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하지 말라는 말은 없군. 내가... 3멀티라... 미안해...!!
>>12 문하가 하늘이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 하늘이에게 직접적으로 부럽다고 할지도 몰라. 조만간 독백으로 쓸 예정이지만, 문하에게 늑대 능력은 마냥 플러스가 아니라 종종 심각한 패널티가 되기도 하는 부분이고 문하가 거기에 아주 시달리고 있기에... 감정의 흐름이라니 그냥 버림받은 유기견일 뿐입니다 아이구 (굽신)
선하의 시선이 하늘의 손가락을 뒤따라간다. 제 손가락으로는 따라하지 못할, 그 유려한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태도였다. 슬그머니 손가락을 움직여 바로 아래 음을 두어번친다. 그러고는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원하는게 무엇인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무시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럼 걱정한 걸로 칠게. 나 걱정받는 거 좋아하거든."
지 좋을대로 해석하는 것에는 아주 도가 텄다. 선하는 앞에 맥락과 뉘앙스를 뚝 자르고 걱정한게 맞다는 결론을 냈다.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사고 과정이었다. "그럼 난 네 걱정도 받고, 재미있는 구경도 하게 되니까 일석이조네?" 농담이랍시고 한 말에 저 혼자 하하 웃는다. 확실히 엉뚱한 구석이 있어보인다.
"그러면 원래 치려던 곡은 뭐였는데? 그것도 열심히 들어줄게."
선하는 피아노 위판에 팔 한짝을 걸치며 말했다. 벌레 하나 못 잡게 생긴 얼굴을 하고서는 비스틈히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깨나 불량하다. 절 돌아보는 하늘의 움직임을 선하는 놓치지 않는다. 잠시 손톱에 머물던 시야가 올라가 하늘을 똑바로본다. 눈이 잠시 마주친 것을 발단으로 웃음을 작게 터뜨렸다.
"나는 특기생이라 크게 바뀐 건 없어. 대입 준비도 남들만큼 팍팍하지 않고."
최저 요건을 맞춘다느니, 대회에 좀 더 힘쓴다느니 작년에 비해 부쩍 바빠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선하 입장에서는 피곤해졌다기보다는 귀찮아졌다는게 더 옳은 표현이었다. 선하를 피로하게 만드는 건 잦은 능력 사용에 있었으나, 선하는 그걸 쏙 빼놓고 말을 이어나갔다. 구렁이 담 넘듯 넘겨버린 터라 퍽 자연스럽게 들렸을 것이다.
"아직 봄이잖아. 체력도 좋은 편이라 아직은 버틸만 하더라. 너무 걱정하지마. 다들 잘 버텨낼거야. 너도 그럴거고."
제 기억으로는 저뿐아니라 주변 학생들도 다들 심적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6월 모의고사도 치루기 전이고, 따뜻한 봄볕에는 사람을 느슨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래 음을 두 번 치는 것에 하늘은 작게 소리없이 웃었다. 뒤이어 그 음에 이어지듯 피아노 곡 한 마디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며 그 마무리를 지었다. 고요한 바람을 연주하듯, 고요한 분위기가 살며시 피아노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 멜로디가 스스로도 마음에 드는지 머릿속으로 방금 어떻게 연주했는지 음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하늘은 두어번 머리를 끄덕였다.
"원래 치려던 곡은 없어요. 그냥 가장 먼저 떠오른 곡을 연주했을 것 같거든요. 어쩌면 지금이라면, 벚꽃이 떨어지는 분위기를 연주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미 벚꽃은 다 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벚꽃."
물론 벚꽃과 연관된 곡 역시 수가 많았으니, 정확히 뭘 연주했을 것이라고 장담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하늘은 선배에게 연주한 곡이 원래 치려던 곡이었던 것 같다고 가볍게 말을 이어보이면서 작게 소리없이 웃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결국 가장 먼저 떠오른 곡이 바로 그 곡이었으니까.
특기생이라는 말에 작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하늘은 말 없이 선하의 눈을 바라봤다. 어쩌면 엄청난 선배를 만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하늘은 저도 모르게 또 한 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도 특기생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서 말이에요. 애초에 동아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을 뿐이고, 그렇다고 학교의 이름으로 어디 나간 것도 아니어서요. 자세한건 좀 더 찾아봐야 알겠지만..."
거기서 말이 잠시 끊어졌다. 애초에 그 요강들이 자신과 상관이 있을지. 자신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 이상의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며 하늘은 머릿속의 '그것'을 지워없앴다.
"그렇다면 지금 선배의 그 말 한번 믿어볼게요. 그 다들에 선배도 물론 포함되어있는거겠죠?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모를까. 이름도 어떤 이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응원 정도는 할게요. 그 이상은 잘 모르겠지만."
피아노 연주를 들어준 답례라는 명목을 살짝 붙이며 하늘은 그렇게 말을 마무리지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면서. 괜찮을까요? 정도의 확인문이 이후 살짝 덧붙여졌다.
>>69 하늘이는 오너피셜로도 멋진 아이는 아니기 때문에 그 계약은 부당한 부정계약이 분명해! 나는 그런 계약에는 싸인하지 않아! 사실 그냥 천재도 아니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노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하는 그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서 만든 것 뿐인지라. 그게 전부다!
당신의 말에 경아는 작게 웃는다. 아니, 준다면 감사히 먹어야지. 장난기가 깃든 목소리로 답한다. 당신의 말마따나 당사자의 용인이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나.
이윽고 케이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단 것을 좋아하는 경아였지만, 그렇다 하여 무작정 달기만 한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꾸덕한 초콜릿 케이크는 경아의 취향에 꼭 알맞았다. 여기에 우유가 있었다면 정말로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당신이 말이 들린다. 경아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푸르른 숲과도 같은 눈이 올곧게 당신을 향한다. 자신에게는 털어놓아도 좋다는 듯 온화하다.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생각이 많아진다. 당장 작은 동아리 하나를 이끄는 일도 쉽지 않다. 하물며 제각각 자신의 길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에 학생을 대표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 싶어. 경아는 한참을 고민하며 말을 고르다 이야기한다. 특유의 조근조근하고 차분한 목소리다.
"...같이 있는 시간만이라도 네가 편히 있다 갔으면 좋겠어.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라곤 그런 것 뿐이니까."
말을 마치곤 순하게 웃어보인다. 경아는 늘 투명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진심을 그대로 내비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그 투명한 호의는 지금 오롯이 당신을 향해 쏟아진다. 그래, 쏟아진다는 말이 어울린다. 마치 피할 수 없는 비처럼.
경아는 당신이 먹는 모습을 보며 저도 포크를 들었다. 작게 한 조각을 떼어내어 먹는다. 달달한 것 앞에서 한껏 풀어지고 마는 것은 정말로, 불가항력이다. 케이크의 단 맛을 만끽하는 경아는 그제서야 어른스러움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헤실 웃으며 맛있다...하고 중얼거리는 모습도 그렇다.
도 경아 의 연성용 단문은 "애써 사랑한다는 말 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shindanmaker #연성을_위한_단문 https://kr.shindanmaker.com/702848 그리고 난데없이 진단에 뼈를 맞아버린 경아...아무래도, 저 말을 하면서도 옅게 미소짓고 있을 것 같아요.
경아의 푸른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티 하나 없이 맑은 눈이란 저런걸 말하는걸까. 어릴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저 눈빛은 바뀌지 않았다는게 참으로 놀랍다. 분위기나 성격 같은 것들은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지만 저 눈만큼은 여전하다. 누구든 저런 눈빛 앞에서는 자신의 본심을 모두 털어놓지 않을까. 그 눈빛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분위기는 정말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있었지만-.
" 우리 집도 이만큼 편할 수는 없을껄. "
자취방은 그냥 정말 잠만 잔다는 수준으로 쓰고 있으니까. 평일에는 학교에 갔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들어가면 열한시쯤 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은 하루의 1/3 정도 뿐이 안되었다. 정말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를 보내면서 쌓여가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여기서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입으로 들어가는 케이크를 보고 있으니 어느새 분위기가 풀려서 헤실거리는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어릴때는 딱 저런 웃음이었나.
" 마실거라도 사올껄 그랬나봐. "
매점에서 우유라도 사서 올라올껄. 하지만 그랬으면 떨어지는 책을 잡아주지는 못했겠지. 이러나저러나 아쉬움만 남을 뿐이라서 나는 다시 한조각을 입에 넣는다. 이 초콜릿 케이크는 꾸덕한 것이 달달함뿐만 아니라 초콜릿 특유의 쌉싸름함까지 잘 녹아있어서 정말 맛있었다. 꽤 비싼 제품이 아닐까. 선물을 준 사람에게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바라본다.
" 어릴땐 진짜 자주 붙어다녔는데. 어릴때 이 근처에 있는 웬만한 곳들은 다 가봤던 것 같아. "
그때도 산들고등학교가 있었던가. 아마 명문고니까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들이 여기에 무슨 학교가 있고 그런게 뭐가 중요할까. 그냥 눈 앞에 있는 길을 따라 전진하면서 주변에 있는 신비롭고 흥미로운 것들을 보면서 왁자지껄 떠는게 전부지.
" 좋았는데. "
지금이랑은 너무나도 다른 삶이었어. 잦아들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하면서 그녀를 바라본다. 나는 그때가 미칠듯이 그리운데 너도 그럴까?
선하는 곧바로 이어지는 하늘의 연주에 다시 한 번 다른 음을 쳐볼까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아냈다. 한 두번이야 재미있지 세번째부터는 뇌절이다. "잘하네." 선하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칭찬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아부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었다. 가끔 거짓말을 새처럼 지져기고는 하지만 지금은 순수한 감상이었다. 단순히 노래를 들었을때에는 막연히 잘한다 정도의 감상이 이런식으로 직접 경험했을때 새롭게 다가왔다.
"흐음, 그래? 아쉽더라. 벚꽃. 다 져버렸잖아."
벚꽃이 한창 피어났을때에는 소원을 빈다던가하는 이유로 학교가 시끌벅적 했던 것 같은데, 비가 온 후 죄다 져버렸다. 다들 소강 상태에 접어버린듯 다시 조용해졌다. 철 지난 이야깃거리를 다시 꺼내본다. "너도 소원을 빌었니?" 별 기대 않고 물은 질문이었다. 선하는 소원을 빌지 않았다. 선하는 터무니 없는 소원 빌기에는 흥미를 잃은지 오래다.
"...난 그냥 하라는 대로 하거든. 대회나, 연습이나 그런거. 그런 식으로 감탄할 거리는 아니야."
선하가 어깨를 으쓱인다. 수영이 싫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 비루먹을 짐승 머리는 만들어진 체계나 규칙에 무지했다. 어디에 나가서 뭘 해야 장래에 도움이 되고, 최소한 이정도 성적은 받아와야 대학에 갈 수 있고... 머리에 거울이라도 박은 듯 제대로 들어먹지를 못했다. 선하는 그냥 수영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마치 교육받은 경주마와도 같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눈치껏 그말을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경주마 취급이 싫지도 않았다.
"나?"
선하는 의외의 포인트에서 눈을 크게 떴다. 하늘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단어를 하나하나 이해하고, 그 말에 담긴 뉘앙스를 파악하고... 이윽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선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만지작거렸다. 입술을 이로 슬쩍 물고는 고개를 한 번 털어낸다. 하, 결국 웃음을 터뜨린다. "상냥하기는."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그 말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양선하야. 3학년 1반. 기왕이면 내 이름을 아는 사람한테 응원을 받고 싶어서 말이야. 그리고, 날 응원하는 사람의 이름 정도는 알고 싶고. 친구 이름은 뭐야?"
소원을 빌었냐는 물음에 하늘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자신이 정말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소원은 누군가에게 빌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진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의 힘만으로 이뤄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소원을 빌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자면, 저도 그냥 건반을 쳐서 음을 연결하는 작업의 연속일 뿐인걸요. 선배에게는 아닐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감탄거리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렇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약한 반박을 보였다. 물론 그는 그녀가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허나 대회, 연습. 이런 것으로 보아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실기가 중요한 무언가. 자신처럼 음악일지, 아니면 체육? 그것도 아니면 요리? 어느 쪽인진 알 수 없으나 특기생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은 추측을 잠시 멈췄다.
"2학년 1반, 강하늘이라고 해요. 선하 선배란 말이죠? 다른 학년이고, 자주 볼 순 없겠지만 그래도 후배 하나로서 마음속으로 응원할게요."
꼭 좋은 대학 가기에요. 그렇게 장난스럽게 덧붙이며 하늘은 가볍게 두 손을 탈탈 털었다. 다시 몸을 돌려 피아노를 제대로 바라보며 두 손을 움직여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주한 후에, 빠르게 역으로 친 후 하늘은 다시 두 손을 들어올렸다.
