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공지원(별명: 콩지) 성별: 여 나이: 22세 학년: 3학년 학과: 사학과 동아리: 밴드 동아리 키/몸무게: 155cm/44kg 혈액형: B형 생일: 6월 6일 가족관계: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공지혁/21세) 취미: 혼자 이어폰 꼽고 음악 감상하기, 공책에 낙서하기, 책상에 엎드려서 낮잠자기 특기: 요리
성격: 사람들에게 유난히 틱틱대는 성격. 물론 이는 절대 기분 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상대하는 게 두려워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친해지면 인상이 바뀔 정도로 장난을 치곤 하는데, 이 때문에 친한 사람과 안 친한 사람이 섞여있는 자리에선 그대로 고장나서 굳어버리는 경우가 잦다. 전형적으로 사람 많은 곳 앞에선 아무 것도 못하는 강약약강의 스타일이다. 이 밖에 살짝 자기혐오가 있으며, 이는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기인한다.
외견: 흑단발에 둥글둥글한 눈매. 나름 조그맣고 귀엽게 생긴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 천상계 외모는 아니지만, 꾸미면 꽤 인기 있을 타입이긴 하다. 그러나 평소에 최대한 눈에 안띄려는 패션을 하고 다녀서 아는 사람이 적은 편이라는 게 흠. 자세한 건 사진 참고.
과거사: 중학교 때까진 소위 일진 무리에 껴있던 여자아이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말을 함부로 하고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한 아이였다. 자신이 가난한 반찬가게 딸이라는 것이 너무나 창피하고 남들에겐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기에, 항상 잘 나가는 무리에 속해 있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욱 남들 앞에서 불량하게 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들로부터 학교 제일의 문제아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그러다 3학년 당시 아이들의 중심에 있던 한 친구와 오해가 생겨 크게 다투는 일이 일어나는데, 결국 이로 인해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 그녀는 외톨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물론 당시 그녀의 인식은 이미 더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나락에 떨어져 버린 상태였기에, 차라리 가래침을 뱉을 지언정 그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진 않았다. 그건 학교의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녀는 남은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바로 다음 해가 되자마자 도망을 치듯 멀리 전학을 가고 만다. 그렇게 이 사건은 두고두고 그녀에게 뿌리 깊숙히 트라우마로 남아, 여러 사람들의 무리에 끼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벌써 그 날로부터 몇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녀는 아직 날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래도 전보다 몇 가지 좋아진 점도 있긴 있다. 먼저 아직까지 친하게 지내는 진짜 절친한 친구 2명을 만나게 된 것과 자기 생각보다 높은 대학에 합격하게 된 것, 그리고 가족 관계가 전보다 훨씬 원만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종종 가게 일도 도우며, 전엔 하지 못했었던 맏이로서의 역할도 지금은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원수지간이었던 남동생과는 이제 툭툭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까지 발전하였다.
이름: 한 하연 성별: 남자 나이: 22 학년: 3학년 학과: 전자공학과 동아리: 밴드 동아리 키/몸무게: 178cm / 71kg 혈액형: O형 생일: 11월 17일 가족관계: 아버지, 어머니, 누나(한 주연/25세), 여동생(한 도연/18세) 취미: 친구들 불러내서 시간 보내기, 카페에 멍하니 앉아있기, 혼자 노래방가서 실컷 부르기 특기: 노래
성격: 낯을 가린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친화력이 높다. 거기에 눈치가 빨라서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빠른 시간에 파악해서 빨리 친해지는데에는 도가 터있는 수준.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신이 가진만큼 남들에게 베풀 줄도 아는 성격이다. 하지만 남에게 쓴 소리는 잘 못하고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물론 무리한 부탁이라거나 너무 잦은 부탁은 거절하긴 하지만. 남한테 안좋은 소리를 들어도 웃어넘길 정도로 대인배이기도 하지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쌓아뒀던게 한번에 터져나오는 성격.
외견: 원래는 짙은 흑발이었던 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물들여두었다. 그래서 뿌리 부분은 거뭇거뭇하게 보이긴 하지만 뿌리염색을 자주하는지라 잘 보이지는 않는다. 항상 머리는 깔끔하게 드라이해서 다니고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상을 유지하고 있다. 살짝 내려간듯한 눈매와 웃고 있는 입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갖고 있던 적대감도 사르르 녹아 없앨 수 있을 것 같고, 과에서도 꽤나 유명한 손꼽히는 미남이다. 엄청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인상과 어우러지는 얼굴 덕분에 시너지 효과가 있다나.
좋아하는 것: 맛있는 음식, 친구들, 게임. 싫어하는 것: 친한척하는 사람들, 뒷담화, 집
과거사: 대한민국에서 톱클래스는 아니지만 바로 밑이라고 하면 될만한 집안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삼남매 중에서 유일한 남자라 집안의 장남 노릇을 하고 있으며 경영권을 승계받은 아버지 밑에서 누나와 함께 어릴때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명문 중의 명문으로 소문난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전부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나왔지만 고분고분했던 누나와는 다르게 재연은 고등학생때부터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기 시작해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학인 주하대학교에 오게 되었다.
중학생때까지는 예의바른 학생이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는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해서 학교에서 손꼽히는 문제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누나와는 어릴때부터 경쟁자 구도였기 때문에 지금도 자잘자잘한 신경전을 계속해왔고 덕분에 아버지만큼이나 서로 서먹하지만 나이차이가 많이나서 애초부터 라이벌 구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여동생만큼은 굉장히 잘 대해주었다. 여동생도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보다는 자신을 챙겨주는 오빠를 좀 더 좋아하는 편. 물론 본인이 고등학생때는 여동생과 잠시 멀어지기도 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
분명 시계는 아침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이 곳은 어둡기만하다. 마치 바깥의 햇빛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그런 어둠 속에서 갑자기 작은 불빛이 생기고 우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찔하는 것과 동시에 계속해서 울려대던 소리는 이내 잠잠해진다. 그리고 잠시 뒤 끄으응하는 작은 신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살짝 보였다.
