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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말을 내뱉은 시아는 천천히 숨을 고른다. 헤어지고 나서 홀로 시간을 보낼 때의 시아 역시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고 외로웠다. 하지만 그 속에서 몇번이고 자신을 타일렀고, 슬혜를 이해하려 했었다. 완벽하게 그것을 이뤄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서 슬혜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했다. 말하고나선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씁쓸한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 자신의 손길을 슬혜는 피하지 않았고, 잠깐 놀랄 뿐 얌전히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느끼는 듯 어두워져가는 얼굴을 상냥한 시선으로 응시해줄 뿐이었다. 역시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좀 더 예뻐졌다. 이젠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되어간다는 의미겠지.
"... 아니야, 슬혜야. 아니야. "
눈가를 붉힌 체로 조심스럽게 말해오는 슬헤를 조용히 지켜본다. 억지로 눈물을 참아내는 듯한 슬혜가 혀를 내밀어 자신의 눈물자국을 훑어줄 때에는 정말로 행복한 듯 눈을 감았다 뜨며 밝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하지만 고개를 살짝 저어보이곤 부드럽게 슬혜의 목을 두팔로 감싸안는다. 언제 이랬었던가.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다시 한번 해줄 수 있던 포옹을 해주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 슬혜는 나에게 부족한 사람도 아니고, 초라한 사람도 아니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도 너는 나에게 한줄기 빛이나 다름 없었어. 너를 한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 오히려 널 동경하고, 애정하고, 가까워지고 싶었고.. 그래서 용기를 내서 고백했었어. "
기억나? 내가 고백했던거.
가까워진 슬혜의 얼굴을 마주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덧붙인 시아는 후후 하는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수줍게 네 손을 잡고 고백했던 그 시절의 둘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 지금도 마찬가지야, 슬혜야. 너는 언제나 빛이었고, 나에게 분에 넘치는 사람이었어. 언제나 네 곁에 있는 것이 나라서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래서 헤어지자던 널 강하게 붙잡을 수 없었어. 내가 너와 다르게 정말 초라하고, 가치가 없어서 네가 떠나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네가 날 떠나야 행복한다면 붙잡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 "
천천히 뺨을 맞댄 시아가 상냥하게 뺨을 부비적대며 속삭였고, 천천히 부비적대던 볼을 떼어내곤 얼굴을 마주한 후에 곱게 눈을 접어 웃어보였지.
" 이제 다시 나를 봐도 돼. 너는 나에 있어 초라한 사람도, 어두운 사람도 아니야. 너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 아이니까.. 내가 더 노력하려 했고, 더 잘하려고 애썼어. 결국 내 노력이 부족해서, 네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버렸고...그래서 더 미안해. "
천천히 손을 움직여 슬혜의 부드러운 뒷머리를 매만져주던 시아는 가벼이 슬혜의 입술에, 촉촉해진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어. 절대로 슬혜는 가치가 없는게 아니라는 듯,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듯 시아는 부드럽게 눈을 마주한 체 바라보았다.
" ... 내가 부족해서 그랬던거야, 결국. 그때 이렇게 네게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라도 제대로 말해주고 싶어. "
달콤해보이는 초콜릿이지만 물고 나면 가득한 칠리소스가 입안을 덮쳐오는 것일까? 아마 맵고도, 짜겠지만, 그래도 재미있겠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이기도 할테고. 새로운 충격이자, 새로운 경험일 것이다. 그런 것 또한. 주원은 뭐든 최대한 즐겁게 받아들이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쑤, 쑥맥이고 아니고 그런건 관계 없어!"
주원은 입을 비죽이며 "비겁하다. 그걸 언급하다니." 하곤 뾰로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얼마든지 반대로 똑같은 얘길, 할 수 있을리 없지 않은가. 남주원이. 그저 골려주는대로 당하며 얼굴을 붉히는 수 밖에. 그게 싫다는건 아니었지만.
"글쎄, 한 번만 먹이라는 법은 없잖아."
나름 그럴듯하게 말한다. 슬혜는 또냐고 말하면서도 마냥 싫은 것은 아닌지 생글거리며 못이기는 얼굴로 덥썩 아이스크림을 문다. 그 모습을 보고 "헤헤." 하고 기쁘게 웃는 주원. 이어 슬혜는 거의 두 세 숟가락으로 퍼야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양을 퍼 주원의 입에 갖다댄다.
"어, 어어?"
하고 당황해하면서도 주원은 입을 "아앙" 하고 잔뜩 벌린 뒤 간신히 그 아이스크림의 산을 한입에 담아낸다. 많은 양 만큼의 달콤새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크으으-"
머리가 띵 울리는 차가움과 함께 그 새콤달콤부드러운 맛을 즐기고 있는데, 숟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보니 슬혜가 잔뜩 인상을 쓰곤 숟가락을 물고 있었다.
"푸흡... 헐 하흔허야 하하하하하핫!"
아직 입안에 채 다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는데도, 그런 슬혜의 얼굴을 보곤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켈록거리며 가슴을 쿵쿵 쳐 그 차가운 덩어리들을 어떻게든 삼켜내곤 지지 않겠다는 듯 슬혜의 숟가락이 거두어지기 전에 그녀와 똑같이 숟가락을 입으로 물곤 그녀와 똑같이 잔뜩 인상을 쓴 얼굴로 시선을 마주했다.
힘없이 밀어내는 손길에도 끝끝내 문하는 짧은 머리를 한 소녀의 어깨에 저지를 걸쳐주고 말았다.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을 행동인데. 거절당하거나 밀려나는 일에는 아주 익숙했기에, 보통이라면 괜찮다는 말 한 마디에 순순히 비켜나주었을 텐데. 지금의 자신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문하는 의문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무던히 애썼다. 왜인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버려서, 라는 생각에 도달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는 게 두려웠다. 자신의 처지마저 추한 꼬락서니마저 잊고 또 누군가에게 달려들어버릴 것 같아서. 곪은 상처투성이의 추한 떠돌이개가 함부로 꼬리를 치며 다가가봤자 날아들 것은 돌팔매밖에 없다. 평소에는 그런 추한 몰골마저 누구한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거리를 두고 사는 문하였기에.
그러니까, 이건 쓸데없는 변덕이라고, 문득 자기와 전혀 연관없던 자상함이라는 감정이 자신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끼어든 것이라고 문하는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생각 뒤에 숨는 게 편했다. 그래서 문하는 뭐라도 둘러대려고 입을 열어보려 했다-
"빗속에 혼자 둘 수는 없잖아."
...웃기지도 않은 변명이다. 정작 자기 자신도 좌초한 채로 빗속을 허우적거리며 헤매는 꼬락서니라는 것은 별다르지 않은데. 그래서 문하는 새슬이 자기 이름을 꺼내준 게 차라리 반가웠다.
<음... 난 이번 주 금요일이 편할 거 같은데, 수박씨가 시간이 안 되면 다음 주에 봐도 좋아~!
난 항상 내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하는 수박씨가 매일매일 조금씩 더 신기해지고 있는걸. 나도, 신호등 같다는 생각을 했어! 통했네! (*´꒳`*)
맞아, 콜라나 탄산은 미지근하면 맛이 없어져 버려. 젤리 귀엽다! 수박씨 생각나는 리본은 더 귀엽구!
p.s. 그럼 다음 선물은 수박씨가 선물한 향이 없는 핸드크림으로 할까? 그럼 우리는 같은 핸드크림을 가지게 되는 거지. ╰(*´︶`*)╯♡ p.s.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을 이용할게! 오늘도 고마워, 수박씨! >
어떻게 빨간 리본에 점을 찍는다는 생각을 했을까? 빨간 리본을 붙들고 점을 콕콕콕 찍고 있을 수박씨가 귀여웠다. 젤리와 젤리를 묶은 리본을 흐뭇한 듯 기쁘게 바라보다가 이번에 제가 준비한 선물을 놓아둔다. 이번 답례는 미니쉘이다. 로투스비스킷맛, 딸기맛, 아몬드맛, 시리얼맛. ‘네가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니 전부 다 준비해봤어~!’ 라는 느낌도 들어서 쪽지와 함께 놓아둔 선물을 본 금아랑이 꺄르륵 웃는 소리를 냈다.
까드득, 얇은 양철 뚜껑이 열리는 소리. 새콤달콤한 액체를 야금야금 홀짝이던 새슬이 빙그레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아ㅡ들켰네. 어떻게 알았담. 못 보던 잔상처가 새슬의 팔뚝에, 허벅지에, 무릎에 스치듯 지나간 자국을 그려내긴 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소처럼 내버려두지 않고 콜라가 선물했던 연고와 반창고로 나름 제대로 처치를 해 놓았다는 점일까. 미안, 다치긴 했지만 잘 치료했으니까 몰래 넘어가 주라아ㅡ. 듣지 못 할 중얼거림을 능청스런 웃음과 함께 흘린다.
[ 헤ㅡ 나는 중간고사 기간이라도 피곤할 일 없는데. 공부 안 하거든 ( ᐛ ) 실망했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전과목 0점이라도 도전해 볼까 생각 중이야. 듣기론 100점 맞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던데, 글쎄에. 재밌을 것 같지. 콜라도 같이 할래? ]
물음표를 막 그려낸 후에, 새슬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그리곤 밑에 서툴게 무언가를 그려넣는다. 팔다리가 달린 콜라캔(콜라캔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점은 원통에 ‘콜라’라고 적힌 게 전부였지만)과, 작은 탁상 위에 놓여 있는 꽃병. 그림 주변에 크게 동그라미를 치고는, ‘너’ 하고 적어넣는 것이다.
