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과대 앞에서 널 기다리고 있으려니 아는 얼굴들이 계속 인사를 해온다. 솔이가 회화과에서 거의 간판인만큼 옆에 붙어다니는 나도 자연스럽게 얼굴이 알려질 수 밖에 없나보다. 물론 별로 좋지 않은 시선도 느껴지는게 아무래도 솔이에게 접근했던 남자애들 같다. 솔이의 자연스러운 철벽에 당한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나한테 적의를 품는게 당연하니 그런 시선조차 익숙하다. 그렇다고 시비를 걸린적은 없기도 하고.
" 넘어지겠다 넘어지겠어. "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쪽을 바라본다. 오늘 실습이 있는 날인데 원피스에 카디건이라니, 저렇게 입고 실습을 했으면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신경을 썼는지 옷에는 물감 하나 안묻어있었지만 네 얼굴에 물감 자국이 조금씩 묻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급하게 내려온건가 싶어서 웃으면서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 페이스 페인팅 실습이라도 한거야? "
큭큭대며 얼굴에 묻어있던 물감들을 슥 지워준 뒤에 쪼그려앉아서 풀려있는 네 신발끈도 단단히 묶어준다. 이러고 오면 오다 넘어진다니까, 같은 잔소리도 한마디 해주면서. 높게 묶어올린 머리가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네 손을 자연스럽게 잡으면서 말했다.
" 오늘은 특별히 더 예쁜것 같은데? "
학교에서 평소처럼 만나는건데 신경 쓰고 나왔다는 사실에 좀 기쁘기도 했고. 나도 너를 만난다는 사실에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나오기는 했다. 검은색 슬랙스에 오버핏 남색셔츠를 잘 넣어서 정리하고 그 위에 갈색 카디건을 매치했으니까. 우연찮게도 같은색의 카디건이라 누가 보면 커플룩인줄 알겠네,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했다.
" 뭐 먹으러 갈까. 먹고 싶은거 있어? "
나보다 새솔이 음식 취향이 까다로운 편이라서 그녀에게 맞추는게 더 좋았다. 괜히 나 먹고싶은거 먹으러 갔다가 솔이 입에 안맞는건 사절이다.
허어어 ... 중학교땐 그렇게 시비 걸려서 싸우기도 하지 않았을까! 솔이한텐 왜 싸웠는지 비밀로 하고선 그냥 먼저 시비 걸길래 때렸는데 무슨 문제라도? 하면서 다니고 ... 고등학생땐 거의 단 둘이 붙어있는데다가 현이도 조용하게 변하고 좋아하는 애들도 그냥 시비 안걸고 속으로 부들부들 했을 것 같다! 고등학생땐 싸우면 거의 99% 로 네가 왜 솔이 옆에 있냐 어쩌구~~ 하면서 싸웠을 것 같은데!!
달달한 일상 ... 기대할께!! 나중엔 현이 일하는데 불쑥 찾아오는 일상도 재밌을 것 같아!!
뿌듯하게 웃더니, 물티슈를 꺼내며 건넨 네 말에 고개를 갸웃인다. 페이스 페인팅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싶더라. 꺼내진 물티슈가 얼굴로 오자 그제서야 눈치채고 쿡쿡 웃음소리가 난다.
"왜, 너도 해줄까?"
물감을 닦고나면 너는 이번에 갑자기 몸을 낮춘다. 이번에는 또 무엇인가 하고서 너를 쫓아 시선을 내려보면 신발끈이 풀려 있었다. 넘어지겠다는 말이 한 번 더 나오자 으으으음, 길게 고민하는 소리는 내다가 답한다. 개강총회 때 술기운이 많이 올랐던 것은 맞지만, 잊은 것은 하나도 없고 네가 해준 말도 제가 한 말도 다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벌써 너를 제 남자친구로 생각한지 2주는 되었다.
"넘어지면 잡아줄 사람 여기 있잖아."
그 말을 하고 있으니 네가 제 손을 잡았다. 방긋 웃으면서 그 손에 깍지를 끼며 고쳐 잡는다.