" ... 불 좀 켜줄래? "
방금 일어나서 그런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남자가 말하자 방에 불이 환하게 들어온다. 갑자기 들어온 불빛에 얼굴을 한가득 찡그리고 있었지만 이내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난 남자는 가장 먼저 암막 커튼을 걷어냈다. 아침 햇빛이 방 안 가득히 들어오고 아직도 졸음 가득한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는 핸드폰을 가져와서 가장 먼저 연락을 보낸다.
[좋은 아침]
콩지♥ 라고 저장되어있는 메신저로 연락을 보낸 하연은 그대로 침대에 뻗어버리고 싶은 욕구를 애써 물리치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 적절한 난방으로 온기가 가득한 집안이었지만 어쩐지 썰렁하단 기분을 떨쳐낼 수 없는 이곳을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첫 수업이 그렇게 늦은 시간에 있는 것은 아니라서 씻기 위해서 향하던 그의 눈 앞에 교복을 입고 등교 준비를 하는 여동생이 눈에 들어온다. 하품을 하며 가볍게 손만 흔드는 그의 모습을 부럽다는듯이 쳐다보던 여동생은 바로 학교를 가기위해 집을 나섰고 하연도 바로 씻으러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씻고나서 학교를 갈 채비를 마친 하연은 이미 일어나신 부모님들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건넨 뒤에 학교로 향했다. 방학이 쭉 이어지다가 학교를 가게되는 개강날은 몇번이고 경험했지만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학교에 도착해서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이곳저곳에서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고, 그도 하나씩 인사를 받아주면서 강의실로 향한다.
' 첫날이니까 수업은 길게 안하시겠지. '
강의실에 들어가서도 쏟아지는 인사를 하나씩 받아주고 주변에 모여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은 예상대로 금방 끝이 났고, 첫날의 수업은 아직 하나가 더 남긴했지만 그건 조금 이따가 있는 수업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공강시간이라는 것이고 아침도 안먹고 나온 하연은 당연히 배가 고플 수 밖에 없으므로 익숙하게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밥먹자 밥바밥바바바밥]
밥 같이 먹자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하나같이 같은 이유로 거절한 그에게 그 이유란 당연하게도 그의 여자친구, 지원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지금 수업중이라면 울며 겨자먹기로 친구들과 같이 가겠지만, 기왕이면 학교에서 오래 있고 싶은게 그의 마음이기도 했다.
OT라 강의를 빨리 끝내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며 하연은 아까 아침에 봤던 카톡을 다시 확인 하기 위해 핸드폰을 열었다. 자기얌이라니, 평소의 지원이라면 상상도 못할 메세지라서 단번에 누가 보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으니까 실실 웃고 있으니 하연의 친구들이 와서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웃고 있냐고 한마디씩 하고 간다. 하연이 지원과 사귄지도 어언 1년이 좀 넘어갔으니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관계를 모를리가 없었기에 그저 장난식으로 묻고 가는 것에 가까웠다.
" 하연아 개강총회 날짜 나온거 알지? " " 아, 봤어. 그날 일 없으면 갈께. " " 아 너 없으면 재미없다고~~ 꼭 와야해? "
소위 인싸라고 불리우는 하연은 이렇게 학과의 행사에는 꼭 초청받는 입장이었다. 특히나 1학기 개강총회는 신입생들을 만나는 자리라서 꽤나 중요한 행사였고 학과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하연은 그들 입장에서도 꼭 데려가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정사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연 본인은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그런 자리는 조금 불편해서 가고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엔 어떻게든 뺄 생각이었다.
' 무슨 3학년이 개총을 가. '
하하, 하고 웃으면서 넘겼지만 속으로는 똥씹은 표정을 하면서 하연은 지원의 답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수업이 빨리 끝난 자신과는 다르게 지원은 묵묵부답이었고 설마 첫시간부터 강의를 하나? 하는 생각에 하연은 지원의 단과대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교시가 끝날때쯤 되어서야 그녀의 답장을 확인한 하연은 지원의 단과대 아래에 서서 메세지를 보냈다.
나: [여기 너네 단과대 1층에 있어. 천천히 내려와.]
공강 한시간 이후에 다시 수업. 그것만 들으면 오늘 일정은 끝이었다. 그나마 첫날이라 수업을 대부분 빼주시는 교수님들 덕분에 숨통이 좀 트인다고 생각하며 그는 1층에서 지원이 내려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원이 내려오면 웃는 표정으로 다가가 모자를 푹 눌러쓴 지원의 머리를 톡톡 건드리며,
수업이 끝나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사이를 하연은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원 성격상 엘레베이터는 탈 것 같지 않으니까 계단을 통해서 내려올 것이라 생각했고 그의 예상은 적중해서 계단의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나오는 지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원의 방향은 하연과는 반대쪽이라 그는 잰걸음으로 걸어가서 그녀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얘기했다. 그러자 툴툴거리며 휙, 돌아 마주보는 지원의 얼굴을 보고선 하연은 귀엽다는듯이 웃으며 얘기했다.
" 남동생은 다 그런거라니까. 거기다가 연년생이잖아. 친구처럼 지낼법도 한데 뭐. "
그는 위로 세살, 아래로 네살 차이인 누나와 여동생이 있는지라 이렇게 친구처럼 지내는 지원을 남모르게 부러워하곤 했다. 누나와 사이가 안좋은거야 말할 필요도 없고 동생도 친구보다는 정말 여동생으로써 챙겨주고 귀여워해주는거니까. 하지만 이미 부모님께서 다 낳으셨는데 이제 와서 내 바로 아래로 한명만 더 낳아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도 그냥 그런 해프닝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 그러게~ 우리 콩지는 돼지는 아닌데 말이야. 엄청 가볍거든. "
키 차이가 꽤 나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구도가 되었기에 하연은 거리를 살짝 벌리면서 그녀의 한 손을 잡았다. 아침을 먹지 않은 그의 배에서는 조금씩 소리가 나고 있었고 얼른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생각에 지원의 손을 잡아끌다가, 아직 점심 메뉴를 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르러 지원의 눈을 마주보며 얘기했다.