그리곤 딱지 모양으로 곱게 접어 비타민 음료가 놓여 있던 곳에 다시 올려놓고는, 새슬은 다시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ㅡ
프X글스, 칠리치즈 맛. 익숙한 통에 그려져 있는 수염아저씨 캐릭터를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통을 흔들면 사각사각하게 울리는 소리가 재미있다. 그러고 보니 콜라에게서 받은 선물은 거진 먹을 것 뿐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꾸준히 관리를 해야 하거나, 쉽게 망가지거나, 사용하기에 번거로운 것들은 손이 잘 가지 않았으니.
[ 맛있다ㅡ ( ᐛ ) 짜고, 고소하고, 살짝 매콤해. ]
거기까지 적어 놓고, 새슬이 입술을 비죽거리며 펜을 툭툭 두드렸다. 아니, 이거.. 좋은 감상평이라고 할 수 있나?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적어 놓고도 미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거창하게 묘사하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는 새슬이었다. 음ㅡ 뭐 어때!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다시금 펜 끝을 종이 위에 내려놓는다.
[ 나 이런 건 잘 못해. 맛있는 건 맛있는 거. 그래도 나름 맛있었다고 표현한 거니까, 봐 주라ㅡ. 그리고 나 먹을 거 좋아해. 콜라가 주는 거 다 잘 먹고 있으니까. 고마워. ]
투박하게 접힌 쪽지는, 늘 그래왔듯 선물이 놓여있던 곳에 다시 조심스레 놓인다. 새슬의 웃는 얼굴이 닫힌 사물함 틈새로 사라지고, 가볍게 뛰어가는 발걸음 소리만이 남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에 도착해서 학생회실로 들어오니 샌드위치가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있는채로 놓여있었다. 이것도 설마 마니또의 선물인걸까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보니 역시나 마니또의 쪽지와 함께 놓여있었다. 허어, 마지막날까지도 이렇게 챙겨주다니. 부학회장이라서 잘 보이려는걸까 싶기도 했지만 내가 뭐가 되는 사람도 아닌데 그럴리가 없지. 샌드위치의 내용물은 알차게 들어있었고 양도 꽤나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나 밖에 없는데. 내가 집에 가져가서 저녁으로 먹어버릴까 싶었지만 같이 먹으라고 준거니까 그럴 수는 없지.
[선착순으로 학생회실에 오는 사람들한테 샌드위치 나눠준다.]
학생회 인원들이 들어와있는 단톡방에 그렇게 전송해둔 나는 하나를 꺼내서 한입 크게 물었다. 오 맛있어, 버터쿠키는 태워먹더니 샌드위치는 꽤나 잘 만들었네 같은 무례한 생각이나 하면서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단톡을 보고 온 학생회 인원들이 한두명씩 오고 있었다. 오는 순서대로 만들어진 샌드위치를 나누어주고, 마지막 하나까지 나누어주고서 선착순 끝! 이라는 메세지를 보낸다. 못보고 뒤늦게 온 친구들한테는 주머니의 사탕을 주면서 보냈고.
- 샌드위치 잘 먹었어요. 지금까지 준건 다 맘에 들었어요, 특히나 만년필. 소중히 사용할께요.
커피는 결국 못먹고 버렸지만 그런건 모를테니까 굳이 적지 않는다. 내가 못먹는걸 알고 보내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리고 못먹는걸 강제로 먹는 것을 상대방도 바라지 않을꺼라고 생각 ... 아니, 일부러 엿먹으라고 보낸건가 설마?
그가 그의 상처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피부 위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황량한 바람뿐. 그가 통각에 둔감해진 것에는 특별한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런 조그맣고 대수롭잖은 상처 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한 치명적이고 거대한- 평생을 안고 가게 될지도 모를 상처가 가슴 깊숙한 곳에 고통스레 남아있었기에. 자잘한 고통에 둔감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랑이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에 대해 문하가 조금 이상하다고 여기는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문하는 아랑이 잠깐 기다리라는 말에 그대로 그 자리에서 별 저항 않고 순순히 자세를 낮춘 채로 아랑을 기다려주었다.
다만 반창고를 붙여줘도 되냐는 아랑의 제안은 뜻밖이었기에, 문하는 괜찮겠냐는 듯 아랑을 새까만 눈동자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경계하는 것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랑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자기 상처를 너무 가까이에서 보여주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컷팅 몇 개로 저렇게 걱정하는 애한테, 그 친절함에 취해버려서 바보처럼 숨기고 있던 상처까지 보여줘버리게 될까 봐.
늑대는,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대한 팔팔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무리에서 쫓겨나버리니까. 사실, 진작에 무리에서 쫓겨나 외톨이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늑대의 본능적 프라이드는 남아있는 것이다.
문하는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하나만 입 다물고, 멍청한 생각 하지 않으면 돼. 그는 눈을 감고 아랑의 손길에 얼굴을 내맡겼다. 딱히 아프거나 하는 기색은 없는지, 약을 바르는데도 문하는 얼굴근육 하나 미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생각보다 반창고를 좀 많이 붙이네.
"너한테 날아올 일 없잖아."
권투종목 특기생은 아랑이 아니고 자신이었으니까. 어두운 나날들로 걸어들어가는 것은 아랑이 아니고 자신이었으니까. 아랑이 조심스레 손을 떼자, 문하는 자연스레 한 발짝 물러섰다. 그야, 피부 위로 고통은 안 느껴져도, 아랑의 손이 갈수록 떨리는 것은 느낄 수 있었으니까. 아닌 척해도 꺼림칙하겠지. 당연한 일이다. 자기 처지는 자기가 잘 알았다.
"고마워."
반창고투성이 얼굴이라도 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처투성이보단 나아보인다. 문하의 트레이너가 옆에 있었다면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어떤 닥터도, 자신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고. 반창고가 붙은 얼굴을 매만져보던 문하가 자기 책상을 한번 흘끔 바라보더니 아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137 흑흑 친절해(꼬옥) 좋아요 화력에 휩쓸리기 쉬운 우리 스레지만 그래도 파이팅 파이팅
다들 프롬파티 이야길 하고 계시는군요... 새슬이는 도저히 드레스를 갖춰입고 파티에 서성거리는 게 상상이 안 가는 것... ㅇ)-(.... 대충 평소의 세일러복 차림으로 옥상이나 뒷뜰 한켠에서 음식이랑 무알콜 샴페인같은 거 한 잔 가져다가 야금거리면서 농땡이 칠 것 같은데... ^.^....!!!!!
조심스레 손가락을 뻗어 다육이 잎 끝을 톡, 건드렸다. 잎 안 쪽도 만져보려다가 말았다. 식물은 사람 체온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댔지. 조금 거리를 둬야 하는 걸까. 다행히도 최민규는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햇볕에 잘 드는 창가에 두고, 가끔 잎을 닦아주고. 물을 언제 주었더라, 가물댈 쯤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학교에 화분을 계속 두면 분명 언젠가 사고가 나겠지. 누가 화분을 엎거나, 하다못해 잎 하나가 똑하고 떨어져버릴 수도 있다. 결국 최민규는 오늘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집에 가기로 했다. 양 손에 작은 화분을 소중히 들고, 조심조심.
'저는 햇볕을 좋아해요. 햇볔이 잘 드는 창가에 놓아주세요.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아파요. 잎이 말랑해지면 흠뻑 물을 주세요. 적당한 관심을 주면 기쁠 거예요.'
펜을 들고 답장을 썼다.
[같이 기다리는 거면, 너도 아직 겨울인 걸까. 그래. 혼자보다 둘이 기다리는 게 더 즐겁겠지.
그동안 고마웠어. 나중에 정체를 안 뒤에 만나게 되면, 꼭 고맙다고 직접 말해주고 싶네.
그리고 다육이 이름은 펭귄으로 지으려고.]
팻말처럼 말풍선 스티커를 창문 근처 벽에 붙이고, 그 아래 선반 위에 화분을 뒀다. 여기가 제일 햇볕이 잘 들어왔었지, 아마.
매직을 꺼내 화분 옆면에 '펭귄'이라 서툴게 적었다. 한동안 최민규의 최근 검색이 '다육이', '다육이 기르는 법' 등으로 도배될 것이 틀림없었다.
"늑대는,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대한 팔팔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무리에서 쫓겨나버리니까."
TMI) 이 습성은 체코슬로바키아 늑대개에게도 있는 습성이야. 그래서 수의사들 사이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늑대개는 최악으로 꼽혀. 병에 걸려서 골골대도 골골댄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기 때문에, 우연히 진단을 했다가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게 아니면 병이 더이상 숨기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고 나서야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하거든.
억지로 잊으라고 한 주제에 정작 자신은 잊지 못했다니, 그녀는 스스로의 무능함과 미련을 저주했다.
애써 떨어뜨리고나서의 일곱밤, 그리고 해가 돌아 다시 이곳에, 마음을 정리하는동안 자신에 대한 것도 정리할만하거늘, 완전히 내려놓진 않은 건지 당신이 다시금 손을 뻗어오자 그녀는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까맣고 긴 비단을 흐트려놓은듯한 머리카락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갈색빛의 눈동자도, 가느다란 팔다리와 뺨에 어린 풋풋한 분홍빛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그때는 억지로 피했던 얼굴을 다시 마주해보면, 어째서 이런 사람에게 손을 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가녀리면서도 아름다웠다.
...뒤늦게나마 그녀 역시 당신이 품었던 생각을 쫒는것 같았다. 이미 늦은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왜인지 모르게 당신이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밝은 미소와 함께 자신을 끌어안듯 목에 팔을 두르자 그녀 역시 당신의 행동을 따르듯 조금 뻣뻣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것조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어 다행스러우면서도 한켠으론 아쉬웠을까, 그래도 그녀는 그저 당신이기만 하면 그걸로 만족한다는듯 부드럽게 자신쪽으로 끌어당겼다.
