. 그렇지만 들뜨지는 않았다. 이미 들뜨기엔 오랜 시간이 지난 소망이라 자연스럽게 차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야망찬 사람을 만나는 건 아직도 큰 꿈이다! 오늘 그 소원을 이룬 것 같다. 이제 머리 셋 달린 시체를 만나보면 여한이 없겠다.
고작 소리내서 웃었다고 벌써부터 힘이 든다. 숨을 색색대고 우아하게 대화를 꺼냈다. 불안해하는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비유에 미묘해진 당신을 보며 순수한 의문을 표한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온 사람 같은 반응이었다. 그는 한 손을 들어 손사래를 친다.
"당연히 칭찬일세. 그것도 지금껏 해본 칭찬 중에 손에 꼽는 칭찬이지."
포르말린과 글리세린, 그리고 마법으로 채우지 않은 시체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법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존재와도 같은 시체의 시랍화 현상처럼 얼마나 획기적인 인재의 발견인가! 다른 가문원이 이 칭찬을 들었으면 기절했을 것이 뻔하다. 그렇지만 역시 죽음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건 이 가문 사람들 뿐이지, 가문 밖 인간들은 비유를 온전히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도 의미만 통하면 됐거니 싶었다.
"말조차 하지 않았다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걸세."
이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타니아의 죽음은 그의 복학에 결정적인 계기를 가져다줬다. 그는 그 순간을 회상한다. 곧 기숙사 점수를 채우니 본가에 잠시 방문하겠다 호언장담을 하던 타니아는 일주일도 안 지나서 시체로 돌아왔다. 블랙번 사람들은 유일한 후계자를 잃고 시체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통곡했다. 천을 들추니 눈도 감지 못하고 공포에 젖은 얼굴만이 온전했다. 염을 하며 울어본 적이 없었고, 그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인생 한번 엿같이 아름다웠다. 그가 이번 추모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은 이유도 이것이었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눈물을 쏟는 그 상황이 싫었다. 유족인 그도 울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이 울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잠시 집안을 떠올린다. 타니아는 블랙번의 요구로 화장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금지옥엽이고 또래조차 없던 유일한 10대 후계자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나도 딱히 요구할 생각은 없네. 단지 불안할 요소가 하나 사라졌다는 것으로 마음이 놓일 뿐이지. 무엇보다 내색하지도 않을 생각이고 말입세. 학년 대표끼리 대화할 일이 얼마나 있다고. 끽해야 순찰 루트 편성이나 백궁과 현궁의 말썽쟁이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것 뿐이지."
그는 버터맥주를 마저 마신다. 한모금 남은 것을 마저 목 뒤로 넘기고 나서야 당신의 제안에 응한다. 손바닥 뒤집듯 지금껏 머글이니 잡종이니 혼혈이니 순혈이니 품종교배니 까내리던 태도를 뒤집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휴학은 좋은 명분이라 그나마 자제할 수단은 된다. 지병과 더이상의 언쟁이 스트레스를 촉구해 쓰러지게 만든다는 핑계로 더이상 매구를 욕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예 입을 다물어 내색하지도 않을 상황을 만들겠다 이 말이다. 적어도, 전장에서는 말이다. 이제 매서운 말은 탈에게만 갈 생각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싫으면 탈을 그만 두든지. 그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본다. 빈 잔을 보곤 턱을 괸다.
"나라고 많이 살아왔을까. 자네 말대로 하겠네. 더 습격이 일어나는건 이쪽도 사양일세."
그리고 그는 손을 든다. "버터맥주 두잔 더." 하고 주문하고는 당신이 손대지 않는 젤리를 입에 다시 넣는다. 행운의 여신은 그를 절대 비호하지 않는다. 그는 기어이 냅킨 한장을 손으로 집어올린 뒤 고개를 돌려 당신이 보지 않을 위치에서 뱉는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맛이다. 단맛 하나 나지 않는 시나몬 그대로의 맛이었다. 그는 냅킨으로 뱉어낸 젤리를 꽁꽁 싸매고 나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당신의 말대로 이런 기회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게 하여야 할 것이었다. 당신을 따르던 스베타는 이어지는 말에 눈을 크게 뜨며 깜빡인다. 제 결심을 믿어주었다는 것에 조용한 미소를 띠고, 당신은 앞서 걸어가고 있기에 이 모습을 보지 못하니, 중간에 당신이 돌아서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미소는 사당에 도달하기 전까지 길게 이어질 것이었다. 열린 문안으로 들어서는 당신과 다르게 스베타는 그 앞에서 우뚝 멈춰 선다. 그 거대한 신기에 압도된 탓이었다. 경외에 찬 시선으로 신당을 보던 스베타는 이내 경직된 몸을 움직여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익숙하냐 묻는 당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내온 시간이 있었기에, 조금씩 익숙해진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 내부를 둘러보던 스베타는 손짓 한 번에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본다. 저번과 같은 차일까. 피어오르는 흰 수증기와, 은은한 차 향기는 긴장으로 경직된 몸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변심이라도 생긴 거냐는 당신의 물음에 스베타는 시선을 들어 당신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제 마음은 변하지 않고, 영원히 같을 거예요. 그저.... 지금의 상황이 너무 두려워서 그래요. 이 최악의 상황이 끝나긴 할까요? 외부에서 그 누구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데. 저희들끼리 앞으로의 상황들을 계속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불만스럽다는 목소리는 점점 가팔라지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변한다.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그러기엔 너무 늦었으니까.
그녀가 품은 생각을 과연 야망이라 부르는게 옳을까. 발렌타인이 기꺼이 그녀를 야망에 찬 살아있는 사람이라 칭하는 걸 들으며 최근 읽었던 가문의 수기를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수기 속 선조와 같은 일인 것만 같았다. 달리 방법이 있을텐데 그것을 찾지 않고 당장 눈 앞의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 선조가 끝끝내 후회한 그 길과 겹쳐보였다. 선조는 목적을 이뤘음에도 결국 후회한다 하지 않았는가. 그녀도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결국 후회하게 된다면? 과연 이 순간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 혼자만이 후회하는 때가 온다면, 만약.
"...본인이 그렇다 하니 그런 줄 알게요."
그 비유가 손에 꼽을 정도의 칭찬이었다는 말에 대꾸하며 그 김에 머릿속을 흐트러뜨리는 생각을 밀어내었다. 심지가 당겨진 이상 걱정도 고민도 무의미하다. 이제 할 것은 택한 길을 나아가는 것 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것만이 그녀에게 남은 일이다. 때마침 발렌타인이 한 말이 꽤나 정곡을 찌르기도 했고.
"아- 아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단 낫겠죠. 뭐든 하는게."
무심코 내심이 흘러나갈 뻔 한 걸 적당히 수습해 흘려넘긴다. 과정이 어찌됐든 도발하고, 끌어들인 것은 그녀다. 그녀가 먼저 후회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어째서일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또다시 잡념을 끌어오려는 정신을 붙들어 테이블로 되돌렸다. 현실에서 발렌타인은 순순히 그녀가 하는 말들을 듣고 그리 하겠다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말의 전달에 미스가 있었던 거 같아 한부분은 정정해야 했다.
"제가 말한 건 선배가 데리고 있는 그에게 내색하지 말란 거에요. 전 선배가 그렇게 가볍게 얘기해버릴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선배의 곁에 있는 그는 모르잖아요? 무의식이라는 거, 무시하면 큰일 날 때도 있으니까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왠지 발렌타인의 곁에 있는 탈은 딱 한번 본 그 우는 남자일거란 예감이 들었다. 만약 맞다면 정말 생각없이 의도없이 말을 흘려버릴지도 모르니 아예 의식하지 않게 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러니 그 부분을 주의해달라 말을 덧붙이고, 선뜻 맥주를 주문해주는 것에 싱긋 웃어보였다. 무슨 맛이었는지 모를 젤리를 뱉어내는 걸 보고 작게 킥킥대는 웃음으로 바뀌긴 했지만.
"주는 걸 사양하라 배운 적은 없으니, 잘 마실게요. 벨 선배."
그녀는 매우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빈 잔을 옆으로 슬쩍 밀어놓았다. 빈 자리에 팔을 올리고 몸을 테이블에 살짝 기대어 어느새 흥미로 반짝이는 시선을 그에게 향했다. 모처럼의 자리를 공모하는 것만으로 끝낼 생각은 없는 듯이.
"딱딱한 얘기는 이쯤 하고 다른 걸로 넘어가죠. 이제. 저 아까부터 굉장히 궁금했거든요. 어쩌다 선배가 곁에 그를 두게 된 건지."
일단 선배니까 예의상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긴 했지만, 그녀는 궁금한 건 그냥 못 넘어가는 성격이다. 혹시라도 발렌타인이 이 자리를 피하려 한다면 기꺼이 저 소매자락을 낚아채어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 속내의 은근함이 시선에 빤히 드러났을 것이다.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사소하게 오늘은 일찍 자고싶다는 것도 나름의 욕망일 것이다. 그 욕망을 언젠가 실현할 줄 아는 사람이 있고,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피를 보고 싶지 않다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실행하는 사람, 아니면 남이 해줄거라 믿는 사람. 후자가 더 많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할 사람도 적다. 높이 사는 점은 이것이었고, 그는 더이상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제부터 서로의 선택이다. 그저 협력도 아니고 대화만 나눈 사이지만, 일단 욕망의 뿌리의 한부분은 같다. 그렇기에 가장 끝에서 걷어차거나 밀어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밀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것이 나락의 끝에서 지켜볼 일인지, 아니면 위에서 내려다볼 일인지, 동등하게 눈을 마주할 일인지. 어떻게 될 지는 이제 앞길 하나 알려주지 않는 야속한 운명만이 알려줄 것이다.
그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본다. 당신의 말을 듣고, 정정할 부분에는 잠시 고민한다. 지금껏 내색한 적이 있나? 기억을 더듬는다. 대놓고 내색한 적은 없다. 아마……. 아. 반지를 줬다. 놀랍게도 가주의 증표를 줘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건 매구의 사람에서 벗어나란 뜻이 아니지 않은가. 그가 졸업 후 수명이 다해 죽으면 어떻게 될 지 모르기에 만들어둔 나름의 도주 경로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 같기도 하고.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는 입술 속의 살을 티나지 않게 깨물고는 생각을 마친듯 입을 연다. "그럴 일 없네." 하고는 이후의 일이 반복된다. 그는 단맛 하나 나지 않는 시나몬맛 젤리빈을 뱉었고, 끔찍하게 싫었는지 입술을 꾹 다문다. 시나몬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단맛 하나 없을 수 있을까? 이건 젤리의 수치다! 그는 젤리가 담긴 나무 그릇을 구석으로 밀어낸다. 충격이 큰듯 싶다. 맥주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며 그는 손을 고이 내려놓는다. "글쎄, 알려줘야 할 지." 하다 당신의 은근한 시선을 마주하고는 말을 정정한다. "안 하면 내가 시달리겠군 그래."