" 그래서 뭐 먹고싶어? 먹고싶은거 있으면 그거 먹으러 가자. "
중간중간 지나가는 아는 얼굴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와중에서 하연의 눈은 지원을 향해있었다. 밴드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고 메인보컬의 위치에 있는만큼 하연은 자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는 경우가 잦아서 인사를 해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까 학교 어디를 가던 자신을 아는 사람이 꼭 한명씩은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해야할까.
"야, 니가 아직 걜 몰라서 그래! 나한테 하는 짓거릴 보면, 동생이 아니라 아주 황천에서 기어올라 온 사탄이 따로 없다니깐?"
온 몸에서 치가 떨린다. 물론 우리 둘 다 중학생이었을 적을 생각하면 그래도 그 열기가 한김 식긴 했다지만, 지금도 여전히 서로만 보면 못잡아 먹어 안달이다. 물론 난 언제나 피해보는 입장이고....
그래도 이렇게 연이한테 다 털어놓으니 마음이 좀 편하다. 역시 내 이런 이야기는 연이한테 밖에 할 수 없다니까. 내 절친들도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온종일 바쁜 모양이고 해서, 요즘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지금의 내게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내 남친 뿐이다.
"뭐, 그야 체중관리는 늘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우리 누구씨 인기가 좀 많아야지, 내가 방심하다 다른 여자에게 한눈 팔리면 곤란하잖아-?(키득)"
겉옷을 나부끼면서 동시에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그저 연이가 이끄는 대로 난 생각도 없이 따라 걸어갔다. 그러고보니 뭐 먹을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 즈음, 연이가 입을 열었어.
뭐 먹을까? 글쎄, 난 뭐든 상관 없는데...라고 말하면 굳이 물어 본 이유가 없으니 뭐 먹을지 잠깐 고민해 보며 걷는데, 자꾸만 말을 거는 사람이 생긴다.
당연하지만, 내가 아니라 연이에게.
이럴 때면 난 항상 작아진다. 입을 열려다가도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다시 입이 닫힌다. 그네들에게 나는 투명인간이나 다름 없다. 그저 의아하게는 생각하겠지? 연이 같은 남자에게 나 같은 사회 부적응자가 달려있다는 걸.... 평소처럼 편하게 툭툭 말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단 둘이 아니라면 말하기 조금 어색하다.
그 와중에도 연이는 오직 내게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저런 것에 한눈 팔고 금방 겁먹게 되는 내가 너무 싫다. 그게 싫은데..., 맘처럼 잘 안된다. 그래서 더욱 싫어진다.
"...나 떡볶이 먹을래."
연이와 맞잡은 손도 어느 순간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놓아버리고 말았다.
부끄러웠다. 연이한테 힐링 받고 싶다 징징댈 때는 언제고, 막상 곁에 와선 다른 사람들의 시선조차 견뎌내지 못하는 내가. 벌써 1년 째 아직까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빨리 어디든 들어가고 싶어서 가장 가까운 분식집을 골랐다. 딱히 떡볶이가 그렇게 먹고 싶은 건 아니었다.
확실히 지원이 동생이 짓궂은 편이기는 하지. 그래도 하연의 눈에는 그저 사이좋은 남매로 보일 뿐이었다. 그야 본인이 주변에서 본 남매들은 다 저런 그림이었으니까. 오히려 자신의 집이 너무 삭막한게 아닐까 싶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나마 여동생이랑은 친하게 지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모자 위로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준다. 체중관리도 열심히 한다면서 장난을 쳐오는 지원을 하연은 마냥 사랑스럽다는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 또 우리 콩지가 뿔이 났구나. '
수많은 인사들을 받아주느라 지칠법도 했지만 하연은 그들에게 옅은 미소를 지은채로 하나씩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선은 계속 지원을 향한채였지만 어느새 자신의 손을 놓아버린 지원을 보고 하연은 또 무언가 맘에 안드는게 있는가 싶어서 지원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귀면서 이런 상황이 한두번 있던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이런 행동을 하는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는 익숙해져버린터라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도 딱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 으음 ... 떡볶이보단 다른거 먹자. 나 갑자기 먹고싶은게 생겼거든? "
하연은 다시금 지원의 손을 찾아서 쥐면서 빠르게 단과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람 많은 곳은 지원에게는 쥐약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은 적어지는 대학가의 거리로 나가기 위함이었다. 손을 꼭 잡은 상태에서도 지원을 계속해서 바라보면서 오늘 본 교수님의 인상이라던가 그런 이야기들을 이어가던 하연은 좁은 길목으로 사람들이 지나오는 것을 보고서는 지원을 살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 나랑 같이 있으면 내가 지켜주니까 안심해? "
지원이 사람들과 닿지 않게 신경쓰면서 길목을 지나온 하연은 목표한 식당 앞에 다다른 것을 보고서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저기, 겨울방학에 새로 생긴 곳이래. 자취하는 애들 말 들어보니까 꽤 맛있다던데. 같이 갈까? "
적당한 가격대의 파스타 집이었다. 하지만 학교와는 거리가 조금 있어서 안쪽에 학생들은 많이 없었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아 하연은 지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싫다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니까. 싱글거리는 웃음을 보인채로 하연은 지원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민폐다. 늘 웃는 모습으로 날 받아주는 연이라도 언젠가 이런 나에게 싫증나버릴 거다. 애초에 이런 나한테 연이 같은 남자친구가 가당키나 하긴 한 걸까....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친다. 더 이상 이런 생각은 하기 싫은데, 마치 날 쳐다보는 저 눈빛들이 내게 그리 물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검은 파도가 날 삼켜오는 것 같다.
차라리 집에 돌아갈까...? 돌아가서 다 버려버리고, 그대로 이불 속에 숨어버릴까?
안다. 어차피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음을.... 그래서 더 비참하다. 도망쳐 봐야, 어차피 난 다시 돌아올 테니까. 사람 속에서 못 산다고 하면서, 결국 사람이 그리워 다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할 테니까. 그리고 다시 후회하겠지.
그 때, 방황하던 내 손을 다시 연이가 잡아 이끌었다. 그제서야 난 잠깐 집 나갔었던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는다.
"어?"
손이 붙잡힌 채 그대로 앞으로 나아간다. 멈춰 있던 주변의 풍경이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불길한 시선들도 모두 함께 뒤로 빠르게 밀려난다.