"선배는 무슨 특기생이에요? 그냥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답하기 꺼려진다면 얘기 안해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패치를 안 붙인다고 해도, 그냥 감정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게 전부잖아요. 물론 그런 행동들이 증후군 보유자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긴 하지만, 증후군 그 자체가 사람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못 들었는데." "늑대 증후군자에게 패치가 배급되지 않는 건 언제나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번 케이스는 그 특성상 상황의 심각성이 더 커. 신체강화 계통의 케이스이긴 한데, 근육이나 골조직 같은 게 활성화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중추신경이 과활성화되는 케이스거든." "중추신경이 과활성화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뉴런을 통과하는 전기신호들의 처리속도와 처리량이 비정상적으로 폭증해서, 시간이 훨씬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온 세상이 슬로우모션 비디오가 되는 거야." "어, 그러면, 지금까지 이 학생은.. 집에 마련해둔 지하실에 자기를 묶어놓고 버텼다고 했잖아요. 약 이틀 정도의 만월 기간 동안." "그렇지." "그리고 만월 기간 동안에는 자신의 늑대 증후군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고 하셨죠." "그래.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면, 그 학생이 지하실에서 느꼈을 체감 시간은 이틀보다 더 길었을 수도 있다는......?" "네가 생각한 게 맞아. 잘 유추했어." "얼마나 길게 느꼈대요...?"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때마다 다르지만 보통 체감시간상으로는 두 달 정도래." "그런, 그건, 잠깐만요... 지금까지 이 학생한테는 초등학교 때부터 행정상 누락사항 때문에 패치가 지급되지 않았잖아요. 그러면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매달마다......?"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지. 고등학교 1학년 여름즈음 해서 어떤 양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어서, 약 7~8개월 동안은 충분한 케어를 받았다는 모양이지만... 그 관계가 작년 말에 끝났고, 그 외에는 딱히 다른 양과 충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단서가 없으니까. 그 때 이후로 보름달이 뜰 때마다 이 친구는 체감시간상 두 달 정도에 육박하는 독방형을 정기적으로 받았다는 거야."
서류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과 멀리 떨어져있는 한 주택의 지하실에서, 하얀 머리 소년은 지하실 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창고로 쓰였었던 것 같은 지하실의 풍경을 그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는 갈증을 고스란히 느껴가면서. 이틀 동안 채워지지 않는 기아를 참아가면서. 혼자서 어두운 지하실 안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뎌가면서. 그것을 매 달마다 두 달씩... ...고독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을걸?"
소년은 무릎을 쭈그리고 앉아, 주먹만한 사슬마디를 쥐고 들어올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기관에서 이 특이 케이스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거고, 우리가 그 학생을 케어할 필요가 있다는 거야. 패치가 제대로 지급되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정신적 피해가 남아있지는 않은지. 돌발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등등."
손이 머리에 닿자 눈을 꼭 감는 게 유순해 보여. 지금은 무서운 늑대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강아지 같다. 조금 더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는데,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빨리 떼는 게 좋겠지.
별 것 아냐. 덧붙이지만, 그 말이 별 것 아닌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살짝 눈치 챘다구. 여전히 검은 채로 죽어있지만, 네가 조금은 더 익숙해졌다고 말하는 것 같은 문하의 눈을 보며 방긋 미소 지었다.
“ 답례를 바라고 한 건 아닌데에, 보답하려구~? ”
애교 있는 말투로 재잘대며 평소와 같은 얼굴로 빵긋 웃는다. 정말로 답례를 바라고 챙겨준 건 아니니까. 그냥 아무도 유인물을 전해주지 않는 게 신경이 쓰여서 그때부터 챙기기 시작한 거다. 아랑은 조금 전에 문하의 바르고 남은 밴드와 연고도 보스턴백의 근처에 놓아두었다. 이것도 챙겨야지. 하야.
“ 난 잘 알아, 과자. ”
신제품이 나오는 족족 사먹어 보니까, 뭐가 맛있고 뭐가 맛없는지 잘 알지이. 추천... 아랑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잘 모르면 일단 이거 저거 먹여봐야 하나...?
“ 잠깐 기다려 줄래? ”
아랑은 간식 가방에서 이런 저런 작은 과자들을 꺼내와 문하의 책상 빈 공간에 늘어놓았다. 미니쉘 다크베리맛이랑, 오트밀 미니 바이트랑, 청포도 사탕이랑.. 최신 과자랑 스테디 셀러가 이리 저리 섞인다. 흠, 포장할 게 있나? 은근 보부상 타입이라 필요한 건 다 있는 가방에서, 접힌 손수건을 꺼낸다. 그것을 펼치더니 과자들과 사탕을 넣어 그럴싸하게 포장했다. 파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묶여진 리본의 형태가 귀여워 만족했다. 아랑은 문하에게 포장된 것을 선물처럼 내민다.
“ 이거 받아, 다 추천하는 거야~ ”
<2안> 손이 머리에 닿자 눈을 꼭 감는 게 유순해 보여. 지금은 무서운 늑대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강아지 같다. 조금 더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는데,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빨리 떼는 게 좋겠지.
별 것 아냐. 덧붙이지만, 그 말이 별 것 아닌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살짝 눈치 챘다구. 여전히 검은 채로 죽어있지만, 네가 조금은 더 익숙해졌다고 말하는 것 같은 문하의 눈을 보며 방긋 미소 지었다.
“ 답례를 바라고 한 건 아닌데에, 보답하려구~? ”
애교 있는 말투로 재잘대며 평소와 같은 얼굴로 빵긋 웃는다. 정말로 답례를 바라고 챙겨준 건 아니니까. 그냥 아무도 유인물을 전해주지 않는 게 신경이 쓰여서 그때부터 챙기기 시작한 거다. 아랑은 조금 전에 문하의 바르고 남은 밴드와 연고도 보스턴백의 근처에 놓아두었다. 이것도 챙겨야지. 하야.
“ 난 잘 알아, 과자. ”
신제품이 나오는 족족 사먹어 보니까, 뭐가 맛있고 뭐가 맛없는지 잘 알지이. 추천... 아랑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잘 모르면 일단 이거 저거 먹여봐야 하나...?
이번엔 동요네. 그럼 답장은 서양권의 동요로 하자. 금아랑은 가장 유명한 노래 중에 하나인 반짝 반짝 작은 별의 가사를 프린트로 뽑았다. 그렇다, 약간은 철저히 숨기자고 생각한 아랑의 – who – 쪽지는 프린트 된 내용을 적당한 크기의 쪽지에 붙여 선물과 함께 비랑의 책상에 놓아두었던 것이다.
세 번째 선물로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이었지만, 예쁜 노랫 소리가 담긴 usb를 선물 받고서 아랑은 도저히 답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았으니, 정성이 담긴 선물로 되돌려 주자. 그리하여 아랑은 가장 자신 있는 디저트를 구웠다. 애플파이. 엄마가 좋아해서 가장 많이 구워본 디저트야.
*
그렇게 마니또 역할을 수행하고 아랑에게 작은 고민이 생긴 것이다. who는 미스테리어스하고 신비한 느낌(...) 이 살짝 드는데, 날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실망시키는 게 걱정이 되지만 너무 기다리게 하기도 좀 그래. 아랑은 매일 조금씩이라는 기분으로 용기를 적립했다. 마니또가 끝난 지 일주일이 되는 시점의 쉬는 시간에 비랑의 책상에 그립톡 하나를 올려두며 “Hello, Little Star?” 방긋 웃는 얼굴로 별사탕 같은 인사를 건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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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진짜... 비랑이가 시 적어놓은 줄 알았슴다.. (쭈글) 야생화 가사라고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ㅎㅁㅎ 가장 큰 마니또 힌트는 별사탕이었어요. 제가 돌리는 일상에서 종종 아랑이 목소리를 별사탕 같다고 묘사하거든요! 사실... 비랑이랑 이벤트 레스 주고 받으면서 깜짝 상자 열어보는 것처럼 놀랐답니다! 항상... 생각도 못한 답변이 왔거든요 ㅎㅁㅎ 사실.. 쫌 눈치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눈치 못 채신 거 같아서 기뻐요! >:3 감사해요!
난 오히려 수박씨가 매번 내 취향에 맞는 선물을 해줘서 신기하단 거야. 조금만 기쁜 거야~? 조금보다 더 많이 기뻐해줘도 좋은데~ (*´꒳`*)
그래서 우산도 선물해 준거야? 내일 비 온다면 수박씨가 준 우산을 쓸게! 그렇구나, 수박씨 덕에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 오늘 자기 전에 마셔볼게~
수박씨 덕에 마니또 기간 동안 매일매일 즐거웠어! 상냥한 수박씨 기분도 조금 따뜻해졌다면 그건 기쁜 일이지.
p.s. 꼼꼼히 골라본 거지만, 전부 다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 p.s. 커플 핸드크림이란 어감도, 더블 핸드크림이란 어감도 귀여워서 난 맘에 들어! 이걸로 둘이 하나 세트란 거지? (*・ω・)ω<*)
와, 수박씨도 커플 아이템같단 생각을 쪼꼼 했나봐. 하지만 뒤에 덧붙여준 더블 핸드크림도 어감이 귀여워서 맘에 들었다. 어떡하지 수박씨, 무해하게 상냥한 느낌인데다 귀엽기까지 하네에... 아랑은 약간의 곤란함을 느꼈다. 문장 너머로도 무해한 상냥함과 귀여움이 느껴지는데, 실제로 만나면 대체 어떤 느낌을 받게 되는 거지...? 요정님이라는 느낌까지 받는 거 아니야...?
그러나 그건 만나봐야 알 게 되는 사실일테니, 미리 짐작하진 말자. 아랑은 오늘분의 선물(수박씨가 선물해줬던 것과 같은 핸드크림을 새로 사서 포장했다.) 위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교문 아래에 놓아두었다. 수박씨과 선물을 놓아둔 곳과 같은 위치다.
응, 만나는 금요일이 기대 되네.
아랑은 수박씨를 만나서 직접 줄 선물은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뭐로 하지? 마음 같아선 머리핀을 주고 싶은데, 그건 좀 호불호가 갈리는 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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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한테 주고 싶은 그립톡이 있는데 그건 민규랑 만나는 일상에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ㅇ.< 민규(주)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민규는 아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까요...? (알겠지...?) 마니또가 된 후로 물어물어 2-1반 찾아가서 몰래 슬쩍 아랑이 얼굴 봤을 것 같은데... (또 금명한이 될 것 같다..) 한번만 보고 갔을지 여러 번 보고 갔을지 모르겠는 것입니다.. <:3 (궁금) 마니또 기간 동안 아랑이와 아랑주를 즐겁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민규주 ㅎㅁㅎ!
아랑은 마니또로 들떠 있는 학교를 보다가 정말 우연히, 보통 이런 행사 때 주최 측의 최고 권위자는 행사의 대상에서 빠지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회장이란 이유로 마니또에서 빠지는 건 좀... 좀 그런데. 선생님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학생들의 많은 일을 돌봐주는 사람인데 – 가끔 땡땡이도 친다고 들었지만, 그건 그 사람 나름의 완급조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 회장이란 이유로 마니또 선물을 못 받는 건 좀 그래.
우연히라도 이미 한 번 떠올라버린 생각이고, 이미 쓰여 버린 신경이다. 그래서 아랑은 회장에게 줄 마니또 선물을 준비했다. 원래 이건 익명으로 받는 게 좋으니까. 나인 게 티가 안 나는 게 좋겠지. 아랑은 최대한 정중한 문투로 글을 시작했다.
<익명의 K가 온지구 회장님께.
마니또로 들떠 있는 학교를 보다가 문득 회장이란 이유로 마니또에서 빠져 있지 않은지 아주 조금 걱정이 들었습니다.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회장님은 인기 많아 보이니까요.) 항상 힘내란 말은 당연히 하지 않겠지만... 이따금 도토리...>
나 왜 도토리라고 적었지? 거기서 멈칫한 아랑이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털었다. 다람쥐 같이 구는 게 익숙하고, 그런 취급을 받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있는데. 한... 대학생쯤 되면 버려야 할 습관이지.
금아랑은 다시 처음부터 글을 적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정중한 글투로 완성이 되었다. 음, 이제 오빠한테 가져가서 글씨를 옮겨 적어달라고 해야 할까? 하다가 학생회장이 모든 학생의 글씨체를 알 것 같지는 않아서 관두었다. 마니또 선물이 최소 3개니까 거기서 하나 더해 4개쯤 준비하면 되겠지.
*
새벽같이 일어나 가장 일찍 3-1의 교실 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온지구’ 라는 이름을 찾아서 사물한 안에 차곡차곡 선물을 넣어두었다.
