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모르는 오늘도 어김없이 평화로웠다. 연인, 가족, 친구, 혹은 혼자서 찾아온 손님들이 자리잡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은은한 커피향이 카페를 가득 채워 그 분위기를 돋구고 있었다. 화려하기보단 은은하면서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편안함을 강조했는지 녹색 벽지가 눈을 편안하게 하기 딱 좋았고 들려오는 음악 역시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적절하게 배합되어있는 전용 유니폼을 입고 있는 윤재는 카운터에 앉아 주문을 받고 있었다. 꽤 무심해보이는 그였으나, 카페에서 일할때만큼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손님들을 맞이하는데 시큰둥하거나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을 순 없지 않겠는가.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윤재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보이는 얼굴에 순간 멈칫하며 윤재는 카운터로 걸어오는 예미를 가만히 바라봤다.
허나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일단 손님으로 들어온 그녀를 맞이하며 윤재는 환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사랑이 가득한 카페 아모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문하시겠어요?"
평소의 그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넌 누구세요?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재의 목소리와 입가는 정말로 밝고 상쾌한 느낌 그 자체였다.
잠시간 멈칫하는 윤재를 보며 의외의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였다. 노린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상황으로 의외의 인물을 만날 줄은 그 누가 알았으랴. 물론 그가 생각이 나서 카페를 들른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가 있는 카페는 아니어도 괜찮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속으로 키득키득 웃으면서도 그녀는 겉으로는 태연한 신색을 해보이며 윤재를 바라보았다.
'풉.'
속으로 웃음을 터트리고야 만다. 확실히 일할때의 그와 평소의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갭이 컸다. 확실히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갭이 있을줄은 그녀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계속 즐길수는 없기에 그녀는 천천히 메뉴판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메리카노에 바닐라 시럽 한 스푼 추가해주시고, 더불어서 허니브레드도 하나 추가할께요. 혹시 여기서 공부할껀데 계속 메뉴는 추가해서 시켜도 될까요?"
덤으로 '메뉴배달할 때마다 러브러브 빅토리야 엣뀽!'까지 추가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으로 접어둔 것은 비밀이었다.
윤재의 입장에서 지금 이 분위기는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가 꺼려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카페 일을 돕고 있을 때 동급생이 찾아온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윤재는 손님으로서 그녀를 맞이하면서 포스기에 메뉴를 입력했다.
"아메리카노에 바닐라 시럽 한 스푼. 그리고 허니브레드 하나 맞으실까요? 물론 메뉴는 중간중간에 추가하셔도 괜찮아요. 가격은..."
포스기에 뜬 가격을 그대로 읽으면서 윤재는 결제를 부탁한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카드건, 현금이건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었다. 뒤이어 윤재는 살며시 시선을 뒤쪽으로 아주 살짝 돌렸다가 다시 앞을 바라본 후, 진동기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진동이 울리면 찾으러 와주세요! 우리 아모르에서 평화로운 시간 즐겨주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해맑게 웃는 것은 틀림없이 영업용 스마일이었다. 가게를 운영하기에, 서비스업을 하기에 지어야만 하는 그것. 하지만 거기서도 어색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는 꽤 이 일을 도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거 처음 쓰네? 라고 가볍게 중얼 거리면서 그녀는 자신의 스마트폰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윤재에게 내밀었다. 실제로도 현금을 더 많이 선호하는 그녀로서는 항상 현금을 쓰는게 더 익숙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문의 양도 양이었고, 공교롭게도 오늘은 현금을 많이 들고오지 않았던 탓이 큰 걸지도 몰랐다.
"여기 카드 받으시고, 카드는 조금있다가 메뉴랑 같이 가져다 주세요."
해맑은 미소 적응안되네, 그렇게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그걸 면전에 대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조용히 그가 건넨 진동기를 받으면서 가볍게 적어둔 쪽지를 던지고는 윙크를 해보인다. 아마 쪽지를 펴본다면 내용을 알 수 있겠지.