그러며 곧장 이어진 연이의 이야기를 난 듣기만 했다. 그저 별 거 아닌 일상의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점점 나는 그 이야기에 빗물로 잠겨가듯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맞장구도 치고 있었고, 어느새 피식 웃음까지 찾고 있었다.
"하-, 그래도 그쪽 교수님은 그나마 수업은 일찍 끝ㄴ...욱-!?"
생각 없이 걸어가던 날 살짝 끌어, 사람들과 부딪히려던 것을 연이가 미리 막았다. 난 어느 순간부터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참 신기하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그러고보니 아까보다 주변에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았다. 연이는 일부러 날 이런 곳까지 데려와 준 걸까? 단지, 내가 사람을 꺼려한단 이유로?
...솔직히 좀 감동이다. 1년이나 같이 있다보니, 연이는 내가 뭘 불편해하는지 눈빛만 봐도 다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티를 낸 건가 싶어 약간의 우울감 역시 들었지만, 그리 대단스러운 건 아니었다.
"...근데 울 아빠가 그러던데? 이 세상 남자들은 모두 늑대들이라고. 그래서 너가 날 지켜 줄 사람인지, 잡아 먹을 사람인지는 좀만 더 지켜보고 판단할게."
어느새 돌아와 편히 전처럼 농담치듯 이야기한다. 역시 지금의 난 연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연이가 없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러지, 뭐."
마지못해 동의하는 척, 고갤 끄덕인다.
우연일까? 사실 조용한 곳이라면 어디든 다 괜찮았는데.... 거기에 생각해보면, 매일 먹는 떡볶이보단 파스타 쪽이 더 끌리기도 하고.
하연은 연인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이것저것 얘기하며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따라오는데 힘들지 않게 적당한 속력을 유지하면서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솜씨좋게 움직이면서. 그러자 어느새 지원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느끼고 있었고 하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자신이 목표한 곳으로 갈때까지 계속해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가끔 친구들이 왜 그런 애랑 사귀냐고 할때마다 하연은 정색하며 화를 내곤 했다. 너네가 생각하는 그런 애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 그야 그의 눈에는 누구보다 예쁘고 귀여울테니까.
" 1년이나 기다렸는데 좀 더 기다려야하는거야? 그건 좀 슬픈데~. "
아버지가 해준 말이라니. 그도 그 말에 동의는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귄지 1년이나 되어가는데 좀 더 지켜본다니. 얼마나 더 지켜봄을 당해야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라 재밌다는듯 웃으면서 그저 잡고 있는 손을 좀 더 꼬옥 쥘 뿐이었다. 그렇게 파스타 집에 도착하고 익숙하게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의 테이블을 잡아서 앉는다. 대학가에 있는 파스타 집이니까 가격은 그렇게까지 비싸지는 않았고, 여차하면 본인이 내면 된다고 생각하며 하연은 반대편에 앉은 지원의 얼굴을 보고서 말했다.
" 전 수업 교수님은 괜찮았는데 다음 수업 교수님이 좀 유명하시거든. "
깐깐하시기로 말이야. 한숨을 작게 내쉬며 말하고선 메뉴판을 펴서 지원에게 건네준다. 물론 하연이 먹을 것은 정해두었으니까 지원이 먹을 것만 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먹고싶은건 다 시켜도 괜찮아, 라고 한마디 해둔 후에 종업원이 가져온 물을 따라서 그녀 앞에 놓아준다. 지원이 먹고 싶은 것을 정하면 그것과 함께 볼로녜제를 주문해놓고서 하연은 손을 뻗어서 테이블에 올려놓고서 마치 손을 달라는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 오늘 몇시에 끝나? 수업 끝나고 할 일 없으면 놀러가자. 데이트 데이트. "
생각만 해도 신난다는듯이 고개까지 흔들며 얘기하는 하연은 이렇게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숨막히는 집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여자친구를 보고 있으니 숨통이 트이는 것과 동시에 텐션이 올라가는 느낌이라서 표정은 벌써부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터져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리 장난스럽게 말 끝을 휘휘 늘어댄다. 종종 이렇게 말을 늘일 땐 괜히 틱틱 튕기고 싶어진다. 일부러 내 이런 심술을 자극하듯, 연이는 생글생글 웃어대는 것이었다.
"장인어른 말이 듣기 싫으면, 다른 데로 시집가던가-."
잔망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약간의 독설 같은 장난을 쳐본다. 다들 통통 튀는 공을 보면 무심코 바닥에 대고 튕겨보거나 아니면 벽에 두고 세게 때려보고 싶지 않던가...? 푸딩처럼 말랑말랑한 표정으로, 연이는 항상 내 그런 불평불만 가득한 가학심리를 자극해왔다. 트라우마와 과거의 지독한 그늘에 가려진 내 장난성을 말이다.
...나 근데 방금 울 아빠 보고 장인어른이라고 한 거-?
내가 친 농담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 건 그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실수 아닌 실수를, 내 남자친구가 눈치채지 못했길 속으로 빌며 그 이후론 조용히 파스타 집으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난 대체 언제쯤이 되어서야 입조심이란 걸 할 수 있는 걸까....
그 때, 연이가 전 교수와 다음 강의의 교수님이 어쩌고 저쩌고 얘기해왔다.
"어, 어? 그, 그래...? 힘내야겠네."
곧장 연이가 건넨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리고 메뉴를 고르는 척을 한다. 그러고도 한 10초 동안은 메뉴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 한 그 농담 혹시 기억하고 있진 않겠지? 괜히 메뉴판 위로 눈을 꺼내 눈치를 살피다 눈이 마주쳤다. 괜히 살폈다 싶어, 곧장 들키지 않게 눈을 꼬옥 감고 메뉴판을 확 내민 뒤 큰 소리로 아래를 복창한다.
"크림 파스타, 아니 로제...! 토마토. 아니다, 역시 크림으로 할래!"