"기억 못할 리가 있겠나요..."
아마 집에 돌아가자마자 오늘이 무슨 중대한 날이었는지 달력을 미친듯이 훑어보았을 것이다. 결국 찾은 거라곤 미팅날짜만 가득 적한 비지니스캘린더였지만 그녀는 그날을 제법 소중하게 여겼었다. '기념일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
당신에게서 들려온 말은 오히려 무언가를 돌려받는 느낌이었다. 분에 넘치는 사람, 차마 욕심내어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귀했던 사람,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옆에 두어선 안되는 사람... 오히려 자신이 그런 느낌을 받고 살아왔노라 말하고 싶어도 굳이 꺼내지 않았다. 다만, 마찬가지였다는듯 조금 애잔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을 바라보았을까?
천천히 뺨을 맞대고, 상냥하게 부비적대던 그녀의 얼굴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눈을 접어 웃어보이는 당신을 바로 볼수 있었다.
"미안하고 죄송스러운건... 저도 마찬가지인걸요..."
살랑살랑, 자신의 뒷머리를 매만지는 손길 그러다가도 가볍게 입술이 맞닿자 저도 모를 찌릿한 느낌에 움찔거렸는지 당신을 안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저도, 부족했으니까요... 마주할 용기도, 사실을 말할만큼의 배짱도 없어서... 그리고 이쯤 되면 알겠지, 같은 무책임한 생각만 해서..."
제법 가까워진 거리인만큼 그녀는 서로의 코끝을 건드리듯 톡톡 부딪히다가도 살살 쓸어보기도 하고, 다시 짧게 입을 맞추다가도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듯, 체취를 다시금 기억해내려는듯 당신의 목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그것이 어째 다리에 몸을 부비며 자신의 소유임을 나타내려는듯한 고양이들의 행동과 다를게 없어 스스로가 우스웠지만, 이젠 구태여 거리를 벌릴 필요도 없었기에 장난스럽게 당신의 목덜미를 물어보기도 했다.
빗 속에 혼자 둘 수는 없었다고 둘러대는 작은 변명에, 새슬이 조그맣게 키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게ㅡ. 덕분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되었네. 고마워. 말하는 도중 새슬의 안색이 아주 미묘하게 변했으나, 금방 나른하게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아주 찰나의 순간. 뚫어져라 새슬의 얼굴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할 빠른 변화였다.
“멋진 이름이야.”
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이름을 나지막히 입술에 담아 본다. 새슬은 특이하지만 퍽 근사한 이름이라고 어렴풋한 감상을 남겼다. 어떨 땐 기쁨의 소리로, 혹은 탄식의 소리로, 수만 가지의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한 글자를 이름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억하기 쉽다. 머릿 속으로 몇 번 더 하, 문하, 하고 이름을 되새긴 새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비가 그치면, 여름이 올까.”
흐릿 잿빛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름의 하늘을 떠올렸다. 높고 푸르른 창공, 뭉게구름. 새파란 녹음 같은 것들을. 그런 것들을 눈 앞에 두고 여름의 냄새를 만끽하다 보면 마음 한 켠이 그나마도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새슬은 여름이 좋았다. 중간에 걸린 장마와 태풍은 견뎌내어야 할 지독한 시련이었지만. 새슬이 다시 물었다.
목을 끌어안으며 몸을 가까이하자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는 슬혜의 손길이 느껴진다. 어색하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자신의 몸을 감싸안는 슬혜의 감촉이라서 한순간 아찔함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더 힘을 주어 슬혜의 목을 감싸안고 몸을 밀착시켰다. 지금 느껴지는 슬혜의 온기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슬혜의 대답에, 한순간 목을 감싸안고 있던 시아의 눈이 커지고 순간 조용히 내쉬던 숨이 멈춘다. 몇초간의 정적, 그러다 기쁜 듯 슬혜에게 들뜬 목소리로 속삭이며 뒷머리를 사랑스럽다는 듯 쓸어내려준다. 정말로 따스하고 기쁜 일이다. 자신만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는 확신과 그 증거를 얻게 되니 혼자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뺨을 맞대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은 듯 부비적거리던 시아는 천천히 떨어져선, 자신의 웃는 얼굴을 제대로 슬혜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 이해해.. 나도 무서웠으니까, 혹시라도 널 만나면 제대로 내 마음을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무서웠으니까.. 그런 생각을 한 건 다 이해할 수 있어. "
코를 톡톡 부딪혀오는 슬혜에게 답례를 하듯 똑같이 따라서 톡톡 코를 부딪히고, 부비적대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한번 입을 맞춰오는 슬혜가 조금이라도 더 기분이 좋아지도록 열렬히 호응하면서 점점 희미해가던 슬혜의 체취를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겨넣는다. 이토록 달콤했었지. 시아는 그렇게 아찔할정도로 달콤한 슬혜의 향을 되새기다가 자신의 목에 얼굴을 묻어오는 감촉에 자신도 모르게 귀여운 소리를 흘린다.
" 슬혜...야앗.."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오는 슬혜에게, 상대방의 기분이 들뜰 수 있게 하는 법을 아는 듯 귀여운 소리를 한번 더 흘리며 슬혜의 팔 사이로 팔을 밀어넣어 끌어안고는 몸을 더욱 밀착시킨다.
" ... 다시 봐줄거야? 이젠 슬혜 옆에 있어도 괜찮은거야, 나..? "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슬혜의 말을 듣던 시아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기울이곤 입술을 겹친다. 그리곤 어리광을 부리듯 슬혜의 아랫입술을 혀 끝으로 훑어주곤 오물거리다 떨어진다. 두사람의 호흡이 그대로 서로에게 바로 와닿는 거리에서 눈을 마주한 시아가 천천히 손으로 슬혜의 등을 쓸어내리며 반짝이는 눈동자를 고정시킨 체로 속삭인다.
눈 앞의 슬혜가 늑대가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왠지 이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는지, 어리광을 부렸던 아랫입술에 한번 더 쪽하고 입술을 맞춰주곤 소곤소곤 속삭인다. 이미 두사람이 있는 빈교실은 두사람만의 공간이 되었음에도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이고 마는 시아는 수줍은 소녀 같았다.
가볍게 말하지만 주원의 인생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설령 어떤 맛이라고 해도, 그 맛을 깊이 느끼고 즐긴 만큼 다른 맛 또한 깊게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 한가지 맛만 추구하다보면 언젠가 질리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니 주원은 다가오는 모든 인생의 맛을 즐기기로 한 것이었다. 그의 인생관이 저 한 마디로 슬혜에게 전달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 아무튼! 그건... 그 머시기... 그 머시기 협약에 위반되는 것으로오오..."
말도 안되는 변명을 머릿속에서 지어내며 말해보지만, 그녀의 환하게 웃는 얼굴에 이제 변명은 어찌되든 상관 없는지 함께 미소짓는다. 서로 장난스럽게 장난으로 슬쩍 깨물고, 놓고, 어지럽히고. 친구들은 많았고, 친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이런 경험은, 주원에겐 처음이었다. 친구와 함께할 때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즐거움. 단순히 즐거움이 아닌 좀 더 간지럽고 웃음이 나오는 그런 경험. 그것은 슬혜의 어떤 단편적인 한 부분에서만 느낀 것이 아닌, 지금까지 본 그녀의 모든 부분에서 느낀 것이겠지.
이렇게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걸어오는 장난 하나 하나가 크고 작은 깜짝 선물처럼 느껴져왔다. 그리고 그 내용물이 어떻던, 전달 방식이 어떻던, 감정은 최종적으로 '행복한 웃음'에 다다르는 그런 선물. 함께 있어주겠다고 한 건 자신인데, 어째서 반대로 선물을 받고 있는 것인지.
슬혜가 입으로 무언가 소리를 내며 어서 숟가락을 놓으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주원은 거기에 "으으으으음!"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젓는 것으로 지지 않겠다는, 먼저 놓지 않겠다는 응전의 의사를 보였다. 거기서 슬혜는 치사하게도 손가락의 손잡이를 홱 놓아버린다. 숟가락을 쥐고있던 슬혜의 손에 어느정도 몸을 기대고 있던 탓에 갑작스레 그 힘이 사라지자 주원은 그만 자신이 쥔 숟가락을 놓아버림과 동시에 슬혜쪽으로 고꾸라져버렸다.
뭐라 말하려다가 문하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까딱 잘못하면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았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뭔가 달라질 것도 없다느니, 내게 여름은 오지 않을 거라느니. 그런 말 같은 것을 할 수는 없다. 쓸데없이 상처 자랑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문하는 품위있게, 데면데면한 척을 하기로 했다.
"그러냐."
하고, 개구리 소리를 찬미하는 활기차고 감성있는 반문에 참 무뚝뚝하기 그지없는-어찌보면 그다운 대답을 툭 내놓은 문하는, 스트레칭 운운 하는 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스트레칭은 남들 하는 만큼만 하는 정도야... 스트레칭 잘 하는 사람은 컨토셔니스트."
컨토 어쩌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문하의 전공 종목이 스트레칭이나 체조가 아닌 것은 분명해졌다. 사실, 문하의 전공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홀쭉한 체형에 어울리지 않도록 딱 벌어진 어깨와 발달된 광배근과 승모근, 그리고 마디가 두드러져서는 보스턴 백 끈을 잡고 있는 주먹이 평평하고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 십중팔구 격투기, 그것도 주먹을 아주 많이 쓰는 격투기겠지. 복싱.