[내가 살테니까, 시간 여유 있으면 먹을거 사가지고 와. 물론 네가 먹을꺼.]
그러고서 그녀는 천천히 카페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제법 넓찍한 자리를 골라 앉았지만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당장 법전에 사법고시 문제집만 하더라도 충분히 공간차지가 되었기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기다리는 동안 몇문제정도는 풀수 있겠지, 그녀는 가볍게 생각하며 천천히 문제집을 풀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조금 있다가 메뉴랑 같이 가져다달라는 것은 음료와 허니브레드를 가져다달라는 것인가? 진동기를 줬으니까 자신이 가지러 와야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윤재는 순간 의문을 가졌다. 허나 이후 그녀가 던진 쪽지의 내용을 확인하며 윤재는 예미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뭘 사준다는거야. 여기 우리 집인데. 애초에 지금 일하고 있는 거 뻔히 보이면서."
"어라. 친구가 놀러왔니?"
"아. 어머니."
뒤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던 윤재의 어머니 역시 쪽지를 본 것일까? 호기심을 가지며 그녀는 윤재에게 다가와 괜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윤재는 살며시 눈동자를 옆으로 굴리면서 그냥 같은 반 아이일 뿐이라고 해명하듯 이야기했다. 허나 어디 그게 통하는 분위기던가. 윤재의 어머니는 윤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친구가 놀러왔으면 일 쉬어도 되니까 가서 쉬다가 와. 알았지?"
"아.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아들이 없어도 카페 하나 돌아가는데는 아무 지장 없어. 다른 알바생도 있잖니? 엄마하고 아빠는 괜찮으니까 이럴 때 놀다와. 응?"
어서 놀다오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의 말에 윤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이 상태에선 카운터에 있겠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 뻔했기에 그냥 그 말을 받아들이며, 윤재는 잠시 뒤로 돌아 커피를 준비했다. 아무리 그래도, 주문을 받았으니 그것만은 확실하게 할 생각인듯 보였다.
약 7분 정도 후. 진동기는 울리지 않았다. 그 대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녀가 주문한 것과, 자신이 먹을 라떼와 치즈케이크가 담겨있는 트레이를 들고 윤재가 발걸음을 옮겼고 곧 그녀의 자리를 발견하며 그 트레이를 아래로 내려놓았다. 뒤이어 그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카드 여기있어. 어머니가 친구가 찾아왔다고 이번만은 서비스 해준다고 하더라. ...시험 공부하러 온거야?"
문제를 한 10문제 가량 풀어나갔을 때 즈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이대로 대화 하는 것은 무례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는 가볍게 법전을 접고 문제지를 한 구석으로 밀어놓은 다음에야 트레이를 내려놓을 자리가 생겼고, 잠시간 허니브레드 위에 놓여진 크림을 얇게 펴 바른 후 한입 입안에 넣으며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확실히 실력 좋구나, 빈말로라도 자주 여기 와야겠는걸.
"아이고, 신세 안지려고 일부러 카드 결제하려 한건데. 나중에 부모님께 어려우면 사무소로 찾아오라고 말씀드려줘."
그녀의 지갑에서 명함이 하나 튀어 나왔다. 진하루 법률 사무소, 무죄 판결부터 수많은 일화들을 남긴, 한때는 방송에서까지 회자되었던 유명 사무소였다. 사무소장은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각종 법률 상담을 도맡고 있다고 하던가.
"우리 아버지가 소장이니까, 절대로 홀대는 하지 않을껄."
홀대하면 그 홀대한 변호사가 아버지한테 된통 혼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그녀가 천천히 커피를 들이킨다. 부드러운 커피향에 달콤한 바닐라향이 은은하개 퍼져 마치 헤이즐넛을 한잔 들이키는 감각을 준다.
"그런 쪽지를 보내면 싫어도 눈에 띄잖아. 바로 알아보더라. 친구가 온 거냐고 말이야. 덕분에 나도 오늘은 일 돕지 말고 여기서 놀라고 보내졌다고."