+ 중일담은 뭔가 이상해서 전일담으로 ㅎㅁㅎ.... 가장 큰 힌트는 익명의 “K” 라고 생각했는데, 지구주 답레 보니까 초콜릿(아랑이 페로몬향) 묻은 빼빼로도 힌트였나..? >:ㅁ 싶었던 거예요 ㅋㅋㅋㅋ 최대한 숨긴다고 했는데, 힌트는 익명의 K 딱 하나만 뿌려보았습니다. 음, 지구가 마니또 선물 많이 받아서 흐뭇하더라고요. 항상 감사합니다, 캡틴! ㅇ.<
++전일&후일담 레스는 위키에 올리진 말아주세요... 왜냐면 기력 다한 아랑주가 너무 힘들어서 맞춤법 검사기 못 돌렸어요... (흑흑) 그리고 너무 이벤트 뇌절해서 부끄러워요.... ㅇ<-< (이벤트 300% 즐겨버린자의 말로...)
둘 다 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니 퍽퍽하게 굴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선하는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듯 금세 심드렁한 얼굴을 했다. 이 주제에 관심 없음을 노골적으로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칭찬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무례한 사람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늘. 이름 예쁘다."
일차적으로 떠오른 감상을 뱉는다. 선하는 잠시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듯 싶더니 기대어 있던 몸을 바로 섰다. 선하를 둘러싼 공기는 여전히 가벼웠다. 선하가 느릿하게 덧붙였다. "응원은 고맙게 생각할게. 대학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 기분은 좋아졌네. 너도 잘 해봐. 대학이든, 대회든 뭐든." 헤 벌려진 입이 옆으로 찢어진다.
선하의 시선이 잠시 하늘을 향한다. 지금껏 한 곡 쳤나? 내가 너무 말을 많이 걸었을지도 모르지. 평소였다면 신경쓰지 않을 걱정이었다. 한결 풀어진 마음이 선하를 너그럽게 만든다. "계속 쳐도 좋아." 선하는 느릿한 걸음걸이로 자리로 돌아갔다. 관객석에 자리잡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문하가 새슬을 오롯이 바라보고 있을 때. 새슬도 마찬가지로 문하를 마주했다. 그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 따위는 이미 거먼 그늘에 잠겨 보이지 않게 된 지 오래였으나, 비추이고 있다는 것만은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눈동자에 소년이 똑같이 비추이고 있다는 것도. 오가는 시선에는 쓸쓸함과 퍽 비슷한 것들이 담겨 있어서, 괜히 작은 숨마저도 죽여야 할 것 같았다. 사부작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던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소년이었다. 갈 수 있겠어? 나직한 물음. 새슬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말갛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듯. 꾸며낸 것을 내세우는 것은 오래 전부터 특기였다.
“…그러자.”
분명히 새슬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마땅히 떨어져야만 하는 발걸음을 붙잡고 늘어지는, 가슴 한 켠에 들어찬 무거운 존재를. 하지만 둘 중에 누군가는 먼저 종결을 고해야만 한다. 잔인하게도. 잠시 주춤하던 새슬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슬 섞인 밤 공기가 찼지만, 제 몸을 두른 것들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온기를 소중히 새기듯 품으면서. 느릿한 걸음이 딱 처마 아래까지 왔을 때, 새슬이 몸을 돌려 문하를 향했다. 있잖아.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옷도 돌려 줘야 하니까. 그치. 그것은 차라리 발악이요, 작은 불씨를 향한 처절한 발버둥침이었다. 그리고, 문하에게 건넨다기보다 오히려 스스로를 향해 거는 주문같은 것에 가깝기도 했다. 얼어 죽기 직전 잠깐 온기를 맛본 이는 무서울 정도로 다시 그것을 원하게 만드는 법. 그 집착에 가까운 것을 최대한 누르고, 난도질해서, 아주 조그맣고 사소한 바람처럼 보이게 만들어 내어놓은 것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까? 진짜로? 어쩐지 계속해서 생각을 거듭할수록 눈을 마주치는 게 힘들어져서, 새슬의 시선이 천천히 두 사람의 발치로 떨어졌다.
이름이 예쁘다는 말에 하늘은 특별히 입을 하지 않으나 기분은 좋은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아래로 내렸다. 적어도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물론 특별히 무슨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으면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괜히 이 분위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은지 아무런 말 없이 침묵을 지키던 하늘은 제대로 자리를 잡아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인기척이 멀어지고 작은 발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바라보지 않았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계속 쳐도 좋다는 말과 수영 특기생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 후에야 하늘은 닫은 입을 다시 열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겠네요. 운동 쪽은 잘 모르지만, 뭔가 이것저것 상당히 할 것이 많다는 이미지는 있거든요. 트레이닝이라던가, 체력 관리라던가 그런 것들."
대단하다는 말은 이쯤에서 끝을 맺자는 말에 맞춰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뒤이어 나온 것은 그것들을 제외하고서 느낀 감상이었다. 수영이라는 것이 솔직히 쉬운 운동은 아니었기에. 당장 자신은 그저 자유형 조금 하는 정도였고 그나마 그것도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니라 동네 수영장에서 가볍게 놀 정도의 실력이었기에 괜히 웃음이 작게 터져나왔다.
아무튼 곡을 치기로 하며 하늘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면 이번엔 무슨 곡을 연주해볼까? 첫번째는 그녀를 위한 곡이었다. 허나, 지금 여기서 또 그녀를 위한 곡을 연주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한 곡 정도 더 연주해도 좋겠지만, 지금 이건 그녀를 위한 피아노 콘서트 장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엔 자신이 연주하고 싶은 곡을 연주하기로 마음 먹으며 하늘은 눈을 감았다.
손 끝에서 연주하는 곡은 마찬가지로 이미 있는 곡을 연주하는 것에 가까웠다. 지금처럼 한가하고 나른한, 하지만 그러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를 손 끝에서 포인트를 주어 연주하며 하늘은 이어 음 사이에 가겹게 휘파람을 불어 화음을 넣었다. 크게 어긋나는 일 없이 조화를 이뤄 또 하나의 음을 섞어내며 하늘은 그야말로 피아노 곡 그 자체에 집중했다. 마지막 한 음까지 어긋나는 일 없이, 휘파람을 살며시 끊어낸 후 하늘은 손을 가볍게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이상은 쉬러 온 선배의 휴식을 너무 방해하게 될 것 같네요. 그러니 또 듣고 싶다면, 언젠가 방과 후에 피아노 음악이 들리면 찾아와주세요. 물론 안 찾아와도 상관없지만요."
베시시 웃어보이는 당신은 그저 당연한 일상적인 말, 하고자 하는 말을 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어째선진 몰라도 그녀는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사함을 느꼈다. 감사 또한 당신이 심어준 감정이었으니, 그렇다는건 당신의 말 또한 그녀를 향한 마음이라는 의미였으니 어느쪽이든 기분 좋게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겠지만요...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감정받이처럼 굴지 말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법이니까요."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의지는 하되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 함께 감정을 나누되 그것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하는, 어쩌면 그게 진정한 사람을 사귀는 법이고, 사랑을 만드는 법 아닐까... 그녀는 지나가는 생각 그대로를 흘려보냈다. 당신은 그녀가 생각한만큼 여리고 순하면서도 당당하면서도 어른스러웠다. 어찌보면 자신과는 정 반대였을까, 그녀는 스스로를 어른스럽다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대야, 그걸로도 저는 충분히 미소지으면서 안아드릴수 있으니까요."
한 점 흔들림 없이 자신을 마주하는 당신의 모습은 역시나 사랑스러우면서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저 마음을 알아준다면 충분하다는 상냥한 말에도, 그만 혹해버려서 당신을 있는 힘껏 끌어안으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진 못한듯 그저 웃어보일 뿐이었다.
"...어라...? 그런것 치고는 그대야, 몸이 조금 떨리는것 같지 않나요? 아, 맞다. 이건 겁을 먹은게 아니라...
부끄러운 건가요? 후후후..."
분명 겁먹지 않겠다고, 망설이지 않겠다고 하는 당신이었지만 그저 귀를 매만지는 손길에도 금방 발갛게 달아오른 표정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당황한 시선이 갈피를 못잡는 모습에도, 벌써부터 귀까지 물들어버린 것을 보면서도 그녀는 마치 호기심을 가지는 고양이마냥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대야는 확실히 행복해하고 있다는 뜻이니 다행이네요."
조금은 부끄러움이 가라앉은듯 하면서도 옅은 미소와 함께,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확실하게 하는 당신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야면서도 발그스름한 복숭아처럼... 당신의 얼굴이 복숭아 같다고 생각한 순간 무의식적으로 몸을 낮추어 서로의 입술을 포개다가도 아프지 않을만큼만 당신의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그녀는
마치 다른사람인양 조금 더 앳된 톤, 붉게 물든 뺨, 그러면서도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당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난 이런 스레를 뛰면 꼭 애니화 떡밥이라던가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되지! 그런고로 이 BITE가 일상물로 된다면 하늘이는 어느 정도 비율이 되나요? 다갓님?
.dice 1 5. = 1 1.아마도 주인공급 매편 등장 보장 2.매편 등장은 아니더라도 정말 자주 나오는 주인공 옆의 누군가 느낌 3.그냥 관련 에피소드가 있으면 얼굴을 보이는 정도 4.지나가는 배경중에.. 아. 그러니까 저기 7편에서 5분 부분에 2초 정도 있다가 사라져. 출연 끝이야 5.2기를 기약하세요 고갱님
손이 떨어지자, 까만 눈동자가 잠깐 아랑의 눈 쪽으로 힐끗 쏠렸다가 다시 아랑에게로 되돌아온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이 속모르는 새하얀 친구가 불쾌해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평소와도 같은 감정 없는 조용한 무표정이 딱히 어떤 빛을 띈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아랑이 평소와 같은 얼굴대로 웃어주듯이, 문하도 이게 평소대로의 얼굴이겠지. 아랑의 얼굴보다 훨씬 정나미떨어진다는 게 문제지만.
"같은 맥락이야. 지금까지 네가 날 챙겨준 거랑."
하면서 문하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아랑이 붙여준 밴드투성이가 된 얼굴을 쓸어보았다. -그게 조금 낯설었다. 얼굴에 느껴지는 이질감이라던가. 손끝에 밴드가 만져지는 감각이라던가. 거기에 담긴 순전한 호의라던가 하는 것들. 자신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자신에게서 영영 멀어져버리고 말았다 생각했던 것들.
상냥한 호의로 내밀어지는 손이, (비록 문하는 아랑이 양인 것을 모르고 있지만) 늑대와 양의 관계를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건네어지는 그것이 꽤 기꺼워서. 문하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얼굴의 힘을 풀고 있었다. 무표정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평소의 삭막해있던 느낌이 조금 옅어지는 것이다. 아랑이 건네어주는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보스턴 백 안에 챙겨넣으며, 문하는 꽤나 홀가분해진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사하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그래.> 수긍하는 말까지 더 해서. 굳이 반응 안 하고 넘어가도 되는데, 격렬히 부정한다. 이걸 성실하다고 해도 되나? 곰곰이 생각하다 맘대로 <화연호: 성실함> 하고 꼬리표를 붙인다.
근데 너 괴롭힌 애는 너한테도 혼나고 나한테도 혼나는 거니. …그 방법 제법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시는 너 못 괴롭히게 해줄게. 눈앞에서 초등학생 때 쓴 일기 읽어주는 정도면 꽤 잔인한 방법이겠지. 생각한 사하가 히죽 웃었다. 사람 들들 볶는 일에 자신있는 표정이었다.
"나 괴롭힌 애 데려가면 혼내줘?"
<어떻게 혼내주게?> 덧붙여 묻는다. 제가 생각한 방법은 확실하게 괴로운 방법인데, 연호는 무슨 방법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런 건 머리를 모을 수록 악독해지니까. 나 한 번쯤 아주 못 되게 굴어보고 싶었어. 씩 웃던 사하가 시야에 들어오는 노랑에 눈을 깜빡인다. 개나리 아니고 비타민C. <줄까?> 하는 물음에 거절 모르는 사람처럼 공손히 양손을 내민다. 연호에게 꼬리표가 하나 더 붙는다. <착함>.
"근데 난 줄 게 없네. 뭐 좋아해? 나중에라도 주게."
대답을 기다리며 레모나 뜯어 입에 털어넣었다. 오랜만에 먹었더니 생각보다 셔서 눈가가 조금 찌그러졌다. 눈부신 사람의 얼굴을 하고 사건의 전말을 듣는다. 아까 소리지르는 소리는 그래서 났구나. 실마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풀리곤 한다. 그게 영화든, 현실에서든. 근데 사람이…… 그런 델 올라갈 수 있나? 사하의 눈이 가늘어진다. 좀 위험하지 않니? 떨어지면 어떻게 해. 떠오르는 여러 말들이 죄다 잔소리 같아서 일단 묻었다.