혼자 산다는 말에, 문하는 규리를 흘끗 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아버지를 따라와 사는데, 아버지는 원양어선 기관사라 일 년에 한두 달 정도만 집에 얼굴을 비추기 때문이다.
"동물..." 문하는 규리의 말을 되뇌어보았다. "아니, 딱히."
문하는 동물과 그렇게 친하지 못했다. 남들이 동네서 하루에 두어 번은 마주칠 법한 길고양이도 이상하게 문하가 지나갈 때만 아예 발자국 소리를 듣고 피해버리기에 길고양이 한 번 본 일이 없었고, 개 근처를 지나가면 아무리 얌전하던 개도 갑자기 불안해하며 짖어대거나 숫제 어디에 고개를 처박고 낑낑대는 게 다수였다. 그것도, 자신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역할이려니 하고 문하는 그러려니 여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살갑게 다가오는 존재라는 것은 대단히 독특한 것이었다.
>>172 문하 내면에 있을 거 같은 이미지 아녜요...? :Q (문하주 : (절레)) 문하 반응이 생각보다 담담해서 안심했는데... (우리집 대럼쥐가 또....) (내가 이 대럼쥐를 어쩌면 좋을까) 문하 내면에 좀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삽살말티즈 강아지가 있는데, 상처줄까봐 무섭단 거예요... <:Q....
>>196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안 보이게 체코슬로바키아 늑대개로 포장 한군데도 안 삐져나오게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아챈것이지 당신? 눈썰미가 아주좋은걸? 아랑이가 하고 싶은 대로 둬봐. 나도 문하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힌트라던가 팁이라던가 잘 던져주려 노력할게.
>>198 아니아니 이런 시니컬한 분위기가 새슬이 매력이라 너무 좋습니다 좋은데 그냥 문하주가 쫄보라. (쭈글)
제가 누군진 중요한게 아니니까요. 그저 팬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제가 바라는 것은 저를 알아주는 것이 아닌, 당신이 피아노를 치는데 조금이나마 더 힘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만화는 좋아하시나요? 혹시 쉬실 때 읽어주세요. 저도 읽어봤는데 피아노와 관련된, 아주 좋은 만화에요.
자신을 숨기고 싶어하는 듯한 메시지라고 하늘은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았으나, 역시 그런 인상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이 마니또의 자유였고, 자신이 뭐라고 할 자격은 없었기에 하늘은 그냥 조용히 메시지를 조금 곱씹을 뿐이었다.
피아노의 숲이라면 자신도 알고 있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이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그런 만화라고는 들은 적이 있으나 직접 보진 못한 작품이었다. 물론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하늘은 만화를 좋아하는 부류였다. 방 한 쪽에 놓여있는 원XX라던가, 카XX야 님은 XXXX 싶어 라던가. 전권은 아니었으나 몇 권 꽂혀있는 것을 떠올리며 하늘은 가만히 쿠폰을 바라봤다. 전권을 다 볼 수 있는 전자책 쿠폰이라니. 설마 마니또에게 이런 것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하늘은 괜히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이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으나, 마치 후원자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하늘은 쿠폰을 조용히 챙겼다.
-그렇게 많이 쉬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혹시 쉬거나 할 때 꼭 볼게요.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볼테니까 어쩌면 다 읽는데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는 봐줄 수 있겠죠? -저는 팬이라고 하는 이에게 이런 것을 받아본 적은 없어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기분은 좋네요. 고마워요. 누군진 모를 마니또님.
아마 만나는 것은 힘들겠거니 생각을 하며 하늘은 그저 만날 일 없는 누군가 정도로 인식하기로 했다. 상대가 저렇게 말을 하는데 억지로 만나달라고 할 순 없었으니까. 그 대신, 깔끔한 글씨가 남아있는 메모장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도넛 6개 한 세트를 그 자리에 남겨뒀다. 좋아할진 모르겠으나, 다양한 맛으로 샀으니 저 중 하나는 있을 거라고 믿으며.
/아이고. 갱신하면서 하나하나 답변 작성한다! 일단 다들 안녕안녕!! 정식으로 레스 쓰는 건 일단 다 쓰고 할게! 그때까진 스루하게 될 것 같아서 미안해!!
>>205 (섬뜩해진 가슴 가라앉힘...) 좋게 받아들여주신다면 저야 고저 다행이조... 흑흑...88 그래도 얘가 너무 다크해지는데요... 얘 원래 이런 앤가요...? >:0 스러워진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기.. 저도 문하 넘 좋읍니다... ㅇ)-( 외로운 한 마리의 늑대인것이여
>>207 ㅋ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상상만 해도 넘 귀여운데 미안하다...(찔끔) 그치만 그렇게 인정머리없는 사람은 아닐것입니다... 힘들어보이면 숨도 중간에 멈춰서 힘도 좀 고르고..... 도착할 때 즈음엔 체력소모를 상당히 했다는 건 변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래도....(쭈글)
당신의 피아노가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그것에 자신만을 담는것이 아닌, 타인이나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부분 또한 강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그 영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하늘은 조용히 메시지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들었단 말인가. 애초에 이 학교에서 자신이 피아노를 치고, 피아노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는 이는 몇이나 될까? 자신이 다른 이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다른 이들 역시 '자신'을 몰라야 하건만, 자신은 모르나, 상대는 아는 사태라도 벌어진 것일까. 괜히 표정을 찌푸리며 하늘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뚫어져라 메시지를 바라보나 도저히 누가 썼는지 감도 잡히지 않아 입술만 삐죽 내밀었다.
"너무 미화받는 것 같은데.'
타인이나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이 느끼는 분위기, 자신이 연주하고자 하는 것을 피아노로 표현할 뿐이었으니까. 허나 가만히 또 생각해보면 그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분위기는 결국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타인이나 삶, 혹은 풍경 등에서 받는 것이었으니까. 참으로 날카로운 부분을 콕 찌르는 듯한 그 메시지는 그저 평범하게 연주를 듣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인상을 하늘에게 주었다.
"그렇다면 내 다음 연주는 당신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까."
작게 소리내어 웃으면서 하늘은 눈을 감고 그 메시지 속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했다. 가벼움이 아니라 진지하게 쓰는 느낌. 사실 정말로 그럴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냥 적당히, 가볍게 쓰는 것일지도 모르고 자신이 너무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결국 그런 것은 주관적이고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며 하늘은 눈을 떴다.
-이미 본 작품이긴 하지만, 장소나 올라가는 이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게 뮤지컬이니 꼭 보러 갈게요. -당신이 준 이 티켓 너머에는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도 될까요? -바로 쓰진 않겠지만, 이렇게 선물을 줬으니 꼭 쓸게요. 또 다시 고마워요. -하지만 이 티켓. 비싸지 않았어요? 그건 조금 미안하네요. -그러니까 저도 제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당신에게 줄게요.
티켓 3장을 자신이 혼자서 다 쓸 순 없었다. 가족과 쓸지, 아니면 친구들과 같지는 조금 생각해보기로 하며 하늘은 티켓 3장을 확실히 챙기며 위와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 메모장과 그 옆에는 분홍색 향초를 남겨두었다. 불을 붙이면 복숭아 향이 은은하게 풍겼을 것이다.
네가 눈을 감고 내게 얼굴을 내맡기는 데에도 사실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늑대가 드물게 사람에게 얼굴을 맡기는 듯도 해 손이 더 떨렸을 수도 있겠다.
왜냐면, 상처 입히기 싫거든.
아프다는 내색이 전혀 없어서 통각에 무뎌진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섣부른 추측은 아무래도 금물이지.
-너한테 날아올 일 없잖아.
링 위의 펀치는 날아올 일 없어도, 다른 종류의 폭력은 찾아올 수도 있지. 자연스레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에서 내가 뭘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를 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 나... 네가 꺼려져서 떠는 게 아니었는데.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난 네가 꺼려지거나 무서운 게 아니고... 상처 자국이 좀 무서운 거야. 그으러니까아.... ”
트라우마를 말하는 것도 싫은데, 오해를 사는 것도 싫다! 금아랑 내적 자아가 끄아악 비명 소리를 냈지만, 금아랑은 말을 멈추진 않았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을까?
“ 나한테 있던 상처가 떠올라서, 손이 떨렸어. 이제 겉으로 남은 자국이 없는데도... 난 왜 여전히... ”
“ 겁에 질려 떠는 날이 있는 걸까, ” 한숨 같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 나 혹시 겁쟁이로 보이니? ” 라고 조심스레 묻기도 했다. 겁쟁이라고 고하고 나선 떨리던 손이 오히려 멈추었다. 금아랑이 겁쟁이라. 아마 평소처럼 빵긋빵긋 웃으며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았다면 떠올리기 어려운 이미지일 수도 있겠고, 가끔 교실이든 밖에서든 큰 소리나 천둥소리가 들리면 놀란 다람쥐처럼 눈을 크게 떴다가 몸을 아주 살짝 웅크리는 모습을 보았다면 떠올리기 쉬운 이미지일 수도 있겠지.
금아랑은 문하에게 양이라고 밝히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겁쟁이인 면은 밝히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클래스 메이트는 눈으로 만든 사람 같아서, 잘못 만지면 와르르 부서질까 걱정되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오해를 사면 큰일 날 것 같았다.
“ 으응. ”
고맙다는 말에는 솔직히 기뻐하는 얼굴로 방긋 웃었다. 상처투성이 얼굴보다는 반창고투성이 얼굴이 조금 더 나았고, 고맙다는 말에 내포된 건 아마 반창고랑 연고를 챙겨주면 가져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
지금까지, 너였어? 라고 묻는 말에는 잠시 눈을 댕그랗게 떴지만, 몇 번 깜박거리다가 이내 반달처럼 접힌다.