"그래. 우리 아가를 내 당연히 싫어했지. 초면부터 크루시오를 쓰고 쓰러진 사람이 자는 거라고 착각하는 백치에게 어떻게 호감을 한번에 가질 수…… 아?"
그는 그대로 굳는다. 눈이 커지고 손을 들어 입가를 덮어 가렸다. 방금 뭐라고 했는지 한박자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하는 그마저 무의식적으로 단어를 되기 때문이다. 작게 벌린 입을 꾹 다물고 이미 엎질러진 물을 수습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탄스럽게 여겼다. 당신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도 하지 못하고,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말을 뗐다.
"……그, 러니까, 나는..아..그러니까..젠장."
그는 길쭉한 손으로 얼굴을 덮어 가린다. 얌전한 고양이는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있고, 엎질러진 발언으로 봐선 그가 그 고양이인듯 싶다.
그녀가 정정한 말에 잠시 고민하길래 이미 내색한 적이 있나 싶었다. 벌서 그런 말을 할 만큼의 사이였던건가. 별말이 없는거나 표정도 변하지 않는 걸 보면 그녀가 생각한 그런 건 아닌 듯 한데. 그냥 티를 안 내는 것 뿐일지도. 어찌됐든 더 말을 얹을 필요는 없어보였다. 발렌타인 본인이 그럴 일 없다고 했으니 알아서 잘 할거라 여기기로 했다. 비슷하다 한 것 역시 상대다. 배신할 이유 따윈 없을 터다.
일단락된 얘기는 넘기고 새롭게 꺼낸 얘기거리가 달갑지 않을거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여태 꾹 눌러 참다가 꺼낸 그녀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모처럼의 기회, 모처럼의 자리다. 이대로는 그냥 안 넘어가줄 거란 기색을 여지없이 내비치고 있으니 안 하면 시달리겠다고 중얼거리길래, 그녀는 웃는 얼굴로 쐐기를 박았다.
"아무렴요."
그러니 적당히라도 만족할만한 대답을 해주길 바란다, 뭐 그런 말을 직접 한 건 아니지만 대충 그런 분위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려서 들은 대답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일 줄은 전혀 몰랐지만.
"우리 아가... 우리 아가, 로군요...?"
발렌타인의 말이 딱 인지된 순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희비가 교차했다. 말실수를 인지한 발렌타인이 얼굴을 가리며 짤막히 중얼거리고 맞은편에선 그녀가 우와- 하는 얼굴로 히죽히죽 웃으며 그를 빤히 응시한다. 그 날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교차되는 분위기에 그녀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너무 히죽대는 건 실례니까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긴 했는데, 웃는게 입만 웃는게 아니라 눈도 아주 활짝 웃고 있었으니 오히려 더 얄밉게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어쩐지- 수업에까지 데려와서 대하는게 보통이 아니더라니- 아, 뭐, 그럴거 같긴 했어요? 패밀리어라면 모를까, 패밀리어도 아닌 그를 대하는게 참 그렇더라니. 아가라고 부를 정도면 뭐- 음-"
사실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아는 척 하며 말하는 건 못할 것도 없다. 그게 은근히 놀리듯 하는 거라면 더 못할 이유가 없지. 생글생글 웃으면서 재잘거리는 그녀의 말은 그래서, 라며 뒤를 이었다. 아직 그의 수난이 끝나지 않았음을 선고하듯이.
"어쩌다가 우리 아가까지 된 거에요? 말 하다 말면 더 궁금해지잖아요. 네? 벨 선배. 어떻게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에요? 네?"
자초지종을 다 들어야만 해방시켜줄 듯 그녀의 물음은 집요했다. 아무리 그래도 테이블을 넘어올 듯 들이대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이대로 도망치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팔 하나를 대가로 순간이동 마법을 쓰고 싶은 충동이 순간 치밀었지만 그럴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나름 꼼수를 써서 상황을 타파하려 했다. 그런 일은 자신있는 분야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만족할만한 대답을 내뱉는 실수를 범했다. 범인은 무의식이다. 그는 당신이 아가라고 발음하자 손으로 덮어가린 고개를 휙 들었다. 히죽히죽 웃는 것도 얄밉지만 눈까지 나는 지금 아주 기쁩니다 드러내고 있으니 속이 뒤집어진다.
"조, 조용히, 그러니까. 나는."
은근히 놀리는듯한 당신의 반응에 그의 창백한 낯빛이 점점 붉어진다. 부끄러운지 절벽에서 떨어졌던 상황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현궁의 사신이니 하는 칭호도, 성격 이상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모두 뒤로 한다. 평범한 그 나이의 학생이 보일 반응이다. 붉어진 얼굴을 다시 손으로 가리고 뭐라고 말도 하지 못한다. 그는 당신의 질문세례에 뭔가 말하려다 기어이 혀를 씹는다. 흐윽, 하고 숨 들이키는 소리 뒤로 그가 손가락의 틈을 벌린다.
"라온, 에서."
여전히 경계가 흐리지만 아까보다 조금 촉촉해진 것 같은 눈동자로 당신을 겨우 바라보고 여전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우물우물 입을 연다. 희비가 교차하고 정신이 혼란한 와중 집요한 물음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지? 겨우 숨을 들이킨다. 운을 뗀다. "…호의로 정보와 불, 그리고 사탕을 받았네만." 하고 말하곤 몸서리를 쳤다. 여전히 절애하는 자의 사탕은 오싹하다. 살아있는 것이 좋다지만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다른 건 아니고, 더 나아갈까 두려운 것이다. 돌이킬 수 없을까봐. 아무리 그래도 원내에서는. 음.
"그 이후로 연이 닿아 매로 변신해서 기숙사 창문으로 들어오더군. 사람인 줄 몰랐으니 당연히 아가라고 불렀을 뿐이네. 적어도 내 동물은 그런 호칭을 붙이는 몇 안 되는 존재니까. 사람으로 변할 줄은 몰랐네. 그 호칭이 좋다고 계속 불러달라 할줄도 몰랐고. 그래서 비꼴 심산으로 애정을 줄 사람이 필요하냐 했는데, 젠장."
달링도 그 이유에서 이름이 달링이지 않은가. 인간보다 몇천배는 낫다면서 그가 애지중지 한다. 마노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고, 달링은 지금 마노를 노려보며 Hate를 연신 외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젠장의 젠을 뱉으며 결국 얼굴에서 손을 뗐다.
"받고 싶은 사람이 나라지 뭔가. 고작 아가라고 불렀다는게 이유라는게 말이 안 되길래 인간 취급이라도 받을 교육이라도 제대로 시켜야겠다 싶어서 오늘 같이 좀 있어달라 하니까 대뜸 자기를 거둬달라 하고, 그래서 거뒀을 뿐인데,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젠장, 젠장…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명료한 대답은 나오지 못하고 자신에게 의문을 품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얼굴에 열이 올라 더운지 후드를 벗고 머리를 쓸어넘기며 그가 입을 벌린다.
그녀의 히죽이는 얼굴은 발렌타인이 고개를 들어 쳐다봐도 그대로였다. 오히려 더 보란 듯 당당하게 마주했으면 마주했지. 이쯤에서 성을 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되려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닌가. 밀랍마냥 희던 얼굴에 붉은 기가 번지니 이게 또 사뭇 느낌이 다르다. 대답도 제대로 못 해 혀 씹는 소리까지 내는 그에게서 그녀의 시선은 한시도 떨어질 줄 몰랐다. 어물어물, 운을 떼었을 때는 귀까지 쫑긋 기울어졌다.
"흐음."
라온에서, 라는 시작은 그녀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 했다. 그야 그녀도 라온에서 할미탈, 샤오를 만났었으니까. 여기서 스테이크를 얻어먹기도 했으니 어디서 마주쳤던들 신기하진 않다. 교류한 쪽은 좀 의아하긴 하다. 정보와 불과 사탕? 단 걸 좋아하나? 싶은데 별안간 발렌타인이 몸서리를 쳤다. 호오. 이건 또 뭔가 있어보이는데. 새로운 의문은 일단 접어 밀어두고 남은 얘기에 집중한다.
"음- 그랬었군요. 그랬었구나- 흐응-"
자세한 내막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원하는 대답으로는 충분했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는 모습은 여전히 얄밉게 깐족거리고 있었지만. 아니, 오히려 조금 전보다 시선이 더 히죽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표정에 한 손으로 입가를 살짝 가린 그녀가 중얼거렸다.
"마냥 맥 빠진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런 귀여운 구석도 있었네요. 어쩌죠, 벨 선배? 저 조금 탐이 생기는데, 채가도 괜찮으시련지?"
아까 했던 질문과 비슷해보이지만 명백히 다른 의도, 다른 의미의 농담을 툭 던져놓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작게 키득키득 웃는다. 발렌타인과 달리 그녀는 폭소하는 일 없이 낮고 잔잔히 웃었는데 그게 또 어떻게 느껴졌을지는. 얼굴 때문인지 후드와 머리를 걷는 그를 웃으며 지켜보다가 받은 질문이 그대로 돌아오자 그녀는 별거 없다며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 날만 달랑 얘기하면 이해가 좀 덜 할테니까 시간 순서대로 얘기해드릴게요. 자, 일단 숨부터 좀 돌리세요."
때마침 새로 주문한 버터맥주가 나와 한모금 마시고 진정하라며 친히 권해주었다. 어째 사는 건 발렌타인인데 생색은 그녀가 내는 것 같다. 아까부터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로 말하고 행동한 그녀도 새 잔을 받아 시원하고 달달한 음료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저는 원래부터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어요. 입학해서, 그 사람을 선배로서 알게 되었을 때부터요. 그 때는 아마 선배에 대한 동경이나 호감 비슷한 무언가였는데. 알고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변했던거 같네요. 그 때의 제가 보기엔 언제나 금방 사라질 것 같고 마음이 여기 없는 사람 같아서 어딘가 초조했거든요. 어느 날 말도 없이 사라질거 같아서. 그래도 일단은 학원 내에서 보이긴 하니까 그걸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이게 시작된 거에요. 탈들의 습격을 비롯한 여러 일들이. 그냥 지나가는 일도 아니고 직접 공격을 맞기까지 하니까 덜컥 겁이 났어요. 이러다 그 사람을 잃으면 어쩌지. 그 와중에 의미심장한 신탁까지 들어서, 안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 그 다음에 만났을 때 그냥 그대로 애원했죠. 선배가 어느쪽이든 상관없으니 제 곁에서 사라지지 말아달라고. 그랬더니 알려주더라구요. 자신이 누구인지, 정말 그래도 곁에 있을건지. 저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죠. 그 날부터네요. 이런 관계가 된게. 아마 반쯤 죽어가는 마법사가 습격했던 그 다음날인가 그랬을거에요."