"덕분에 죽을 뻔 했다니까?"
실습 내내 물감이 튈까봐 조심해야 했고, 주변에서는 계속 달달 볶아대고, 치마를 잘 안 입어버릇하니 스스로도 행동거지가 어색해서 꽤 곤란한 일이 많았다. 그래도 네게 더 예쁜 것 같다는 말을 들었으니 가끔은 이렇게 꾸며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생각한다.
"먹고 싶은 거... 매운 거. 엄청 매운 거."
네가 안 된다고 할까 싶어서 조금 텀이 있었다. 먹고 싶은 거라고 하면 늘 바로 떠오르는 두 가지가 매운 음식과 아이스크림이다.
그렇게 시비가 걸려써 싸우기도..........?!!! 새솔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솔이 비밀로 하면 진짜 영영 모를텐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 암것도 모르구 또 왜 또 싸우냐고 시비 걸리면 무시하라구 잔소리나 했겠다ㅎㅅㅎ..... 네가 왜 솔이 옆에 있냐 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 새솔이가 그거 들으면 어이없어지구 왜 내친구한테 시비거냐고 한마디 했겠다......... 그 의미로 왜 솔이 옆에 있냐한게 아닐 확률이 높겠지만 모르겠지ㅎㅅㅎ..........
옷은 이렇게 깔끔하게 하나도 안묻혀놓고 얼굴에 묻히고 나타나다니 그만큼 집중해서 한 것이겠지. 전부터 너는 하고자 했던건 뭐든 엄청 열심히 하는 편이었으니까. 뭐든 중간만 가자고 생각하는 나랑은 좀 달랐지만, 그래서 너가 나에겐 좀 더 특별했는지도 모른다. 해준다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네 신발끈을 묶고 있으니 네 말이 들려온다.
" 평생 내 옆에 있게? "
다른건 똑부러지면서 이런건 덜렁대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네 매력포인트라고 생각이 들다니 이게 콩깍지인가 뭔가하는 그런건가보다. 나보고 잡아줄 사람이라고 하다니, 내가 평생 옆에서 붙어다니면서 너가 넘어질때마다 잡아줄거라고 생각하는걸까. 그렇게 생각하다면 당연히 답은 Yes.
" 내 눈에 예쁘게 보인다는 목적만 달성했으면 되는거 아니야? "
다음부턴 좀 편하게 입고 나와도 된다고 말하려고했지만 기껏 네가 이렇게 입고 나와준 성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내 말대로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한 이유도 나와의 데이트를 위해서일테니까. 거기에 올려서 하나로 묶은 머리가 새로운 이미지라서 한껏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 매운거 먹는건 좋은데 다음날 배탈 나는거 아니야? "
거기다가 아직 수업도 남았는데 다음 수업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었다. 물론 내가 매운걸 잘 못먹는 것도 있었지만 나는 다른 메뉴를 먹으면 되는 일이고. 먹고나서 속 아프면 어쩌나 싶었지만 일단 네가 먹고싶은 것이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어느 정도는 장난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대답하지 못 했었다. 네가 결혼해야지 별 수 있느냐고 했던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지금 이렇게 물어본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장난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네 옆에 있고 싶다는 건 진심이다. 제 옆에 네가 없는 건 싫었다. 네가 남자친구로서 좋고 싫고 그 이전의 문제였다. 그래서 얼굴이 조금 화끈거린다고 생각하며, 대답을 끝내면 네가 대답을 언제 돌려주든 너를 계속 보고 있자면 더 화끈거릴 것만 같아 고개를 돌렸다.
"됐네요, 옛날부터 너 빼고 다 예쁘다고 했거든?"
문득 생각나는 건, 개강총회 때 너희 과 여자아이들이 하던 말이다. 견제한 거냐니 물어본 그 아이들의 말에 너는 답하지 못 했다. 그리고 그때 예쁘다는 말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건 낯간지럽고, 오글거린다 생각했다. 그래서 괜히 흘러내린 잔머리카락만 귀 뒤로 넘기면서 말을 끈 탓에 덧붙이는 사이의 공백이 길었다.
