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성은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니플러들만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뿐. 혜향교수는 절룩거리며 학생들에게 다가왔고 아성은 혜향교수의 전적이 있는 터라 그를 경계했다. 그의 본성은 나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다. 그는 한때 탈의 일원이었으니.
가증스러운 얼굴. 저 위선자. 레오는 입술을 살짝 깨물곤 가만히 노려보았다. 뒤에 있다 이거지. 몸풀이 상대따위가 아니라 잘못하면 정말로 크게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한 동물이라면 관심이 있는 과목이라 열심히 공부했었고, 그 교수님도 좋았.. 아.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 비켜 "
레오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혜향교수를 노려보며 그 앞에 섰다. 그리곤 어깨로 툭 치고 지나가며 저 쪽에서 자고있다는 만티코어를 찾아나섰다. 또 가슴이 아프다. 뭔가가 쿡쿡 찌르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가 너무나도 불편한 기분. 몸 속에서 파도가 치는 기분. 레오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머리가 많이 길었구나. 자자, 중요한건 이게 아니지.
빨리 빨리 해치우던가 하고 돌아가고 싶은데, 막상 학교 앞 숲까지 나오니 안 보인다. 그 만티코어, 작은 크기도 아니라 쉽게 보일텐데 어디로 숨은 건가. 다시 주름 잡히려는 미간을 눌러 펴놓고 한숨을 푹 내쉰다. 오는 동안 씹은 입술은 붓다 못해 너덜하다. 그래도 괴롭힐 부분이 그것 뿐이었으니 계속 입술을 잘근대다가 혜향 교수와 마주쳤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표정을 구겼다가 펴고 예의상 고개만 꾸벅 숙였다 들었다.
"네."
친절하게 그 위치를 알려준 혜향 교수에게 단두대로 싹뚝 자른 것마냥 짧은 대답을 하고 가르쳐준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딜 갔나 했더니 처자고 있었다 이거지. 팔자가 늘어졌네 아주. 지팡이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손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며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만티코어가 보이지 않는다. 니플러를 본 그는 자연스럽게 손가락의 반지를 숨긴다. 6년동안 모노클을 수십개나 헌납했고, 더이상 뺏기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저 작고 귀여운 두더지를 닮은 생물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갈레온을 소비했는지! 간식비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혜향 교수를 본 그는 이해하는 양 대충 두어번 고개를 끄덕인다.
"잔다니, 팔자 한번 좋군요."
숲 안으로 들어가며 그는 지팡이를 꽉 쥐었다. 새삼 생각해보니 대체 원내에 왜 만티코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검은 단발머리 가진 조막만한 지팡이 심 제작자 녀석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며 방방 뛸게 뻔하다. 지금은 자기 집에 돌아가서 은둔생활을 한다지? 어디 있을까. 그는 일단 무작정 걷기로 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발소리 없이 걷는 건 익숙하다.
보이질 않네. 얼타서 두리번거리던 은이 빼꼼 고개를 내미는 니플러를 보기 위해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숙일 때, 혜향 교수가 그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프우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보니,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양으로. 만티코어의 위치를 알려준 것에 은은 예의 갖춰 고개를 숙이고 숲을 향해 걸었다. 자고 있을 때 급습할 수 있다면 비겁하긴 하지만 그만큼 좋을 게 없다.
그렇지만, 역시 숲은 무섭다. 모르고 나뭇가지를 밟는 작은 소리에 놀라고, 숲을 서식지 삼은 동물들이 뛰쳐나오는 게 무섭다. 몸을 움츠리지는 않고, 지팡이가 어디든지 금방 겨눠질 수 있도록 긴장이 팽팽하게 드러난 손 안에 모순적으로 느슨하게 잡혀 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걷다보니 보이는 건 없고 뭔가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말다 한다. 거대한 뭔가가 스치는 소리, 소리, 그 놈의 소리! 모든 사단은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울음 소란 소동 습격 환청 전부.
그녀는 지팡이로 귀를 찔러버리고픈 충동을 참으며 손을 움켜쥐었다. 너덜한 입술을 깨물자 픽 하고 찢어지며 혀끝이 비릿해진다. 어린 날, 하도 입술을 물어뜯어 혼났던 기억이 떠오르자 조금은 기분이 누그러지는 듯도 싶다. 잠시 멈춰서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자 그보다 조금 더 나아진다. 부디 이대로면 좋을텐데.
손에 무리하게 들어간 힘을 풀고 그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주변에서 누군가의 기척이나 외침이 들렸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그녀가 가고자 하는 길만 무심하게 나아갔다.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이들의 모습이 수풀 너머로 사라지더니, 이젠 보이지 않는다. 너무 흩어지는 건 아닌지. 그런 걱정을 한다. 숲 한가운데를 이렇게 걷고 있자니 오싹한 기분이다. 가뜩이나 최근의 사건들 때문에 더 그럴까.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소름에 살짝이 몸을 떤다. 그러다 들려오는, 바람을 가르는듯한 소리에 자리에서 멈춰 선다. 자세를 낮추고서, 나뭇가지라도 밟아 부러뜨릴까 아래를 살피며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한다.
이 점 여섯 개에 얼마만큼의 고뇌가 담겼는가. 조심스럽게 숲을 헤맨다고 생각했더니만, 죄수복을 입은 세 명의 마법사와 마주쳐서 들키기까지 한 상태라니. 발밑에 밟혀 부러져 있는 고얀 나뭇가지(그렇게 피한다고 피했지만 결국 불행에는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가 미웠다. 최근, 도망칠 일만 많았다는 게 생각났다. 붉은 손바닥과 덜컹거리는 기숙사 방. 꽉 막힌 공간이 무서워서 노숙을 생각하기도 했다만 은이 노숙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회상할 때가 아니었다. 그저 이번에도 도망쳐야 할 순간인 것 같았다.
죄를 지었다면 감옥에나 들어가 있을 것이지, 군들은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느냔 말이야!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은이 곧바로 돌아서 뛰었다. 교수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지만, 대체 누굴 부른단 말인가? 혜향 교수?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맡기려는 게 옳은 일인지 의문이었다. 이곳에 다른 교수들이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우선 오던 길을 돌아가려고 한다. 적어도, 학교에 가까운 길이 나올 것이다... 은에게 숲 속을 헤매다 완벽하게 왔던 길로 돌아가는 능력 따윈 없지만 목표로 잡는 것만은 자유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