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입안에 초콜릿을 하나 밀어넣었다. 속에 헤이즐넛이 든 노마지의 초콜릿은 제법 맛있었다. 이름이 뭐더라, Ferrero-Rocher? 부르기는 제법 귀찮지만 맛있으면 됐다. 당신에게 아예 12개가 들어있는 상자째로 줄 정도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정해진 몫의 초콜릿을 집었다.
그리고 손안에서 터지는 감각에 제발 초콜릿 사이에 숨겨두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눈을 감았다.
새로운 공을 터뜨렸는데도 날개가 그대로인걸 보니 같은게 걸렸나보다. 등에 앙증맞게 달린 날개를 몇번 파닥여보고 어깨를 으쓱인다. 이대로 방에 돌아갔다간 리치의 장난감이 될게 뻔하니 산책이나 좀더 해야겠다.
그 뒤 느긋한 걸음으로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천천히 걷다보니 니플러들 몇이 우당탕탕 구르며 그녀의 앞으로 지나간다. 여러마리가 하나의 귀금속을 가지고 경쟁이 붙었나보다. 서로 삐익대며 수풀 사이로 사라지는 걸 보며 작게 웃었다. 장난만 안 치면 그럭저럭 귀여운데 말이지.
"ㅇ, 윽!"
그 중 한마리였는지 다른데서 튀어나왔는지, 작은 니플러 한마리가 그녀의 등으로 뛰어들었다. 작지만 제법 선명하게 부딪히는 바람에 몸이 앞으로 휘청 꺾였다. 화려하게 넘어지진 않고 비틀거리며 바닥을 닿는대로 짚었는데, 꾸욱 눌리는 느낌과 함께 익숙한 그 소리가.
들려오는 대답은 생각하기에 따라 무관심해보였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무관심하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떻게 반응했더라. 눈을 깜빡이면서 생각해보던 단태는 이윽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었다. 잘 아는 사이가 아닌데. 그런 걸로 하자- 라는 내용의 의미는 그런 것 아닐까. 숲을 바라보는 자신에게 닿는 시선이 느껴졌다. 단태는 샐쭉 눈을 가늘게 뜨고 숲 안쪽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선만 움직여서 펠리체를 흘끗 바라봤다.
"켕길 짓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 달링?"
웃음기 한점 머무르지 않는 눈으로 펠리체를 바라보면서 단태가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특유의 낯간지럽기 짝이 없는 호칭까지 섞어서 재잘재잘 떠들며 그와 똑같은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주제에 말이다. 게다가 학원에는 그날처럼 다이빙을 할 절벽도 없으니까. 펠리체의 말에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는 단태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거랑 비슷해." 목걸이를 만지던 단태는 손을 떼어내며 불성실한 웃음소리를 낄낄 터트렸다.
펠리체가 하는 말은 단태에게는 꽤 의외의 것이라, 눈썹 한쪽을 치켜올렸다가 내리며 반응을 보였다.태생과는 상관없는 본능이라는 말까지 듣고 나서야, 단태가 하! 하고 짧게 숨을 내뱉듯이 웃어버렸다. 아. 이게 잘못된 게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단태의 암적색 눈동자가 흘끗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 나는 모르겠지만 네가 들으면 꽤 좋아할만한 반응이지 않나.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걸. 보통 그 나이대의 여자애들은 다르게 생각하잖아? 좀더 말랑하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반짝이는 금색 눈을 바라보는 암적색 눈동자가 섬찟하게 어둡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문득 단태는 그 모든 습격에서 언제부터인가 백궁의 남학생과 붙어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이걸 묻자니, 자신과 펠리체와의 사이가 친근하지 않다는 걸 안다.
"알고 싶어한다면 알려주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도 그것까지 좋아해줄 사람이라서 말야.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해 알려주는 것보다 상대를 알고 싶은 마음이 더 크거든."
단태는 설렁설렁 복도를 걷고 있었다. 두번, 딱 두번 페인트 볼을 터트렸지만 그 터트리는 감각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자신해서 페인트 볼을 찾아 걸음을 옮기는 중이였다.
이 성격만 보면 왠지 청궁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청궁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쑥덕거리며 무슨 장난을 칠지 열심히 의논하는 모습을 보다가, 단태는 걸음을 다시 옮기려 했다. "엇! 조심!" 갑자기 청궁 학생들이 모여있던 곳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누군가가 소리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단태는 눈앞으로 날아오는 것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올해로 7살난 소녀는 자주 아픈 아이였다. 툭하면 아파서 외출하는게 금지에 가까웠다. 그래도, 가끔 아프지 않은 날은 밖에서 노는 것을 허락받곤 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라 소녀는 집 뒤의 숲에서 놀고 있었다. 그래봐야 집 뒷편의 정원 같은 곳에서 클로버더미를 헤집거나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으려 하거나 하는게 전부였다.
"......"
안색이 창백한 소녀는 치맛자락을 꼭 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머리를 묶은 리본이 달랑거린다. 자신은 분명 집의 뒷문이 보이는 정원에서 놀고 있었는데, 어느새 주변이 처음 보는 곳으로 바뀌어있었다. 숲은 숲인데 분위기도 나무도 전부 다른 숲이다. 게다가 저기 멀리서는 많은 사람들의 소리도 들린다. 소녀의 집은 항상 조용하고 적막한 곳이라 사람소리는 낯설 뿐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울지 않았다. 대뜸 낯선 곳에 떨어진게 무서워 울 법도 한데, 울지 않고 생기 없는 눈으로 이리저리 돌아보기만 한다. 그런 아이였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러던 중 그녀의 등에 맞았던 니플러가 정신을 차리며 삐익 울었고, 그 소리에 소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은 본적 없는 니플러였지만 어쨌든 동물이란 점에서 저항감은 덜 드는 듯 했다.
삐익? "......" ㅃ...삑...? "...삑삐이...?"
난생 처음 보는 동물의 이름을 몰라, 울음소리를 딴 이름을 불러보자 흠칫 놀란 니플러는 서둘러 수풀 사이로 숨어들어갔다. 그 빠른 움직임에 소녀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고민하듯 숲과 학교 쪽을 번갈아본다. 처음 보는 숲과 사람 소리가 들리는 학교. 둘 중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치맛자락을 놓고 작은 구둣발을 옮겼다. 사박사박 걸어간 곳은 어두컴컴한 숲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