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패치를 안 붙인다고 해도, 그냥 감정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게 전부잖아요. 물론 그런 행동들이 증후군 보유자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긴 하지만, 증후군 그 자체가 사람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못 들었는데." "늑대 증후군자에게 패치가 배급되지 않는 건 언제나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번 케이스는 그 특성상 상황의 심각성이 더 커. 신체강화 계통의 케이스이긴 한데, 근육이나 골조직 같은 게 활성화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중추신경이 과활성화되는 케이스거든." "중추신경이 과활성화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뉴런을 통과하는 전기신호들의 처리속도와 처리량이 비정상적으로 폭증해서, 시간이 훨씬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온 세상이 슬로우모션 비디오가 되는 거야." "어, 그러면, 지금까지 이 학생은.. 집에 마련해둔 지하실에 자기를 묶어놓고 버텼다고 했잖아요. 약 이틀 정도의 만월 기간 동안." "그렇지." "그리고 만월 기간 동안에는 자신의 늑대 증후군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고 하셨죠." "그래.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면, 그 학생이 지하실에서 느꼈을 체감 시간은 이틀보다 더 길었을 수도 있다는......?" "네가 생각한 게 맞아. 잘 유추했어." "얼마나 길게 느꼈대요...?"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때마다 다르지만 보통 체감시간상으로는 두 달 정도래." "그런, 그건, 잠깐만요... 지금까지 이 학생한테는 초등학교 때부터 행정상 누락사항 때문에 패치가 지급되지 않았잖아요. 그러면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매달마다......?"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지. 고등학교 1학년 여름즈음 해서 어떤 양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어서, 약 7~8개월 동안은 충분한 케어를 받았다는 모양이지만... 그 관계가 작년 말에 끝났고, 그 외에는 딱히 다른 양과 충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단서가 없으니까. 그 때 이후로 보름달이 뜰 때마다 이 친구는 체감시간상 두 달 정도에 육박하는 독방형을 정기적으로 받았다는 거야."
서류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과 멀리 떨어져있는 한 주택의 지하실에서, 하얀 머리 소년은 지하실 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창고로 쓰였었던 것 같은 지하실의 풍경을 그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는 갈증을 고스란히 느껴가면서. 이틀 동안 채워지지 않는 기아를 참아가면서. 혼자서 어두운 지하실 안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뎌가면서. 그것을 매 달마다 두 달씩... ...고독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을걸?"
소년은 무릎을 쭈그리고 앉아, 주먹만한 사슬마디를 쥐고 들어올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기관에서 이 특이 케이스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거고, 우리가 그 학생을 케어할 필요가 있다는 거야. 패치가 제대로 지급되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정신적 피해가 남아있지는 않은지. 돌발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등등."
손이 머리에 닿자 눈을 꼭 감는 게 유순해 보여. 지금은 무서운 늑대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강아지 같다. 조금 더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는데,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빨리 떼는 게 좋겠지.
별 것 아냐. 덧붙이지만, 그 말이 별 것 아닌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살짝 눈치 챘다구. 여전히 검은 채로 죽어있지만, 네가 조금은 더 익숙해졌다고 말하는 것 같은 문하의 눈을 보며 방긋 미소 지었다.
“ 답례를 바라고 한 건 아닌데에, 보답하려구~? ”
애교 있는 말투로 재잘대며 평소와 같은 얼굴로 빵긋 웃는다. 정말로 답례를 바라고 챙겨준 건 아니니까. 그냥 아무도 유인물을 전해주지 않는 게 신경이 쓰여서 그때부터 챙기기 시작한 거다. 아랑은 조금 전에 문하의 바르고 남은 밴드와 연고도 보스턴백의 근처에 놓아두었다. 이것도 챙겨야지. 하야.
“ 난 잘 알아, 과자. ”
신제품이 나오는 족족 사먹어 보니까, 뭐가 맛있고 뭐가 맛없는지 잘 알지이. 추천... 아랑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잘 모르면 일단 이거 저거 먹여봐야 하나...?