“ ...나였다고 밝혀도 되는 시점이겠지이? ”
밝혀진 이상 아닌 척할 생각은 없었다. 평소처럼 별사탕 같은 목소리로 애교 있게 대답하고는 문하와 책상 위 유인물을 번갈아 보았다.
오늘이 마니또 마지막 날이네요. 사실 이 선물은 마니또가 시작하고 마지막 날에 드려야지 하고 꼭 생각하고 있던 선물이에요. 대단한건 아닙니다만. 아무튼, 아마 마니또가 끝나고 나면 당신은 절 알 수도, 알지 못할 수도 있겠죠. 하나 말씀드리면, 저를 찾지 말아 주세요. 제가 누구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저 지금의, 그리고 언젠가 더 많아질 당신의 팬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당신이라면 이런 것 없이도 충분히 꿈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여러 사람이 당신을 응원하고 있어요. 부디 당신이 진정 이루려 하시는 바를 언젠가 꼭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선물은, 당신의 꿈을 위한 '계속'에 보탬이 될 거예요. 매일 사용해주세요. 다 쓰신 뒤엔 직접 구해서라도 계속 사용해주시길. 피아니스트에게 손은 생명이니까요
"이렇게 대놓고 대면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면 아무리 나라도 조금 고민하게 되는데 말이야."
자신의 자리에 앉아 하늘은 가만히 메시지를 바라봤다. 오늘은 굉장히 긴 격려문이었다. 누구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 많아질 당신의 팬 중 한 명이다. 그렇다면 그 팬 하나하나는 그저 의미없는 객체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하늘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모두를 상대할 순 없어도 그 하나하나는 최대한 기억하고 싶은 존재들이었고, 원래라면 자신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이였다. 세상에는 자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피아노를 잘 치는 이들이 많았고, 정말로 훌륭한 연주를 듣고 싶다면 '늑대'를 찾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따져보면 자신에게 팬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로서는 잘 와닿지 않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이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저도 모르게 오른쪽 뺨을 꼬집어보나 아픔이 느껴져 오른쪽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며 하늘은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다른 것은 그저 그렇게 받아들여도 하나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에게 이런저런 격려를 하는 존재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다.
-당신이 저를 어떻게 볼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허나 저는 이런 것이 없어도 충분히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도, 당신이 말하는 정말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 팬들의 눈에는 제가 어떻게 비치는걸까요?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이와는 달라요. 그런 이들이 존재하기에 이런 것이 있기에, 오늘도 피아노를 칠 수 있어요. -누구보다 높은 곳으로, 누구보다 반짝이는 곳으로. -그 모든 것을 목표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신 같은 이가 있었으니, 당신의 격려문도, 저를 어릴 적부터 격려해준 이들도 모두 의미없는 것처럼, 그런 것이 없어도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피아노도, 다른 연주도 들어주는 이가 있고, 그것을 좋아해주는 이가 있고,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이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혼자서 치는 연주는 그저 자신 만족이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위안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을 거고, 조용히 입 다물며 지내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그 생각만은 부정하게 해주세요. -마지막이기에 다시는 메시지를 받지 못할 오늘이기에, 저도 마지막 정도는 당신이 좋아한다는 그걸 보낼게요.
메시지 위에 남겨져있는 것은 작은 USB 하나였다. 조 히사이시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렇기에 하늘은 그 곡 중 하나를 자신이 연주해보기로 했다.
누군지 모를 당신은, 메시지 만으로 촉촉하게 마음을 적시다가 아련하게 사라져버리는 비 같은 존재. 그런 당신에게는 역시 이 곡이 제일 어울리겠지. 물론 그건 내 생각일 뿐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느끼는 그 분위기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었기에.
USB에 담겨있는 곡을 마음에 들어하길 바라며, 하늘은 그 자리를 떴다. 찾지 않길 바라는 상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과 메시지였다. 설사 자신이 아는 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입에서 더 이상 그 말을 더 꺼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자신 역시 비처럼 사라질 뿐이었다.
>>197 다음에 봐요! >:3 (상냥한 도서부 언니랑 만나고 싶다) 경아가 돌리는 일상 기대 되요 :>
>>201 (포풍 쓰다듬 받기) 해인주는 참 부지런한 새럼인 거예요! (멋 있 어!) 일상.. 부지런히 돌리시는 모습이 항상 멋있다고 생각해써요 ㅇ.<
>>202 그것은... 손이 비어있을 때나 가능하지 말임다! 안녕 시아주 <:3 (슬혜랑 일상 나중에 복습해야지!) 망사랑 너모 맛있는 선관 같아요...
>>203 지금 돌아가는 일상 중에... 달달한 게 있었어요....? (레스 쓰느라 바빠서 못 봄...) 뭐야 나도 같이 봐요... 8ㅁ8
>>204 새슬주도 쫀 저녁~~~ <:3 맛난 거 먹어요!! 잡담 읽고 쪼금 궁금해진 게 있는데... <:Q 새슬이의 다크한 부분... 비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건가요...?
>>205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또 신나서 적폐해석짤 가져와 버리는 데요... <:Q (눈사람짤 가져옴) 혼자 있어 외로워 보이고 흙도 묻어 있는 쟈근 눈으로 만든 사람짤... 헉... (진짜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면 큰일날 거 같은데요...) (동공지진) 힌트와 팁 감사합니다.. 필요한 거예요.. (훌찌락)
>>212 주접도 일상도 동시에 하는 슬혜주 멋져! (그짤이 있는데 생각이 안남..) 힘내요...8ㅁ8 (지뢰 밭을 뛰어다니는 아랑이 봄) (두가지맛 사이를 뛰어야 하는 슬혜 봄) (도담도담)
>>216 어ㅏ... (와...) 선물 여러개 올리는 정성이 넘 멋져요... 하늘주 좋은 저녁! >:3 어서오세요!
>>1-1000 오신분들 어서오시고... 아랑주는 저녁먹고 좀 느지막하게 올게요~~ 다들 저녁 잘 챙겨드세요~~~!
눈치를 챘을까, 채지 못했을까, 새슬의 안색이 변하는 것과 문하의 시선이 다시 앞에 놓인 빗길로 돌아가는 게 거의 동시였기에, 그가 새슬의 안색의 변화를 캐치했을지 캐치하지 않았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새슬이 키득거리는 소리는 피할 수 없기에, 문하는 앞으로 두었던 시선을 숫제 새슬과 반대방향으로 비스듬히 돌렸다. 역시 서툰 변명이었나 보다. 조금 머쓱했기에, 눈이 흔들리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잠깐 동안만 딴청을 피면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가 다시 시선을 되돌리려 했다.
그러나 시선을 되돌리다가, 새슬이 던진 뜻밖의 말에 문하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그는 눈을 반쯤 감으며 한 호흡 늦게 대답했다.
"...이상하네, 너."
그는 전부터 자신의 이름을 퍽 성의없다고 생각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 그는 문학적 상상력이 그렇게 좋지는 못한 편이었으니까. 새슬이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새슬처럼 다른 사람의 이름을 곱게 풀어서 마음에 새길 줄도 몰랐고. 그가 남의 이름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텍스트 그대로 자신의 마음속에 새겨놓는 것이었다. 최민규 선배님. 강해인 선배님. 하늘. 비랑이. 아랑이. 규리. 오늘 새로 새길 이름. 새슬.
"유새슬."
한번 불러보고는 기억하는 것. 이빨 사이로 산들바람처럼 스치는 이름을 대하는 방식이 그에겐 그것뿐이었다. 그러다, 그 처음으로 이름을 새긴 소녀가 던져온 질문에 문하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어떻게, 오늘 이름을 안 사이인데 질문이 이렇게 매정하냐.
문하는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좋아해. 여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잖아. 싫어해. 여름은 눅눅해서 별로. 그런데 머리가 고민하는 사이 혓바닥이 사고를 쳤다.
"내 여름은 작년에 끝났어."──빠아아아아아앙─────
무심코 뱉어놓고, 문하의 표정에 아차, 하는 등골 싸늘한 경악이 스쳐지나간다. 타이밍 좋게도, 빗길에 뭐가 미끄러졌는지 다른 차가 눈치없이 끼어들기라도 했는지 트럭이 성마른 고함을 와락 지르고 있었다. 이 고함소리에 내 말소리가 묻혔을까. 어느덧 우산은 교문을 지나 거리로 나오고 있었고, 다행히, 말을 돌릴 화제가 있다.
좋아. 위키에 옮기기도 끝났어. 그.. 아무래도 빠르게 답변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일단 마니또가 선물을 보내고도 답변 올라오지 않는 것에 되게 시무룩했을 것 같아서 일단 기차에서 보고 최대한 전개를 생각하고 정말 빠르게 쓰고 옮기고 하다보니 스루 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정말로 미안해.
하지만 벌써 저녁 7시잖아. 주말에 바빠서 활동도 못했는데 이런거라도 빨리 해야지!
아무튼 제대로 안녕안녕이다!! 그러니까 난 착석! 일상? 돌릴 이 있을까? 있으면 찔러주면 좋긴 한데 멀티하면서까지 하는 것은 별로 원하지 않아서.. 일상 돌리는 이들은 그냥 스루해도 상관없음이다!
아. 그리고 하늘이의 마니또인 누군가. 하늘이는 그렇게 요청했으니 아마 마니또를 찾으려고 하진 않을거야. 하지만 오너인 나는 추리해도 되는거 맞지? (간절)
혹여라도 도경아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를 찾을 일이 있거든, 도서실로 가보라. 이건 산들고에 재학하는 학생이나 재직 중인 선생님이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그만큼 경아가 도서실에 있는 풍경은 당연하다. 도서실에 책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책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것만큼이나, 그 소녀는 종이로 만든 숲 사이에 어울린다. 그 자체로 하나의 나무인 것마냥.