"마음은 고마운데 아마 안 될 걸."
<나 턱걸이 하나도 못 해서.> 말하며 어깨 으쓱인다. 이런 사람이 거길 올라간다고? 명줄 재촉하는 일일 게 분명하다.
새슬주 어서오세요.... ㅇ.< (저번 레스에 스트레칭이라는 단어 적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손가락 스트레칭 찾아해써여 ㅎㅁㅎ...
규리주 하늘주 문하주 주원주 시아주 선하주 해인주 사하주 민규주 새슬주 모두 안녕하시고... 감사하빈다.... (대단한 사람 아녜요... ) (다 쓰고 파스스 되짜나여...) (박수 쳐주심 부끄러워서 쥐구멍 찾구 싶어여.. 8ㅁ8) 현재 205 ~ >>249 레스까지 보이고 미처 못 봐서 인사를 못했다거나, 반응 못했다면 죄송합니다.. ㅇ<-<
>>228 몬스터를 드신다구요...? (엄격한 표정) 무리는 금물입니다. (라고 파스스가 된 사람이 말했따) 으응, 여유가 되시면 천천히 답레 주셔도 좋지만 밤 새는 건 안 된다는 거에오... <:3 티미는... (먹어도 되나...?) (냠)
>>242 사실.. 민규 편지 보고 제일 처음 써서 양이 적은가 싶어 죄송해여.. 8ㅁ8 혹여나 신경 쓰이실까봐 적어봐요 (왠지 이벤트 뇌절 뒤로 갈수록 길이 글어지는 병에 걸린 사람...) >>이번주 금요일<< 은 아랑주의 민규를 만나고 싶단 큰 그림이었는데... <:3 (쭈그러듬) (이러다 그립톡 주기 전에 봄 끝나게 생겼음) 흐악.. 적어 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모두에게 반응해주려고 노력해주시는 민규주의 상냥함을 많이 쪼아해여... ㅇ<-< 이벤트 기간 한정이 아니고 항상 감사하고 이써여.. ㅇ.<
>>246 그러다 아랑이한테 알려주는 거 아녜요....?? 아이스크림 하나 얻어먹고 아랑이한테 비밀로 하나여...??? <:3 아랑이가 왜? 하는 해이니 귀엽네요...
아랑주가 말을 흘리는 이유는 파스스가 되어버려서 오타 정정이 귀찮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마ㅏ.. 아마 이게 마지막 레스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들 미리 좋은 밤, 굿쟘... ㅇ.<
" 결국은 그냥 슬혜가 너무 좋아서 그렇다는거야. 너무 사랑하니까 그런 것까지 신경쓰게 되는거지. "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널 올려다 보며, 잔잔한 목소리로 속삭여. 이렇게 신경쓰는 것 모두 결국은 널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이 모든 행동의 원동력은 널 사랑하는 마음, 널 사랑하기에 해낼 수 있는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네가 웃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분명 자신은 무엇이든 할테니까. 그것이 자신을 망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시아는 알고 있었다.
" ... 지금도 안아주면 좋을텐데.. "
네가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을 듣고, 시아는 잠시 우물쭈물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망설여.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자그마한 입술을 달싹이는 것이 쉽사리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 듯 해. 하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시아가 살며시 두손을 자신의 입가로 가져가 수줍게 꼼지락거리며 네게 작게 속삭여. 전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이미 시아의 노력은 시작한지 오래였어.
" 그게... 슬혜의 손가락이 기분이 좋아서.. 왠지 소리를 내버려서.. "
호기심을 가진 고양이처럼 얼굴을 살피는 널 보며 부끄러움에 물든 얼굴로 작게 말해. 이걸 입으로 네게 말하려니 얼굴이 더욱 화끈거리지만, 네가 익숙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왜 그런 것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무리를 해봐. 이야기를 한 후에는 귀엽게 자그마한 두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리지만
"응, 나는 확실하게 행복해 하고 있어. 의심하지 않아도 돼. 정말로 행복하니까. "
중얼거리는 듯한 네 말에, 부끄러워 하던 것도 멈추고 시아는 대답해. 이건 정말이니까. 너무나도 행복해서 이게 꿈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걸 네가 알아줬으면 하는거야. 너로 인해 이렇게 행복해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대답을 돌려주곤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려던 차에, 한순간 네 얼굴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껴. 그리고 겹쳐진 입술 사이로 달콤함이 흘러들어오고 정신이 아늑해지는 것을 느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 떨어진 네가 말을 걸어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게 돼.
" 맞아, 슬혜도 이젠 행복한 사람이야. 네 곁엔 내가 있고, 내 곁엔 네가 있으니까. "
시아는 네게 애틋한 시선을 보내며 속삭이곤 다시금 네 볼을 자그마한 두 손으로 감싸안고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아직은 부족하다는 듯 다시금 입을 맞춰나가, 조금이라도 더 너라는 꽃에게서 달콤한 꿀을 맛보려는 꿀벌처럼 떠나지 못하고 쉼없이 입을 맞춰. 그러지 않으면 말라비틀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 나랑 사귀어 주세요 "
왠지 다시 한번 고백해주고 싶었어. 두 뺨을 감싼 체 쉼없이 입을 맞추던 것을 떼어낸 시아는 부드럽게 눈을 접어 웃어보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걸 들은 너는 감동할까? 아니면 그냥 웃어보일까. 기억을 할까?
그는 자신과 친한 사람이 괴로운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머리를 써서 이케이케 하는건 잘 못한다. 결국에 그가 해낼 수 있는 일은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연호에게 몸으로 탈탈 털리고 사하에게 정신적으로 탈탈 털리게 될 누군가의 미래를 미리 애도한다.
" 그, 아이언 클로라고 알아? 한손으로 머리를 잡아서 들어올리는건데... "
한 손으로 사람의 머리를 잡아 올린다는건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결국에 붙잡고 있는 손에는 엄청난 힘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붙잡혀있는 사람의 머리에는 엄청난 압력이 가해진다. 생각보다 훨씬, 훠어어얼씬 아픈것이다. 혹시나 따라하지는 말자. 잘못해서 미끄러지면 손톱으로 남의 얼굴 왕창 긁어버리는 수가 있다.
손에 들고있던 비타민C는 미련없이 사하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그가 비타민 보충을 위해서 먹는거긴 했지만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교실로 가서 가방을 열어보면 꽤나 많이 들어있을테다. 비싼게 아니라 부족하면 또 사면 되는 일이니, 굳이 아껴서 먹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 나? 난 사람 좋아해. 사하 선배 같은 사람들. "
아, 하지만 사람은 나한테 줄 수가 없나? 키득키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그는 대부분의 것들을 좋아한다. 특히나 좋아하는건 먹을것 정도일까? 하지만 굳이 뭐라고 단언하기가 힘들어서 아무거나 괜찮다고 무언의 사인을 보낸 것이다.
" 그래? 그럼 다음에 옥상에라도 같이 올라가보자. 개양대처럼 바람도 시원하고 경치도 좋아. "
그는 가끔 옥상에서 시간을 죽이곤 한다. 쉬는 시간은 두말할 것도 없고, 수업 시간에도. 아무튼 굳이 국기개양대보다야 옥상이 더 높았으니까. 위험하게 개양대를 선택하느니 안전하게 옥상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늘 개양대를 선택한 이유는... 신선함 때문이려나?
새슬이가 구속을 싫어하는 이유는, 물론 비설이긴 한데요, 어떠한 형태의 애정이나 사랑도 수반되지 않은 무의미한 구속을 지독하게 당해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그 손길로부터 도망치려 했지만, 새슬이는 양이지요. 그 나름이 본질적으로 느끼는 지독한 외로움은 뒤틀리고 잘못된 무언가라 할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안정감을 원하게 되고 말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새슬이는 구속당하는 걸 두려워하고 미워함과 동시에 사실은 누구보다도 구속을 원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3... 어 어라 이거 뭐랄까 설정을 쓰고 있는 뒷사람의 입장에서도 뭐라는 거야 >:ㅁ~~ 이긴 한데,
아아아무튼 결론은, 오히려 그런 부분을 건드려 주실 때 새슬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설정과 이야기를 좀 더 풍부히 풀어나가면서 캐릭터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 감사합니다, 라는 것... ㅇ)-(....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어쩐지 아무도 묻지 않은 TMI를 연발하는 것 같아서 머쓱한 기분이지만 어쨌든 그렇읍니다 (쥐구멍 빌빌)
연호주 밤샌다고 해서 나도 같이 좀 늦게 자면서 일상 핑퐁하려구 했는데 갑자기 진짜 급급 졸려서 자야할 것 같다 ㅠㅠ 안정적으로 오는 건 저녁일 것 같긴 한데 중간에 답레 짬내서 올릴 수 있움 올려둘게~~~! 다들 좋은 밤 되구 아침까지 깨어있는 거 걱정되니까 꼭 다른 데서라도 수면시간 채우기야...! 잘 자~~
>>358 아앗 너무 멋있는 말(두근) 명심하며 새기고 살아가도록. 하겠읍니다 ^.^....!!!
>>359 안 그래도 항상 연호주가 늦은 시각까지 계셔서 괜찮으시려나 <:3.... 하긴 했는데.. 건강은 꼭 챙기셔야 해요..... 밥도 세끼 잘 챙겨 드시고 영양제도 필요하면 꼭꼭 챙겨 드시고........ 밤에 못 주무시더라도 낮에 충분히 꼭 주무시고.... (거진 엄마잔소리)
새슬은 그런 것에 익숙할지도 몰랐지만, 지금 새슬의 앞에 새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그는 감추는 것도 숨기는 것도 전혀 하지 못했다. 선명한 심박음-따뜻한 온기-내가 기댈 수 있도록 내게 기대어주는 상냥함-같은 같은 것들이 문하에게서 뜯겨져나간 자리들과,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고통스러운 슬픔과 외로움을 말이다.
단지, 그 모든 것들이, 그의 심장에서 흘러나와 가슴속에 오랫동안 고여있던 그것들이 흉터에 앉은 거대한 딱지로 꽉 틀어막혀 있었기에, 겉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그의 그 공허하게 검은 눈동자 안에 고요히 고여 있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처마를 향해 멀어지는 새슬의 발걸음이... 그 딱지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이야?"
가슴속 어딘가에 버려져 바스러져가고 있던 그 말이 다시 되살아나 그 조그만 실금을 비집고 나와서 문하의 입에 올라왔다. 새슬이 몸을 돌려 문하를 바라보며 말한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하는 말은, 문하가 결국 참지 못하고 꺼내어버린 말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만남에는 이별이 당연히 한패로 따라온다. 낮이 가면 밤이 오는 것처럼. 문하도 그것을 잘 알았다. 그저 그 이별이 이렇게 캄캄하고 먹먹한 밤중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 혼자 남겨지면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 축축하고 어두운 밤중에 불꽃을 꺼뜨리면 불씨마저 꺼져버릴 것 같았다. 그게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문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금이 가버린 딱지 사이에서 뭉게뭉게 새어나오는 것 같은 낯설고도 선명한 욕망이,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 속에 어지럽게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도 두려웠고, 그게 새슬을 두렵게 할까, 혹은 새슬을 상처입힐까도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쓸쓸하게 웃고 있는 사람을, 너무도 익숙한 웃음을 웃고 있는 새슬을 이 어둠 속으로 혼자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보내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 떠나가기도 싫었다. 그게 적어도 이 어둠 속이어서는 안 됐다.
가슴속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을 억눌러버리고 이 어둠 속으로 새슬을 놓아보내거나- 아니면, 이기적인 욕심으로 새슬의 손목을 다시 한 번 붙잡거나.
문하는 결정했다.
"...그러면 이번엔 네가 나랑 같이 있어줘."
그 '다시' 를, 이번 한 번만 지금으로 당겨보기로. 그는 손을 뻗어 새슬의 손목을 자신의 손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조심스레 쥐고는, 들어올려서 자신의 가슴팍 한가운데에 얹어놓았다. 거기에는 아직도 새슬과 그의 온기가 남아서 미적지근하게 따뜻했다. 처음에 기댈 때 이상할 정도로 심장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고요했던 그것은, 지금도 어떤 소리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정신을 집중해보면, 손 끝에 아주 미약하고 흐리게 닿아오는 고동 같은 것이 있었다. "이게, 다시 멎어버릴 것 같아서..." 무서워. 소년은 소녀에게로 그 텅 비어버린 눈을 둔 채로, 아니 두다 못해 떨어뜨리면서 애걸했다. 이게 멎어버리면 정말로 두 번 다시는 뛰지 않을 것 같아서.