"그래도 네가 예쁘다고 해준게 ."
머리카락을 묶어올린 탓에 드런나 목덜미에 머리카락이 스치는 것조차 신경이 곤두서 간지러운 느낌이다. 너와 있으면 간지러운 기분이 왜 이렇게 많이 드는지 모르겠다.
"야, 나 이제 매운 거 잘 먹는다?"
친구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가 그래봤자라는 말을 들었다는 건 꺼내지 않았다. 네가 고개를 끄덕이면 허락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환히게 웃는다. 학교 근처 매운 음식을 파는 가게 리스트 쯤이야 머릿속에 언제나 정리되어 있다. 그 중에 안 매운 메뉴도 같이 파는 곳,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간추리는 건 쉽다.
"새로 생긴 돈까스집 엄청 맵대."
너와 저가 갔던 카페. 네가 고백했던 그 카페 근처 어딘가 있다더라 얘기하면서 걸음을 옮기는데 어쩐지 방향이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실버타운도 같이 들어가기로 약속했잖아. 저번에 나누었던 장난 같던 대화까지 덧붙이며 널 바라본다. 이젠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면 너도 나를 많이 좋아하게 되었단걸까. 사실 우리가 연인 관계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네 옆에 항상 있고 싶었다. 그건 예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난 조금 더 욕심을 냈고, 그렇게 너에게 고백을 했다.
" 그만큼 내가 해주는 예쁘단 말은 유니크한거 아니야? "
그야 예전엔 주변에서 너가 아무리 예쁘다고해도 시큰둥했으니까. 객관적으로 봤을땐 예쁜건 나도 잘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걸 너에게 말해주는건 별개의 얘기였다. 굳이 그런 얘기를 할 생각도 없었고 필요성도 못느꼈다. 그땐 정말 친구였으니까. 주변에서 걔 좋아해? 라고 물어보면 말없이 주먹을 들어보이던 시절이다. 지금은 유새솔이라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문제지만. 하지만 좀 뜸을 들였다가 너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결국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없이 잡고 있는 손을 끌어서 내 쪽으로 당겨온다.
" 먹는건 좋은데 적당히 매운걸로 먹어야해. 너무 매운거 먹고 또 속아프다 어쩌다하지 말고. "
너 다음 시간에도 수업 있는거 기억하고 있지? 눈을 가늘게 뜨고 너를 바라본다. 그 정도는 알아서 조절할 나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난 8년간의 시간동안 너를 지켜봐온 내 빅데이터가 결과를 부정적으로 도출하고 있어서 한마디 얹는다. 쉬는 날이었으면 뭘 먹던간에 다 허락해줬겠지만 오늘은 수업도 더 있는 날이니까. 새로 생긴 돈까스 집이라, 대학가에서 새로 생기는 식당은 맛없지만 않으면 언제든 환영이다. 결국 가는 곳만 가게 되는 대학 라이프에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니까.
" 근데, 그 카페라면 그쪽이 아니라 반대 방향인데? "
저번에 내가 고백했던 그 카페 근처라고 했는데, 거긴 이 방향이 아니라 반대다. 그래서 그쪽으로 걸어가는 네 팔을 잡아 끌어서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본 것 뿐이니 분명 깊게 생각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제 옆에 네가 정장을 입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면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얼굴만 새빨개지는 것이다. 장난스럽게 말하지 않으면 네가 무슨 대답을 하든, 아예 대답을 하지 않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키득거리며 웃어봤지만, 제 웃음소리가 금방 작아졌다는 걸 저도 알았다.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린 건 숨길 수도 없어 제 손등을 뺨에 올려 좀 식혀본다.
"개뿔이 유니크야."
칭찬 안 해준 거란 말 밖에 더 되드냐고 작게 궁시렁거린다. 네가 손을 끌어 당기면 그만큼 너와 제 거리가 가까워진다. 웃는 걸 보니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더라.