얼버무리려는 웃음이 터진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래야하는 걸까.... 하여튼 입이 방정이지. 이렇게 주인을 곤란하게만 만드는 주둥아리 따위, 조만간 분리수거하는 날에 곱게 접어 내다 버려야겠다 남 몰래 곰곰히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 때 무심결, 연이가 손을 내미니 그대로 잡았다. 이런 상스러운 행동,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단 걸 22살이 되어서야 처음 알았다. 생각해보면, 같은 반 남자 애들 등짝 때리고서 깔깔거리고 웃던 그 개차반 돌아이 시절의 나도 남자와 손 잡을 생각은 못했던 것 같은데.... 역시 타고난 아싸가 인싸인 척 해봐야 그저 흉내내는 것에 불과했던 거지.
선뜻 권한 데이트는 구미가 당기는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아쉽게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있어, 할 일. 오늘 가게 김장하는 날이야."
심드렁한 척 이야기한다. 이 말에 불평하지 마, 연.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불평하고 싶은 건 바로 나니까.... 나도 개강날 데이트 하고 싶다고! 남친 생기고 첫 개강이란 말야! 라고 오열한다. 물론 속으로.
"왜, 아쉬워?"
괜히 쎈 척, 난 하나도 아쉬울 거 없다는 듯 물어 본다. 키득대는 내 썩소에 그 누구보다 큰 아쉬움이 담겼단 걸, 연이는 알고 있을까...?
장인어른이라, 결국 결혼할 생각이 있으시다는거군요?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채 한방 먹였다는듯이 잔망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지원을 하연은 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생각한다. 오늘은 언제쯤 자신의 실언을 눈치챌까 싶어서 모른척하고 있으니 파스타집에 들어와서야 무언가 눈치챘는지 표정의 변화가 생긴다. 아, 괴롭히고 싶다. 하연은 여기서 말을 꺼내서 지원을 괴롭힐까말까 고민을 하면서 지원에게 메뉴판을 건네준다.
" 근데 너네 교수님은 되게 별로다. 첫날부터 수업을 풀로 땡기시네. "
덕분에 수업 사이에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하연은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 수업을 전부 다 하는건 잘못된 일이 아니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암묵적인 도의라는게 있는데 그걸 싸그리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지원을 보면 싸그리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분명 아까 그 말이 생각나서 부끄러워서 저러고 있는 것이겠지. 아, 정말 메뉴판 손가락으로 쓱 내리고 보고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메뉴를 고르기를 가만히 기다리기로 한다.
" 그럼 크림이랑 볼로네졔로 부탁드려요. "
정말 귀엽다 귀여워. 저렇게 행동 하나하나가 귀여워보이는건 콩깍지가 씌인걸까. 하연은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느라 애쓰면서 종업원에게 주문을 했다. 그리고 뻗은 손을 지원이 잡아오자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깍지를 끼며 미소 짓는다. 아담한 손이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걸 보면 ... 말도 안나온다 정말로. 그의 머릿속은 금세 지원으로 가득차버린다.
" 가게 김장하는 날이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지. "
하지만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하자 조금 올라왔던 텐션이 거짓말처럼 내려간다. 물론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지원의 집이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진즉에 알고 있었고 김장을 하는 날은 온가족이 동원되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하연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저녁에 뭐한담..
" 응, 아쉬워. 오늘은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
아쉽냐고 물어보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한다. 그래도 이따 저녁에 집에 바래다줄 수는 있을테니까. 집에 일찍 들어가야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속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지만 내색하지는 않는다. 하연은 말없이 잡은 손을 꾸욱꾸욱 주무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쉰다. 다음 데이트는 언제쯤 할까 고민도 하면서. 그러다가 빠르게 나온 파스타에 잡은 손을 놓으면서 하연은 지원에게 웃으며 말했다.
" 먹자! 먹고 잠깐 걷다가 다시 수업 들으러 가면 되겠다. 오늘은 집에 바래다줄께. 데이트 못하는 대신이야. "
거절권은 없어. 딱 잘라 말하고서 포크에 한가득 면을 말아서 입안에 넣는다. 음, 가격대 치곤 맛있네.
역시! 내 편 들어주는 사람은 울 남ㅍ..., 연이 밖에 없다. 물론 띠지고 들자면 그 강의를 듣던 모든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이었겠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해 나와 같이 분노했을 뿐이다. 솔직히 구석에서 같이 강의를 들을 뿐인 내 기분이 어떻게 되든, 나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그 사람들관 아무런 상관도 없을 거기 때문에.
그리고 말야. 유일하게 피가 섞인 남동생이라는 것은 허구한 날 하늘 같은 누님에게 아침부터 금수라 놀려대질 않나, 강제로 휴대폰을 뺏어가질 않나....
한숨만 푹푹 쉬며 푸념한다.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정말 내 앞날이 걱정되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가려...."
그리곤 나와 연이가 시켰던 메뉴가 저 멀리, 슬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쉬워 하지 마, 연.... 모쏠 아싸 22년산인 나도 이렇게나 괴로운데, 참고 있잖니?
계속 아쉬워하는 연이가 내 손을 마구 주물러댄다. 그게 조금 아팠지만, 평소에 그리 내색도 안하던 연이가 실망이 큰 것 같아 포기하고 잠시 내줬다. 그리고 메뉴가 테이블 앞에 도착할 때까지, 결국 내 손은 울 연이의 손에 의해 김장 날 김치처럼 마구마구 주물러져 버리고 말았다.
아프다.... 아픈데, 남자의 손 아귀 힘이란 건 생각보다 진짜 쎄구나...하고 새삼 느낀다. 분명 중학교 때까진 남자애들과도 그럭저럭 해볼만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방금은 꼼짝도 못하겠던데...?
"아야야..., 아파 죽을 뻔했네. 근데 내 손이 그렇게나 좋았어?"
결국 다 끝나고 나서야 푸념하듯 툴툴거리며, 늦게나마 아픈 척 별 아양을 떨어댔다. 나도 내가 이런 숭한 성격의 사람인 줄은 연이를 만나고나서 처음 알았다. 하지만 어떡하겠어, 사람은 사랑하면 변한다잖아-? 종종 남동생 녀석은 이런 날 두고 양아치가 갱생해서 무저갱에서 기어나온 한 마리의 꽃뱀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자꾸만 다시 그때의 양아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샘솟구친다. 그 때, 녀석을 감히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확실히 밟아놨었어야 했는데.... 정말로 한이 크다.