둘이 중학교 2학년? 1학년? 즈음 둘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굣길에 오르는데, 시아가 웬일로 좀 돌아서 가게 되는 길로 이끌어서 노을지는 거리를 나란히 조용하게 걸어가다가, 정말 아무런 전조 없이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슬혜 손을 잡곤 멈춰서서 아까 답레 마지막 레스처럼 고백했을 것 같아.😎
>>374 역시 슬혜야! 우리가 못하는 걸 태연하게 해버려! 그 점에 전율해! 동경하게 돼! ...는 농담.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딱 어울리네. 사람은 든 자리는 잘 몰라도 난 자리는 분명하게 표시가 나게 되거든. 그러니까, 한 번 서로가 없는 삶을 살아보고 나서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겠지. (끄덕) 그러니 그 결과가 이렇게 숨만 쉬어도 달콤한 건 당연한 거야..
>>401 어떻게든 쿠션은... 쿠션은 깔 거지만... 폭주기관차같은 전진속도에 아주 잠깐 브레이크가 필요한 타임이다 싶어서요.......😭......... 으흐흑 온전히 받아주지 못 해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하다... 문하야 미안타.. 나를 쳐라......~~!!!
선하는 체력이 좋았다. 그뿐이랴. 천성이 난폭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해소할 곳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쉬이 잠들 수 없는 밤의 연속이었다. 선하는 하늘의 말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늑대임을 딱히 숨기는 건 아니었으나, 기왕 주어진 칭찬이면 사양않고 낼름 받아먹을 요량이었다. 제 능력 탓에 남들보다 앞서나간다는 사실을 굳이 말했다가는 칭찬이 거두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수영장에 놀러오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연주가 시작되었다. 선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극장 매너 정도는 지킬 줄 알아야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다. 선하는 가지런히 모은 발을 움직여 약하게 흔들었다. 박자를 맞추기 위함이었지만... 딱히 맞는 것 같진 않다. 음악에 집중하고 있다는 표시정도로만 받아들이자.
고개를 숙여 발 끝을 지켜보던 선하가 휘파람 소리에 고개를 든다. 재즈 바-영화로만 봤다-에 온 기분이다. 연주도중 휘파람 불러 화음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쯤은 선하도 알고 있다. 잘하네, 뭘. 아까 이미 내뱉은 말을 속으로 다시끔 곱씹는다. 하늘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하고 못하는지는 선하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사실, 설령 하늘보다 잘하는 사람의 연주를 들어도 누가 잘했는지 가늠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루지 못한 짐승이 음악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을리가 없다.
"아... 가는구나."
선하는 약간 아쉽다는 투로, 그러나 과하게 미련가지지 않는 눈치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릴게."
툭툭, 길고 가느다란 손으로 제 책상을 친다. 선하가 입꼬리를 말아 오려 웃어보인다. 너무 천박하지도, 그렇다고 무뚝뚝하지도 않은, 딱 그정도의 미소였다. 담백하게 작별을 고한다.
그 때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 하게 소년의 내면이 파도치기 시작한 것은. 아무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던 소년이,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며 부딪혀온다. 새슬은 문득 두려웠다. 소년의 본심은 아주 작은 조각만 내비쳐진 것임에도, 자신이 남김 없이 휩쓸려 잡아먹힐 것 같아서. 이번엔 네가 나랑 같이 있어 줘. 소년의 말이 옥죄어 숨을 막는다. 그가 자신에게 갈구하고 있는 것이 이제까지 그토록 도망치려 했었던 것의 일종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런데도, 어쩐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응, 하고 간단히 순응해버릴 것 같아 무섭다. 새슬이 이를 악물었다. 울 만한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참지 않으면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와 별개로, 분명 울고 있지 않은데도 새슬은 문하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하지. 이렇게 들여다보면 소리없이 잔잔한 밤의 한 자락처럼 보일 뿐인데. 손 끝으로 전해지는 미약한 박동이 잔인하게도 애처롭다. 그러나 잡혀 끌려갔던 손을 도로 거두는 일은 없었다. 그저 힘을 빠진 손가락 끝을 동그랗게 말아 쥐기만 했다.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다며 소년이 시선을 떨구었을 때. 새슬은 차마 자신이 고개를 끄덕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소년이 지닌 커다란 무언가를 온전히 받아내기에, 지금의 자신은 너무나도 연약했다. 얇은 유리 항아리처럼 금방이라도 깨져 버릴 것이다. 손 끝으로 전해지는 감정 하나하나를 받아드는 것조차 이렇게나 버거운데. 새슬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해. 거절의 말에 잇새로 흐느끼듯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것을 끝으로 잔인하게 등지는 대신, 새슬은 한 발짝 더 문하에게로 나아갔다. 소년이 걸쳐 주었던 옷가지들이 작은 소리를 내며 힘없이 떨어져내렸다. 새슬은 소년이 제게 주었던 온기를 오롯이 다시 소년에게 돌려 주었다.
“옥상으로 와.”
언제든지, 내가 보고 싶어지면. 나는 항상 거기에 있어. 귓가에 스칠 찰나의 속삭임. 둘 사이의 거리는 금방 다시 넓어졌다. 만났을 때와 똑같은, 씁쓸한 웃음을 담고 있는 새슬의 얼굴이 다시금 문하를 마주했다.
문하는 화내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 원판이 분노, 슬픔이 극단으로 치달은 나머지 감정을 다 소진해버리고 탈진해서 지쳐버린 잿더미만 남은 애니까. 그렇지만 특별한 계기라거나 하는 것으로 문하를 화내게 만들면... 뭐랄까 1페이즈는 냉기속성, 2페이즈는 화염속성, 3페이즈는 어둠속성이 되는 느낌. 말해놓고 보니 게임 보스같이 됐네.
약하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풉, 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너무 사랑한나머지 그런 부분까지 신경쓴다니, 대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란건 뭐고 당신이 말하는 사랑이란건 또 무엇인가, 아니면 이 또한 이렇다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오로지 당신만의 사랑이란 걸까? 그렇다면 그녀 역시 그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역시 당신이 무리하는 모습은 놓칠리 없는 걸까, 고양이는 모든 것을 예의주시하는 동물이니 당신에 대한 것도 언제나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혹여 무리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에.
"후후후후... 귀엽네요... 안아달라고 어리광부리는 모습도, 별것 아닌 손짓에도 이렇게나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어느것 하나 빠뜨리고 싶지 않아요..."
정말이지, 숨막힐 정도로 끌어안아버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전에도 당신은 이러했을까? 거기까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한가지 중요한 것은 어떤 당신이든 그녀는 모두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직접 입밖으로 꺼내는데에 익숙하진 않은 말이었다는듯 결국 두손으로 제 얼굴을 가려버리는 당신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다시 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쯤 되면 자신이 정말 양이 맞는지, 양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늑대가 아닌지 궁금해졌다.
당신의 그런 귀여운 모습, 진지한 모습, 조용히 무언가를 읊조리듯 속삭이는 모습 모두가 사랑스러웠다. 작은 입맞춤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애틋한 시선과 함께 다시금 자신의 뺨에 손을 대어 이끌고선 망설임도, 쉴 틈도 없이 입술을 포개는 모습까지도...
"......"
순간적으로 심장에 싸하게 울리는 그 알싸한 고백까지도... 그 모든게 오로지 자신만이 느낄수 있는 것이라면... 이게 처음부터 짜여진 각본이었다 해도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그녀였다.
"고마워요. 그렇게 이야기해주셔서, 이런 저라도, 감히 당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서..."
그때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답과 함께 미소짓던 그녀는 그대로 두 팔을 당신의 목에, 허리에 감아 조심스레 일으키고선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당신이 적당히 견뎌낼만큼만, 숨이 완전히 막히지 않을 정도로만,
"아아... 이걸 어쩌죠...? 견딜 수 없을만큼 사랑스러워서, 또 다시 물어버릴 것 같아요..."
양으로서의 본능,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무언가가 끊임없이 당신을 원하고 있었다. 몰래 숨어 둘만의 비밀을 만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맛보았던 그 오묘한 체취가 떠올라 버릇처럼 손에 힘이 들어갔을까? 분명 그건 흔히 말하는 양의 페로몬은 명백히 아니었지만, 그 알수 없는 살내가 그녀를 이성에서 자꾸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흠집 하나 나지 않고 굳어가고 있었는데. 굳어지고 나서 떨어져나가면 그 흉측하게 찢어져나간 모양 그대로 살이 덮이어 영영 그 모양 그대로 살게 될 흉터만이 남게 되었을 텐데. 새슬이 예기치 못한 무언가가 그것에 아주 작은 실금을 하나 냈다.
그러나 어떤 흠집도 없는 것과, 조그만 실금이 있는 것에는 중차대한 차이가 있다. 실금은 갈수록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방금 처음 낸 조그만 실금에서 하나 툭 떨어진 그것은 정말이지 지독히도 쓰라리게 절망적이었고, 지독히도 가엾게 희망적이었다.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고요히 죽어가던 이의 눈앞에 떨어진 작은 별빛이 늑골 속에 고인 피웅덩이에 비치고 있었다. 선고를 기다리듯이 새슬에게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텅 비어있어야 할 눈망울 위에 별빛이 하나 맺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너무 과한 욕심을 부렸음을 통지받았다. 평생을 굶주려오다, 남들보다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유배되어 그 어느 것도 새로 붙들지 못하고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고 그저 주어지는 삶을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가 그에게 반짝인 생각지도 못한 빛, 그런 것이 있었다는 줄도 잊고 있었던 마음을 깨워준 그 빛에 너무 목이 말라서. 마치 서투르기 그지없는 어린아이같은 욕심을 부렸다. 문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것은 문하를 영영 등지지 않았다. 그것은 문하의 가슴 속의 열기를 어느 봄날의 신기루로 사라지게 내버려두지 않고, 다시금 문하의 품 속에 한 번 더 흔적을 남긴다. 마치 다시 한 번 자신을 찾아달라고 약속을 남기는 것처럼. 감은 눈은 뜨지 않았다. 문하는 새슬이 다시 안겨주는 온기를 말없이 끌어안았다. 그리곤 서서히, 깊게 심호흡했다. 이것을 잊지 않겠다는 듯이. 깊이 각인해서 새겨두겠다는 듯이.
"...금방 갈게."
어느덧 산들바람이나 깃털이라도 된 것처럼, 가뿐히 바람에 날리듯 자신의 품을 빠져나간 새슬을 바라보며, 문하는 차가운 어둠 속에서 헤어지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대신으로, 그는 쓸쓸한 웃음을 웃고 있는 새슬에게 다짐을 남겼다.
"기다려."
이것을 마지막으로 삼기에는, 어딘가 비어 있는 그 미소의 빈 자리의 모양이 문하에게 너무도 익숙한 모양이었다.
고고한 늑대 같은 비유적 표현으로 인식한 그는 이번에는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강X욱처럼 말 잘 들은 강아지에게 보상을 주듯 주머니에서 단 것들-하나같이 값이 나가는 것이었다.-을 한 움큼 꺼내 쥐여주려 한다. 강아지... 한 마리 더 키울까... 이번엔 붉은색으로......
"그렇지? 체육계가 되고 싶다면 종목은 빨리 정하는 게 좋을 거야."
연호의 폰을 건네받은 그가 톡톡톡 두들기면서 무언갈 조작한 뒤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건넨다. 화면에는 '신이현'이라고 저장된 전화번호가 띄워져 있었다.
"내 전화번호야. 만약 여러 종목 중에 무언가를 정하고 싶다고 결심하면 연락해줘. 우리 산하 재단에서 몇몇 테스트를 진행하고 여러 종목들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줄테니까. 물론 그 외의 일로도 연락 넣어주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상담이어도 좋고!"
"땡~♪ 정답은...음...비밀이야!"
농담이고, 대대로 가업을 이을 거야. 으음, 이름을 알지 모르겠지만 좀-좀이 절대 아니다.- 큰 기업을 부모님께서 운영하고 계시거든. 그는 눈을 달처럼 휘고 어딘가 즐거운 듯 얘기했다. 사실 이게 끝은 아니지만, 그건 말하면 안 되니까. 우후후 웃으면서 연호의 발걸음을 맞춰 걷던 그는 손목에 차인 시계-한눈에 봐도 비싼 명품이었다.-를 확인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미안, 너와 이야기하다보니 즐거워서 잠시 시간을 잊고 있었네. 정말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가야할 데가 있어서, 이만 가봐도 될까?"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하는 그는 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허락이 떨어지면 빠르게 걸어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웃을 것이다. 상냥히 손을 흔드면서.
>>468 호거ㅓ걱 설렌다 새슬이가 선하를 기쁘게 할 수 있도록... 심기만 거스르지 않을 수 있도록 이 글뇌 한 몸 바쳐 열심히 노력. 하겠읍니다...