"뭘 잘했다고 웃어, 니가 하도 안 해줘서 그런 거잖아."
하고 싶은 말이 툭 튀어나온다. 예쁘다는 말을 견제하느라 안 해준 거라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 니 여자친구니까 견제 안해도 되잖아."
말하면서도 헷갈린다. 제가 지금 네게 무슨 말을 하는건지, 네게 예쁘다는 말 못 들은게 그렇게 서운했었나 생각한다. 남들이 다 해주는 칭찬을 안 해주는게 서운했던 건지, 오로지 네가 해주지 않아서 서운했던 건지 이유를 고민했다. 분명 예전에는 네가 예쁘다 해주지 않으면 니 눈이 삐었다느니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언제는 아프다고 말하라매. 그리고 진짜 나 매운 거 좀 먹는다니까?"
가늘게 뜨고서 저를 바라보는 네 눈을 똑같이 바라본다. 가늘게 뜨고서 쳐다보지만 네가 걱정해주는 건 좋았다. 네 걱정이 과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반면에는 그런 걱정이 따듯해서 좋았다.
"엥?"
단순한 길치일 뿐인지라, 네가 끌어주면 그대로 널 바라보고서 멈춘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두 방향을 두리번거린다. 이쪽이 그쪽이 아니라면 제가 가려던 방향은 원래 어디로 가는 방향인가 하고 멈춘 것이다.
얼굴 빨개지는거 봐. 본인이 그렇게 말해놓고 부끄러워지는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엄한 생각은 아닐텐데 결혼식 장면이라도 상상하고 있는건가? 빨개져버린 얼굴을 식히려는지 제 손을 들어서 뺨에 가져다댄다. 밖에 오랫동안 있어서 약간 차가워진 손을 너의 뺨에 살짝 가져다대며 웃어보인다. 어후, 뜨거라.
" 그래서 이제 예쁘다고 많이 해주잖아. 내꺼니까. "
생각보다 반응이 좀 쎄게 나오는데? 평소에 내가 예쁘다고 말해주지 않은게 신경 쓰였나, 하고 생각한다. 예전 같았으면 니가 이상한거다 어쩌다 하면서 말했을텐데. 예전에야 친구였으니까 그렇게 얘기할 필요성을 못느꼈고 너를 좋아하게 되고 난 이후부터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더욱 안하게 되었다. 어차피 네 옆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건 나일텐데 뭐가 불안해서?
" 아프면 내가 챙겨줄 수 있는데 수업 들어가면 그게 안되니까 그러는거잖아. "
물론 친구들이 챙겨주겠지만 그건 그거고. 수업중에 집중 못해서 끙끙대는걸 보고있자니 차라리 그냥 덜 매운걸 먹이는게 낫다는 입장이다. 그래도 너가 먹고싶다니 몇번 설득해도 안되면 그냥 먹으러 갈 생각이다. 하지만 역시나 길치인 너는 목적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라.
" 거기로 가면 인문대야. 우리 갔던 카페는 이쪽이라구. "
학교 안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갈 생각인건가 싶었다. 어쨌든 너가 가려는 방향이 어디인지는 알았으니까 그대로 네 손을 잡고서 저번에 갔던 그 곳으로 향한다. 깍지 낀 손이 부드러워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진다. 가는 중간중간에 아는 얼굴들을 마주치고, 우리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에도 다들 놀래는 모습 하나 없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음, 방금 걔네한텐 사귄다고 얘기 안한 것 같은데.
" 너 매운거 먹고 아이스크림 먹을꺼지? "
안들어도 다 알아. 마침 근처에 자주 가던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다. 어쩐지 너가 가고싶어하던 동선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이다.
네가 방금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너는 저와의 결혼을 생각할 정도로 저를 좋아하고 있다는 소리다. 얼굴이 식을 새가 없다. 저도 너와의 결혼에 싫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지만, 너한테 청혼을 해야겠다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너를 좋아하려고 애쓴지도 이제 고작 보름 남짓하게 지났는데, 결혼을 생각해봤을 리는 만무했다. 너와 같은 마음을 가지겠다고 할수록 네 마음은 매번 생각보다 더 큰 것만 같아 놀라고 만다.