정말 전부를 얘기하면 밤을 새도 모자를테니, 적당히 간추린 얘기를 막힘없이 풀어놓고 이게 다라는 듯 고개를 작게 까딱인다. 그 뒤로 좀더 있긴 하지만 설마하니 그 부분까지 궁금해하진 않을거 같고. 말을 마친 그녀는 맥주를 한모금 더 마신 뒤 약지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라온에서 불을 나눴다는 사실로 미루건대 그는 흡연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워낙 모호하게 설명했던지라 담배 불을 어떻게 나눴는지, 사탕도 어떻게 받아냈는지는 모를 것이라는 사실이 위안이 됐다. 만약 눈앞의 이 깐족거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여인이 그가 품어낸 자와 첫 만남부터 입맞춤에 준하는 행위를 했다는 걸 알면 얼마나 놀리겠는가. 때마침 들려오는 당신의 추임새도 대단하다. 그는 방금 전까지 뒤집힌 속이 다시 180° 뒤집혀 원상복귀 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물론 정방향으로 뒤집히는게 아니라 이대로 빙빙 돌아 속을 연결하는 부분이 뚝 끊길 것 같다. 얄미운 정도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큰일 날 소리. 자네 사람을 더 챙겨야지."
이전처럼 진지하지도 않았고, 적대도 아니다. 당신처럼 농담으로 받아쳤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가 만약 일전 NE가 쳤던 장난처럼 고양이 귀가 돋아났다면 분명 옆으로 눕혀 당신을 빤히 쳐다봤을 것이다. 당신의 농담은 아까 전과 확실히 달랐지만, 지금은 깐족거리는 그 모습이 제법, 아니, 아주 얄미웠기 때문이다. 낮고 잔잔히 웃는 모습에 특히 더. 차라리 그처럼 폭소했다면 한번 앓는 소리를 내고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속으로 고통받는 것이다.
머리를 쓸어넘기며 벗어둔 모노클을 다시 썼다. 피부에 닿는 감촉이 서늘했다. "참 고맙군 그래." 하고 기어이 앓는 소리를 낸다. 차가운 버터맥주가 다시 나오자 그는 한모금 목 뒤로 넘겼다. 위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 알 정도로 서늘하고 놀라울만치 단맛이 나는 맥주가 활활 타는 속을 진정시킨다. 그렇지만 아직 뺨의 열감은 가시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시간이 약일 것이다. 맥주잔을 만지작거린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그는 흠, 하고 운을 뗀다.
"놀랍군. 그렇게 잡아낼 줄이야."
요컨대 당신은 책에서나 나올법한 로맨틱한 사랑을 했다는 뜻이다. 엔딩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써가는 야시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런 간지럽고 달달하며 애절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감성적인 부류가 아닌지라 그 자체로는 깊은 흥미를 가질 수는 없지만, 세부적인 것은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운명을 아예 개척해버린 것이 아닌가. 살아있는 자는 삶을 개척하고, 죽음을 바라보는 장의사들은 그 개척하는 행동에 많은 흥미를 가진다. 나중에 성공적으로 개척하고 후회 없이 올지, 아니면 후회 가득한 모습으로 오게 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가, 감히 판단하건대 당신은 아마 전자지 않을까 싶다. 그는 버터맥주를 다시 한 모금 마시려다 잔을 쥐고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지금까지의 무관심으로 보아 외부에서 도움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것이지만, 당신의 말로써 확인하게 되는 건 더 깊은 절망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될 예정이었던 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스베타는 고개를 떨구며 찻잔을 내려다본다. 고인 물은 썩듯이. 우리는 이 검은 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천천히 부패해가며 악취를 풍기게 될 것이다. 문득, 스베타는 학교를 둘러싼 울타리가, 마법부가. 우리라는 물이 흘러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댐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요."
지금은, 하지만 앞으로는? 진정하라는 당신의 말에 스베타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서 내려둔다. 몸 전체로 따뜻한 기운이 퍼지며, 조금은 과장되었던 감정이 누그러진다. 스베타는 고개를 들며 당신과 눈을 맞춘다.
한순간이 무사히 지나간 것처럼 보여도, 그녀의 생글생글 웃는 낯과 일순간의 혼란스러움 뒤로 무슨 말, 무슨 생각이 숨겨졌을지는 그것이 드러날 때까지 모르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남매들 중에 그런 쪽으로 빠삭하며 이러한 장난을 즐기는 이가 있었으니. 그것을 배운 그녀는 조용히 때를 기다릴 뿐이다.
"어머. 손이 하나인 것도 아니고 둘 쯤 건사하지 못 할 것도 없는데요?"
그녀는 농담으로 받아준 말에 다시금 농을 던지며 제 손을 쥐었다 펴보였다. 정말로, 마음만 먹으면 저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성사시켜버릴 것처럼. 다른 누구도 아닌 매구라 불리는 이를 붙들어 놓았다는 걸 생각하면 마냥 장난으로 여기기도 어렵지 않을까. 또 보란듯 작게 웃는 걸 보면 그런 걱정들이 죄 허사인 듯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발렌타인이 맥주로 속을 한김 식히는 것을 기다려 그녀는 제 이야기를 했다. 많은 것이 잘려나가 짧아졌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건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고 본다. 얘기를 마친 그녀는 반지를 만지며 뭐든 말이 나올 것을 기다렸다. 제 목을 쉬일 겸. 그리고 나온 짧은 감상에 재차 싱긋 웃으며 말을 얹는다.
"갖고 싶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잡는게 당연하죠. 전 다른 건 몰라도 제 욕심 하나에만큼은 솔직하거든요."
의외로 그녀는 반문을 하지 않았다. 당신도 그렇지 않느냐고, 그 욕심이 같음에 대한 동의를 요할 법도 한데. 얄밉게 웃는 시선에서조차 그녀는 묻지 않고 있었다. 절대 같을 수 없음을 아는 것처럼. 그저 가만히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마주하다가, 잔을 쥐고 하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잔을 잡아 들어올린다.
"지금이라면 사양 않죠. 그럼, 후회하기 않기 위해."
언제 돌아봐도 미련없이 나아갈 수 있기 위해, 그런 삶을 위해서, 라는 제법 거창한 말을 입 밖으로 내는 대신 기꺼이 발렌타인과 잔을 대고 맥주를 들이켰을 것이다. 그녀의 다짐은 그녀의 속에만 담아두고 잔을 내린 후에 여전히 깐족깐족 얄밉게 웃는 낯으로 조잘거렸을테다.
"그래서, 아까 듣고 생각난건데. 선배나 그 분이나 단 걸 좋아하시는 모양이에요? 마침 제 생가에서 보내준 간식거리가 제법 많아서요. 조만간 나눠 들고 현궁에 한번 찾아갈게요. 그 중에 달콤한 시럽이 든 사탕이 있는데 물고 있으면 달달하고 깨물면 톡 터져서 달달한게 진짜 맛있거든요. 두 분이 '같이' 드시면 차암 좋을거 같으니 꼭 드리러 갈게요."
그러면서 어째선지 손끝으로 제 입술을 톡톡 건드리는게 마치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아는 것 같기도 하고, 한번 떠보는 것 같기도 하고. 키드득 웃는 소리가 그냥 놀리는 것 같기도 하니. 과연 이런 그녀와 공모 아닌 공모를 하게 된게 잘 된 일인가 의문을 품어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을거다.
그리고 후일, 발렌타인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든 아니든 그녀는 정말로 작은 바구니에 먹음직스런 간식거리를 소복히 담아 현궁으로 찾아왔을 것이다. 그 역시 받았을지 내쳤을지는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만약 그녀의 작은 호의를 받아들었다면 또다시 히죽히죽 웃으며 "꼭 같이 드세요, 네?" 하고 재빨리 내빼는 그녀를 보았겠지. 아니면 아닌대로 입을 비죽 내민 채 툴툴대며 돌아가는 그녀를 보았을거고.
//이걸로 막레 해두 되고 따로 막레 해두 되구~~ 미리 일상 수고했어 벨주! 벨은 이렇게 첼 깐족권(영구)를 얻었읍니다...ㅋㅋㅋㅋ...!!
그녀는 곤 사감이 휘청이는 마법사를 잡아채자 옆으로 슬쩍 피해 제 상태를 살폈다. 방금 튄 피에 이어 옆에서 터진 것까지 튀어서 이 도포는 그냥 버리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상태가 됐다. 사복인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랬으면 그녀의 분노는 이쯤에서 사그라들지 않았을테니.
아직 덜 묻은 소매자락으로 뺨을 문질러 닦아내고, 영 말을 안 듣는 지팡이를 본다. 저번엔 말을 잘 들어주더니 오늘은 왜 이리 말썽인지. 휙 휘둘러 끝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다시 손을 드는 대신 길게 늘어진 도포자락을 잡아 들었다. 끝이 둥근 구두가 살포시 드러나더니 허공을 가로질러 바닥에 엎어진 마법사의 목을 노리고 내려찍어졌다.
선생님들의 말을 들어보니 저자들은 아즈카반에 있어야할 자들이다. 탈 녀석들처럼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악행을 저지른 이들 과연 그들에게 제압 마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아성은 놈들의 소속을 알게 되었을 때, 위와 같은 이유로 망설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역시 저 악마들의 손아귀에 놀아가 죽거나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신세가 될 수 도 있었다.
그의 표정은 담담하다. 시체를 보는게 직업이었고, 분노는 임페리오를 유달리 잘 쓰는 추종자를 향했을 뿐이다. 아즈카반에 들어갔더라면 범죄자일 뿐. 그가 봐줄 요량도 없다. 수감되는 조건은 절대 널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다. 숭고하지 못한 죽음을 만든 자에게 줄 자비는 없다.
피가 튀었으나 걱정이나 안했으면 좋겠다. 내 피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리덕토."
주문은 마법사의 지팡이를 든 팔을 향했다. 그는 맞을 때까지 주문을 쓰는 집요한 구석이 있었고, 조종하는 주체가 있을거란 말에 주변을 주욱 훑었다.
멋대로 불러서 화를 내진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얌전히 나와주는 멜리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 기울인다. 이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가는 거 같아 기분이 좋은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불러서 나왔으니 이제 판세를 뒤집을 때다. 그녀는 공격받을 것이 무섭지도 않은지 성큼 거리를 좁혀 똑같이 히죽거리는 얼굴로 말한다.
"그러고보니 당신에게는 약간 감사인사를 해야겠네요. 저번에 그런 덜떨어진 인형을 보내준 덕분에, 늘 보기만 하던 걸 잡을 수 있었거든요. 정-말 고마워요. 멜리스 씨?"
그 날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계기 비슷한 건 주었으니 말이다.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말이며 행동은 얄밉기 그지없었다.
"뭐 임페리오가 풀리고 어쩌고 그런 건 관심 없고. 당신만 물러나게 하면 끝날 거 같으니까 빠르게 갈게요. 브라키아반도."
그녀는 늘어뜨렸던 지팡이를 가볍게 휙 그어 양반탈의 다리를 보이지 않는 밧줄로 묶어 넘어지게 만들려고 했다. 순간 이매가 떠올라 멈칫할 뻔 했지만 그러진 않았다.