오늘도 해는 동쪽에서 뜨고, 경아는 수많은 이야기꾼 사이를 방황하다 한 권을 고른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으나 바로 대출에 대출을 거듭하여 전산 상으로만 마주하던 책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운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책장 가장 위쪽에 있어 그대로는 손이 닿지 않는 탓에, 경아는 낮은 사다리를 가져온다. 사다리를 밟고 올라서 손을 뻗는다. 몇번의 헛손질이 이어지자 경아는 발꿈치를 약간 든다. 겨우 손 끝에 책이 닿자 환한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그러나 닿는 것에만 지나치게 신경썼는지, 앗 하는 사이에 책을 놓치려 한다. 얼굴에 낭패감이 스친다. 경아는 오랜 경험으로 자신의 운동신경이 어느 정도인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 결국 땅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책을 줍게 되고 말 테다.
//한 번 뒤엎었더니 느리기도 느리고 짧으면서 뭣도 없는 선레가 되어버렸네요...답레는 편하게 주세요, 해인주.
>>289 사실 내가 일상을 그다지 돌려보질 않아서 음악실 상황도 한번밖에 없었어. 제각각 다 다른 장소였거든! 아마 뒤뜰이면 하늘이가 이어폰을 떨어뜨려서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찾고 있을 것 같고, 음악실이라면 피아노를 혼자서 연주하고 있다거나, 혹은 사용하기로 한 대가로서 음악실을 혼자서 정리하러 왔다거나 그럴 것 같네.
편한 쪽으로 시작해둬도 좋을 것 같아! 사실 난 어느 쪽이라도 정말 편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아. 그리고 하늘주는 꼭 짜야 하는 선관이 아니면 굳이 먼저 막 찌르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 지금 접점이 있는 캐릭터가 아직은 제로인 것 같아서. (같은 반 제외) 선관은 못 찌르고 있긴 한데... 혹시나 이런 관계, 저런 관계에 하늘이 저 녀석이 있으면 조금 분위기나 구색은 맞춰질 것 같다 하는 것이 있으면 얘기해주면 땡큐야.
사실 여기 참치들 내가 생각도 못한 선관 관계를 새벽에 막 이야기하고 있어서 호텔에서 관전하다가 창의력에 박수를 쳐서 친구놈이 너 뭐함? 이러더라. (시선회피)
아랑의 발언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이 매우 드문 문하의 관심을 끌어당기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은 문하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던 전면적인 부정이었으니까. 그래서 문하는 마치 누가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귀를 뒤로 젖히고 있다가 손길을 떼며 입을 여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다시 귀를 쫑긋 그 사람을 향해 돌리는 개처럼 아랑에게 집중했다.
아랑은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으나, 아랑의 손길이 떨렸던 이유를 전달하는 데에는 충분한 말을 했다. 문하는 가만히, 멍하니, 새까맣게 죽은 눈으로 아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랑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일순간, 그 새까만 심연 한가운데에서 푸르스름한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을 것이다.
아랑이 떨리는 한숨 내뱉듯 내려놓은 말이 끝나자, 문하는 잠깐 주저했다.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한 발짝을 내딛어 아랑에게
다가갔다.
그는 다시 무릎을 구부려서 아랑과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혹시 겁쟁이로 보이냐는 질문에, 문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이것은 문하가 할 법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도 그것을 아주 잘 알았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문하는 예외를 두기로 했다. 옛 상처가 덧나서 아직도 남아 그 고통에 떨고 있는 당신이 왜인지, 작년의 자신의 모습과 겹쳐보여서. 그는 잠깐 눈을 감고는, 떴다.
"...아파해도 돼."
그는 아프다는 느낌을 잊어버렸다.
"울어도 돼."
그는 우는 법도 잊어버렸다.
"엄살부려도 되고, 무서워해도 돼."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마저 잊어버렸다.
"다른 사람한테 털어놓고 기대도 돼."
그는 마음을 기댈 곳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네 잘못이라거나, 자신이 약해 보인다고 자책하지만 마."
그에게 남은 것은 그가 그 스스로에게 남기는 상처뿐이었다.
"그게 정말로 스스로를 죽이는 거야."
그는 고요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것들 중 하나도 하지 못한 자신이 이렇게 전락해버리고 말았기에. 인생 헛산 열여덟 살 풋나기의 어설픈 조언일지언정, 문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자신보다 훨씬 상냥하고 훨씬 밝은 당신이, 자신에게 아직도 이런 조그만 친절을 나누어줄 정도로 아직 행복한 삶에 많이 가까운 당신이, 혹여나 상처가 잘못 덧나서 자신처럼 마음을 잃거나 하지 않았으면 해서.
문자그대로 급식을 해치우고 매점에 들려 끝내주게 멋진 간식 타임을 즐겼다. 선하는 다먹은 아이스크림의 나무스틱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품을 쩍 했다. 날이 따뜻하고 배가 부르면 잠이 온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마침 5교시가 음악 시간이었으니 미리 음악실에 들려 낮잠이나 즐길까하는 계획이 있다.
선하는 음악실 앞에 서서 몸을 쭉 뺀다. 평소 잠겨있을 음악실 문이 열려져있는 상태였다.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선하가 고개를 기울인다.
"안녕."
선하는 철로 된 문을 아예 열며 음악실로 들어섰어. 순해보이는 인상을 보아하니 시끄러운 성정은 아닐것이다. 계산을 마친 후 태평히 인사를 건넨다. 분명 친절한 음성이었으나 자세나 태도는 느슨하기 그지 없었다. 의자를 꺼내 제 몸을 앉히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힘을 주지 않은 탓에 몸이 주루륵 내려간다. 겨우 엉덩이 끝을 의자에 걸친 상태로 눈만 끔뻑이고 있다.
오늘은 방과후에 일정이 있었다. 야자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그 시간대에 대신 이런저런 일정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오늘처럼 자신을 가르쳤던 학원 은사를 만나러 가는 일이라던가. 물론 과거 하늘에게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하라고 한 그 작자가 아니라 양이라도 키워보겠다고 한 마찬가지로 양인 은사였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ㅡ그래봐야 5년 정도였다.ㅡ 하늘은 그 대신 점심시간에 음악 교사에게 음악실을 써도 되는지의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깨끗하게 쓰고 정리만 잘 하고 가면 별 상관없다면서 열쇠를 맡겼기에 하늘은 음악실 안으로 들어섰고, 음악실을 정말로 가볍게 정리하며 하늘은 피아노 의자 앞에 앉았다. 두 손을 올려 연주를 하려는 듯, 눈을 감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이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듯 하나 푸른 느낌의 머리카락이 상당히 인상적인 3학년 선배임을 인지하며 하늘은 절로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네. 안녕하세요."
조금은 어색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며 애써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하려고 하며, 하늘은 자신의 뒷목을 괜히 긁었다. 이렇게 되면 어쩌해야 하나. 나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문뜩 의문이 떠올라 하늘은 덩달아 의자에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역으로 물었다.
"그러는 선배는요? 지금은 점심시간인데 음악실에 무슨 일로? 아. 음악부 사람인가요? 하지만 못 본 것 같은데."
음악부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같은 공간을 쓰려고 하는 이들인만큼 약간의 안면은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바,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없었던 것 같아 의아해하다 하늘은 바로 질문에 대답했다.
"점심시간에 음악실을 써도 된다고 해서요. 정리만 깔끔하게 해두면. 그래서 정리 좀 하다가 피아노를 칠까 해서요. 방해될까요?"
아무렇지 않은 미소로 답했다. 수백 번, 수천 번, 셀 수도 없을 만큼. 언제나 새슬은 ‘이상한 애’였고, 그런 소리를 듣는 데에는 이제 익숙했다. 물론 그런 호칭과 손가락질이 상처가 되어 박힌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슬 자신의 감각이 무뎌진 것인지, 적응하는 게 뛰어났던 것인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것에 일일히 예민하게 반응하면 자신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아마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모양인지도 모른다. 그나마도, 비교적 최근엔 나쁜 의도로 이야기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것에 별 대꾸하지 않은 채, 새슬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차박거리는 젖은 발소리와 거리의 소음만이 맴돌 뿐이었다. 빠아앙ㅡ, 찢어지는 경적 소리에 눈을 돌렸다. 그것 외에 무슨 소리가 들렸던가? 글쎄. 새슬의 눈빛이 홀린 듯 트럭 사이를 배회했다.
“ㅡ아.”
잠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차린 것은 문하가 말을 걸어왔을 때였다. 허공을 맴돌던 흐린 눈빛이 문하를 바라보며 초점을 바로잡았다. 가만히 웃었다.
“여기, 근처에 공원이 있지.”
행선지를 향해 고개를 돌려 보인다. 저 쪽에 있는, 조그마한 공원. 알아?
“딱 거기까지만.”
거기까지만 함께 해 줘. 그 이상은 비밀이야. 여느 때와 다름 없는 그 특유의 나른한 웃음이었지만, 의미심장한 그늘이 옅게 서려 있었다. 선이라도 긋는 것처럼.
사실, 선하는 문이 잠겨있다면 창문을 통해 들어올 요량이었다. 몇몇 철저한 당번들은 창문을 꼭 잠그고는 했지만 대부분의 당번은 그러지 않음을 알고 있다. 요컨대, 선하가 음악실 문을 먼저 확인하지 않았고 창문을 통해 들어섰다면 굉장히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거란 소리다. 다행히도 선하는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멀쩡히 문을 열고 척척 들어와 손을 살랑살랑 흔든다. 인사에 답해주기 위함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선하가 습관처럼 웃어준다. 마치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는 기계처럼 자연스러운 표정 변화였다.