그리고 오늘 하굣길에, 연이가 자신이 바래다주겠다 말한다. 이거야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매번 연이는 새삼스레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차피 내가 거절하지 않을 거란 거, 다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굳이 내 앞에서 그러는 건, 혹시 내게 자신의 남자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서지 않을까-?
그럼 여기선 적당히 연이의 꽁트에 어울려주는 게 맞는 건가? 지금까지 별 생각 안하고, 매번 그러자고 순순히 따랐는데.... 사실 그러면 안됐던 거 아닐까?
...제법 맛있는 크림 파스타를 꿀꺽 삼키며 잠시 고민하다, 결국 뭐라 말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손을 놓자 아파하는 지원의 모습을 보고 하연은 화들짝 놀라서 놓았던 손을 다시 쥐며 말했다. 이번엔 정말 손아귀에 힘 하나 넣지 않고서 살포시 감싸쥔다는 느낌으로 지원의 손을 잡은 하연은 정말 미안하다는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 그냥 너무 아쉬워서 ... 그리고 콩지 손, 만지면 좋거든. 작고 부드러워서. "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서 작게 어루만져준다. 하지만 금방 나와버린 음식에 어쩔 수 없이 잡고 있던 손을 땐 하연은 눈 앞의 지원이 음식을 먹는 것을 잠깐 기다렸다가 잘먹겠다는 말을 작게 읊조리고선 자신의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먹고 있으려니 지원이 하는 말이 들려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바라본다. 지금 무슨 말을 했냐는듯이 바라보다가 하연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 싫으면 어쩔 수 없지 ... "
갑자기 먹는 속도도 느려지고 포크가 면을 말아올리는 양도 현저하게 적어진다. 마치 정말로 실망했다는듯한 행동. 그러다가 하연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서 지원을 살짝 바라보며 말한다.
" 나랑 같이 가는게 싫어서 그래? "
물론 이게 진짜 그가 삐진거냐면 전혀 아니었다. 공지원이라는 사람과 사귄지 어언 1년이 다되어가는 한하연이라는 사람은 이미 그녀의 심리를 반쯤은 꿰뚫어보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디 가서도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는 그가 그녀의 그런 행동을 모를리가 없었다. 단지, 이렇게 행동했을때 과연 지원의 행동이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실망했다는 몸짓과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오는 목소리. 하연은 지금 자신의 연기에 너무나도 만족하고 있었다.
" 하아, 오늘 지원이랑 같이 안가면 또 집에 일찍 들어가야겠네 ... "
이건 진심에서 하는 소리였다. 하연은 자신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에 학교가 끝나면 항상 밖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가곤 했다. 자취를 시켜달라는 소리를 몇번이고 했지만 집에서는 결사 반대. 이 문제에 대해선 아버지를 이길 수가 없었기에 하연 나름대로의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그 숨막히는 집을 들어가야한다니 벌써부터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숨이 턱끝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망했다, 망했다, 망했다! 미쳤나 봐, 공지원. 어쩌자고 그런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해...!
눈이 딱 마주치고, 순간 두려움에 시선을 회피했다. 마침 식은 땀이 주륵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어쩌지? 난 이런 걸 원했던 게 아닌데.... 혹시 많이 화났나? 슬쩍 눈치를 보듯 용기내어 연이의 눈을 마주친다.
흐아...! 절대로 화났잖아, 저거! 어떡하지...!?
그렇게 어쩌지, 어쩌지! 혼자 고민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충동을 만끽하고 있을 때, 땅이 꺼지는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무서운 그 소리에 긴장한 어깨가 순간 경련하듯 움찔 떨린다.
그 놈의 입방정이 문제다. 이 정도면 입방정을 넘어, 거의 허언이라 뵈도 무방한 수준. 그 기간은 무려 1년에 달한다. 분명 아까 크게 후회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 모양인 건지-, 새삼 이 멍청함이라는 건 그리 쉽게 지워지는 특성이 아니란 걸 깨우친다. 이래서 사람은 고쳐써지지 않는다고들 말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근데 나 이제 어떡하니, 진짜.... 지금부터라도 싹싹 빌면 그 정돈 용서해주지 않을까? 장난이었다고 빌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잠시 부질 없는 희망을 품고 또 한번 휙, 연이의 눈치를 보았다.
...아아, 안될 거 같아...! 어둡잖아, 어두워도 너무 어둡잖아...! 어둠의 오라가 막 연이를 감싸 돌고 강강수월래를 돌고 있었다.
으으.... 생각해라, 공지원! 이대로 가다간 완전히 파멸이야! 끝이라고, 끝! 너 연이 없이 살 수 있어? 어?
공지원: 헿. 아니, 바로 옥상에서 뛰어내릴 건데.
그럼 생각해내란 말야...! 제발...!
...그 때, 좋은 생각이 머릿 속을 잠깐 스쳤다. 그리고 더 생각할 새도 없이, 곧장 그것을 실행으로 옮긴다.
"따, 딱히...? 난 그냥 물어본 건데? 그냥 궁금했을 뿐이거든! 그, 니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것은 바로 무지성 오리발 내밀기.... 참으로 뻔뻔하고 유치하지만, 도저히 이것 말곤 빙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소 멍청해보이긴 해도, 엎드려 비는 것보단 이게 그나마 그림이 낫다.
"감당 못할 정도로 좋아하면, 막 억지로도 하고 그러잖아.... 드라마 같은 데 보면 말야."
잠깐, 이 부분은 좀 이상한데...? 막상 말해놓고 보니, 이건 또 내가 억지로 해달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 않나?
아 정말 귀엽다, 너무너무 귀엽다.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슬쩍슬쩍 너의 얼굴을 바라볼때마다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만 더 커져간다는걸 알고 있을까. 자신이 예상한 반응과 너무 다르니까 잔뜩 당황해서 허둥지둥대는 네 얼굴을 너는 절대 모르겠지. 조금 더 연기를 계속할까 했지만 어깨까지 움찔대는 것을 보니까 진짜 당황한 것이 분명하다. 조금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는 생각을 하며 네 말에 답했다.
