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궁 내부는 조용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그녀 밖에 없는 것처럼, 그녀만 남은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곳이 그녀가 4년간 머무른 곳과 같은 곳이라고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녀 혼자만 뚝 떨어져 같지만 같지 않은 곳에 떨어진 것 같다. 과연 여기에 윤이 있을까? 찾는다고 만날 수 있을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의 반복에 불안이 점점 쌓여간다. 언제라도 넘쳐흐를 듯이.
"......"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그녀는 또다시 몸이 굳었다. 굳은 채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먹고싶은 것이 분명하다. 미친 것! 먹어서 뭘 하려고? 그는 이대로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다가, 뒤로 돌아 백정을 쳐다본다. 만약 내가 여기서 도망쳐버리면 내 아이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한 손에 지팡이, 다른 손에 문고리.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 문고리에서 손을 놓고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고 주문을 외칠 준비를 한다. 저번에 뭐라고 했지. 패트로누스? 그래.
부르는 소리에도 레오는 답하지 않았다. 뛰지 못한다면 걷고 걷지 못한다면 기어서라도 가야지. 간신히 벗어난 곳은 어디였던가. 레오는 비틀비틀 걸어와 적당한 자리를 찾아 털썩하고 앉았다. 차라리 상대가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맞서 싸울 수 있었을텐데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공포는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 .... "
학교도 뭔가 이상해. 레오는 어떻게할까, 하고 고민했다. 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여전히 패닉상태에 빠져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레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숲으로 향했다. 기숙사나 다른 기숙사, 학교로 가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굳이 숲으로 향한 까닭은 항상 그 곳에서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자신의 조력자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 버니... 도와줘.. "
도망치는 와중에 슬리퍼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제 레오는 맨발로 풀과 흙을 밟으며 천천히 숲으로 향한다.
밖으로 나서자 보인 것은 비정상적으로 생긴 무언가였다. 그 생긴 것에 근원적인 공포감을 느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 그것과 눈이 마주쳤을까. 행동을 멈춘 그것을 따라 발을 멈춘다. 뒤돌아 달려야 할까. 아니면? 생각하던 도중 그것이 웃으며 달려들자 빠르게 부적을 꺼내 쥔다. 아니, 저것이 학원을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다. 불로 태워버릴 것을 생각하며 부적을 내던진다.
뭐야. 저게, 뭐야. 좀 더 커진 실루엣, 저것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집어삼키려는 것만 같다. 차라리 이 상황을 누군가의 장난으로 믿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모두 해결되었으면 좋겠단 같잖은 희망사항이 있었다. 꼭 쥔 손이 장갑을 끼지 않아서 꽤 아파왔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마땅히 들여야 했겠지만, 창문 밖에서 말하는 상황에서 결코 열어 줄 리가 없었다. 은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그 입 틀어막힌 것에, 두려움 또한 없었다곤 못 했다.
레오는 반쯤 정신이 나간것처럼 비틀비틀 걸어다니다 숲에 도착했고 웃음소리를 들었다.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레오는 살짝 미소를 띄곤 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신발을 신고있지 않음에도 비틀거리며 손을 휘적였고 그러면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 버니, 너야? "
너구나. 그렇지? 레오는 비틀비틀 그리로 향하다가 문득 머릿속에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저건 그 목소리가 아니야. 그리고 버니는 저렇게 웃지 않아. 저렇게 웃는건, 내가 아는한 하나밖에 없어.
" ... "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때, 레오는 뒤를 돌았다. 그리고 자기가 왔던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 보인 것은 커다랗게 벌린 입과 돌아가선 안 되는 방향으로 돌아간 사지와 그것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겹쳐져 정신을 후벼파는 무언가는 위험한데 위험해 도망 아니 몸은 움직이지 않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누군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 누구 누가 아무나 아무나 아무나라도 거기 여기를 여기에서 저거 저거 저거-
"윽!"
그녀는 아까 깨물었던 혀를 다시 깨물어 정신을 붙들었다. 굳음이 풀린 손을 꽉 쥐며 뒤돌아 도망쳤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강제로 끌어 밖으로, 백궁 밖 어디로든 도망쳤다. 혀의 쓰라림 때문인지 영문 모를 상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숨찬 흐느낌이 다문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귀신이 깔깔 웃었습니다. 그것이 목을 길게 빼어서, 바로 당신의 코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읍니다. 거꾸로 내려다보는 얼굴이, 천천히 다시 돌아가서 당신을 똑바로 마주했습니다.
어때, 아성아? 마음에 들어?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웃음소리가 당신의 귀를 시끄럽게 합니다.
