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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기만 하는 정도라면. 버림받아 비루먹은 늑대의 외로움은 양들의 외로움과 그 결이 거의 같다. 그래서 이 순간, 문하는 우연히도 새슬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공원에는 정자가 있었다. 스쳐지나가면서 곁눈질로 봤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비를 피하러 온 사람은 문하와 새슬뿐인 듯했다. 새슬의 뒤를 따라, 까만 우산이 까마귀 날개 접듯이 접힌다. 물을 훌훌 털어낸 문하는 정자로 들어오다가, 어디쯤에 앉으면 좋을지 몰라 잠깐 허둥거렸다. 다행히도 새슬이 자리를 짚어준 덕에, 문하는 새슬이 짚어준 자리에 별 이의를 표하지 않고 그곳에 앉았다. 확실히 봄 소나기치곤 무겁게 내린다. 이 소나기가 개이고 나면 새슬의 말마따나 이 세상의 계절이 여름으로 바뀔 모양이다. 자신만을 겨울에 남겨둔 채로. 상관없다. 꽤 오래 전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문하는 자리에 걸터앉으며 새슬을 잠깐 바라보고는, 새슬의 시선이 향하는 처마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만 역시 새슬의 옷이 체온을 뺏을 것이 신경쓰였던지 문하는 보스턴백에서 수건을 다시 꺼내기 위해 가방으로 시선을 내리며 지퍼를 쥐었다. 새슬의 질문이 날아들어온 게 그 때였다. 문하는 손을 멈추고 다시 새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새슬의 시선은 다시 앞으로 돌아갔으나, 문하의 까맣게 죽은 눈은 새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몇 초 정도, 침묵.
"그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제서야 문하도 새슬을 따라, 처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래줄 수 있어."
새슬의 체온을 앗아가고 있는 옷만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여기서 영영 비가 그치지 않는 것도 괜찮을 성싶었다. 문하는 가방을 마저 열어서는 수건을 꺼내 새슬의 무릎에 덮어주었다. 춘추복을 입을 시기라 블레이저를 옷장 속에 처박아둔 게 못내 후회됐다.
홍현의 대답을 토대로 보면 따로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문제는 먹을 약이 바닥으로 쏟아진 것이다. 이러한 초조함을 일단은 드러내지 않고 괜찮냐는 질문에 선선히 대답하며 둥글게 모은 손아귀를 플라스틱 약통으로 가져간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투과되는 남색 머리칼, 빗질을 한지 시간이 흐른 듯 흩어진 머리. 그리고 하얀 가운.
"먹어야 하는데 다 떨어져서 어쩌지."
바닥 위로 떨어진 약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는 섣불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늘어뜨린 눈썹 끝으로 미안함을 표현했다. 섞여 있는 약도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지만 문제가 된다면 어느 정도는 배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본인이 먹는 억제제와 꼭 닮은 약을 약통 안에 톡 넣었다. 아무래도 다른 학년인 것 같은데 과학실험부인가?
"가운인 것 같은데 부 활동이라도 하고 오는 거야? 아니면 보건실에 갔다왔나."
약 받으러. 여자는 겉옷을 걸치는 시늉을 하며 홍현이 바깥에 걸친 가운을 가리킨다. 전에 과학실에서 실험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웃으며 중학교 때나 봤던 것 같은데, 하고 덧붙였다.
저리 가라는 얘기에 지구는 짧게 웃음을 흘리며 사하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이려 했다. 가란다고 가고 오란다고 오면 그건 개지. 나는 아무 개나 안 해. 그리고 넌 물리지 않은 게 다행이지. 생각은 머리를 스쳐갈 뿐이다.
"위험하다니까."
자꾸 사고쳐. 어디 요주 인물 기록부에 이름이라도 적어 놔야 마음 편할까 싶다. 무방비를 핑계로 재미를 얻는 사고뭉치가 어디있나 했는데 눈앞에 있는 거고. 그런 말을 뱉는 사하는 또 너무 즐거워 보여서 괜히 한숨을 뱉었다. 어차피 백번 말해도 이백 번 듣지 않을 걸 알아서 괜한 오지랖 부리기 싫다가도 사하가 철없게 구는 모습을 보면 괜히 제 여동생들이 생각나 자꾸만 언질을 하게 된다. 제멋대로 구는 인간을 제어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기가 센 편은 아니라 신경을 끄는 게 맞는데. 지구는 뒷목을 쓸어내리며 눈을 얕게 찌푸렸다.
"앞으로 평생 그렇게 불러라."
비굴하게 구는 사하의 모습이 퍽 안 어울리기도 해서, 지구는 터져나오는 웃음에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 큭큭 웃다가 말을 마저 뱉고는 한칸 아래에 있는 사하를 내버려두고 얼마남지 않은 칸을 저 혼자 밟고 올라간다. 그야 학생회실은 2층에 있었으니까. 당연하게도 금방 도착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칠칠치 못한 사하를 데려다 줄 생각이었으나 저렇게까지 싫다고 하니까. 절이라도 시켰으면 꽤 귀여웠을 것도 같은데 지나가는 학생들의 오해를 풀 자신이 없다. 업혔다가 계단에서 우당탕탕 구르기도 싫고.
"먼저 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대충 흔들던 지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가.. 아. 그러고보니 결국 그녀 덕분에 한 대도 태우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구겨진 표정으로 홀로 마른 세수를 했다. 지금이라도 가자니 너무 늦었다. 뒷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한숨을 쉬는 지구가 학생회실 쪽으로 힘없이 향한다.
//막레로 치셔도 되고 막레 주셔도 됩니다! 너무너무 길어지고 늦어져서 죄송해요 사하주 ㅠ▽ㅠ그치만 사하랑 땡땡이 칠 수 있어서 너무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