" 세상 어디를 가도 너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찾을 수는 없을껄? "
아까 슬퍼하던 표정이 금세 미소 짓는 얼굴로 바뀐다. 1년 정도 지나면 마음이 조금은 식는다는데 나는 그 정규분포에서도 아주 끝자락에 포함되어있는 사람이 틀림 없다. 아니, 식기는 커녕 처음 사귈때보다 더 좋아졌으니 아예 논외의 사람으로 취급될지도 모른다. 정말로 많이 당황한듯한 표정에 나는 손을 뻗어 지원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하며 대답했다.
" 그건 드라마잖아. 감당 못할 정도로 좋아한다면 그만큼 너가 날 좋아하게 만들어야하는거 아니겠어? "
억지로 해버리면 너가 싫어할께 분명한데. 반대 입장이 되어도 누군가 나를 억지로 무언가를 시킨다는 것은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가 인생의 지론인 내가 지원이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근에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걸까.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도 귀엽다.
" 나 화 안났으니까 얼른 파스타나 먹자. 따뜻할때 먹어야 맛있어. "
너무 장난을 심하게 친건가 싶기도 했지만 먼저 시작한건 지원이다. 받아친게 잘못은 아니니까. 안심하라는듯 여러번 눈을 마주치며 싱긋, 하고 웃어준 나는 앞에 놓인 파스타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으음, 맛있네 맛있어. 아 생각해보니까 사진 찍는걸 깜빡했구나. 지금이라도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핸드폰을 꺼낸다.
" 이거 찍어서 올려도 돼? "
조금 먹어서 지저분하긴 했지만 그게 좀 더 정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콩지♥ 라고 같이 써서 올렸을때의 수많은 극찬을 보고 싶기도 하고. 물론 싫다면 올리지는 않겠지만, 일단 소장은 하고 싶어서 사진은 한장 찍어서 저장해둔다. 이렇게 1학기 첫날의 추억도 하나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건 마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쎄게 얻어 맞은 것과 같은 수준의 충격이었다.
수 초 간 꿈벅꿈벅-, 그저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한다.
뭐야.... 뭐야, 이 상황.
잠만, 잠깐만! 방금 화난 거 아녔어...? 벌써 풀린 거야? 그런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갑자기 연이의 손이 내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거기에 달콤한 멘트도 살짝 한 스푼 더해 얹어서 말이다.
"...."
물론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마, 나 이거 당한 거 아냐? 마치 거미의 그물에 걸려든 먹이 마냥 버둥대며, 연이가 짓는 표정 하나에 완전 농락당한 거?
"치이-, 이미 좋아한다며.... 그것도 세상 누구보다도 날 더."
패색이 짙어오자 하늘에 대고 한탄하는 장수처럼, 그렇게 툴툴대며 입을 내밀고 옆에 있는 빨대로 찬물을 쪽 빨아 먹었다.
담엔 좀 더 신중하고 교묘하게 접근해야겠어. 왜냐하면 지금껏 연이를 그저 착하고 순한 내 남친이라고만 여겼었는데, 연애 1년차가 되어가다보니 이제 슬슬 요물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 같거든. 근데 생각해보니,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쟨 머리도 좋아서, 맘만 먹으면 조만간 날 이리저리 휘두르고 다닐 지도 모르는 일인데.... 앞으로 어쩌지....
그 때, 연이가 마침 음식 사진을 찍고 싶다 말한다.
"맘대루 해."
그러고 보니, 음식 사진 찍는 걸 깜빡했었네. 난 sns를 안해서 잘 모르겠지만, 거기엔 특유의 갬성 비슷한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옛날에 다이어리에 일기 쓰던 것과 대강 비슷한 느낌인 걸까? 솔직히 아직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다.
"근데, 연.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건 무슨 재미로 하는 거야?"
그래, 차라리 이럴 땐 한 번 더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뭐 어때! 모르는 걸 궁금해하는 건 딱히 죄가 아니다. 오히려 이건 연이랑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나의 노력인 거니까.... 이를테면, 음지의 인간이 양지로 뻗어나가기 위한 일종의 발버둥 비슷한 셈이다.
"어! 이건 딱히 몰라서 물어보는 건 아니구.... 뭐 굳이 말하자면, 호구조사 비슷한 느낌으로 물어보는 거야."
그리고 너무 자기자신이 비참해지지 않도록, 적당한 밑밥도 깔아둔다. 난 물론 22년산의 오래 숙성된 황족 아싸임에 틀림 없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 앞에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해하지?
이제 슬슬 자신의 패착을 깨달으셨겠죠 여자친구님? 역시나 내가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입술을 삐죽이며 물을 쪽 빨아들인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우리 콩지를 만난게 아닐까. 항상 나를 놀려먹으려고하는 콩지였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눈치만 잔뜩 키워버려서 그녀가 원하는대로 되게 놔두지를 않았다. 모른척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저 반응을 보고 모른척하는게 된다는게 말이나 되는건가?
" 말해 뭐해. 매일 말해줄수도 있어. "
만날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하고 귓가에 속삭여주는건 일도 아니지. 비록 내가 대부분 눈치 채는 편이라서 원하는대로 되는 법은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막 더 위에 서겠다, 그런 생각은 없었다. 연애라는건 항상 옆에 나란히 서서 같이 가는 것이지 누군가 앞장 서서 끌고가는 일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가부장적인 우리 집에서 자라면서 더욱 확고하게 드는 생각이었다.