"아-" 하고 단태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덮고 훑어내는 것처럼 제법 신경질적으로 쓸어내리려다가 그대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감탄사라기보다는 그저 의미가 없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머리를 쓸어넘긴 손끝에 바뀐지 오래인 귀걸이의 장식이 걸려서 그걸 꼬아내며 지팡이를 겨누는 것.
이제는 익숙해져 있는 행동이다. 양반탈의 말을 들으며, 단태의 암적색 눈동자가 얼굴이 찌푸려진 사감 선생님들을 바라봤지만 별다른 말을 꺼내지는 않고 대신 양반탈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울 뿐이었다.
섹튬셈프라 말고 다른 걸 사용해야하나. 이 망할 지팡이는 섹튬셈프라만 쓰면 맛이 가는 것 같단 말이지. 지팡이를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귓가에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는 약한 소음에 단태는 그제서야 힘을 풀기 위해 신경을 기울였다.
오래도록 꾸준히 이어지는 통증에는 익숙해지다못해 무뎌졌지만 크루시오가 주는 이 빌어먹을 격통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맞아봤다고, 비명을 지른다던가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겠지. 크루시오에 적중당하는 순간 잘못 들이킨 숨을 토해내면서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풀던 것을 멈추고 도로 거칠게 움켜쥐었다.
"금지된 저주를 못쓰는 학생은 서럽다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달링?"
가다듬는 숨 사이로 낄낄거리는 웃음을 섞으며 단태는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재잘거렸지만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드러난 암적색 눈동자는 탁하게 가라앉아 섬찟하게 자신에게 크루시오를 날린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안타깝다며 키득거리던 그녀는 발렌타인이 의외의 주문을 날리는 걸 보고 뭘 그렇게 답지 않게 소심하게 구느냐고 한마디 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야가 휙 뒤집히며 몸이 허공으로 떴고, 정신을 차리니 누가 뒤집어 매달아 놓은 것마냥 매달려 있었다. 그것만이면 괜찮았겠는데-
"어라, 어라. 이럼 안 되는데?"
그녀가 말한 이러면 안 되는데의 의미는 이 상황이 아니라 뒤집혀 흘러내리는 옷 때문이었다. 그녀의 도포는 긴 치마 위에 겉옷을 걸친 형태라 위아래가 바뀌면 얄짤없이 뒤집히는 형태였다. 속바지? 입었을 리가. 한 손으로나마 옷을 붙든 그녀는 이런 취향이었냐는 눈으로 양반탈을 보았다. 그리고 남은 손을 움직여 가차없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양반탈이 조종하는 마법사들이 각자 공격을 날린 직후였다.
"저 같은 여자애 속옷이 보고 싶은 줄은 몰랐네요. 멜리스 씨. 취향 참- 독특하시기도 하지. 브라키아반도."
이번에 그녀가 겨눈 곳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양반탈의 목이었다. 묶여서 숨이 막히든 밧줄에 휘감겨 부러지든 상관없다는 듯 매서운 손짓이 허공을 갈랐다.
무언 주문을 사용할 줄 안다. 어둠의 마법을 쓸 정도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오만한 사람이고, 또 낮춰보는 것에 재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럴줄 모르는 쭉정이로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임페리오에 걸린 마법사는 장식이 아니었다. 그는 익숙한 주문이 들리자 본능적으로 방어하려 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온 몸을 옥죄는 고통에 흐윽, 하고 숨을 들이킨다. 본능적으로 한 손을 가렸다. 비명조차 나오지 못하고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 없는 고통에 눈앞이 순간 흐렸다. 자세가 무너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때는 당신이 있었는데, 이젠 수지타산도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
그는 입을 벙긋거린다. 씨발. 하고 벙긋거린 입에서 피가 후두둑 쏟아졌다. 보통의 저주일지언정 그는 몸이 절대 성치 않은 자였고, 요양 중에 복학했던지라 그 여파가 더 심했다.
입안에 비릿한 맛이 감돌았기 때문에 단태는 비틀거리며 몸을 추스르는 와중에도 고개를 틀어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크루시오를 맞는 순간에 입안을 씹었든 혀를 씹었든 어딘가를 씹기는 한 모양이다. 그 와중에도 단태의 탁하게 가라앉은 암적색 눈동자는 자신에게 크루시오를 날린 사람을 향해 똑바로 고정되어 있었다.
"너,"
주변을 둘러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단태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양반탈을 향했던 팡이 끝을 다른쪽으로 돌리며 낮게 중얼거리다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양반탈이 잠깐 쓰러졌고, 나한테 크루시오를 날린 놈은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러라고 지팡이가 단단한 건 아닐텐데.
윤의 목소리에도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볼 겨를도 없다. 그는 살아있는 몸에 관심을 가진적도 없다. 그는 숨을 씨근덕대며 입안의 비린 피를 풀더미에 대충 뱉는다. 제법 거친 태도였다. 쓰러지는 감 선생을 본 그는 한참동안 침묵한다. 그는 사람을 믿지 않고 누군가 쓰러져도 그러려니 할 사람이다. 참지 않으면 살인이다. 3번 참으면 살인을 면한다지 않은가. 그렇지만 살인 한번이면 3번 참을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데려가기로 한 녀석부터.
그는 오랭지를 향해 손가락을 뻗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무언 마법이었고, 섹튬셈프라는 가장 큰 장기중 하나다.
연이어서 마법이 빗나가니 애써 수그러들었던 화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 것 같다. 뒤집힌 이 상태도 마음에 안 든다. 슬슬 짜증으로 미간이 찡그려지던 중 윤의 주문과 함께 거꾸로 매달렸던게 풀렸다.
"!"
순간적으로 놀란 그녀는 저를 안아주려 하는 윤에게 매달렸다. 옷을 정리하는 건 그 다음이었고. 한손으로 윤을 붙들고 남은 손으로 얼른 얼른 옷을 내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정돈한다. 그대로 윤이 양반탈에게 공격을, 아니, 제재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걸 가하는 걸 보고나서 작게 소곤거린다.
"그래서, 봤어요? 봤죠? 응?"
손으로 가렸대도 완전히는 아니었으니까. 킥킥 웃고 윤에게 안긴 채 흘끔 다른 학생들 쪽을 본다. 누가 저를 봤나 하는 그런것 보다 그저 어떤가 둘러보는 듯한 시선은 다른 이들보다 발렌타인에게 좀더 길게 머무르고 넘어갔다. 이제 이 재미 없는 상황을 끝낼 때가 왔다.
철저하게 '윤'으로 행동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자리가 어찌되든 이대로 더 놀려주고 싶지만 그녀도 일단 눈치라는게 있어서 말이다.
마지막까지 말을 안 듣는 마법을, 아니, 지팡이를 보며 이참에 한번 꺾고 새로 만들까 하는 생각 뒤로 다른 학생들의 공격이 각자의 목표에게 적중했다. 조종당하던 마법사들도 양반탈도 모두 쓰러지는 걸 보고 그녀는 약간 의문이 들었다. 인사만 하러 온 거라 하지 않았나? 톡 튀어나온 의심의 싹은 순식간에 크기를 키웠고 양반탈에게서 탈과 케이프가 날아가는 걸 보고 아, 하는 작은 소리를 내었다.
그런 거였나.
멀쩡히 사라지는 진짜 양반탈을 보고 헛웃음을 흘린 그녀는 따라오라는 사감들의 말에 그쪽을 흘끔 보고, 모두가 이쪽을 안 보는 틈을 타 윤에게 발돋움을 해 볼에 입맞춤을 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겠지.
"안 다쳐서 다행이네요."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는 흐지부지 해두고 누군가 돌아보기 전에 사감과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아아, 안 맞아서 다행이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어린 학생 두명이 인생에 대해 논의하는 시덥잖은 건배사, 끝까지 깐족거리는 여인과 수치심에 몸부림치는 그. 나름의 공모 관계를 구축한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 어느 한쪽도 기를 쓰며 핏대를 세우지 않았던 좋은 결과였다. 이제 누구도 죽지 않을 상황을, 아니, 누군가는 죽겠지만 일단 이 속내 모를 두명이 아끼는 사람은 죽지 않을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어떻게든 될 일이다. 지금까지도 죽지 않고 살았으니 앞으로 더 노력하면 될 것이다. 그는 곧 죽을 팔자를 타고났고 변수가 없는 한 졸업까지는 이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다. 그는 계약 조건대로 내색하지 않기로 했고, 돌아오고 나서 마노를 집요하게 노려보며 Hate를 외치는 달링을 달랬다. 평상시와 같은 날을 보내는 것으로 아무일도 없이 잘 마무리 되는 하루였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여인은 간식거리를 소복하게 담고 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예의상 하는 말이겠거니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 "이런 선물을 줄 거라곤 예상치 못했네만." 하며 거절하려 했지만, 반짝거리는 사탕과 상자에 담긴 초콜릿을 물끄러미 보고 결국 받아들고 말았다. 각종 간식이 그를 불렀다는 핑계였다. 그는 몰랐지만 초콜릿을 향한 시선이 유달리 생기가 만연했다. 히죽히죽 웃고 내빼는 모습이 얄미웠지만 나중에 다른걸로 돌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복수는 나중 일이다. 두고보자.
간식이 든 바구니를 들고 방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Oreo를 먹고 있을지, 아니면 Mars를 먹을지, Skittles를 먹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달링이 날개를 펼치고 다가와 바구니 손잡이에 턱 앉는다. "선물 받았단다." 하고 짧게 운을 뗀 그는 달링을 능숙한 손길로 긁어준다. 기분이 좋은지 고양이가 골골대는 소리를 어색하게 따라하고는 횃대로 다시 날아간다. 바구니에선 좋은 향기가 났다. 사탕의 과일 단내, 초콜릿의 부드러운 향, 오, 이건 쿠키인가? 가장 위에 보인 작은 유리병을 집어들어 위로 들어올려 본다. 유리알 같은 사탕은 빛에 비추니 속이 비쳤다. 한눈에 봐도 얇아보였다는 뜻이다. 아마 이게 겉은 사탕이고 시럽이 톡 터져서 눅진하게 단맛이 스미는 사탕일 것이다. 같이 먹으라고 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만약 감정표현이 풍부했다면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그는 사탕을 한번, 당신을 한번 본다. 그냥 입에 넣어주고 자신도 하나 먹으면 될 일인데 작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가 10살 많아졌을 적 인간의 온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주제에 호기심과 절애를 품어 재앙을 초래했으면서도 이번에도 같은 일을 반복하려는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사탕을 주는 것은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고, 절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고쳐야 하고, 당신에게 상처가 됐을지도 모르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마음 한켠에는 차라리 자신으로 덮어버리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욕심이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양심이냐, 욕망이냐.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사탕이 든 병을 들고 조심스럽게 당신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욕망이 이겼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가, 이것 보렴. 사탕을 받았단다."