무심한 목소리를 내며 윤재는 자신의 몫으로 가져온 라떼 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 머금었다. 평소보다 향이 진한 것이 오늘은 잘 끓여졌다고 생각하며 절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잔으로 가려져 있으니 예미의 눈에 그 미소가 비칠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잔을 내려놓고 포크를 들어 치즈케이크를 한 입 크기로 자른 후에 입에 쏙 밀어넣으며 윤재는 그 부드러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 우리 부모님 소유 건물이라서 크게 일이 있진 않을 것 같지만, 일단 참고할게. 고마워."
명함을 확실하게 받아들며 윤재는 그 명함을 눈으로 힐끗 확인한 후, 지갑 속에 집어넣었다. 홀대는 하지 않는다는 말에 서비스 비슷한 것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며 윤재는 그녀가 커피를 먹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그녀가 잔을 내려놓을때쯤 살며시 물었다.
"맛 괜찮아? 일단 내가 끓인건데. 내가 카운터에 있을땐 커피는 내가 하거든. 일단 네 것은 내가 주문을 받았으니 내가 끓이긴 했는데."
별 관심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나 시선은 힐끗힐끗 그녀를 향해 있었다. 참으로 속이 훤히 보이는 그 모습은 피식 웃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어차피 들키더라도 금방 해명가능한 이야기기도 하고, 자기처럼 수수한(?) 여자아이라면 반대쪽에서 거절하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재차 허니브레드 한 조각을 다시 포크로 잘라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겉은 에어컨 때문에 좀 차가워 졌지만, 안쪽은 따뜻한 소스와 잘 익은 자체 열기 덕에 따끈하고 폭신했다. 그 이질적인 감각이 맛을 더해줘서 오히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커피, 나쁘지 않아. 오히려 괜찮은 편."
이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줘도 괜찮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알기 쉽다는 듯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도 그렇지만 밖이랑 여기랑 갭이 매우 컸다. 자신도 그건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윤재처럼 그 갭이 엄청나지는 않았다. 특히 아까전에 그 영업용 스마일이 너무나 충격적인건 안 비밀.
"그리고,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더라. 진짜루."
실제로 잘 나가던 건물주도 자신들 사무소에 찾아와 상담을 받는걸 보면, 결국에는 어느순간 마음의 준비가 안된채 문제를 맞이하게 되는 걸지도 몰랐다.
"나쁘지 않다는 쪽이야? 좀 더 연마해서 좋다라는 평을 들어야겠는걸. 그래도 카페 아들인데 말이야."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운지 윤재는 나름 아쉬운 톤을 내면서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어디가 부족한 것일까. 물론 그녀의 표현법의 차이일지도 모르나, 분명히 부족한 점은 있겠거니 생각을 하며, 나중에 방으로 올라가게 되면 따로 끓여봐야겠다고 윤재는 다짐했다. 그런 생각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커피잔을 내려놓았고 치즈 케이크를 한 입 크기로 자른 후, 윤재는 예미의 접시에 살며시 올려줬다.
"먹어봐. 이것도 되게 부드러워. 이건 어머니가 만들어. 사실 이거 말고 디저트류는 모두 어머니 담당이거든."
입에 맞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며 윤재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보고 있는 여성, 즉 자신의 어머니를 힐끗 바라봤다. 일이 바빠서 아무래도 이쪽은 전혀 보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윤재 역시 더 크게 행동을 취하거나 말을 하진 않고 다시 예미를 바라봤다.
"그건 그렇긴 하네. 아. 그러고 보니 TV 봤어? 로봇들이 다 뉴스로 보도되더라. 어쩌면 조만간에 인터뷰 하러 오는건 아닐까 모르겠어."
전날 밤, 암흑 전사와 싸웠던 로봇들의 모습이 뉴스로 뜬 것을 떠올리며 윤재는 괜히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어쩌면 이제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은 다 끝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윤재는 예미에게 넌지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