" 그냥 너랑 나랑 오늘은 뭐했다, 하고 남기는거? 추억 남기는 용도야. "
이것 봐봐, 하면서 너에게 내 핸드폰을 보여준다. 사귀기 시작한 날부터 만나는 날마다 찍은 사진들로 이루어진 게시글들이 잔뜩 올라와있다. 데이트 간 곳의 사진이라던가 그날 같이 먹은 것들이 사소한 것들까지도 쭉 올려놓았다. 물론 남기는 이유는 추억 남기는 용도도 있었지만,
" 너가 내꺼라고 사람들한테 말 안하고도 알릴 수 있잖아? "
내가 올리는 게시물들엔 항상 네 이름이 같이 적혀있다. 이름이나 애칭이나, 아니면 손을 잡은 사진도 꼭 올려놓는 편이고. 혹여나 있을 다른 남자들이 지원이에게 접근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목적이고 다른 여자들이 나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지원이에게도 같이 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별로 취미가 없어보여서 굳이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그 때, 싱글생글한 연이의 반응을 보고 순간적으로 난 완전히 그에게 저버렸음을 직감한다. 그렇게 혀 끝으로 한 없이 쓴 패배의 맛을 느끼며, 슬쩍 탄로나버린 밑천과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담아 도도한 채 입을 쓱 닦았다.
아무래도 조만간 이 상황을 역전시킬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이대론 언제 다 잡은 어장 안 물고기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렇다고 물론 연이 널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난 지금껏 서로에게 싫증이 나 관계가 틀어진 경우를 너무나도 다양하게 봐버렸으니까. 그렇게 연이 너에게 버려지게 되는 것은, 잠깐 생각만 하더라도 등골이 확 오싹해지고 말거든.
친했던 사람에게 버림받는 끔찍한 경험은 단 한 번으로도 족해. 그건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 난 누구보다 관계에 서툴러져 버린 사람이란 걸.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도 더 이상 만들지 않고, 일부러 스스로를 작디 작은 케이지 안에 가둬버린 거잖아. 적어도 그 조그만 세계 안에서 난 버림받지 않을 테니까. 거기서 닫힌 케이지 문을 어거지로 열고 연이 니가 내밀었던 그 손을, 솔직히 첨엔 꽤나 무서워 했었는데 말야.
...근데 말야, 이럴 땐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또 인터넷에 물어봐야 하는 건가.... 이거 좀 막막한데.
"이것 봐봐."
그렇게 이런저런 아싸다운 생각들에 파묻혀 한껏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내 질문을 듣고서 불쑥 연이가 자기 폰을 내밀어왔다. 사진 속에는 참 많은 과거 우리의 행적들이 담겨 있었다. 작년 봄, 처음 사귀었을 때부터 매일매일 발자국처럼 자연스레 찍혀 간 그것들은 마치 장농 속의 일기장들처럼 두둑히 쌓여 나도 모르는 새 인터넷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건 또 언제 찍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약간의 뇌내수치감을 불러 일으키는 사진들 역시 더러 눈에 띈다. 사실 그런 건 지금이라도 지워달라 강력히 주장하고 싶지만..., 오늘은 전반적으로 말조심의 필요성에 대해 깨닳았으니 말을 아끼도록 해본다.
그나저나 사진을 보면서, 연이가 뱉은 굉장히 느끼한 멘트 같은 걸 지나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딱히 받아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적당히 넘어가도록 한다.
여기서 내 볼이 살짝 뜨거워지는 것은 기분탓이겠지.... 응. 모를 거야. 아마.
"하.... 그래, 맞아. 나 돌아가야 했었지."
생각해보니 아직 분명 오후 강의가 남아 있었다. 연이를 만나고 나서 때문인지, 완전히 긴장이 풀려버려서 뒤에 강의가 있단 것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김장도 가서 도와야한다. 모두가 설렁설렁 캠퍼스를 거닐 생각에 바쁜 개강 첫날에, 오직 나만 할 일들이 태산 같이 쌓여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입에 넣고 꾸역꾸역 씹고 있던 내 파스타가 그만 목에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잠깐 사례님이 방문하신다.
"컥-! 콜록콜록.... 으욱. 그래그래, 알았다구. 마이 연."
결국 마지막엔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가는지 모를 정도로 파스타를 곧장 다 비워내고, 마지막엔 찬물로 입을 헹궜다.
이 망할 대학교.... 내가 연이때매 참고 다녀준다, 진짜.... 아니면, 아마 진작 때려쳤을 건데.
우리 지원이가 날 놀려먹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틱틱대는 모습도 사랑스러우니까 괜찮다. 비명을 지르듯이 내 애칭을 불러주는 것을 듣고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왜에? 하고 답하고선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버린다. 그리고선 내가 지금까지 모아놓은 사진들을 올려놓은 것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물론 내 말을 못듣지는 않았을테고 그 반응으로 얼굴이 살짝 빨개지는 것도 보인다. 아마 이것까지 지적하면 부끄러워 죽으려고할테니 이번만 모른척하기로 해준다.
"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천천히 먹 .. "
입에 파스타를 꾸역꾸역 넣는 것을 보고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컵에 물을 따르고 있으니 역시나 사레가 들러서 콜록거린다. 얼른 물을 건네주고선 휴지까지 건네주고서야 내 몫의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조금 빨리 먹었어야했는데 이미 식어버려 아까보다 맛은 덜하다. 그래도 돈주고 시킨거니까 먹긴 먹어야겠지. 나도 꾸역꾸역 먹다가 그만 사레가 들러서 콜록거리며 얼른 물을 마셔버린다. 아후, 오늘은 둘 다 왜 이러는거야.
" 먹느라 기침하랴 정신 없었네. "
마지막으로 포크에 면을 말아서 한입에 넣어버리고선 티슈로 입을 닦아 마무리한다. 나도 먹다가 사레가 들려버리는 바람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천천히 먹으라고 말하면서 너가 다 먹는 것을 기다렸다가 거의 다 먹어갈때쯤 가방을 챙긴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차례. 다음 수업도 제발 빨리 끝내주기를 빌면서 테이블에 놓여있던 영수증을 가져가며 얘기했다.
" 다음 수업도 풀로 땡기시는건 아니겠지? "
이번엔 콩지의 수업도 빨리 끝나기를 바라면서 카운터에 가져가 밥값을 계산한다. 딱히 반을 달라는 말은 안하고 나중에 나한테 뭐라도 하나 사주는걸로 퉁치는 편이다. 내가 좀 더 여유가 있으니까 내가 좀 더 쓰는게 맞지. 항상 반반으로 나누면 정이 없어보이잖아. 그렇게 계산을 끝내고 가게 밖으로 나와서 콩지를 바라보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