그는 사탕 병을 가볍게 흔들고는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하나를 집어들고는 고개를 기울인다. 검은 머리카락이 한터럭 흘러내린다. 흐린 경계의 눈동자 뒤로 그가 고민하듯 당신을 가만히 마주보더니 운을 뗀다. 아마 당신의 무릎 위로 가볍게 올라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신을 내려다보며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겼을 것이고, 사탕을 입에 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요컨대 그가 어떤 모습을 보였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내 아직 사탕을 먹는 법이 익숙치 않은데. 가르쳐주지 않으련."
얌전한 고양이는 부뚜막에 올라가는 편이며, 그는 원내에서 제법 얌전한 고양이에 속했다. meow.
백정: 부네야, 나눗셈에서 나머지가 뭘까. 부네: 멍청아, 우리는 주인님께 충성하지. 백정: 응. 부네: 그 위선자가 지금 주인님의 심기를 건드리고 단독 행동을 하지. 걔가 나머지야. 레오: 쿠키가 달리면 '쿠키런'! 펠리체: 그럼 발렌타인 선배가 달리면? 레오: '저런'... 지나가던 발렌타인: 초랭이: 잔업이 없고, 건강에 신경 써주면서, 한 명 한 명 나중에 벌어 먹고 살기 위한 능력을 형성하는 걸 고려해주며 근로자를 소중히 해주는 그런 직장은 없는 걸까~ 할미: 아즈카반. 초랭이: 할미: 선비도 갔는데 너라면 당연히 갈 수 있다고 봐. 혜향: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얼마전 숲 근처에서 니플러 무리에게 포위당한적이 있었단다.. 백정: 부네야, 부네야. 들어봐. '초코칩 스트로베리 크림 프라프치노에 엑스트라 휩초코칩이랑 초코 시럽 추가*'가 무슨 주문이야? 부네: ..뭐?
* 발렌타인이 주문한 내용 각시: 얘, 내 수명을 감히 네가 잴 수 있다고 보니? 레오: 앞으로 10… 각시: 하! 앞으로 10개월? 레오: 9… 8… 7… 6… 5… 내가 널 진짜 쳐죽여버린다. 주양: 우리 여보야는 지금 어딜까? 단태: 우리 자기의 마음 속? 주양: 수작부리지 말고 당장 오는게 좋을 걸? 나 애타니까. 윤: 내 사랑아, 너는 항상 내생각만 하는 거니? 펠리체: 네. 그럴 건데요, 왜요-? 윤: 나도 그러니까. 아성: 발렌타인, 감기라며, 괜찮아? 나 걱정돼서 8시간 정도 밖에 못 잤어. 발렌타인: 8시간 정도면 숙면인데 차라리 자네는 날 걱정할 생각이 일절 없다고 하는게 더 이롭지 않나. 무기: 악몽이라도 꿨는가. 안색이 좋지 않군. 스베타: 아, 그게..어제 분명… 다한 과제를 날리는 꿈을 꿨거든요. 무기: 그런데? 스베타: 그게 분명 꿈이었는데.. 매구: 나 정도면 인재지 할미: 인간재앙. 백정: 발렌타인… 여기에 약을 탔구나…. 발렌타인: .. 백정: 발렌타인은.. 내가 이걸 마시길 바라는거야? 발렌타인: 그렇지. 백정: 그렇구나… 발렌타인이 주는걸 내가 어떻게 거절하겠어……. 발렌타인: 아가, 10분이나 이 소리를 하고 있구나. 얼른 마시고 자렴. 딸기맛이잖니. 백정: 약 싫어.. 주양: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발렌타인: 즐길 수 없으니까 피하는 게지. 펠리체: (리치랑 산책중) 윤: 와! 귀엽다. 쓰다듬어 봐도 돼? 펠리체: 그래요. 선배라면 좋아할 거ㅇ.. 윤: (펠리체 쓰담) 펠리체: ? 단태: 말 끝에 쭈를 붙이면 귀엽다는데. 레오: ...어쭈? 건: 스베타 학생, 나랑 곤이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거니?? 스베타: ..무기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 할게요.(침착) 단태: 자기야, 좋은 아침! 주양: 여보야, 그 호칭 말고 다른 건 없어? 너무 유치하잖아. 단태: …음, 고려해볼게.
(다음날)
단태: (치명적인 미소!) 잘잤니, 나의 아기고양아? 주양: 세상에, 여보야…… 아성: 뼈가 없는 동물을 뭐라고 부르더라? 순살? 스베타: 연체동물 아닐까요? 각시: 이거 보기드문 싸가지네? 발렌타인: 거울 보게, 드문가. ~등교중~ 건: 아성 학생! 왜 이렇게 늦게와? 아성: 아 저, 선생님께 허락 받았는데요! 건: 그래? 나는 허락 안 받고 늦었는데! 레오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라고 물었을 때.
스베타, 아성: 천국이라 답한다. 단태, 주양: 당연히 지옥이라 답한다. 펠리체, 윤 :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고 답한다. 발렌타인: 관.
잠시 고민해봤는데 어느 순혈 가문이 안 그러겠냐만은 벨도 만만치 않은 금수저겠네요. 장례업은 그 돈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시장을 둘러보는 세상 모르는 여주 근처에서 꼴보기 싫은 패거리 있으면 갈레온을 휙 던져서 유인해 처리하는 싸가지 없는 서부마탑주...🤔((아니에요))
>>614 북부대공, 동쪽에서 온 사절단, 서쪽에서 온 옆나라 제국이나 괴팍한 마탑주, 남쪽에서 온 이국적인 타국 왕자..많고 많은 서브의 세계..🤔 땃태는 어쩐지 동쪽에서 온 사절단 느낌이 나요! 여주가 "여기가 처음이시면 저랑 같이 둘러봐요!" 라는 제안에 손잡고 밤축제로 이끌면 겉으로는 "정말 그래도 될까요?" 라고 말하면서 속내를 모르게 웃어보이고 이끌려서 즐기는데, 막상 여주가 불꽃놀이가 예쁘다- 하면 "그러게요, 참 아름답네요." 하면서 여주 얼굴을 보고 있는..그리고 돌아갈 때 저게 먹어보고 싶다고 여주 시선을 분산시킨 뒤에 강도짓을 노리고 쫓아온 패거리를 슥삭하면서 "거슬리는 벌레가 많군.."하고 눈만 어둠속에서 빛나다가 여주가 돌아오면 시체를 저 멀리 치운지 오래라 다시 능글맞게 웃는..?
>>615 🤔그 포지션은 여주랑 큰 사건에 엮이지는 않지만 섭남과 남주가 여주가 위험에 빠져서 둘이 으르렁거릴 때 끼어들어서 화합시키고 결국에는 여주랑은 친구가 되며 대신 같은 사절단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여캐랑 썸타다가 (여캐와 여주는 친해졌다) 이어지는 포지션아냐? :Q
양반탈 멜리스가 인사랍시고 다녀가고 한 사흘쯤 지나서였나. 본가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기다리던 물건을 갖다줄테니 라온에서 보자는 내용이었다. 당일 오후 약속을 당일 오전에 보내는 건 참 그녀의 남매 답다. 늦으면 두배로 귀찮게 굴게 분명하니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로켓 목걸이와 반지까지 확인한다. 올 때는 쌀쌀할지 모르니 얇은 겉옷도 챙겨 입고서야 그녀의 걸음이 기숙사를 떠났다.
서두른 덕분인지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라온에 도착했는데 그런 그녀보다 남매가 먼저 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것도 외출을 잘 안하는 넷째다. 피곤한 얼굴로 벽에 기대 졸고 있는 걸 보고 다가가 깨우자 다크서클이 진한 눈이 그녀를 보고 반긴다.
"일찍, 왔네... 흐암.. 좀만 더 늦게 오지. 잘 자고 있었는데..." "이런데서 자지 마. 말 걸기 쪽팔리잖아. 그런데 기타는?" "...어..." "졸지 마."
정강이쯤에서 퍽, 소리가 나고 그새 졸던 넷째가 느릿하게 아야...하고 중얼거린다. 아 이거 안되겠다, 빨리 받을 거만 받고 보내려고 주변을 슥슥 보니 보여야 할 기타케이스가 안 보인다. 어딨냐고 재차 묻자 어깨에 메고 있던 걸 내려서 준다. 기타보다 작은 바이올린 케이스였다. 왜 이거냐고 묻기도 전에 넷째가 말하길, 기타가 부정을 탔는지 줄을 새로 달 때마다 끊어져서 대신 가져온 거란다. 부정이란 말에 재앙을 떠올린 그녀는 더 생각하기 싫어 알았다고 하고 얼른 가서 잠이나 자라고 했는데, 이후에 볼 일이 있단다. 것도 가림빛에.
"거긴 또 왜?" "거기..브리랑 헬리...심부름...있어.." "아니 왜 그걸, 됐다 왰어. 알았으니까 움직여. 잠들면 버리고 갈거야. 빨리."
또 졸까봐 등을 떠밀다시피 하며 가림빛과 라온의 경계인 귀곡탑 근처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녀는 탑 너머로 갈 수 없으니까 근처까지만 갔는데 비틀비틀 가는 모습이 영 불안해서 그냥 떠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가는지 안다고는 했는데, 가다가 길 잃고 도로 나오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들고. 라온과 귀곡탑을 번갈아 보다가 으휴, 하고 한숨을 쉬며 탑 근처 어딘가에 적당히 앉았다. 아마 베인지 오래 된 그루터기였던 거 같다. 옆에 바이올린 케이스를 두고서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제대로 갔겠지- 싶을 때까진 있으려고 했다. 설마 누가 오겠어, 라는 좀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628 서브 마탑주는 마탑에 짱박혀서 여전히 괴팍하게 마탑의 일원을 괴롭히지만..나중에 나 방랑할거다~ 해서 방랑해서 여주를 위한 이상한 선물(주로 타 나라의 희귀한 꽃인데 사람을 잡아먹는 꽃이래. 짜증나면 이 꽃을 들이밀어버려. 이런 편지를 동봉하죠..?)을 주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거나 이종족과 엮이거나...드래곤이 섭남으로 나오면 계약해서 반려로 살기도 하죠..🙄
그녀는 그냥 거기 앉아있을 뿐이었다. 한번 가볼까 하듯이 가림빛 쪽을 보긴 해도, 다리를 뻗은 채 구두의 앞코를 까딱거리기만 할 뿐. 일어나서 서성이지도 앉았다. 보통의 학생이었다면 한번 넘어가볼 법도 하지만 그녀는 흥미가 없는 곳에 굳이 발을 들이진 않았다. 괜히 돌아다녀서 연인을 귀찮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냥 앉은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할미탈- 샤오가 나타나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 안녕. 샤오 씨. 오랜만이네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먼저 반가운 듯 인사를 했다. 그 사이 여러 일이 있었으니 대하는게 껄끄러워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그런 건 신경쓰지 않고 제 기분대로 행동한다. 반듯한 인사 대신 고개만 까딱이고 샤오의 물음에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이런 곳에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녀는 옆에 놓아둔 바이올린 케이스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아까 집안 사람이 이걸 갖다주러 왔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가림빛으로 가야한다고 해서, 배웅 겸 데려다주고 그냥 앉아있었어요."