"그냥. 피곤해서."
질문에 비해 말수가 적다. 그걸 알면서도 선하는 지금 당장 대답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근원 모를 권태가 그렇게 만들었다. 음악실 내부를 훑으며 고개를 돌린다. 자연스럽게 마주친 시선이 어긋났다. 선하의 옆모습에서, 정확히는 허공을 부유하는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느껴진다. "...교실은 너무 밝고 시끄럽거든. 음악부는 아니야." 뒤늦게 설명을 덧붙인다.
피아노를 치겠다는 말에 그제야 선하가 힐끗 하늘을 본다. 그러고보니 피아노 의자에 앉아있었지. 마침 피아노도 치기 좋게 세팅되어있는 상태였다. 선하는 방해가 되겠냐는 말에 바로 답하지 않고, 뜬구름잡는 소리를 했다.
"피아노는 잘치니?"
사실 선하는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다. 천성이 그런건지 도무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모든 행위에 친숙하지를 못했다. 문학과 예술이 대표적이었다. 대충 들었을때 감상의 폭 역시 넓지 못했다. 제 신경을 건드리지 못하면 잘치는 음악, 건드리면 못치는 음악으로 나누는 것이 한계였다.
"아니지, 네 실력은 중요하지 않겠네. 여기서 불청객은 나니까. 오히려 내가 물어야겠구나. 내가 네 연주에 방해가 될까?"
음악부는 아니지만 피곤한데 음악실까지 굳이 온 선배.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며 음악실에서 자러 왔다는 결론을 내리며 하늘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이 밝고 시끄러우니까 음악실로 왔다는 것은 어쩌면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는 의사표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하늘이의 시선이 바로 피아노로 향했고 거기서 좀처럼 시선을 떼어내지 못하고 끈적하게 미련을 남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은 자신이 밀렸으면 밀렸지,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자러 온 선배가 있는데, 물론 선배의 말이라고 해서 다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일단 자신이 음악실을 쓰는 조건은 아무도 쓰는 사람이 없다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오늘은 포기해야하나.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하늘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건 매번 다를 것 같네요. 저는 특출난 피아니스트가 아니라서, 결국 제가 그 날 느낀 것과 표현하고 싶은 것을 피아노로 표현하는 것 뿐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아직 노력할 점이 많네요."
자신의 연주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살며시 회피하며 하늘은 고개를 뒤이어 저었다. 연주에 방해가 될 일이 있을까. 누군가가 본다고 해서 연주가 흐트러질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남의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피아노를 듣고 싶어하느냐, 듣기 싫어하느냐. 그것이 그에게 있어선 가장 중요했다.
"듣고 싶으신가요?"
짧고 간결하게. 자신이 알고 싶고자 하는 것을 물으며 하늘은 피아노 의자 바로 근처에 섰다. 듣고 싶지 않다면 굳이 연주할 필요는 없었다.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이에게 자신의 연주는 소음일 뿐이었고, 서로간에 그런 불편한 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하늘은 빠르게 결론지었다.
차라리 이것 또한 환상이라면 좋을까, 아니면 그저 하룻밤의 꿈이기만 해도 좋았다. 분명한 감촉, 더욱 가깝게 밀착되어 서로의 온기가 새어나갈 일 없이 전해지는것 같은 이 감각이 잠깐의 착각이어도 좋다고... 그녀는 지나가듯 그렇게 생각했다.
기억하고 있다는 자신의 말에 일순간 놀란듯, 숨을 멈추다가도 기쁘다는 감정이 가득 배어나오는 속삭임과 다시금 뒷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이대로 몸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제대로 웃어보이는 그 모습은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흐릿하니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전보다도 더 또렷하게 와닿았다. 덧칠하면 더 부각되어보이는게 이런 느낌일까, 당신을 안고 있는 팔이 무거운듯 하면서도 그렇기에 더 단단하게 안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여전히... 상냥하시네요. 달라진게 없어요..."
변하지 않는다는건 지금만큼은 다행인 걸로 생각하고 싶은 그녀였다. 변하지 않았기에 그런 당신을 마주할 수 있었고, 변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
아찔한 향기, 양들은 저마다의 페로몬향이 있다던데 그걸 맡지 못하는 것도, 자신의 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쉬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에 빠져들듯 들뜬 기분은 무의식적으로 흘려내는 한층 더 달콤한 당신의 목소리에 이끌리듯 자신의 틈 사이로 팔을 밀어넣어 더욱 가까이 붙으려하는 몸짓에 당연한듯 응하면서도 그 잠깐동안은 목을 물고있던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때에 맞추어 들려오는 목소리, 눅진하게 녹아든 초콜릿처럼, 그러면서도 상큼한 맛의 과육처럼 충분히 자신을 흔들어놓고도 남을 당신의 말에 무어라고 대답했을까,
당신이 어리광부리듯 자신의 아랫입술을 혀끝으로 훑다가도 이내 오물거리다 떨어질 때까지,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그런 얄미운 감촉을 쉽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듯 몇번인가 무는 시늉을 했을지도 모른다.
"...... 그대야만 노력해선 안되는 걸요..."
다시금 자신의 아랫입술에 입을 맞추고서 비밀을 말하듯 수줍게 속삭이는 당신에게 그녀는 쉽사리 보여줄 수 없었던 차분하고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새까만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다가도 잠깐 서로의 몸을 떨어뜨려 앞에 제대로 서서는 그대로 몸을 굽혀 마치 맹세의 언약을 하듯 무릎을 꿇어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조심스럽게 잡아올린 당신의 가녀린 손을 매만지다가 그제서야 자신이 꺼내야만 하는 꽤 무거운 말을 꺼냈을까,
"저 역시 노력할테니까요... 그대야를 아프게 했던만큼, 슬프게 했던만큼... 멋대로 떨어뜨려버린 이 손을... 다시 잡을 수 있게 해주시겠나요...?
단순한 죄책감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닌, 예전처럼 거짓과 가식으로 칠해지지 않은 저를 받아주실 수 있나요...?
허락해주신다면 그대야... 이번엔 절대로 놓지 않을 거니까요..."
진심을 담을수 없던 과거가 괴로웠던만큼 금방이라도 참을 수 없을것 같았지만, 이미 울상이었던 당신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묵묵하게 맑아진 눈으로 마주오는 시선을 받아들였다.
마치 자신의 인생관을 자랑스레 공표하는 당신이 재밌게 느껴졌을까, 생각해보면 그 어떤 때에도, 자신이 부정적인 면모를 내비칠 때에도 당신은 꾸준히 격려하면서 그녀를 보듬어주었고, 그러면서도 일정한 선은 지키며 과하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쩌면 방황하는 동안은 조금씩 위로를 받았으며, 방황하지 않기로 한 때부터는 당신에게 도움을 주려고도 했다.
용케도 자신이 넘지 말라고 하는 선을 넘진 않은 당신이었기에 그 어느때도 그녀가 진심으로 화낸적은 없었고, 그렇기에 더 감사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단 선배뿐만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도, 조금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특유의 눈밭 위 강아지같은 얼빠진 행동만 아니라면...
"후후후후~ 머시기 협약을 제네바 협약처럼 얘기하진 말아주세요~"
하여간 이상한 부분에서 어긋나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엉뚱한 당신의 모습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자꾸 그렇게 틈을 보이는 버릇이 있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괴롭히고 싶은 것 아닐까?
...아무래도 좋다. 뭐든 전긍정인 사람을 보는건, 그런 사람과 친해지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그런 당신이라 해도 분명 말못할 고민은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그녀가 그것을 케어해줄만한 차례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언젠가, 당신이 직접 말을 꺼내기 전까지 기다려줄 뿐일까.
"앗,"
탁 놓아버린 손에 의지라도 했는지 그대로 튕겨 자신쪽으로 고꾸라지는 당신을 어떻게든 받아내려 했을까? 저보다 큰, 그것도 남정네를 받을만한 힘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녀는 요령껏 그를 받아내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팔로 막으려 했지만, 어떻게든 당신의 급소는 피한 채 부딪힌 충격으로 아프지 않도록 받아냈을까,
산들고등학교의 학생회실은 수업이 끝나고 학교의 모든 일정이 끝나는 시간까지 사람이 없는 경우는 잘 없다. 누군가는 서류를 처리하고 있을수도 있고 누군가는 학생회실에서 학생회 인원들끼리 수다를 떨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시끄러운 곳을 피해서 조용한 곳을 찾아 왔을수도 있다. 그 중에서 나는 첫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부학회장이라는 직위에 있기 때문에 해야할 것이 조금 있었다. 그렇게 서류를 대충 끝내고 자리를 뜨려고하니 누군가가 내 책상에 편의점에서 파는 케이크를 올려둔다. 학생회 인원 중 한명이 선물이라면서 주고 간 것.
" 아 고마워. "
저번에 나누어준 샌드위치에 대한 답례라는 것 같다. 나도 공짜로 받은거라서 이런걸 받으면 좀 미안하긴 했지만 주는건 거절하지 않으니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그대로 챙겨들어서 학생회실을 나온다. 아직 아르바이트를 가기엔 시간이 좀 남아서 이걸 어떻게 먹고 갈까 고민하다가 마침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어서 도서실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주로 공부를 학생회실에서 하거나 반에 남아서 하는 편이라서 도서실에 자주 올 일은 없었지만 도서실에 붙박이처럼 있는 한 여학생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이다. 도서실에 자주 안가는데 도서실에 있는 학생을 잘 안다는건 뭔가 앞뒤가 잘 안맞는 말 같지만-,
" 여전히 내가 없으면 안되는구나? "
떨어지는 책을 손으로 받아내면서 말했다. 고동색의 머리카락이 두갈래로 보기 좋게 땋아져있는 여학생의 이름은 도경아. 내 어릴적 친구였다가 최근에 다시 만나게 된, 어찌보면 소꿉친구인 학생이다. 책을 너무 좋아한단말이지. 이번에도 좋아하는 책에 정신이 팔려서 실수로 떨어뜨린게 틀림 없었다. 나도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경아도 키가 상당히 작은 편이라서 나는 왼손에 들려있는 봉지를 손으로 들어보이며 얘기했다.
