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것까지 꾸역꾸역 찾아내고, 그걸 또 일일히 싫어할 정도로 성실한 성격은 못 되었다. 애초에 싫어했다면, 들려달라는 제안부터 하지 않았겠지. 최민규는 오히려 관심이 없었던 쪽에 더 가까웠다.
"아, 나도 대회나 콩쿨 직전인 애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대회 전의 사람에게 가르쳐달라고 찾아가봤자, 하늘은 분명 집중을 못 할 것이 분명-거절할 가능성이 높았지만-했고, 저도 마음이 불편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테다. 이러한 것을 딱 잘라서 말하는 걸 보아하니, 우선순위가 확고한 모양이었다. 잘 됐으면 좋겠네, 막연히 생각했다.
"뭐.. 그 균형은 나중 가면서 차차 맞춰지지 않을까.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말이야."
최민규 자신도 찾지 못한 균형이다. 오히려 관두고 나서 여유가 생겼다. 주머니에 있던 포스트잇에 제 전화번호를 적었다. 최근 마니또 행사였던 게 다행이었다. 수박 떡 메모지를 하늘에게 내밀었다. 전화번호 알려달라는 것보다, 이게 낫겠지.
"그.. 시간 되는 시간대에, 그.. 연락해줘."
민망한지 말을 여러 번 씹었다.
"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나도 얼마든지... 나는 바쁜 일 같은 건 없으니까 말이야. 너 편할 때 갑자기 찾아와도 돼."
>>757 홍현이라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때부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부끄러워하며 안절부절 못할거에요! >>787 잠버릇은.. 자꾸 가로로 누워서 잔다? >>806 홍현이는 몸 쓰는 거라면 영 꽝이지만 노래 실력은 최악까진 아니에요. 만약 장기자랑을 나간다면 강장제 마시고 말 없이 과학 마술쇼 같은거 할 것 같네요! 약품 섞어서 연기 만들고 그런 식으로요!
이 무슨 모순덩어리의 말인가. 용감하면서 겁쟁이라니. 근데 또 이게 어감이 나쁘지 않은게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모순적인 배열만큼 모순적인 느낌을 주는 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말이 뭔가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웃음을 머금었다.
" 그럼 사하 왕자님인걸로. "
그는 사하는 어딘가 왕자라는 호칭이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째서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어물쩡거리면서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연호의 주관적인 느낌이었다.
" 공주님은 백마가 필요 없으니까? "
그의 머릿속에서 공주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딱히 공주나 왕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무나 하기 힘든 발상을 저리 마구 내뱉을 수 있는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냥 생각이 없는거거나.
" 저로 충분하시다면, 기꺼이. "
사하가 내민 손을 살포시 잡고서, 마찬가지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끌어와 다리를 팔로 받치며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려했다. 원래 백마란 모름지기 등에 타야하겠지만, 그녀가 연호의 등에 올라타면 역으로 보기 안좋을것 같았다. 그래서 대신에 그는 왕자님을 공주님 안기로 드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럼 괜찮아요. 간혹 있잖아요? 좋아하지도 않는데 분위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좋아하는 척 하고 맞춰주는 그런 거. 저는 그런 건 싫어요. 그러니까 선배는 아닐 것 같지만, 혹시나 그런 건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솔직하게 싫다고 해도 신경 안 쓰니까요. 오히려 그게 편해요."
오히려 괜히 신경써주는데 왜 너는 그러는거냐. 이런 말을 듣는 것이 하늘로서는 더 싫었다. 신경 써달라고 한 적도 없고, 좋아하는 척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자신에게 댓가를 요구하는 행위보다 차라리 싫은 것은 싫다고 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이야기를 하며 하늘은 고개를 두번 위아래로 끄덕였다.
아무런 말 없이 민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만 듣기 싫어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소를 잃지 않고 고개를 한번씩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받아든 하늘은 번호를 눈으로 훑었다. 뒤이어 스마트폰을 꺼낸 후에 그 번호로 전화를 건 후, 2번 소리가 울릴 쯤에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마 그의 핸드폰에도 하늘의 번호가 저장되었을 것이다.
"제 번호에요. 마찬가지로 볼일이 있거나 한다면 전화해주세요. 바쁘지 않으면 받을테니까요."
태연하게 이야기를 한 후, 스마트폰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으며 하늘은 뒤이어 들려오는 말에 다시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러다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선배 고 3이잖아요. 고3이면 아예 안 바쁠 순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닐까요? 그러니가 찾아가기 전에 전화할게요. 아. 정말로 바쁜게 없다면 죄송해요. 그래도 역시 아예 신경 안 쓸 순 없다고 생각해서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하늘은 괜히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함이라도 느꼈는지 고개를 피아노로 홱 돌렸다. 그리고 아무런 의미 없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울리면서 제 목을 긁적일 뿐이었다.
아메리카노라. 갑자기 생각난거지만 얼마전 마니또가 생각났다. 분명 그는 '아메리카노' 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지. 다만 커피가 아니라 칵테일이었다는게 다른 점일까.
" 재밌는 말이네. 나중에 한번 만들어주라. "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어떻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미 그는 생각하는걸 그만두었다.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니 사하가 굳이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을테다.
" 그런거야? 탈것은 거의 타본적이 없어서... "
하지만 말은 타본적이 있더랬다. 그렇게 오래된 기억도 아니었다. 다만 말은 그를 등에 태우면 어딘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있지만 또한 포식자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소년 덕에 말 본인도 모르게 위축된것일테지만, 연호는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타는걸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덤으로 다른 동물들도.
" 차 사면 나 태워줘! "
연호를 옆자리에 태우면 암울한 미래밖에 안보인다. 분명 창문으로 머리를 내미는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겠지. 차 안쪽으로 끌어들이는데 고생 깨나 할것이다.
" 걱정마. 내가 평판이 좀 좋아서. "
그게 사하의 걱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진 잘 모르겠다. 자기 평판이 좋으니까 자기가 안고가는 사하의 평판도 좋아질거라는 의미인걸까? 아무튼 그는 사하가 불편하지 않도록 가볍게 자세를 고쳐서 안고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 선택지가 있어. 이대로 느긋하게 올라가는거랑.... "
첫번째 선택지는 무난했다.
" 고속 코스랑.... "
학교의 벽을 살짝 보았다. 아마 손을 안쓰고 올라가기 편한지 확인하려는 눈빛 같다. 조금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