시시콜콜한 사정은 하기도 귀찮고 듣는 쪽도 그리 즐겁지 않을테니 적당히 추려서 얘기한다. 그리고 그녀가 샤오를 슥 보니 저번과 달리 빗자루에 통 같은 걸 들고 있고, 탈도 안 쓴 모습이라 저절로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그 의문은 곧장 입 밖으로 흘러나왔고.
"그러는 샤오 씨는 어디 가시는 길이래요? 누구 만나요? 그거 주러."
다른 탈이라면 바로 윤을 만나나보다 싶었겠지만 샤오는 왠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얼마나 제대로 대답을 해줄지 모르지만 일단 궁금하니 물어보자는 식으로 물음을 건네곤 빤히 바라보았다. 그 사이 탈만 없으면 그냥 일반인으로 보이는구나, 같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대충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들의 힘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전무한 것은 아닌지, 당신의 말은 마치 머트랩 용액과 같아서. 나아지지 못하고 점점 악화만 되어가던 제 마음속 불안감을 조금은 치유해 주었을까. 하지만 그 불안감을 완전하게 치유하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긴 시간을 들여야 상처가 낫는 원액처럼. 결국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당신의 말을 들으며 스베타는 다시금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잔을 내려둔다.
"상대를 생각한다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하라고 하시면 그리하겠습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사고나, 다른 이들의 분노로 인하여 그들이 절벽 끝에 몰린다면."
그때엔 그들이 죽지 않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요? 스베타는 이어 묻고선 당신의 반응을 살피며 생각한다. 여우가 바라는 것은 혼돈. 그 혼돈으로 빚어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지. 그 속에서, 무질서의 위에서 이전의 전쟁과 같은 목적을 이루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의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그 목적이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목적인 것인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선, 당신이 건넨 부적을 스베타는 두 손으로 받아들어 살핀다. 그리고 이어진 당신의 말에 스베타는 고민에 잠긴 듯. 부적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한다.
"사랑해. 너뿐이야." 발렌타인: - 타인에게 들었을 경우 자네가 드디어..미쳤군 그래? 다시는 그런 영양가 없는 소리는 꺼내지도 말게.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봐요!))
- 백정에게 들었을 경우 아가, 네가 날 쥐고 흔드는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지 아니할까. 네가 정말 나뿐일까 싶어서, 그 마음이 참으로 갸륵하여서. 무얼 원하니. 응? 널 위해 가장 아름다운 옷만 만든다는 재단사의 발목을 잘라 네 곁에 평생을 붙여 옷을 만들라 할까? 누군가 귀하게 여기는 보석을 가져다줄까? 오만해지렴, 무엇이든 원한다면 내 들어주마. 온정어린 손길로 안아줄까? 혹 밤을 같이 지새우길 원하니?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그만큼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니. 원하는 모든 것을 말해보렴.
"네가 가진 가장 특이한 물건은?" 발렌타인: 글쎄. ((유발함을 손에서 만지작거려요.))
"소원 한 가지를 빌 수 있다면? 뭐든 좋아." 발렌타인: 누구도 죽지 않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으면 좋겠군. 그래, 그게 제일 좋겠어.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770083
어쩐지..벨은 사랑한다는 말에 휙 돌아버릴 것 같아요. 정말? 하고 확신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요? 덕분에 확실하게 광벨이 모먼트도 보여주겠네요..😂 오만해지렴. 나는 내 사람이 제 뜻도 못 펼치고 남 밑에서 기는 꼴을 못 본단다! 음...이거 그거죠? 평민인줄 알고 자랐던 공녀를 거둔 대공이 하는 말..((아니에요))
"네 일기 한 장을 찢었어.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 펠리체 스피델리: 그 날 뭐했는지, 무슨 수업 들었는지 그런거 적혀있을 걸요. ...그보다 남의 일기장을 왜 함부로 찢죠...? (싸늘)
"좋아하는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은?" 펠리체 스피델리: 사랑해, 좋아해, 보고싶었어, 예쁘네, 오늘 뭐 했어, 다음에 어디 갈까, 같이 뭐 하자, 오늘 밤은 같이 있어줘... 뭐 이런거요? (웃음)
"행운, 불행, 평범함. 이 세 가지를 각자 어떤 사람에게 전해 주고 싶어?" 펠리체 스피델리: 평범함은 레이먼드에게, 불행은 현성 선배(선비탈)에게, 행운은 벨 선배에게. 이유? 별거 없는데. 전 제 사람이 모두에게 특별하길 바라는게 아니니 저와 같이 보통이 되었으면 좋겠고, 현성 선배는 솔직히 짜증나요. 그러니까 엿이나 먹었으면 하고. 벨 선배는, 그냥, 행복에 행운까지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 운은 조금이라도 더 좋으면 좋은거니까요.
첼이의 진단! 남의 일기장을 함부로 찢다니..진단님이 나빴어요! 싸늘한 시선이 두렵네요..혼쭐이 나겠죠?😂 좋아하는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도 간질간질하고, 마지막은..어머나.😳 벨이에게 행운을..첼이는 천사여요..음쪼쪼..😘 첼이 덕분에 벨이는 행운을 받게 될 거예요. 이미 신뢰라는 행운을 거머쥐었기도 하지요.😊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행운 있으라. 운명을 거스르는 자에게 영광 있으라 하지만 정작 행운과 영광을 모두 거머쥘 동화학원 친구들이길 바라요.
>>674 안 그래도 허락없이 건드는거 안 좋아하는데 찢었다...? 혼쭐이 아니라 소리소문없이 사라질지도(?) ㅋㅋㅋㅋㅋㅋ 벨이가 얌전한 고양이라면 첼이는 요망한 퐉스니까~~ 실은 일상 때마다 더 건드려보고 싶은데 그러면 혼날까봐 참는 중이래 히히히 세번째 진단은 최근 일상이 없었으면 아마 결과가 달랐을 거야. 평범이 벨이고 행운이 매구였겠지. 하지만 매구의 계획을 방해하기로 마음먹은데다 벨이를 끌어들였으니, 자신은 잘못되도 벨이는 안 그러길 바라는 맘이 쬠 생겼다고 해야 하나~~ 티미 하나 덤으로 얹자면 첼이 내심 속 친구 카테고리에 벨이가 들어가있대나 뭐래나 음~~ 이야 이거 참 계획한 대로만 굴러가진 않네 이맛에 참치하지 ㅎㅎㅎ
>>676 퐉스! 부뚜막에 날적부터 올라가있는게 퐉스 첼이죠.😊🥰 혼날까봐...히히히..((같이 히히 웃어요!)) 일상 덕분에 결과가 달라졌다니! 벨이야말로 펠리체와 매구가 잘못되는 일이 없길 바란답니다. 펠리체는 고작 2살 차이지만 앞날이 창창하니까요. 친구 카테고리에 벨이..영광이에요.🥰🥰 벨이도 친구...? 라고는 생각하겠죠? 벨, 그렇다고 해요. 당장!((벨: 난 친구같은 거 없...있네. 있어. 망치 내려놓게.)) 그렇죠, 계획은 했지만 절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 티키타카 참치의 맛..😊😊😊
"좀 더 애를 써 봐." 스베틀라나 이브코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봐요.) 이미 충분히 써보고 있으니, 도와주지 않을 거라면. 그냥 조용히 지켜보기나 해요.
"고백을 거절하는 방식은?" 스베틀라나 이브코프: 벽을 친다고들 하죠. 이전이었다면 고민이라도, 아니면 그러는 척이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그럴 필요가 없죠. 그에게 나는 당신에게 절망 받게 줄 수 없다며 거절할 거예요. 이해 못 한다면 그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해 줄 수 밖에요.
"누군가를 어떻게 나락에 빠뜨릴 거야?" 스베틀라나 이브코프: 글쎄요. 한순간에 일궈온 것이 사라진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아니 사라진 걸 알기나 하련지. - 재밌는 질문들이네요. 🤔
타타의 진단!((냠 하고 한입 먹어요!)) 도와주지 않을거라면 지켜보기나 하라는 스베타...단호하고 멋져요. 쓸모없으면 가만히 있기라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고백을 거절하는 건 조금 슬프네요. 지금은 늦었다니..도사의 길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고백을 거절하지 않을 상대가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나락...타타야...😢😢😢😢😢😢..
>>677 아니 ㅋㅋㅋㅋㅋㅋ 날적부터 부뚜막 위라니 ㅋㅋㅋㅋ 으윽 반박할 수가 없다....ㅋㅋㅋㅋㅋㅋㅋ 일상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첼이 나서서 적대적으로 갔을지도 모르니까...음~~ 앞날이 창창...한가...? 나는 모르겠소~~ 히히히! 아니 뭐 친구인게 영광까지야 마주칠 때마다 깐족깐족 얄밉게 굴텐데? 벨아 식사 때나 수업 겹쳤을 때 통수가 쎄하다면 주변을 둘러보렴... 널 보는 퐉스의 눈이 있을거란다....(도망) ㅋㅋㅋㅋㅋ
>>678 오오...오...이번 진단은 질문들이 날카로워서 그런가 전하고 분위기가 다른 걸! 두번째는 역시 도사가 되기로 마음 먹어서 그런 걸까...?
에이잉 그래도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매구님이 더 요망하지 아직 스물도 안 된 첼이하고는 비교가 안 될거라구~~
다른 이유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이유는 도사의 길 때문이랍니다. 응.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다지만, 결국 끝에서는 비존재로 기억에서 지워질 텐데. 이는 상대에게나 자신에게나 너무 잔혹한 시간이 될 테니까요. 향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만큼, 고백을 거절하는 선에서 더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을 상대일수록 괴롭지만 더더욱 거절할 수밖에 없을듯해요. 🤔. 그리고 마냥 행복하면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요. (?)
>>681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보며 느끼는 건 비슷하거나 그 이상 같은걸요. 😗. 앞으로 어떤 요망한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 중이랍니다.
적당히 쳐낸 대답에 따로 캐묻는 건 없었다. 그냥 한번 물어본거였나보다. 그녀의 인사를 받아준 샤오가 옆에 놓인 케이스를 흘끔거리는 걸 보고 그녀도 고개를 슬쩍 기울여 옆을 보았다. 조금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된 것이 보이는 케이스다. 내용물은 두말할 것도 없지. 손을 얹은 김에 토독토독 두드리며 시선을 샤오에게로 돌렸다.
"?"
저게 도시락이었구나, 라는 걸 깨달음과 동시에 도와달라는 말에 눈을 깜빡인다. 오진 않으면서 가기 애매한 곳? 그게 어디고 누가 안 오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도시락으로 보이는 통을 내린 샤오가 그것을 혜향 교수에게 전해달라며 다 얘기했으니까. 그녀는 보답 겸 심부름 값이라며 샤오가 쥔 목걸이와 도시락통을 한번씩 번갈아 보고, 흔쾌히 웃으며 수락했다.
"그냥 갖다주기만 하는거면 어려울 것도 없네요. 도와줄게요."