' 거기 누구니? '
뒤에서 건 선생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가위 눌림이 풀렸습니다. 귀신도, 당신이 들고 있던 거울 조각도 당신과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도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루모스 주문으로 지팡이 끝을 밝게 비춘 그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은은 거기에 지팡이를 겨눴다. 스스로 열린 문 너머엔 아무도 없었다. 긴장했을 때가 아니라면 놀라지도 않았을 일이지만, 지금은 상대가 어디에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문 밖에 아무것도 없다면, 설마 뒤─
창문을 뒤흔들며 찍히는 손바닥 자국에 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손에 힘이 풀릴 뻔했지만,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지팡이만은. 한동안은 쭉 눈앞에 붉은 손자국이 어른거릴 것 같았다.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서 자신은 무장해 있다는 걸 끊임없이 되새기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도망은... ...상대가 열어 놓은 문으로 하거나, 멀쩡한 벽을 부수거나. 잡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 맹목적인 공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들지만 무엇이 옳은 답인지 알 수 없는 머리. 정신을 차렸을 땐 " 봄바르다─!! "를 창문을 향해 외친 후, 무작정 문으로 뛰어 달아나고 있었다.
아아, '인센디오 조절 수업' 같은 걸 할 시간에 더 쓸만한 걸 가르쳐 주지, 이런 수상쩍은 상황에 무섭게 목소리는 왜 나오냔 말이야. 그런 원망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인간이 아니다. 지팡이를 꽉 쥐고 뒤로 한걸음 더 물러났다. 행복한 기억을 어떻게 떠올리란 말인가. 침착해야 한다. 탈의 농간일 수도 있다. 이런 존재를 풀어서 10명이나 죽이지 않았나. 침착해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피가 흐를 정도로 깨물고 나서야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존재를 대처하지 못할까 겁이 났다. "이딴 말라빠진 몸뚱아리가 뭐가 맛있어 보이나. 정신이 나갔나? 개소리 말게."
귀가 아팠다. 두렵다. 그렇지만 해야만 한다. 그는 심호흡을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정도, 달링도 이 방에 있다. 아직 각시인지 뭔지 하는 여성을 만나지도 못했다. 한번 사는 인생에서 방해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다리를 보고 그의 머리가 핑 돌았다. 한번 휘청인 그가 우뚝 서고는 지팡이를 쥐어 휘둘렀다. 평정심을 금세 찾은 것이다. 그가 방금 죽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나? "익스팩토 패트로눔."
흐윽, 흑, 하고 나오는 소리는 그저 숨이 차서 나는 소리인지. 눈 앞이 흐려질 쯤에야 멈춰서 주변을 살핀다. 무작정 뛰었더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래도 교내를 벗어나진 않았을텐데.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고 다시 보자 익숙한 구도가 보이고 곧 그녀가 갈 수 있을 곳이 몇곳 추려졌다.
그것이 아직 있을지 모를 백궁으로 돌아갈지, 양측의 다른 기숙사로 갈지, 정전으로 갈지.
어린 날 그녀가 그러던 것처럼 옷자락을 쥐고 사방을 돌아본다. 백궁과 주궁과 현궁과 정전을 몇번이고 번갈아 보다가,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0 귀신이 깔깔 웃었다. 아성은 이상하게 깔깔 웃어대는 귀신이 우스꽝스러워보여 함께 웃었다. 그것이 목을 길게 빼어서, 바로 당신의 코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을 땐, 금방이라도 그녀석이 커다란 입을 벌려 자신의 머리르 뜯어먹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반드시 유령이 되어 저 귀신을 박살 낼 것이라 다짐했다.
그때, 거꾸로 내려다보는 얼굴이 천천히 다시 돌아가며 아성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이 시끄럽게 깔깔대며 웃는 녀석을 보고 아성도 웃었다. 미소와 웃음은 전염이 된다. 그런데 설마 귀신의 웃음도 전염될 줄은 몰랐다.
"그래, 재밌네."
' 거기 누구니? '
뒤에서 건 사감의 목소리가 들리며. 가위 눌림이 풀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귀신도, 거울 조각도 핏물도 모두 사라졌다. 루모스 주문으로 지팡이 끝을 밝게 비춘 건 사감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성을 바라보며 왜 밖으로 나와있냐고 물었다.
고작 연기밖에 나오지 않는다. 침착해야 한다! 이럴수록 떨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공포에 직면하니 이론은 이론이었음을 실감한다. 이건 자존심을 세울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시원하게 마법 몇번 날리고 도망치고 싶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론에 휘둘리지 말라며 머리가 아우성을 치지만 막상 근거없는 용기가 치솟는다. 도망치면 안 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당신에 대한 마음을, 아직도..
"익스팩토 패트로눔."
모르겠다. 이 망할 개 연기는 왜 나오지 않는 것인가! 그가 결국 세게 깨물어 터진 입술을 벙긋거렸다. "Fxx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