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안쪽을, 붕대로 가려진 문양을 드러내기 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웃기도 하고 장난스럽게 굴기도 했다. 그 이상으로 표현을 하려면 미성년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말에 눈을 흘기며 역시 변태, 라고 대꾸하거나,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정한 말을 하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기도 하고. 곱게 개어지는 담요를 시선으로 쫒기도 하며 여유가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일그러진 문양을 그의 앞에 드러낸 후엔 참을 수 없는 불안에 자신의 팔을 움켜쥐어야했다. 스스로 그것을 흠집이라 말한 만큼, 결코 보기 좋지 않은 흔적이 생겨버린 것에 그가 뭐라고 할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샤오가 했던 말도 그녀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타인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그가, 이곳에 있는 것이 유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그녀를 대하는 것도 유희가 아닐까. 유희로나마 곁에 두었던 것에 흠집이 나면 가차없이 버리는 거 아닐까.
그가 끼워준 반지를 보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려 해도 한번 무너진 정신은 쉬이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혼자 생각을 거듭한다면 더욱 부정적으로 파고들어갈 뿐이지. 그래서 윤이 이 방에 온 것을 보았을 때, 그녀는 생각했다. 차라리, 보여줘버리자. 무슨 말을 듣든 어떤 반응이 돌아오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만. 적어도 이 심란한 기분에 매듭은 지을 수 있겠지...
"이럴 때만 진지한 건.. 반칙이에요. 선배."
상의를 탈의한 채 팔로 몸을 감싼 그녀는 불안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곤 조심스레 그의 안색을 살폈다. 무슨 말이라도 나오길 기다리기엔 초조함이 그녀의 기분을 떠밀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굳은 듯 가만히 있다가 윤이 손을 뻗어 문양에 닿을 때에만 살짝 떨었다. 아픈 건지 간지러운건지 모를 소리가 떨림과 함께 나왔다. 이윽고 흥미롭다는 듯이 말한 윤이 씩 웃자, 깨물던 입술을 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무슨 말을 할까 했는데 귀엽다고 할 줄은 몰랐네요."
설마하니 그렇게 말할 줄이야, 라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 다시 작게 한숨을 내쉰다. 정말,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이다. 뒤늦게나마 움켜쥔 팔도 놓고 두 손을 맞대 가볍게 움직이면서 그녀가 겪은 일을 얘기한다.
이런게 생겨있었지. 말끝을 흐리며 제 손으로 문양을 쓸어내린다. 피는 이미 멎었고 멍은 시간이 지나면 빠지겠지만 이 흔적은 아마 육신이 쇠할 때까지 그녀와 함께할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손을 대는 김에 문양을 다시금 지그시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의 차림이 어떤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말없이 눈을 깜빡이며 어떤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윤을 빤히 본다 싶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장난기 한스푼 정도 넣은 듯한 웃음이었다.
"저, 선배가 이거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선배가 한 말들 들으니까 괜한 걱정을 했다 싶네요. 제 기준이지만, 고맙기도 하구."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더니 몸을 살짝 들고 움직여 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문양을 내놓은 차림 그대로 말이다. 바로 앞까지 다가가 그의 품에 안기려고 하며 나긋하게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