내용물이 진짜 도시락이 아니어도 상관없긴 했다. 심부름 값 같은거 받지 않아도 상관없었고. 그래도 준다는데 받아서 나쁠 건 없을거고, 그녀가 본 샤오의 행동으로는 이건 진짜 그냥 도시락일 것 같았다. 요컨데 아무래도 좋았다는거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이올린 케이스를 어깨에 걸쳐 메었다. 옷자락에 묻은 풀잎 따위를 대충 툭툭 털곤, 도시락과 목걸이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지금 받아서 갖다주면 되는 줄 알았으니까.
"바로 갖다주면 되는거죠? 어차피 바로 돌아갈거긴 했지만요."
제법 있었는데도 그녀의 남매가 돌아나오는 일은 없을 듯 했으니, 샤오가 그것들을 넘겨주면 곧장 학교로 돌아가야지 싶었다. 아, 바로 갈거면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장난스럽게 물어본다.
어라, 도시락이면 빨리 갖다줘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머리를 짚는 샤오를 보고 귀찮은 물음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급할 것도 없는 거 같고, 이대로 심부름만 받고 헤어지면 그건 그거대로 그녀에게 아쉬움이 남았을테니. 서로 좋은게 좋은거다. 그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본다고 닳는거 아니니까 마음껏 봐도 된다구요~"
그녀는 타인의 고민이나 내심이 보여도 섣부르게 손을 뻗는 타입이 아니었다. 감당하지 못 할 것을 어설프게 건드리는 것만큼 상대에게 실례인 것도 없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그저 보기만 하고, 어디론가 가는 듯한 샤오를 따라 그녀도 걷기 시작했다. 타박타박 걷다 샤오의 말을 듣고 되물었다.
"일부러 보여주진 않을거긴 한데, 보면 샤오 씨가 준 거라고 알만한 물건이에요? 그런 걸 저한테 줘도 돼요?"
기묘하게 생겼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냥 생긴거만 그런게 아니었던 걸까. 그녀는 목걸이를 한번 보고 샤오를 보았다. 목걸이는 이미 있으니까 손목에 감아서 팔찌를 할까 했는데. 몸에 차는 건 좀 보류해야 할 듯 하다. 괜한 화풀이가 튀게 하기는 싫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거에요?"
한번 해본 말을 들어주려 학교 근처로 데려다 주려는 건가 했지만, 좀전의 말로 보아 그다지 가고 싶어하지 않는 듯 해서 말이다. 맞다면 맞는거지만 아니라면 어디 가는 걸까 싶었다. 혹시 그녀가 모르는 샛길 같은게 있어서 그런 곳으로 가고 있는 걸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목걸이의 출처에 대해 듣자 의외라는 표정이 팍 지어졌다. 그러니까, 적당히 아무거나 가져왔다는 의미 같은데. 그 출처가 제갈 가라는 건, 역시 이들은 제갈 가를 은신처로 두고 있나보다. 윤이 매구라는 걸 들었던 날부터 은연중에 품고 있던 의문 하나가 풀리는 듯 했다. 그러고보면 그 가주라는 사람이 윤에게 호크룩스를 만들어달라 청하기도 했었댔지. 그녀는 로켓이 있을 부분을 옷 위로 슬쩍 만지며 중얼거렸다.
"저도 알고보면 그 집안 사람이랑 다를 거 없을지도요? 나중가선 그 사람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무슨 짓이든 할지도 모르죠."
히히. 하고 웃는게 이번에도 그냥 해본 소리인가 싶다. 정말 그럴거냐고 물으면 그 땐 또 다르게 대답할지도 모르지만.
어디에 가느냐고 물으니 산책 겸 학생들이 주로 노는 곳이 궁금하니 안내해 달라는 부탁이 돌아왔다. 이건 좀 곤란할지도. 그녀는 기본적으로 혼자 다니기에 다른 학생들이 뭘 하고 노는지 잘 몰랐다. 애초에 친구도 없는 걸. 진짜 곤란한 표정으로 고심하는데 샤오가 다른 질문을 덧붙였다. 반사적으로 샤오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그녀는 본의 아니게 뭔가 있지만 숨기듯이 대답해버렸다.
"어, 아뇨. 그런 일 없었어요. 정말, 진짜로요."
정말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걸 강조하려고 고개를 가로젓기까지 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과한 부정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과한 부정은 긍정이나 다름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뭐, 그건 상대가 판단할 부분이다. 그녀는 화제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에 앞선 부탁에 대해 말을 꺼냈다.
"방금 학생들이 어디서 노는지 궁금하댔잖아요. 제가 아는 건 라온에 나와서 간식 먹고 돌아다니는거나 교내에서 자기들끼리 뭘 하거나 그런거 뿐이에요. 전 항상 혼자 다니니까, 다른 애들이 뭘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어울린 적도 없고."
윤하고도 가끔 마주칠 때나 같이 있지, 그렇게 자주 보는 편도 아니었다.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도 아는게 없어서 아쉽게 됐다며 어깨를 살짝 으쓱이다가 마침 좋은게 있었지 하고 떠올렸다.
"모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거라면 해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이거로 한곡 뽑아주는 거라던지."
그녀는 어깨에 멘 바이올린 케이스를 툭 하고 건드려보이며 말했다. 들을지 말지는 그가 대답하기 나름이 되겠지. 이대로 의미없는 대화를 하면서 산책이나 계속해도 나쁠 건 없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기울여 샤오를 보았다.
곤경에 빠진 그들에게 손 내밀 것인가, 말 것인가. 둘 중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는 제 몫이다. 언젠가 정말 그때가 와야, 어떠한 선택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스베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당신을 따라 생각에 잠긴다. 불로불사를 노리는 것 같으면서도, 아니라니. 어찌 불로불사를 넘어선. 신이라도 되려는 것일까? 마냥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네. 마음속 여러 걱정 거리 중,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스베타는 슬몃 웃으며 당신의 물음에 답한다. 이전 당신에게 처음 부적을 받았을 때부터 길게, 그리고 무겁게 이어지던 다른 고민은. 제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 당신에게 물을 것이 아니었으니, 방금 전 당신에게 고한 고민이 근래에는 가장 큰 고민인 것은 사실이다. 스베타는 남은 차를 마셔 넘기고선 빈 잔을 내려두며 당신을 본다.
충고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에 그녀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겨우 대화를 두번째 하는 것 뿐이지만, 왜 이런 사람이 그쪽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고.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걸 듣기 전까지는 이도 저도 아닌 이 느낌이 계속 될 듯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도르륵 굴렸다가, 다시 느껴지는 시선에 진짜 아니라며 다시 대답했다.
"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 너무 애지중지 해줘서 오히려 제가 안달날 정도인걸요. 애초에 뭘 할 만큼 자주 만나지도 않아요."
학교라는 장소의 특성상 그러기 힘든 것도 한몫 했다. 어디서 누가 보고 있을지 모르는거니까. 괜한 소란은 일으키지 않는 편이 좋은거다. 윤을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그녀가 재차 내놓은 말에 샤오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저번엔 친구나 교수들이 어찌 되도 상관없냐- 뭐 그렇게 묻더니 이건 또 공감이 되나보다. 그도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면. 그러면 왜 거기 있는건지, 불쑥 튀어나가려는 물음을 삼키고 샤오를 따라하듯 싱긋 웃으며 말한다.
"신청곡을 받을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잘 해요. 원래 아무한테나 들려주지 않는데, 샤오 씨니까 한두곡 정도는 해줄게요."
대단한 실력이 아니라 제 입으로 말하고선, 한곡 켜주는 걸 짐짓 엄청난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당당하다. 묘한 자신감 같기도 하고 아직 어린 아이의 치기 같기도 하고. 그런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서 그런 말도 했다.
"저 연주하는 건 그 사람한테도 아직 들려준 적 없어요. 가족 외의 사람한테는, 길거리 연주 말곤 샤오 씨가 처음이려나. 아, 이것도 그 사람이 알면 질투하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은 그녀는 달리 연주를 듣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장소를 옮겨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모처럼이니까, 말이다.
"왜 그애를 죽였어! 그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발렌타인: 잘못은 옳지 못하게 한 짓을 뜻하지. 자네가 보기엔 사람을 수십이나 죽여 숭고치 못한 죽음을 양산한 것, 학생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하며 실제로 피해자를 만든 그 행동이 잘못으로만 보이나?
"지금 당장 현금 10억을 줄게. 넌 어디에 쓸 거야?" 발렌타인: …어디에 쓸 거냐니. 아가 옷을 새로 맞춰줘야지. 그리고… 가문의 화장터를 재건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네만. 그래, 이렇게 된 거 마굿간도 조금 증축하고, 관의 목재 거래처도 재고해야겠군.((사업두뇌 풀가동이에요!))
"너의 가장 작은 꿈이 뭐야? 사소한 것들." 발렌타인: 잠이나 푹 잤으면.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770083
오, 첫번째 질문은 각시를 말하는거려나. 되게 무섭게 말할거 같아....! ㅋㅋ 10억 쓸곳에 제일 먼저 마노 옷부터 나오거 봐 ㅎㅎㅎㅎ 그치 우리 아가 이쁜 옷부터 일단 입혀주고 남은거 생각해야지 ㅋㅋㅋㅋㅋㅋ 벨이 잘 못 자는거 보일 때마다 맴이 아프다...달달한 수면향이라도 선물해줘야 하나 (배달원 : 깐족첼)
(((돌아온 벨주를 꼬옥))) 첼이는 언제나 당당해! 하지만 감사하다는 말은 부끄러워서 못한대 ㅋㅋㅋ
>>839 지팡이 우두둑 리리턴즈...?🤔 ((벨: 내 지팡이를 좀 소중히 대해줄 수는 없는가?)) 아마 그럴 것 같네요. 각시가 만약 죽는다는 가정 하에 왜 죽였어! 이렇게 말하면 싸해질 것 같아요. 깐족첼이...ㅋㅋㅋㅋㅋㅋ사실 저 첼이가 깐족대는걸 정말 좋아한답니다. 조금 더 가까워지는? 오너의 마음으로는 이미 절친? 그런 느낌이 되어가는 것 같거든요. ㅎㅎ...🥰
부끄럽다니! 하지만 납득이 가네요. 부모님께 감사해요..하면 어쩐지 엄청난 주접을 받거나 놀림을 받거나..둘중 하나기도 하고, 그 나이의 아이들은 부끄러움을 한폭 안고 다니니까요.😊 귀여워요!
한곡인가. 내친 김에 몇곡 해도 좋겠지만 아마 시간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통금 전에 돌아가서 도시락 갖다주고 하려면 의외로 빠듯할지도 모르니. 그렇다면 선곡을 좀더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연주곡들을 머릿속으로 늘어놓고 고르며, 뜻밖의 사실에 키득 웃었다.
"그건 또 처음 알았네요. 그렇지만, 마법으로 하면 되는데 직접 할 줄 아는게 더 별난거 아닌가 싶긴 해요. 머글 같다고 들은 적도 있고."