>>486 아닙니다 저야말루 넘.. 즐거웠는걸요 ^.^,,,, 시트에 적은 것과 다른 다크새슬을 처음부터 만나게 해 드려서 .oO( 아 망했다 ) 하고 있었는데 즐거우셨다면 넘.. 다행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넙죽넙죽.... 픽크루도 넘.. 잘 봤읍니다....... 부디 꿀잠 주무세욧 문하주
>>492 아니오히려 새슬이의 다양한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보통은 감추려 할 모습까지 볼 수 있어서 문하주 입장에서는 행복이었어... 비오는 날 키워드로 찔러보길 정말 잘했어.. ㅇ>-< 새슬주도 적당한 때에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네. 나중에 시간이 닿으면 또 만나. 확 자유부 부활동으로 점심시간에 둘이서 자전거타고 탈주극 해버릴끄니까~~~
가늘게 떨리던 어깨가, 다행스럽게 가라앉았다. 내 어깨의 주인은 나인데, 내가 생각해도 웃길 정도로. 양을 상대하기만 하면 이렇게 긴장하는.. 나쁜 버릇은, 싫지만, 버릴 수가 없다. 나는 가까스로 웃으면서 별하의 곁에 다가붙었다.
별하의 머리카락에서, 나뭇잎을 뚫고 너울거리는 햇빛처럼 샴푸 향이 흘러나와 코끝을 적신다. 샴푸 향은 샴푸 향이 풍기는 나름대로 떨리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이다. "갈까? 별님." 어수선함이 모두 빠져나간 대회장의 정적은 두 사람만 걷는 길을 위해 자리를 비킨 채였다.
그러고 나서 별하가 쥐여 주는 자기 손을, 나는 진주처럼 감싸쥐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회장의 대문을 나와서 처마 밑을 벗어나자 빗방울이 비닐 우산을 가볍게 두들겼다. 작은 어깨가 젖지 않게, 우산을 별하가 서 있는 쪽으로 살며시 기울여 주면서,
"근데 나 찻집은 전혀 몰라!"
헤헤, 하고 대책없이 웃음소리를 냈다. "별하가 가자는 데로 가 보자! UFO!" 꼭 감싸쥔 별하의 손을 마치 우주선의 조종간을 당기듯 장난스럽게, 그러나 부드럽게 당기며 이끌고 가려 한다. 언제나 해 왔던 평범한 장난들의 일환이었다.
오늘 처음 만났기 때문에 여자는 홍현이 원래 과묵한 성정인지, 곤란한 상황에서 사람을 맞닥뜨려 말을 아끼는 것인지, 둘 다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선 표정이나 제스쳐에 의존하는 수밖엔 없었기에 눈꺼풀이 살에 빠르게 숨겨졌다 드러났다 하는 모양새를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잘 관찰할 수 있었다.
홍현이 가지고 있는 약이 진짜 억제제고 그 약을 실험에 사용한다고 해서 본인에게 해가 되는 건 일절 없었지만 여자의 솔직한 감상을 빌리자면 상대의 반응은 보는 재미가 있었다. 순간의 재미와 여흥, 공부하는 사람만이 남아 삭막한 기운이 감도는 기숙사에서 홍현은 유일한 재미처럼 다가왔고 당혹스러움이 떠올랐음에도 상대의 대답을 느긋이 기다리는 이유가 된다. 반쯤 걸고 있던 답변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양이구나. 이렇게 물어봐서 당황했니?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미안해."
있었다. 그럴 의도. 말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에 상대의 소위 재미있는 반응을 보기 위한 일련의 행동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도 양이면서 이러면 안되지. 시험기간이 되니 엉뚱한 곳에 흥미가 붙는 것 같아 혼자 슬쩍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번엔 순수한 걱정에서 우러나오는 질문을 했다. 가는 길목이었으니 이 질문만 하고 보내줘야지 생각하며.
"복용할 억제제는 충분한 거야? 더군다나 이렇게 섞어 두면 제때 먹는 게 힘들 것 같은데."
아쉬워하는 톤이 그의 귓가에 들렸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이 그녀의 휴식에 있어 그렇게 방해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에 하늘은 안도할 수 있었다. 피아노 소리는 적어도 자신의 귀에는 아름다우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의미없는 음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어느 쪽이었을까? 전자일까? 아니면 후자일까. 적어도 전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하늘은 가볍게 두 손을 털어냈다. 지금은 점심시간. 너무 오래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방과후라면 또 모를까.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자신의 책상을 치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린다는 그 말에 하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막 닫은 피아노 건반 뚜껑을 살며시 손으로 톡톡 쳤다.
"그렇다면 저는 여기서 피아노를 치면서 기다릴게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자신의 연주를 들어준 사람. 그리고 끝나는 것에 아쉬움을 보이는 사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으나, 그렇다고 더 미련을 가지는 일은 없었다. 다음에 만날 수 있다면 또 만날 수 있겠지. 딱 그 정도로 생각을 하며 하늘은 꾸벅 허리를 굽힌 후, 그녀에게 인사했다.
"오후 수업 수고하세요. 선하 선배."
또 언제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칠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얼굴을 혹시 보게 되면 인사 정도는 하는 것도 좋겠거니 생각을 하며 하늘은 음악실 밖으로 나섰다. 잠시 매점에 가서 음료수 하나를 사서 마신 후에 교실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침에 잠깐 시간을 내서 내 쪽에서 이렇게 막레를 내릴게! 일상 수고했어! 그리고 나는 이렇게 답레를 올리고 바로 밥먹고 출근하러 간다! 오늘은 개운해서 좋네! 다들 하루 힘내자!
" 빠뜨리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하면 되는거야. 빠뜨리고 싶지 않은 것들을 모두 품으면 되는거야.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줄테니까. "
슬혜의 말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그럴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체 속삭였다. 분명 슬혜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자신은 그런 슬혜가 자신의 모든 모습들을 품을 수 있게 몇번이고 자신을 보여줄테니까.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될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에는 망설일 생각이 없었다. 슬혜를 위해서라면 조금 부끄러워지는 것이 대수일까.
수줍게 얼굴을 가려보기도 하고, 진지하게 속삭이기도 하다가 결국엔, 과거 두사람의 하굣길에서 용기를 내어 고백했던 말을 다시 한번 꺼내보았다. 시아는 생각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자신은 그곳에서 고백을 할 것인가?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니, 고민이 떠오르자 마자 답을 나온 상태였다. 분명 그때와 마찬가지로 안간힘을 쓰면서 슬혜에게 고백했을 것이다. 이건 변치 않는 결과였다.
" 슬혜가 어때서.. 슬혜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 사람인걸.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러니까 감히 라는 말은 쓰지 않아도 괜찮아. "
자신을 일으켜 안아주는 슬혜의 품에 안긴 시아는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가볍게 팔을 둘러 슬혜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따스한 슬혜의 품, 그곳에서 시아는 행복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명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을 끌어안은 슬혜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고, 압박이 느껴졌지만 그 압박 역시도 너무나도 기뻐서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슬혜의 이성이 점점 끌어내려지고, 그 안에 숨겨진 본능이 얼굴을 내비치려 하는 것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그것까진 알지 못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아는 슬혜의 뒷머리를 살살 쓸어내리며 억지로 슬혜가 참을 필요가 없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독였다. 참을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곁에 있어준다고 했는데, 이젠 떠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 하고 싶은게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해줘, 나는 슬혜의 모든 모습을 사랑해. 지금처럼 이성적으로 사랑한다 말해주는 모습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슬퍼하는 그 모습도, 그리고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본능에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는 지금의 모습도 모두 좋아하니까. 자, 내게 와줘 - 슬혜야. 와준다면 분명 기쁠거야, 난. "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때때로 이성이 아닌 본능에 충실해도 된다는 듯 슬혜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어떤 모습이든 자신은 슬혜를 품어줄테니까. 그렇게 속삭이던 시아는 혹시 슬혜에게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일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 조금 고민을 하다가 살며시 슬혜의 볼에 입을 맞춰주곤, 귓가로 입을 가져가 속삭인다.
자신이 양이라고 어렵게 대답한 홍현은 잠시 얼어붙어있었다. 그나마 미안하다고 가예 선배가 말하자 별일 없이 넘어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현은 웬만하면 양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약을 섞어놓고 분류하지도 않아 가끔가다 페로몬을 뿜어 위험에 노출되긴 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일단 본인은 양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어.. 억제제는.. 하루에 랜덤으로 2개씩 뽑아서 먹고 있어요. 무..물론 정리해 놓으면 좋겠지만 전에도 한번 그랬다가 호되게 당했던 일이 있어서 그.. 그냥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죠.. 아.. 아직 남은 알약 양은 많이 남아서 오히려 문제이지만요."
지금도 변함이 없는 당신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당연하게 나올만한 말일까? 그녀는 그런 당신의 말이 사랑스럽고 감사하면서도 안타깝기도 했다. 그것이 단순한 죄책감인지는 알수 없지만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것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그저 막무가내로 '그동안 모자랐던만큼 잘 대해주어야겠다.'가 아닌 '조금이라도 서로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쪽에 가까웠을런지도 모른다.
일단 자신부터 과하다 싶으면 갑자기 튕겨나가는 고양이같은 성격이니까, 어찌보면 이전보다도 더 고양이같아진 자신을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조금은 걱정이었다.
"그런가요? 그럼... 저 또한, 그대야가 무리하지 않도록 바보스러운짓도 골라서 해야겠는걸요?
...아, 그건 무리한다기보단, 부담스러워하려나요? 후후후..."
이젠 예전처럼 무심하고 딱딱한 사람도 아니니까, 오히려 장난끼가 늘었다면 늘었지 없어지진 않았으니까. 당신이 지금껏 본적 없던 어리광을 부린 것처럼, 그녀 역시 조금은 엉뚱한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도 당신이 만족하고, 새로움을 느끼고, 행복해할수 있다면... 얼마든지 코미디언이 될 수 있었다. 그게 지금껏 자신이 무대에 올라있던 이유였으니까,
그저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그만큼 당신의 유혹하는듯한 부드러운 목소리, 다독이듯 뒷머리를 쓸어내리는 감촉에 끌려들어가는것 같았다. 이대로 더 빠져든다면 위험할거라는 두려움, 그러면서도 그것을 계속 톡톡 건드리려는 욕망, 무엇보다 그 사랑스러움이 견딜수 없어 당신이 잠깐 고민하든듯하다가도 자신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귓가에 속삭이자마자 당신에게 똑같이 돌려주듯 입을 맞추면서도 살짝 깨물어보였다.
그것 또한 자신의 본능이라는듯 한참을 옴질거리다가도 뾱,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이 떨어지자 당신의 뺨에는 붉어진 홍조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새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을 맞추어 한참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당신의 머리 위쪽으로 손을 가져다대려 하더니 몇번 톡톡 건드리고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
마치 그것에 열중하듯 살짝 찌푸려진 미간과 머리 위를 집중하는 눈, 옹졸해진 입까지 하지만 그것 또한 그녀만의 애정을 담은 행동이었다.
" 슬혜가 부담스러울리가 없잖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슬혜는 편하게 대해주면 되는거니까. "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슬혜에게 시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런 걱정은 집어넣어도 좋다는 듯 상냥한 대답을 돌려준다. 슬혜의 행동이 어떤 것이든 부담스러울리가 없었다. 지금도 슬혜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눈으로 담아두고 있을 정도니까. 그저 맘 편하게 슬혜가 자신을 대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라볼 뿐이었다.
" 하핫..간지러.. "
자신을 따라하듯 볼에 입을 맞춰오는 슬혜에게 화답하듯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던 시아는 이어진 오물거림에 조금 놀란 듯 눈이 커진다. 눈이 커지고 찾아오는 것은 부끄러움, 얼굴이 붉어지고 슬혜의 오물거림이 주는 감각이 점점 커져갈수록 시아의 숨소라도 흐트러져간다.
" 흐앗..? "
그렇게 얼마나 볼을 내주었을까, 뽁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진 그자리에는 슬혜가 자신의 것이라는 듯 마킹을 해넣은 듯한 입술 자국이 남아있었다. 뽁 하고 떨어지는 순간 귀여운 소리를 낸 시아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슬혜를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그 눈에 담긴 감정은 분명 행복함과 고양감이었다.
그렇게 눈을 마주 하던 슬혜가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거기에 집중하는 표정으로 바뀌어간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연신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고, 집중한 듯 찌푸려진 미간과 옹졸해진 입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왠지.. 왠지.. 관심을 내 머리카락에 뺐긴 것 같아.. "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길 몇초, 작게 중얼거린 시아가 끄응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일으키더니 옹졸해진 슬혜의 입술에 쪽하고 짧디 짧은 입맞춤을 하곤 포옥 슬혜의 교복 상의를 자그마한 두손으로 웅켜잡아, 슬혜의 목덜미와 근처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부비적댄다.