“ 잠깐 기다려 줄래? ”
아랑은 간식 가방에서 이런 저런 작은 과자들을 꺼내와 문하의 책상 빈 공간에 늘어놓았다. 미니쉘 다크베리맛이랑, 오트밀 미니 바이트랑, 청포도 사탕이랑.. 최신 과자랑 스테디 셀러가 이리 저리 섞인다. 흠, 포장할 게 있나? 은근 보부상 타입이라 필요한 건 다 있는 가방에서, 접힌 손수건을 꺼낸다. 그것을 펼치더니 과자들과 사탕을 넣어 그럴싸하게 포장했다. 파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묶여진 리본의 형태가 귀여워 만족했다. 아랑은 문하에게 포장된 것을 선물처럼 내민다.
“ 이거 받아, 다 추천하는 거야~ ”
<2안> 손이 머리에 닿자 눈을 꼭 감는 게 유순해 보여. 지금은 무서운 늑대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강아지 같다. 조금 더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는데,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빨리 떼는 게 좋겠지.
별 것 아냐. 덧붙이지만, 그 말이 별 것 아닌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살짝 눈치 챘다구. 여전히 검은 채로 죽어있지만, 네가 조금은 더 익숙해졌다고 말하는 것 같은 문하의 눈을 보며 방긋 미소 지었다.
“ 답례를 바라고 한 건 아닌데에, 보답하려구~? ”
애교 있는 말투로 재잘대며 평소와 같은 얼굴로 빵긋 웃는다. 정말로 답례를 바라고 챙겨준 건 아니니까. 그냥 아무도 유인물을 전해주지 않는 게 신경이 쓰여서 그때부터 챙기기 시작한 거다. 아랑은 조금 전에 문하의 바르고 남은 밴드와 연고도 보스턴백의 근처에 놓아두었다. 이것도 챙겨야지. 하야.
“ 난 잘 알아, 과자. ”
신제품이 나오는 족족 사먹어 보니까, 뭐가 맛있고 뭐가 맛없는지 잘 알지이. 추천... 아랑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잘 모르면 일단 이거 저거 먹여봐야 하나...?
이번엔 동요네. 그럼 답장은 서양권의 동요로 하자. 금아랑은 가장 유명한 노래 중에 하나인 반짝 반짝 작은 별의 가사를 프린트로 뽑았다. 그렇다, 약간은 철저히 숨기자고 생각한 아랑의 – who – 쪽지는 프린트 된 내용을 적당한 크기의 쪽지에 붙여 선물과 함께 비랑의 책상에 놓아두었던 것이다.
세 번째 선물로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이었지만, 예쁜 노랫 소리가 담긴 usb를 선물 받고서 아랑은 도저히 답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았으니, 정성이 담긴 선물로 되돌려 주자. 그리하여 아랑은 가장 자신 있는 디저트를 구웠다. 애플파이. 엄마가 좋아해서 가장 많이 구워본 디저트야.
*
그렇게 마니또 역할을 수행하고 아랑에게 작은 고민이 생긴 것이다. who는 미스테리어스하고 신비한 느낌(...) 이 살짝 드는데, 날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실망시키는 게 걱정이 되지만 너무 기다리게 하기도 좀 그래. 아랑은 매일 조금씩이라는 기분으로 용기를 적립했다. 마니또가 끝난 지 일주일이 되는 시점의 쉬는 시간에 비랑의 책상에 그립톡 하나를 올려두며 “Hello, Little Star?” 방긋 웃는 얼굴로 별사탕 같은 인사를 건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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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진짜... 비랑이가 시 적어놓은 줄 알았슴다.. (쭈글) 야생화 가사라고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ㅎㅁㅎ 가장 큰 마니또 힌트는 별사탕이었어요. 제가 돌리는 일상에서 종종 아랑이 목소리를 별사탕 같다고 묘사하거든요! 사실... 비랑이랑 이벤트 레스 주고 받으면서 깜짝 상자 열어보는 것처럼 놀랐답니다! 항상... 생각도 못한 답변이 왔거든요 ㅎㅁㅎ 사실.. 쫌 눈치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눈치 못 채신 거 같아서 기뻐요! >:3 감사해요!
