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비랑은 속으로 투덜거립니다. 저 저, 볼 때마다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아지는 눈망울 좀 보세요.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목소리 빌리려 소리는 열심히 들을지언정 맨날 보는 사람 얼굴도 자세히 살펴 볼 생각이 없었던 비랑은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할진 모르겠지만—어쩌면 자기처럼 재능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안 친한 사람한테 친한 척 하고 속이고 그런 건 나는 못해. 그리고 난 먹여주는 쪽보단 얻어먹는 쪽이라서."
이 재미진 연극꾼에게 더 말로 끌어가면 두드려 맞겠다 싶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비랑은 항복했다는 듯 얌전히 두 손을 들어올리는 제스처를 합니다. 슬픔과 짓궂음을 오가는 표정이 얄밉다고 생각했겠지요.
선하가 그릇을 찍어 멈추자 그릇을 끌어가던 비랑의 손도 많이 느려집니다. 어딘가에 걸린 그릇, 그것도 내용물이 많아 무거운 그릇을 젓가락 끝에 전해지는 얇은 힘만으로 끌어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지라. 불쑥 얼굴이 들어왔을 땐 왁, 하고 유령 낚시 영상이라도 본 것처럼 놀랐겠네요.
"이게 내 최선의 반응이었는데, 마음에 안 들었나?"
라고 이런 상황에서 눈을 찡긋하기까지 합니다. 자기 페이스대로 끌려가지 않는 선하라는 아이를 만나, 가깝다고도 멀다고도 못할 이 관계에서 한 일은 소극적인 거절이자 소극적인 수락. 거부는 의례지만 항전은 아니죠. 당장 주고 싶지 않다면 손으로 그릇을 들어 가져가고 한 입도 안 주겠다며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랑 놀고 싶었어?"
기기긱 하고 그릇이 긁히는 소리에 비랑의 눈썹이 찌릿 올라갔다가, 평소 달고 다니는 미소의 200% 정도는 뜨거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내려오질 않습니다. 입술이 스위치를 누른듯 가볍게 치솟는 비랑의 감정엔 약간의 장난기, 그보단 조금 많은 화와 일말의 흥미로움, 팍파팍 향신료처럼 넉넉하게 친 승부욕, 그리고 즐거움과 불쾌함이 뒤섞입니다.
"미안하지만 난 순대는 안 좋아해서 되돌려주진 못하겠고... 화나는 걸 보고 싶으면, 글쎄, 튀김을 다 뺏어먹어 버리면 화날지도 모르겠다."
도발이네요. 이길 자신도 없으면서 이런 걸 해도 되는 걸까요? 비랑이 사상누각처럼 다 털릴 게 너무도 분명하지만, 아무튼 상대 측의 도발에 완전히 넘어간 비랑이 심리적 우위에 서려는(그렇게 생각하고 하진 않았겠지만) 듯하니 넘어가주도록 합시다. 그러고보니 흰 선하와 붉은 비랑이의 대립은, 떡볶이의 떡과 치즈를 떠올리게 하네요. 역시 치즈떡볶이는 비랑에게 어울리지 않나 봅니다.
쭉 끌고 가던 그릇에서 젓가락을 떼는 건 불쌍한 그릇은 그만 괴롭히고 튀김 쪽에서 승부를 보자, 라는 확실한 의사표현이었겠지요.
아랑은 약속시간보다 8분만 일찍 가기로 했다. 5분도 10분도 아닌 애매한 시간, 수박씨가 준 우산을 챙기고, 수박씨에게 줄 선물들도 챙겼다. 음, 빠진 거 없지.
학생쉼터에 들어서기 전에, 수박씨가 준 우산을 펼쳐 썼다. 실내인 건 아는데 저를 알아보기 쉬우라고 쓴 거다. 선물한 물건을 쓰고 있으면 금방 알아보겠지!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커다란 사람이 보였다. 약간 험악하고 무뚝뚝한 인상-개상이나 늑대상이 아니라면-인데 그런 건 크게 상관없었다, 어느 측면에서는 익숙하기 때문에.
그래서 아랑의 눈에는 목각 인형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사가... 조금 귀여워 보였다. 이건 수박씨의 편지가 무해하고 상냥한 영향도 있었고, 금아랑이 서툰 사람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도 있었고, 너무 능숙한 사람보단 삐걱이는 사람을 맘에 들어 하는 탓도 있을 테다.
민규가 명찰을 차고 있었다면, 금방 선배인 걸 눈치 채고선. “ 수박씨에요~? ” 라고 빵긋 웃으며 물어 봤을테고.
명찰을 차지 않았더라면,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 수박씨 맞지이? ” 라고 빵긋 웃으며 물어 봤을테지.
푸른 눈이 호의를 담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대화해 보고 싶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글로 보는 것도 좋았지만, 실제도 만나는 것도... 응, 나쁘지 않네. 이건 이거대로 좋은지도.
<2안> 민규가 뒤돌아 있는 상태고 어색한 인사를 혼자 연습해보다 들킨 경우
아랑은 약속시간보다 8분만 일찍 가기로 했다. 5분도 10분도 아닌 애매한 시간, 수박씨가 준 우산을 챙기고, 수박씨에게 줄 선물들도 챙겼다. 음, 빠진 거 없지.
학생쉼터에 들어서기 전에, 수박씨가 준 우산을 펼쳐 썼다. 실내인 건 아는데 저를 알아보기 쉬우라고 쓴 거다. 선물한 물건을 쓰고 있으면 금방 알아보겠지!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커다란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지금 쉼터에 저 사람밖에 없는데, 저 사람이 수박씨인가...? 아랑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안녕.
인사 연습하는 걸까.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사와 긴장한 듯 굳어 있는 뒷모습이... 귀엽네에. 쪼꼼보다 더 후한 평가를 주고 싶어질 정도로. 방긋 웃은 아랑이 쟈박쟈박 걸어가 우산을 잡고 있지 않은 쪽의 손을 뻗었다. 그리고 뒤돌아 서있는 사람의 힘이 들어간 손을 지나쳐 그보다 좀 더 위, 옷소매를 살짝 그러쥐고서 살짝 당겨보았을 것이다.
약간 놀라서 뒤돌아 보았다면 “ 수박씨야~? ” 라고, 별사탕같은 목소리로 당신이 누구인지 묻는 소녀의 활짝 웃는 얼굴이 보일 것이다. 뒤돌아보지 않았더라도 별사탕 같은 목소리에 담긴 웃음기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지 않을까.
//1안과 2안중에 민규주 입맛에 더 맞는 쪽으로 골라서 이으시면 됩니다요! ㅇ.< 답레는 물론 민규주 페이스에 맞게 천천히 주시면 돼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