" 머리를 쓰다듬는건 좋지만 너무 거기에만 집중하지.말고, 나도 봐줘.. "
투정을 부리듯 부비적대며 중얼거린 시아는 귀까지 분홍빛으로 물들인 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파묻는다. 처음으로 슬혜에게 질투의 감정을 표현해본 시아였다. 여전히 슬혜의 옷깃은 자그마한 두손으로 움켜쥐고 있었고, 부끄러움에.흔들리는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의 모습은 마치 첫 연애를 시작한 새내기 커플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처음이라는 사실은 틀린 것이 아닐지도 몰랐지만.
혼내준다는 답은 예상 안의 답. 그럼 그 다음은? 사하는 알아듣지도 못했다. 난생 처음 듣는 단어였다. 아이언… 뭐? 아이언맨? 설명이 뒤따라오자 입술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상대를 인형뽑기 인형처럼 만들어버리는 거구나. 놀라운 복수 방법에 웃음이 나기보단… 까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선행된다.
"혹시 내가 화 나게 하면 꼭 말해. 나 사과하고 싹싹 비는 거 잘 하니까."
<화 풀릴 때까지 무릎 꿇고 있을 수도 있어.> 말하며 샐샐 웃는 얼굴이 은근히 연호 눈치를 본다. 인형뽑기형에 처해지고 싶지는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먹는 걸 물어봤는데, 진짜로 좋아하는 걸 알려줬다. 사하가 모르는 사이에 연호의 뒤로 꼬리표가 하나 더 붙는다. <귀여움>. 그나저나 사람을 어떻게 주면 좋아. 사하가 고민에 빠진다. 솔로몬처럼 반으로 가르자 할 수도 없고.
"새끼손가락 하나 정도는 너 줄까?"
왼손을 들어 휙휙 돌려보더니 장난처럼 웃으며 말한다. <내가 어떤 사람일줄 알고.> 연호 말 듣고 덧붙인 사하가 어디 구린 데 있는 사람처럼 웃는다. 당연히 그런 거 없다. 은사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니까.
"옥상은 좋아하지. 가는 날에 내가 사람 대신 음료수 가져올게."
옥상도 똑같이 높긴 해도 바닥이랑 난간이 있으니까 괜찮다. 국기게양대는…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안 돼. 올라간다는 가정만으로도 손에 땀 나서 미끄러질 것 같다. 여러모로 비범한 학생이다. 저를 들고 간다는 말에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나를?>
"짐짝처럼 들고 갈 거 아니라고 해줘."
보통은 업어준다는 표현을 더 많이 쓰지 않던가. 정말 특이하고 귀여운 애다. 저를 포대자루처럼 어깨에 얹고 가지만 않는다면말이다.
내심 걱정스러웠지만, 돌아온 것은 부드러운 미소와 상냥한 대답이었다. 물론 그녀 또한 그런 말을 들어도 마찬가지로 대답했을 거라는 사실은 달리지지 않겠지만 막상 직접 듣자니 좀 부끄러웠을까?
이젠 참는다거나 숨는다거나 할 필요 없었으니, 하지만 또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당신이 견뎌낼수 있을정도로만, 정도를 지키는건 언제나 그 중간을 찾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직접 겪어보지 않고선 알수도 없는건 마찬가지였다.
"귀엽네요... 그전에도 참을수 없을만큼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말할줄 몰랐던건 좀 후회되네요. 그래도 뭐... 이젠 잔뜩 말해드릴 거니까요...?
귀여운 소리를 흘리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당신에게서 무언가가 차오르는듯한 행복감이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사랑스러워서 몇번이고 머리에 손을 대어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이 헝크러진다면 다시 조심스럽게 쓸어 잠재워보기도 하고, 그렇게 잔잔해진 머리카락을 다시 헝클어보이기도 하고... 그 모습이 어쩐지 털실공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와 똑같이 보이는 것은 분명 착각일 것이다.
집중하느라 잔뜩 쪼그라든 입술에 살짝 들고 일어난 당신의 입술이 닿자마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듯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떨어졌다. 두 손으로 자신의 옷을 살포시 움켜잡은 당신이 목덜미와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얼굴을 대어 부비적거리자 그녀도 쓰다듬고 있던 손을 내려 천천히 등을 쓸어주었을까,
"...아, 그렇죠. 제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은 이쪽에 있었으니까요?"
투정부리듯 자신을 봐달라며 부비적거리는 당신은 귀까지 발그레해질정도로 부끄러워하면서도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나보다. 고개를 파묻고 있었기에 좀 더 확실하게 전해지는 숨결에 따뜻한 느낌이 들었는지 조금더 힘주어 바짝 붙도록 끌어안았던 그녀는 평소처럼 싱긋 웃어보였다.
"후후후... 그렇죠~ 시간은 다른 때도 언제든 많지만, 지금은 별로 남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마법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당신을 충분히 위하고 싶었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하지 못했던 상냥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정중하게, 할수만 있다면 공주님처럼 대하고 싶기도 했다. ...부끄러운쪽이 누가 될지는 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 남은 시간동안이라도 알차게 놀기로 해요 우리...? 다음에 또 인사해도 아쉬운 기분이 들지 않도록..."
글쎄. 일단 딱히 접점도 없고 선관 짤 것도 없는만큼.. 그냥 우연히 마주쳤다가 가장 무난하긴 할 것 같은데 이거 하구 시퍼요도 궁금하니 혹시 하고 싶은게 있으면 해도 괜찮아! 아니면 좀 극단적으로는 하늘이가 중학생 때 충돌이 있었던 같은 중학교 출신 음악부 멤버 중 누군가와 충돌한 것을 중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고.. 결론은 일단 선레는 다이스로 정하면 되겠지?
당신의 말에 경아는 흐드러지게 웃는다. 그 말 하나가 정말로 기쁘다는 것처럼.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사람처럼. 그렇다면 다행이야.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경아는- 경아에게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로 소중한 사람 중 하나다. 그런지라 경아는 어떻게든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제가 가진 재주라곤 기껏해야 이런 것이었으니, 잠시의 안식처라도 되기를 소망했다.
"아무렴 어때. 지금도 충분히 맛있는 걸."
어깨를 으쓱인다. 빈말은 아니다. 적당히 씁쓸하기까지 한 케이크는 경아의 마음에 쏙 들었다. 오늘 하루의 피로를 전부 내려놓고 지금의 시간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 당신에게 잠시의 안식처가 되어주고픈 경아는,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 그 자신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참으로 성실하지 못한 태도이나 이 곳에서 그 점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경아는 분명하게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어쩌면, 글쎄. 적어도 또다른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경아는 옅게 미소지었다. 씁쓸하고, 조금은 쓸쓸한 기색이 맴돈다.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으나...경아는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 시절만큼 행복한 때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정도로.
"그랬지. 그때는 그냥, 흘러가는 구름 하나 보고도 깔깔 웃었는데. 내가 책만 읽고 있으면 네가 와서 놀러가자고 할 때도 있었고."
작은 웃음소리가 뒤따른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처럼 따스하고, 동시에 처량하다. 모순적이다. 그토록 찬란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이제와 괴롭다는 사실이.
"오랜만에 와보니까 바뀐 곳도 많더라. 너랑 자주 갔던 골목길의 구멍가게 있잖아, 기억나? 자주 아이스크림 사먹던...거기 이제 다른 가게가 들어선 거 있지. 그래도 우리 자주 가던 놀이터는 여전하더라."
당신과 함께하던, 더이상은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경아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고, 그럼에도 슬퍼 보인다. 입가에는 언제나와 같은 미소가 걸려있다. 으레 짓곤 했던 부드럽고도 여린 종류다.
"야. 진짜 누구는 좋겠네. 재능이 아주 좋아서 중학생 때 동아리 들어와서 그렇게 멋대로 할 거도 하고, 고등학생 되어서는 음악부도 아닌데 음악실에 들어와서 피아노도 마음대로 치고 말이야."
"지겹지도 않냐. 그냥 서로 신경 끄면서 지내면 안돼?"
음악실 부근에서 하늘은 자신을 바라보며 비꼬듯 이야기하는 동급생 남학생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는 일부러 비꼬듯 네에- 네에- 톤을 이어가면서 팔짱을 꼈다. 적어도 하늘에게 있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이 있는 이는 아닌듯 보였다.
"근데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너 이거 엄청 특혜인건 알아? 꼬우면 음악부 들어와서 쓰던지. 아. 또 개인연습이니 뭐니 그런거 때문에 활동 제대로 안하고 쫓겨나겠네. 그럼 특혜라도 잘 쓰려고 해야지. 안 그래?"
"적어도 연습도 하지 않고 몇몇 친한 애들하고 놀기만 바빠서 기량도 안 키우는 너에게 그런 소리 들을 이윤 없는데?"
하늘이라고 마음이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다. 꽤나 적대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상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나오는 것은 비꼬는 톤을 없앤 적대적인 목소리였다.
"네가 그렇게 잘났냐? 그렇게 잘났냐고. 좀 몇몇 사람들이 띄워주니까 남들 평 막 할 수 있고 그럴 것 같아?"
"못할 건 뭐야. 그런 평 듣기 싫으면 너도 연습을 하면 되잖아. 아니면 어차피 해봐야 안 될거라고 생각해서 음악부인데 음악은 하지 않고 놀기 바쁜거야?"
살기가 도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의 다툼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딱 좋았다. 어느 한 쪽은 과거 행적이나 지금의 '특혜'일지도 모를 무언가를 비꼬고 있었고 다른 한 쪽은 실력이나 음악에 보이는 열의를 단적으로 끄집어내며 비난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런 것은 말리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으로 찍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고 동영상으로 찍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둘 다 주먹을 들거나 하진 않고 그저 말로만 다투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보는 눈이 많은 이상, 주먹을 드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최민규가 그 자리를 지나가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아마 담장을 넘어 사서 돌아왔겠지- 아이스티를 마시며 자리를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다.
'야. 진짜 누구는 좋겠네. 재능이 아주 좋아서 중학생 때 동아리 들어와서 그렇게 멋대로 할 거도 하고, 고등학생 되어서는 음악부도 아닌데 음악실에 들어와서 피아노도 마음대로 치고 말이야.'
음악실 방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최민규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채 그 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저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과 면식이 있었다. 동생 다니는 학원에 다니는 애였지, 분명. 가끔 오가면서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저런 말을 하는 줄은 몰랐는데.
'적어도 연습도 하지 않고 몇몇 친한 애들하고 놀기만 바빠서 기량도 안 키우는 너에게 그런 소리 들을 이윤 없는데?'
이건 모르는 목소리다. 최민규는 몰려든 인파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만 더 욱하는 성질이었다면, 무슨 구경이라도 났냐고 비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민규는 그런 성격은 못 되었다. 대신,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아마 카메라를 든 사람들에게 눈치를 줬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얼굴을 아는 쪽 사람의 어깨를 툭 건드렸을 뿐이다.
"뭔데?"
아이스티의 얼음이 달각거렸다.
"내 대충 들어서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불만이 있으면 음악 선생님한테 따지는 게 낫지 않나."
쟤도 허락받고 하고 있을 거 아냐? 어깨를 으쓱였다. 하늘이를 한번 바라봤다. 괜히 미안한 마음을 담았을지도 모른다.
민규가 어깨를 툭 치는 것에 놀랐는지 하늘과 대치하던 남학생은 깜짝 놀라 고개를 홱 돌려 민규를 바라봤다. 뭐냐는 물음과 불만이 있으면 음악 선생님에게 따지는 게 낫지 않냐는 그 말에 그는 괜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정부리듯 이이야기했다.
"아. 형! 형이 쟤를 몰라서 그런다니까요! 쟤가 얼마나 지 멋대로인 애인데! 피아노 좀 잘 친다고 말도 안되는 특혜나 받기나 하고! 그래서 음악실을 사용하기도 하는 음악부의 멤버로서..."
"허락받고 있어요. 애초에 아무도 안 쓰는 조건 하에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말을 끊어버리면서 하늘은 자신에게 들어온 말에 조용히 대답했다. 그것은 분명히 그리 옳은 자세는 아니었으나, 그다지 상대에게 그 정도의 배려나 예의를 지킬 생각은 없는 듯 했다. 그 또한 그의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허나 그런 것은 상관없다는 듯이 하늘은 태연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남학생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그 대신 민규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해요. 조금... 음악실을 쓰려고 하는데 이런저런 시비가 걸려서. 소동을 피워서 죄송했습니다. 다른 이들도 모두 죄송해요."
고개를 하나하나 숙여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에 남학생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가슴을 치면서 그냥 홱 돌아섰다. 어후. 내가 상대를 만다. 상대를 말아. 그런 말을 남기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제대로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물론 하늘은 그에겐 그다지 시선을 주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싫어하는 이와는 이야기를 그다지 나누지 않는 그의 버릇이었다. 그 대신, 민규를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 뿐이었다.