난 오히려 수박씨가 매번 내 취향에 맞는 선물을 해줘서 신기하단 거야. 조금만 기쁜 거야~? 조금보다 더 많이 기뻐해줘도 좋은데~ (*´꒳`*)
그래서 우산도 선물해 준거야? 내일 비 온다면 수박씨가 준 우산을 쓸게! 그렇구나, 수박씨 덕에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 오늘 자기 전에 마셔볼게~
수박씨 덕에 마니또 기간 동안 매일매일 즐거웠어! 상냥한 수박씨 기분도 조금 따뜻해졌다면 그건 기쁜 일이지.
p.s. 꼼꼼히 골라본 거지만, 전부 다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 p.s. 커플 핸드크림이란 어감도, 더블 핸드크림이란 어감도 귀여워서 난 맘에 들어! 이걸로 둘이 하나 세트란 거지? (*・ω・)ω<*)
와, 수박씨도 커플 아이템같단 생각을 쪼꼼 했나봐. 하지만 뒤에 덧붙여준 더블 핸드크림도 어감이 귀여워서 맘에 들었다. 어떡하지 수박씨, 무해하게 상냥한 느낌인데다 귀엽기까지 하네에... 아랑은 약간의 곤란함을 느꼈다. 문장 너머로도 무해한 상냥함과 귀여움이 느껴지는데, 실제로 만나면 대체 어떤 느낌을 받게 되는 거지...? 요정님이라는 느낌까지 받는 거 아니야...?
그러나 그건 만나봐야 알 게 되는 사실일테니, 미리 짐작하진 말자. 아랑은 오늘분의 선물(수박씨가 선물해줬던 것과 같은 핸드크림을 새로 사서 포장했다.) 위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교문 아래에 놓아두었다. 수박씨과 선물을 놓아둔 곳과 같은 위치다.
응, 만나는 금요일이 기대 되네.
아랑은 수박씨를 만나서 직접 줄 선물은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뭐로 하지? 마음 같아선 머리핀을 주고 싶은데, 그건 좀 호불호가 갈리는 선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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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한테 주고 싶은 그립톡이 있는데 그건 민규랑 만나는 일상에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ㅇ.< 민규(주)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민규는 아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까요...? (알겠지...?) 마니또가 된 후로 물어물어 2-1반 찾아가서 몰래 슬쩍 아랑이 얼굴 봤을 것 같은데... (또 금명한이 될 것 같다..) 한번만 보고 갔을지 여러 번 보고 갔을지 모르겠는 것입니다.. <:3 (궁금) 마니또 기간 동안 아랑이와 아랑주를 즐겁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민규주 ㅎㅁㅎ!
아랑은 마니또로 들떠 있는 학교를 보다가 정말 우연히, 보통 이런 행사 때 주최 측의 최고 권위자는 행사의 대상에서 빠지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회장이란 이유로 마니또에서 빠지는 건 좀... 좀 그런데. 선생님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학생들의 많은 일을 돌봐주는 사람인데 – 가끔 땡땡이도 친다고 들었지만, 그건 그 사람 나름의 완급조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 회장이란 이유로 마니또 선물을 못 받는 건 좀 그래.
우연히라도 이미 한 번 떠올라버린 생각이고, 이미 쓰여 버린 신경이다. 그래서 아랑은 회장에게 줄 마니또 선물을 준비했다. 원래 이건 익명으로 받는 게 좋으니까. 나인 게 티가 안 나는 게 좋겠지. 아랑은 최대한 정중한 문투로 글을 시작했다.
<익명의 K가 온지구 회장님께.
마니또로 들떠 있는 학교를 보다가 문득 회장이란 이유로 마니또에서 빠져 있지 않은지 아주 조금 걱정이 들었습니다.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회장님은 인기 많아 보이니까요.) 항상 힘내란 말은 당연히 하지 않겠지만... 이따금 도토리...>
나 왜 도토리라고 적었지? 거기서 멈칫한 아랑이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털었다. 다람쥐 같이 구는 게 익숙하고, 그런 취급을 받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있는데. 한... 대학생쯤 되면 버려야 할 습관이지.
금아랑은 다시 처음부터 글을 적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정중한 글투로 완성이 되었다. 음, 이제 오빠한테 가져가서 글씨를 옮겨 적어달라고 해야 할까? 하다가 학생회장이 모든 학생의 글씨체를 알 것 같지는 않아서 관두었다. 마니또 선물이 최소 3개니까 거기서 하나 더해 4개쯤 준비하면 되겠지.