"뭐야, 왜 이렇게 차."
제 얼굴이 뜨거운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네 손이 너무 찬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찬 것이 닿아 몸이 움찔거리며 놀랄 정도였으니 제 뺨에 닿아있는 네 손을 제 손으로 감싼다. 제 손으로 감싼 네 손에 뺨을 좀 더 온전히 기대면 찬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밖에 오래 서 있었나 싶어진다.
"미쳤나봐, 뭐래? 난 내 꺼거든!"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데 그런 대사를 들을 줄은 생각도 못한 반응이 고스란하다.
"안 아플만큼 매운거 먹을테니까 걱정 집어넣으시지~"
매운 거 먹고 나서 아이스크림 먹으면 된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달고 시원한 걸 먹으면 분명 괜찮아지리라고.
"나 졸업할 때까지 학교 길 못 외울 듯."
진심이었다. 그래도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옆에는 늘 네가 있을테니 별로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이제는 너와 손도 잡고 다니는데, 옆에 있는 네 손을 잡고서 길을 잃을 일이 있을까 싶다.
"당연ㅎ, 가 아니고. 왜? 먹으면 안 돼?"
아까 했던 생각이 그저 생각이었던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또박또박 소리내어 말하기라도 했나 싶다. 정곡을 찔려서는 너를 바라본다.
중학생들이 사귀어도 자기들이 사귈때는 결국 결혼에 골인할거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만남이 아닌 이상 누구나 이 연애의 끝은 결혼의 시작이라고 생각할테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새솔이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얘도 얘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을테고 나보단 느리겠지만 내가 노력한다면 천천히 나와 같은 마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다 네 손이 내 손을 감싸쥔다. 그렇게까지 오래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핸드폰을 들고 있었으니 차가워질만도 하다. 그래도 네 얼굴이 좀 식은 것 같아서 다행이었지만.
" 역시 반응이 재밌다니까~. 그렇다고 농담이라는건 아니지만? 공동소유로 하는건 어때? 대신 나를 줄께. "
부끄러워서 저런 반응을 하는 거겠지. 톡하고 건드리면 우와악하고 나오는 저 반응이 재밌다. 그래서 예전에는 자주 놀리곤 했는데, 그건 우리가 연인이 되고 나서도 바꿀 생각은 없다. 물론 놀림의 강도 자체는 좀 낮아지겠지만 그래도 만족할만한 반응은 나오니까 상관 없겠지. 하지만 너가 내꺼라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 내가 맨날 같이 있어줄테니까 외울 필요는 없겠지만. "
나도 학교 지리를 다 외운건 아니다. 학교가 워낙 넓은 것도 있지만 항상 가는 곳만 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충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머릿속에 있으니까 방향 정도는 알고 있지만 우리 새솔씨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내가 같이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고싶은 곳이 있으면 업어서라도 데려다줄테니까.
" 아니 그냥 네가 생각하는게 훤히 다 보인다 싶어서. 근처에 우리 가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잖아. "
프랜차이즈는 아니고 조그마한 가게인데, 수제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다. 가격대도 괜찮은데 양이랑 맛도 좋아서 예전부터 자주 찾는 곳이다. 그 카페 근처에 있는 가게라서 아마도 매운걸 먹고 거기갈 생각이 아니었나, 하고 추측해봤을 뿐이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어느새 우리가 갔던 카페 근처에 도착했다.
" 그 돈까스집 이름이 뭔데? 알려주면 내가 찾아갈께. "
네가 이름을 알려주면 금방 검색해서 식당으로 찾아간다. 학교랑은 조금 거리가 있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사람은 많이 없어서 자리 잡기는 쉬웠다. 대충 사람들과 좀 떨어진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서 네게 메뉴판을 건네준다. 보나마나 고를건 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