그녀는 순혈이기에 그쪽으론 더욱 별종이지 않을까 싶었다. 마법에 의존하지 않고 뭔가를 한다는 것만 보자면 말이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었을려나 생각하며 어깨에 메었던 바이올린 케이스를 내려 손에 들었다. 슬슬 괜찮은 자리가 보이면 그곳에 멈춰 연주할 셈이었다.
"후후! 질투하는 거랑 그릇이나 아량은 별개라고 생각하는걸요? 뭐, 저로서는 질투해주는 쪽이 좋긴 해요. 저로 인해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든요."
말은 그렇게 해도 일부로 질투를 돋구진 않을거였다. 그걸 하지 않는 대신, 다른 걸 걸어볼 생각이었다. 내심은 숨긴 채 샤오를 보며 재잘거린 그녀는 마침 앞에 보이는 빈 벤치를 가리켰다.
"저기면 괜찮겠네요. 주변도 안 시끄럽고. 누가 볼지는 모르겠지만요."
앉을만한 자리가 있는 걸 빼면 그냥 길 내지는 골목길에 불과한 장소지만 그녀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쪽이 아니었다. 방학 때는 관광지에서 모두가 보란 듯 화려하게 연주를 하고 튄 적도 있다. 그런 곳에 비하면 너무 무난해서 재미 없지만, 오늘의 청중을 생각하면 괜찮은 자리이지 않은가 싶다.
한발 앞서 벤치로 다가간 그녀는 케이스를 열고 악기를 꺼내 연주할 수 있게 조율했다. 현의 조임을 조정하고, 활에 송진을 바르고, 몸통을 살짝 두드려 금간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일련의 과정을 끝낸 뒤 조금 떨어져 서서 자세를 잡는다. 까딱 까딱, 지팡이를 든 것마냥 활을 흔들거리며 샤오를 기다린다.
"그럼, 시작할게요?"
어깨에 먼저 받쳐놓고서 그렇게 묻곤, 괜찮다는 대답이 들려오면 활을 들어 현에 사뿐히 대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심 끝에 고른 곡을 실수 없이 연주해내었겠지.
수업을 들으러 나온 그녀는 간만에 고민이란 걸 하고 있었다. 수업을 제낄까 말까가 아닌, 무슨 수업을 들을까, 였다. 한결같이 한 수업만 듣던 그녀가 수업 선택에서 고민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긴 했다. 그도 그럴게, 오늘은 신비한 동물 돌보기가 열렸으니까. 수업 자체는 좋아하지 않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혜향 교수에게는 약간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쪽 수업을 가 신비한 동물 대신 교수 관찰이나 할까 하다가-
"다음에 하지 뭐."
수업 중에 봐바야 뭘 얼마나 보겠나 싶어 관두기로 했다. 그렇게 그녀가 찾아간 교실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이었다.
교실 안은 따로 살필 것도 없이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그 심약한 에반스 교수도 말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갔던 그녀는 오늘 수업 내용을 듣고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교실인데 실습이라니. 실내를 한번 돌아본 그녀는 저번에 픽시를 풀어서 했던 수업을 떠올렸다. 그런 수업도 했는데 이제와서 실습 정도야.
"......"
뭐 어쩌겠어, 라고 말하듯 어깨를 작게 으쓱이곤, 번호를 뽑으라는 에반스 교수의 말에 가만히 제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순서가 오면 나가서 번호를 뽑았겠지.
번호를 뽑을 때만 해도 저번과 별 다를거 없겠지 했다. 그런데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라길래 설마 했는데. 그녀의 상대라고 불려나오는 학생을 보고 이거 진짜냐고 생각했다. 대전 실습이라니. 정녕 에반스 교수의 수업이 맞는건가. 의외라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에반스 교수를 빤히 보다가, 시선을 돌려 마주한 학생에게 향했다. 이름이 마츠모토인가 뭐였나. 청궁 노리개를 달고 있는 걸 보니 애 좀 먹을거 같은 상대였다.
"...같은 학생이라면, 마법보다 주먹이 나을거 같지만."
그러면 한방에 이겨버릴 수도 있다는 오만에 가까운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실습 수업 중이니 말이다. 아쉽게 되었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고 의욕 없는 모습으로 지팡이를 들었다.
"스투페파이."
긴장감도 없고 오싹거림도 없는 실습 따위에 진심을 다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건방지게 선공을 양보한 상대에게 가감없이 마법을 날려주었다.
그녀의 주문을 피한데다 얄밉게 폴짝거리는 쥰페이를 보고 별 감흥이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흥미가 동하지 않는 공격에 거짓 리액션을 해줄 만큼 그녀는 호인이 아니었다. 그 사이 인센디오가 날아왔지만 딱히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적당히 도포에 맞아 타들어가던 말던 냅두고, 지팡이 든 손을 까딱거렸다.
"당신이 말하는 진심이 어떤건지 모르겠네요. 제가 당신의 주문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거? 아님, 쓰러져서 괴로워하는 거"
간만의 수업이다. 두통약을 삼키고 진통제도 삼킨다. 최근엔 걷는것도 고통이기 때문이다. 개복치라는 말이 그에게 딱 어울렸다. 몸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나 내색할 수 없는 노릇이다. 초콜릿도 한알 입에 넣는다. 펠리체가 준 것이다. 같이 먹으라 신신당부를 했으니, 아직 포장을 까지 않은 작은 초콜릿 하나를 들고 지팡이를 챙긴다. 망토를 걸친 그는 당신에게 초콜릿을 흔들어보이며 상냥하게 말했다.
"아가, 수업을 들으러 가자꾸나. 오늘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들을 생각이니. 달링, 가서 쥐를 잡아도 좋으니 오늘은 나갔다 오렴." "Again alone." "아! 세상에. 외롭구나, 내 여신아. 너도 같이 가겠느냐?" "Fu..." "ah.."
달링은 그에게 엿을 주고 휙 창문을 부리로 열어 날아가버린다. 그는 황망하게 뒷모습만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당신마저 엿을 주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다. 당신을 수업에 데려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당신은 배움의 기회가 적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 마법을 쓸 수 있지만 교수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명확한 이론을 알까? 좋은 건 같이 듣고, 교화되면 더 좋다. 그는 교실에 들어선다.
아무리 실습이라 해도, 바로 처치를 할 수 있다 해도 공격한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상대를 상처입히고, 고통스럽게 하는거다. 그걸 그냥 실습이니까 라고 웃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약간 비켜서는 것으로 밀치기 주문을 피했다. 디터니 원액을 주는 에반스 교수를 힐끔 보곤, 쥰페이에게 시선을 향했다.
"당신이 진심이라니까 저도 조금쯤은 예의를 갖추는게 좋을 듯 싶어서요. 이 자리에 당신을 엎어놓고 그 등을 밟아야겠다는 마음가짐 정도로 해줄게요."
내가 뭘 들은거지? 그는 믿지 못할 표정으로 당신을 쳐다봤다. 이걸로 끝나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비극은 늘 가까이 있는 법이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멀쩡하게 살아 숨쉬는 신을 두고 확실히 뒤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분명 며칠 전에 거래를 했는데, 그 거래니 뭐니 하는것도 다 박살날 상황이 왔다. 그는 무신경한 성격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도. 다른 상대라면 뭐지? 스트레스 풀라고 이런 기회를 주는 건가? 줘패버리면 되나? 같은 주작식 사고를 유지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교수님. 부탁을 하나 청해도 됩니까. 패밀리어가 뛰쳐들지도 모르는지라 잠시 부탁하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그렇게 말하고 마주선다. 이 질문이 들어올 줄 알았다. 그는 프로테고를 외쳐 주문을 막아내고 지팡이를 위에서 아래 방향 대각선으로 휙 그어 연기를 날려냈다.
"기숙사 창틀에 있길래. 마침 새를 키우니 돌보는 방법은 알아 거둬 키웠네만.."
그는 현궁의 사신이라 불렸는데, 사람은 싫어하는데 동물은 좋아하는 친환경의 성정을 가졌으니 이정도면 충분한 변명일 것이다.
"귀 비틀기 주문."
허용 가능한 범위를 알지 못하니 일단 가장 보편적인 가정용 혼내기 주문을 날렸다. ..이래도 되는 건가?
>>973 방금 발렌타인의 청에 윤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더니, 푸스스 웃었습니다.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지?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그치? '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그 새가 날 아는 것도 아니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널 엄청 따르는 것 같고. 놀라지 않고 다치지 않게 위력을 조절하는 훈련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
윤의 말에 에반스 교수는 당신과 그를 번갈아 바라봤습니다. 백정은 얌전히, 고개를 까딱이다가 발렌타인의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 신기하네- 야생 새도 길들일 수 있구나. '
그는 정말로 신기하다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곧이어, 자신을 향한 주문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MA님 어버버 하지만..그렇지만 어떻게 윤이가 어버버..죄송해요..MA님은 살아계신다! 위대하다!😭 ..같은 어딘가의 누군가가 처절하게 우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그는 당신의 제안에 고민하고 운을 뗀다. "나쁠 건 없겠군. 이리온." 하고 백정을 부른다. 사랑스러운 이 작은 매는 어느덧 머리 위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익숙한듯 당신을 바라본다.
"사람이 가까이 오질 않으니 동물이라도 가까이 와야 수지타산이 맞지."
그는 본인의 무시무시한 점수 깎기 기계라는 업보를 알면서도 뻔뻔하다. 당연히 아플법한 주문 뒤로 그는 다시 프로테고를 사용해 막는다. 마음 같으면 섹튬셈프라로 그어내면 끝이지만 펠리체의 눈치가 보였다. 그는 차선책을 사용한다. 리덕토는 나중일이다.
보이지 않는 밧줄은 의도대로 날아가 쥰페이를 넘어뜨렸다. 생각한대로 넘어뜨렸으니 이제 추가타를 넣어 완전 승리를 확정지으려고 했다. 딱 이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 없었다. 쥰페이의 말을 듣기 직전까지는.
"...저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건 일평생 단 한 명 뿐인데... 지금 어느 주둥이로 실성한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요..?"
조곤조곤 움직이는 입술 사이로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표정이라곤 싹 사라진 얼굴에 선명한 금빛 눈이 쥰페이를 희번득하게 내려다본다. 일견 분노한 듯한 모습이지만 날뛰기는 커녕 사뿐히 걸어가더니 한 발로 쥰페이의 등을 콱 밟는다. 도포와 치맛자락 사이로 검은 구두가 끝을 슬쩍 내민다. 밟은 채로 자근자근 짓누르며 나긋하고 서늘하게 중얼거린다.
"사선에 발끝이라도 걸쳐본 적 없으면서 진심 따위를 운운해? 그저 운이 좋아 여태 살고 있는 주제에 뭐가 그렇게 기세등등한거야, 어? 머릿속에 들은거라고 꽃밭 뿐인 천치가 주둥이만 가볍구나. 그래. 이 참에 한번 깨달아봐. 네가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