*
새벽같이 일어나 가장 일찍 3-1의 교실 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온지구’ 라는 이름을 찾아서 사물한 안에 차곡차곡 선물을 넣어두었다.
+ 중일담은 뭔가 이상해서 전일담으로 ㅎㅁㅎ.... 가장 큰 힌트는 익명의 “K” 라고 생각했는데, 지구주 답레 보니까 초콜릿(아랑이 페로몬향) 묻은 빼빼로도 힌트였나..? >:ㅁ 싶었던 거예요 ㅋㅋㅋㅋ 최대한 숨긴다고 했는데, 힌트는 익명의 K 딱 하나만 뿌려보았습니다. 음, 지구가 마니또 선물 많이 받아서 흐뭇하더라고요. 항상 감사합니다, 캡틴! ㅇ.<
++전일&후일담 레스는 위키에 올리진 말아주세요... 왜냐면 기력 다한 아랑주가 너무 힘들어서 맞춤법 검사기 못 돌렸어요... (흑흑) 그리고 너무 이벤트 뇌절해서 부끄러워요.... ㅇ<-< (이벤트 300% 즐겨버린자의 말로...)
둘 다 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니 퍽퍽하게 굴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선하는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듯 금세 심드렁한 얼굴을 했다. 이 주제에 관심 없음을 노골적으로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칭찬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무례한 사람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늘. 이름 예쁘다."
일차적으로 떠오른 감상을 뱉는다. 선하는 잠시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듯 싶더니 기대어 있던 몸을 바로 섰다. 선하를 둘러싼 공기는 여전히 가벼웠다. 선하가 느릿하게 덧붙였다. "응원은 고맙게 생각할게. 대학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 기분은 좋아졌네. 너도 잘 해봐. 대학이든, 대회든 뭐든." 헤 벌려진 입이 옆으로 찢어진다.
선하의 시선이 잠시 하늘을 향한다. 지금껏 한 곡 쳤나? 내가 너무 말을 많이 걸었을지도 모르지. 평소였다면 신경쓰지 않을 걱정이었다. 한결 풀어진 마음이 선하를 너그럽게 만든다. "계속 쳐도 좋아." 선하는 느릿한 걸음걸이로 자리로 돌아갔다. 관객석에 자리잡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문하가 새슬을 오롯이 바라보고 있을 때. 새슬도 마찬가지로 문하를 마주했다. 그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 따위는 이미 거먼 그늘에 잠겨 보이지 않게 된 지 오래였으나, 비추이고 있다는 것만은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눈동자에 소년이 똑같이 비추이고 있다는 것도. 오가는 시선에는 쓸쓸함과 퍽 비슷한 것들이 담겨 있어서, 괜히 작은 숨마저도 죽여야 할 것 같았다. 사부작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던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소년이었다. 갈 수 있겠어? 나직한 물음. 새슬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말갛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듯. 꾸며낸 것을 내세우는 것은 오래 전부터 특기였다.
“…그러자.”
분명히 새슬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마땅히 떨어져야만 하는 발걸음을 붙잡고 늘어지는, 가슴 한 켠에 들어찬 무거운 존재를. 하지만 둘 중에 누군가는 먼저 종결을 고해야만 한다. 잔인하게도. 잠시 주춤하던 새슬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슬 섞인 밤 공기가 찼지만, 제 몸을 두른 것들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온기를 소중히 새기듯 품으면서. 느릿한 걸음이 딱 처마 아래까지 왔을 때, 새슬이 몸을 돌려 문하를 향했다. 있잖아.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옷도 돌려 줘야 하니까. 그치. 그것은 차라리 발악이요, 작은 불씨를 향한 처절한 발버둥침이었다. 그리고, 문하에게 건넨다기보다 오히려 스스로를 향해 거는 주문같은 것에 가깝기도 했다. 얼어 죽기 직전 잠깐 온기를 맛본 이는 무서울 정도로 다시 그것을 원하게 만드는 법. 그 집착에 가까운 것을 최대한 누르고, 난도질해서, 아주 조그맣고 사소한 바람처럼 보이게 만들어 내어놓은 것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까? 진짜로? 어쩐지 계속해서 생각을 거듭할수록 눈을 마주치는 게 힘들어져서, 새슬의 시선이 천천히 두 사람의 발치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