경아, 당신은 청춘 순정만화의 조연! 당신이 쓰러진 것을 알고 당신을 업고 달려온 반 친구. 어쩐지 없어진 보건 선생님을 대신해 친구가 대신 응급처치를 해주는데... 순간 등 뒤로 햇살이 비침과 함께 기묘한 정적이 감돕니다.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72769 어라...??
남학생의 말을 듣는 최민규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니, 뭐. 알겠는데. 쟤가 제멋대로인지 아닌지는 나는 잘 모르고. 불공평한 특혜를 준 쪽에 따져야지 왜 쟤한테 화풀이야.' 혀뿌리에서 뭉글대며 올라온 말을 아이스티로 삼켜 넘겼다. 동생한테 쟤 어떤 놈인지 나중에 물어봐야겠어, 흘러가듯 생각했다.
등 두어 번 토닥여주는 걸로 무마하려 했다. 그러려는데, 허락받고 있어요. 애초에 아무도 안 쓰는 조건 하에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늘의 말이 들려왔다.
"거 봐, 쟤도 허락받고 쓰고 있대잖아."
너는 여기서 열 내지 말고 교무실이나 가, 덧붙였다. 말하는 모양을 보니 교무실에 가도 별 성과는 없을 성 싶긴 했다. 최민규는 하늘이 사람들에게 일일히 사과하는 것과, 남학생이 홱 돌아서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천천히 흩어지는 모양을 보았다.
"응?"
최민규는 하늘의 질문에 잠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눈을 두 번 깜박였다.
"아니, 뭐.. 애초에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고 말이야."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너한테 화낼 일도 아니잖아? 너는 허락받았으니까 쓰는 거고, 거기서 엄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한숨을 푹 쉬었다. 어디든 이상한 곳에 화풀이하는 애들은 있었다. 뭐.. 최민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머쓱한 기분으로 주머니를 뒤져, 사탕 하나를 꺼냈다. 레몬맛 사탕이다.
경아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는 것을 눈치채고 괜한 말을 꺼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어렸을때 헤어지고서 다시 만났을때의 그녀는 어릴때와 다르게 좀 더 흐릿해져 있었고, 너무나도 많이 성숙해져있었다. 물론 너무나도 포근한 분위기의 그녀였지만 깊숙히 들어갔을때 안개에 가려진 벽이 그제서야 보일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분위기의 변화는 착각은 아니었다.
" 그야 책만 읽고 있으면 심심하잖아. 가끔은 바람도 쐬고 해야한다고 생각했거든. "
어릴때의 경아는 책을 많이 읽고 어딘가로 잘 다니지 않았기에 내가 먼저 놀러가자고 제안한 뒤에 그녀를 데리고 다니곤 했다. 반대로 그녀와 함께 책을 같이 읽을 때도 있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때를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이 문득 처량하다. 분명 즐거운 이야기일텐데.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제는 추억에만 남겨져있는 그때 그 시간이 무척이나 그립다.
" 마지막 날에 가게 아저씨한테 갔더니 공짜로 아이스크림 하나 주시더라. 지금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너가 없을때도 자주 찾아갔었거든. "
골목길의 가게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없어지고 다른 가게로 바뀌어버렸다.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던 그때 그곳에서 달달한 무언가를 사먹는 것이 조그마한 낙이었는데 없어진다고 하니 얼마나 아쉬웠는지. 마치 너와의 추억이 송두리채로 없어지는 기분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너를 추억할 수 있는 곳이 점점 없어질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너는 지금 내 눈앞에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좋은게 아닐까.
" 네 옆에 내가 있으니까 슬퍼하지마. 이젠 서로를 지켜줄 수 있게 되었잖아. "
손을 뻗어서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며 얘기한다. 서로가 떨어져있을때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때도 서로가 곁에 있었다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완벽하게 막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조금의 의지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 그리고 옛날이랑 키는 많이 안변했는데 말이야. "
큭큭대며 얘기하고선 케이크를 다시 한 입 먹는다. 어쩐지 씁쓸한 맛이 좀 더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씁쓸함을 감싸주는 달콤함이 곧 올 것을 알기에 그것마저 즐겁다.
"하지만 보통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의 편을 드는 이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말해줘서 감사해요."
분명하게 감사를 다시 하면서 하늘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가 다시 위로 올렸다. 명찰색도 그렇고, 선배임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뭔가 요즘은 선배들과 되게 많이 얽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음소리를 풋 내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러다가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두 손을 크게 휘저으면서 이야기했다.
"아니! 방금 그건 비웃거나 그런게 아니라요!! 그냥 요즘 이유는 모르겠는데 선배들과 뭔가 얽히는 일이 많아서!! 그러니까 선배를 비웃거나 한건 아니에요! 절대로!"
꽤 당황했는지 목소리 톤이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 입술을 꾹 닫은 후에 창피함에 붉게 물든 얼굴을 괜히 두 손으로 강하게 탁탁 두 번 친 후에야 하늘은 겨우 페이스를 되찾으며 다시 민규를 바라봤다. 그 와중에 자신에게 내민 사탕을 바라보며 하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두 눈을 깜빡이며 사탕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미소를 지으며 사탕을 받았다.
"딱히 당이 떨어진 건 아니지만 준다면 고맙게 받을게요. 2학년 1반, 강하늘이라고 해요. 피아노..연주를 하고 있어요. 오늘도 음악실을 아무도 안 쓴다고 해서. 조금 트러블이 생겼지만 그래도 잘 해결되었으니. 조금 쉬었다가 치러 가봐야겠어요."
그러는 선배는 어떻게 되나요? 물론 명찰을 보면 이름이야 알 수 있었으나, 그래도 이런 것은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게 좋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민규의 답을 기다렸다.
불꽃놀이... 음, 와글와글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다같이 불꽃놀이를 보려고 하는데 둘만 은밀하게 손을 잡고서 보는거야 😎 그리고 불꽃놀이가 하이라이트로 향하면서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을 때, 슬쩍 입을 맞춰주고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불꽃놀이가 끝나는 걸 바라보는거지. 그리곤 다들 해산할 때 슬쩍 둘이 빠져서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며 동네 한바퀴..
>>892 머리를 맞은 영향으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농담이고.. 밤산책 새슬.... 거의 90% 확률로 다크새슬일 것인디 ㅇ(-(.... 그치만 간혹 기분 좋은 날에는 기본적으로 낮과 다름이 없읍니다 밤이지만 역시나 나무도 타고 담벼락도 웃 < 이 자세 하고 걸을 것이고 가끔 길고양이 구경도 하고.. 따라다닐 사람의 기력이 조금 걱정되는 밤산책입니다 불꽃놀이 새슬.... 나무 꼭대기 같은 데에서 볼 거라는 뇌내망상이 있읍니다.. 나뭇가지랑 나뭇잎 헤치느라 흐트러진 꼴로 머리에 나뭇잎 하나씩 붙이고 멍하니 불꽃 터지는 거 바라보다가 눈 마주치고 웃기.. 같은..... ㅇ)-(
>>899 안아올려주는 거 왤케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그 뒤에서 아 뭐야 진짜 보기 좋게 -///- 하는 역할 하겠읍니다.... 얘들아 너희 짱 귀엽다!!!! >>906 새슬주 덕분에 행복해졌어..... 웃 < 이라니 너무 귀엽잖아 ㅠ 제 기력이 뭐가 중요합니까 세상 끝까지 따라갈게..... 나뭇잎 붙이고 웃어주는 새슬이랑 눈 마주치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거죠 나 이거 알아 ㅠ
>>914 🤔🤔🤔🤔🤔🤔🤔🤔🤔 사실 호감도, 질투하는 정도에 따라 나뉘는데... 별로 안친하면 전혀 신경 안쓰고, 그냥 아는 사이정도로 친하면 그때그때 아쉬운점을 말하긴 하는데 많이 친하거나 가까운 사이거나 하면 처음엔 '뭐 그냥 그런가보다'하다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점점 신뢰도나 호감도가 깎여나가는 느낌! 그러다가 결국 삐지게 되면 집에 콕 틀어박혀서 고양이만 끌어안는다! (글쎄: ...나를 놓아주어라, 캔따개여.)
게다가 아는 사람 편 드는 게 좋은 것도 아니고, 덧붙였다. 하늘이 갑자기 웃다가, 당황하는 걸 보자, 최민규 자신도 작게 웃었을까. 생각보다 착한 애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선배들하고 많이 엮이는 게 웃을 일인가? 하는 짤막한 의문이 남긴 했지만 말이다. 아마 계속 비슷한 일이 반복되어서 웃긴 것이라 짐작했다. 굴러다니는 낙엽에도 웃을 나이 -최민규는 이 순간에 강하늘과 자신이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니까.
"비웃는다고 생각한 적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얼굴 빨개진 걸 부러 모른 척 해주느라 고개를 모로 돌렸다. 이러면 더 부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하늘을 바라봤지만 말이다. 대신 말을 돌렸다.
"걔랑 무슨 사이였는지 물어봐도 돼?"
하나 확실한 건, 음악실 복도에서 정다운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남학생이 하늘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정도. 당이 떨어진 게 아니라면 다행이다. 최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하늘이 사탕을 먹는다면, 사탕은 생각보다 달고, 끈적거릴 것이다. 안에 레몬맛 잼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중학생 때 조금 이런저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냥 그 관련으로요. 조금 동아리 관련으로 민폐를 끼쳤거든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 관련은 조금 복잡하네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제 잘못이에요. ...그래도 그때 일로 계속 시비가 걸리는 건 역시 싫네요."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자세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세한 것을 말해봐야 상대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TMI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말 한 마디로 뭔가가 바뀌는 것은 또 싫었으니까. 고자질을 한다는 느낌도 들기도 하고. 복잡한 결과물 속에서 하늘의 선택은 얼버무린다였다.
방금 받은 사탕을 먹을까 했지만 하늘은 우선 그 사탕은 나중에 먹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3학년 선배가 있는데, 사탕을 냉큼 무는 것도 실례되는 행위였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물음에 하늘은 고개를 갸웃하며 민규를 바라봤다. 구경하고 싶다는 이야기에 하늘은 이번에는 소리 없이 웃었다.
"최근 피아노 연주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3학년이네요. 선배도 포함해서 말이에요. 좋아요. 듣고 싶다면 얼마든지요. 그래도 아직 가야할 길이 먼 사람이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이어 하늘은 주머니에서 교사에게 받은 열쇠를 꺼냈다. 닫혀있던 음악실 문이 열리고, 하늘은 가볍게 손을 털며 안으로 들어섰다. 능숙하게 의자를 뺀 후, 피아노 앞에 앉으며 하늘은 눈을 감고 가볍게 두 손으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치며, 반대로 음을 내렸다. 몇 번 더 음을 잡은 후, 손가락을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다 제대로 자세를 잡으니 그 모습이 연주에 꽤 익숙한 모습이었다.
문득 무방비하다는 소릴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무르다는 말이었나. 둘 다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마음으로 했던 말일까. 저야 연호가 눈에 익었지만, 연호는 오늘 저를 처음 본 게 아니던가. 도대체 제 뭘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 거라곤 비타민 냉큼 받아먹은 것밖에 없는데.
"화 쌓아두면 속병 나. 화 내도 되니까 싫어하지만 마."
싫다고 하면 안 싫다고 할 때까지 쫓아다녀야지. 계속 따라다니면서 미안하다고 하면 질려서라도 그만 싫어하겠지. 연호는 모를 생각을 하며 히죽 웃는다. 그러다 더 싫어할 거라는 선택지는 없는 사람 같다. 제게 없는 건 생각 못 해서 그렇다.
"왜? 이건 작잖아."
자꾸 그런 반응이라 재밌는 거라니까. 사하가 새끼손가락을 연호 가까이 들이댄다. 귀신이 낼 법한 으스스한 소리도 내보는데, 대충 들어선 그냥 뭔지 모를 소음이다. 근데 왜 자꾸 좋은 사람이래. 진짜 좋은 사람이 뭔지 보여주고 싶게. 근데 진짜 좋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상상력 빈약한 사하는 머릿속에서 계속 과자만 쌓아준다. 머리만 쏙 나오게. 연호의 키만큼. 결국 의뭉스러운 웃음과 함께 어깨 으쓱이곤 넘긴다. 판정할 권리는 다시 연호에게로 넘어갔다.
"옥상에서 하는 과자파티네."
꽤 재밌어보이는 계획이다. 눈동자 위로 흥미롭다는 기색이 어룽거린다. 나 고3인데 이렇게 놀아도 괜찮은가? ……몰라, 정 안 되면 밤 새워. 고개를 끄덕인다. 과자파티 하자는 뜻이다.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
사하의 미간이 좁아진다. 둘 다 아주 어릴 때 이후로는 당해본 적 없다. 입 다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너 편한 거?> 내놓는 대답은 어김없이 우유부단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