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양이라고 어렵게 대답한 홍현은 잠시 얼어붙어있었다. 그나마 미안하다고 가예 선배가 말하자 별일 없이 넘어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현은 웬만하면 양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약을 섞어놓고 분류하지도 않아 가끔가다 페로몬을 뿜어 위험에 노출되긴 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일단 본인은 양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어.. 억제제는.. 하루에 랜덤으로 2개씩 뽑아서 먹고 있어요. 무..물론 정리해 놓으면 좋겠지만 전에도 한번 그랬다가 호되게 당했던 일이 있어서 그.. 그냥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죠.. 아.. 아직 남은 알약 양은 많이 남아서 오히려 문제이지만요."
지금도 변함이 없는 당신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당연하게 나올만한 말일까? 그녀는 그런 당신의 말이 사랑스럽고 감사하면서도 안타깝기도 했다. 그것이 단순한 죄책감인지는 알수 없지만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것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그저 막무가내로 '그동안 모자랐던만큼 잘 대해주어야겠다.'가 아닌 '조금이라도 서로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쪽에 가까웠을런지도 모른다.
일단 자신부터 과하다 싶으면 갑자기 튕겨나가는 고양이같은 성격이니까, 어찌보면 이전보다도 더 고양이같아진 자신을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조금은 걱정이었다.
"그런가요? 그럼... 저 또한, 그대야가 무리하지 않도록 바보스러운짓도 골라서 해야겠는걸요?
...아, 그건 무리한다기보단, 부담스러워하려나요? 후후후..."
이젠 예전처럼 무심하고 딱딱한 사람도 아니니까, 오히려 장난끼가 늘었다면 늘었지 없어지진 않았으니까. 당신이 지금껏 본적 없던 어리광을 부린 것처럼, 그녀 역시 조금은 엉뚱한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도 당신이 만족하고, 새로움을 느끼고, 행복해할수 있다면... 얼마든지 코미디언이 될 수 있었다. 그게 지금껏 자신이 무대에 올라있던 이유였으니까,
그저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그만큼 당신의 유혹하는듯한 부드러운 목소리, 다독이듯 뒷머리를 쓸어내리는 감촉에 끌려들어가는것 같았다. 이대로 더 빠져든다면 위험할거라는 두려움, 그러면서도 그것을 계속 톡톡 건드리려는 욕망, 무엇보다 그 사랑스러움이 견딜수 없어 당신이 잠깐 고민하든듯하다가도 자신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귓가에 속삭이자마자 당신에게 똑같이 돌려주듯 입을 맞추면서도 살짝 깨물어보였다.
그것 또한 자신의 본능이라는듯 한참을 옴질거리다가도 뾱,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이 떨어지자 당신의 뺨에는 붉어진 홍조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새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을 맞추어 한참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당신의 머리 위쪽으로 손을 가져다대려 하더니 몇번 톡톡 건드리고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
마치 그것에 열중하듯 살짝 찌푸려진 미간과 머리 위를 집중하는 눈, 옹졸해진 입까지 하지만 그것 또한 그녀만의 애정을 담은 행동이었다.
" 슬혜가 부담스러울리가 없잖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슬혜는 편하게 대해주면 되는거니까. "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슬혜에게 시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런 걱정은 집어넣어도 좋다는 듯 상냥한 대답을 돌려준다. 슬혜의 행동이 어떤 것이든 부담스러울리가 없었다. 지금도 슬혜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눈으로 담아두고 있을 정도니까. 그저 맘 편하게 슬혜가 자신을 대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라볼 뿐이었다.
" 하핫..간지러.. "
자신을 따라하듯 볼에 입을 맞춰오는 슬혜에게 화답하듯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던 시아는 이어진 오물거림에 조금 놀란 듯 눈이 커진다. 눈이 커지고 찾아오는 것은 부끄러움, 얼굴이 붉어지고 슬혜의 오물거림이 주는 감각이 점점 커져갈수록 시아의 숨소라도 흐트러져간다.
" 흐앗..? "
그렇게 얼마나 볼을 내주었을까, 뽁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진 그자리에는 슬혜가 자신의 것이라는 듯 마킹을 해넣은 듯한 입술 자국이 남아있었다. 뽁 하고 떨어지는 순간 귀여운 소리를 낸 시아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슬혜를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그 눈에 담긴 감정은 분명 행복함과 고양감이었다.
그렇게 눈을 마주 하던 슬혜가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거기에 집중하는 표정으로 바뀌어간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연신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고, 집중한 듯 찌푸려진 미간과 옹졸해진 입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왠지.. 왠지.. 관심을 내 머리카락에 뺐긴 것 같아.. "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길 몇초, 작게 중얼거린 시아가 끄응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일으키더니 옹졸해진 슬혜의 입술에 쪽하고 짧디 짧은 입맞춤을 하곤 포옥 슬혜의 교복 상의를 자그마한 두손으로 웅켜잡아, 슬혜의 목덜미와 근처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부비적댄다.
" 머리를 쓰다듬는건 좋지만 너무 거기에만 집중하지.말고, 나도 봐줘.. "
투정을 부리듯 부비적대며 중얼거린 시아는 귀까지 분홍빛으로 물들인 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파묻는다. 처음으로 슬혜에게 질투의 감정을 표현해본 시아였다. 여전히 슬혜의 옷깃은 자그마한 두손으로 움켜쥐고 있었고, 부끄러움에.흔들리는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의 모습은 마치 첫 연애를 시작한 새내기 커플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처음이라는 사실은 틀린 것이 아닐지도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