유독 눈이 좋은 탓에 선하는 하늘의 집착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하늘의 집요한 시선을 은밀히 따라간다. 먼지를 막기 위해 덮어진 휘장이 거두어져있다. 매끈하게 빛나던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 드러난 하얗고 검은 건반들의 정열들이란. 아마도 하늘은 그걸 보고 있을 것이다. 방음이 되어있는 탓에 음악실안에는 적막이 깔린다.
"난 그보다도 특출나지 못한 관객이라서 듣는 귀가 좋지 못해. 보아하니 피아노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냥 쳐. 그렇게 좋아하면 못치지는 않겠지."
선하가 싫어하는 종류의 연주는 엇나가는 박자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높은 음정도가 될 것이다. 극히 초보가 아니면 잘 하지 않는 실수들이었다. 선하는 자세를 바로잡고 자리에 앉았다. 배꼽위에 올려놓던 손깍지를 책상위로 올리고 허리를 쭉 폈다. 상대가 자신을 신경쓰고 있다면 저 역시 신경써줘야함이 맞았다. 학습된 배려가 선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네 선택에 내가 그다지도 중요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선하가 그리 말하며 말꼬리를 늘였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상대의 행동이 변하는 건 지금 당장 구미당기는 일이 아니었다. "기어코 나를 관객으로 만들어놓겠다는거니? 그래, 듣고 싶어. 대신 날 위해 연주해줘야할거야." 그래서 선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자신을 선택의 갈림길로 이끌었다면 이정도 부탁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음악 자체에는 관심 없을지언정, 그 음악이 저를 위한다면 그 가치가 달라진다. 선하는 빙그레 웃으며 손깍지에 제 턱을 올렸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느낌, 사람들 앞에선 숨어다녔지만 단 둘이 있을 때만큼은 오롯이 자신이 만끽하던 그 온기가 어느샌가 다시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것을 느끼며, 한순간 눈시울이 붉어질 것만 같은 시아였다. 안돼, 이러다 미소가 무너질지도 몰라. 시아는 어떻게든 짓고 있는 미소에 힘을 주어 지켜내며 꼭 감싸안았다.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안아주는 그 팔에, 조심스럽게 힘을 풀어 자신의 몸을 기대어보면서 천천히 슬혜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 ...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런 것 뿐이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것들 뿐이라서. "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그당시의 너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었다면 이렇게 1년이 넘는 세월을 빙빙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말을 입에 삼킨 체로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꾸만 뜨거워지는 눈시울 탓에 무너지려는 미소를 애를 쓰며 지켜내려 했다. 왠지 슬혜에게 완전히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될 것만 같아서, 그래서 꾹 참아낸다.
그리곤 자신의 목을 무는 슬혜의 행동에,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걸로 슬혜가 기뻐할 수 있다면, 기분이 좋아진다면 얼마든지 내어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슬혜가 문 목덜미에서 전해져오는 정신이 아늑해지는 감각에 그저 시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슬혜의 몸에 매달리듯 안는 것 뿐이었다.
용기를 내어 입술을 오물거리던 자신에게 몇번인가 무는 시늉을 해오는 슬혜를 보며 시아는 맑은 웃음을 흘렸다. 왠지 2년 전의 두사람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오늘 하루로 끝날 꿈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은 행복했노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갑자기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자신에게서 떨어지려는 슬혜를 바라보며 마음 한켠이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행복했노라 말할 수 있음에도 멀리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역시 그녀 또한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리라.
" 어...? "
이젠 슬혜가 돌아가려 떨어졌다고 생각을 하던 시아는 한순간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갑작스레 자신의 발치에 무릎을 꿇는 슬혜, 그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며, 손을 매만지고 예쁘장한 입술이 열리며 흘러나오는 말.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애써 짓고 있던 희미한 미소 마저도 사라진 체 멍하니 홀린 것처럼 슬혜를 내려다보던 시아는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주저 앉았다. 애써 무릎을 꿇은 슬혜에겐 미안하지만 한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것이었다.
" .....나 이번엔 다시 놓지 않아도 되는거야..? "
주저앉으면서 큰 소리가 났음에도, 멍하니 슬혜를 바라보고 있던 시아가 천천히 입술을 연다. 파르르 떨려오는 목소리가 지금 시아의 동요를 보여주는 듯 했다. 슬혜에게 내어주지 않은 손을 자꾸만 쥐었다 폈다 했고, 눈을 자꾸만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조용히 속삭였다.
" 나 이번에는 나를 내버려두고 가는 슬혜의 뒷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는거야..? 나 이번에는 슬혜가 나를 두고 멀리 가버리는 것을 잡지 못하고 지켜보는 것도 안해도 되는거야..? 이젠 언젠가 슬혜를 만나면 사랑했었다고 제대로 말해주고 싶다는 걸 생각만 하지 않아도 되는거야...? "
더이상 미소를 지을 힘도 없는 것인지, 천천히 일그러지는 얼굴로 시아는 조용히 속삭이듯 물어왔다. 더이상 참지 않아도 되냐고, 더이상 혼자서 아파하지 않아도 되냐고, 이젠 맘 편히 슬혜에게 안길 수 있는 것이냐고, 울먹이며 묻고 있었다. 그자리에는 언제나 부드럽고, 평온하고, 잔잔하던 따스한 소녀는 없었다. 그저 더이상 홀로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여린 소녀가 있었다.
" 놓지 말아줘... 나를 놓지말아줘... 역시 나 그런건 싫으니까.. 그날도 싫다고 말했어야 하는데...응, 몇번이고 몇번이고 마음속으로만 말했었는데... 나...놓지마아... "
싫어, 그런거... 이젠 혼자 아파하는 건 싫어..
시아는 울었다. 슬혜의 손을 혹시라도 이게 꿈이라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까봐, 두손으로 강하게 움켜쥔 체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슬혜에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문하의 반문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붕 떠있는 소녀만큼이나 이상할 정도로 착 가라앉아있는 소년도 이상하게 보이긴 마찬가지였으니까. ...다만, 이제 그런 것까지 일일이 돌팔매질 치부하기에는 이제 그런 것에 너무 무뎌졌을 뿐이다. 비루먹은 개답게 사람들 주변을 어설프게 맴돌거나 무심코 가까이 다가갔다가 쫓겨나는 건 이제 딱히 특별한 사건도 아니고 일과 같은 것이었기에. 그렇게 익숙한 일이기에 문하는 어떤 선이 그어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코너를 돌아 걸어가는 발걸음이 차박차박 차갑다.
공원을 찾는 새슬의 말에, 기억을 더듬어볼 필요도 없이 공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매일의 로드워크로 학교 주변 지리는 꽤 익숙했다. 새슬이 어느 공원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있다.
"알았어."
가만히 선을 긋는 축객령에 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픈 동질감 따위에 눈이 멀어 선을 넘고 싶지는 않았다. 그 공원에 비를 피할 만한 장소나 부스 같은 게 있던가?
"─대신에 비가 그칠 때까진 같이 있게 해줘."
...그렇기에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같이 있어줄게, 가 아니라 같이 있게 해줘, 라고.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금방 그칠 소나기니까, 그 공원에 도착하면 거짓말처럼 이 소낙비가 멈출지도 모르지만,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문하는 새슬을 빗속에 그냥 놓아두고 가는 게 왜인지 겁이 났다. 그것도 겁이 났고, 새슬을 빗속에 버려두고 혼자 우산을 쓴 채로 터벅터벅 독방형을 받으러 돌아가는 길의 고독도 겁이 났다.
아닌데. 이게 아닌데. 문하는 한 박자 늦게 자책했다. 자꾸 이성이 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네 선택에 자신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건 지금도 유효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주를 할 거면 자신을 연주해라. 즉, 알아서 센스를 보여봐라. 답일지 아닐지 모를 그런 추측을 하며 하늘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마치 자유롭게 곡을 연주하는 자리가 된 것 같아 괜히 침을 삼켰다.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이 어쩌면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곡이 정해져있으면 그 곡을 연습해서 포인트를 살리면 되나, 자유곡은 곡의 선정부터 시작해서 그 곡을 연구하는 것까지 자신이 해야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위한 연주가 되고 곡이 될 것인가. 결국 하늘이 낸 답은 하나였다. 자신이 느끼는 것과 분위기. 그것을 피아노로 연주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어울릴만한 곡은 무엇인가. 머리로 계산을 하며, 멜로디를 그려내며 하늘은 조심스럽게 피아노 건반 위에 자신의 두 손을 내렸다.
두 손이 만들어내는 곡은 화려하지도 않았고 현란한 곡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밤공간을 연상시키는 곡이었다. 밝고 시끄러워서 이 음악실로 왔다면 그나마 덜 시끄럽고 밝지 않은 차분한 밤공간을 묘사한 곡이면 어떨까. 물론 피아노 음 자체가 시끄럽다면 자신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눈을 감고, 최대한 차분함을 살리려는 듯 손을 가볍게 움직이며 하늘은 미소를 약하게 지었다. 마지막 음 하나까지 흐트러지는 일 없이, 박자가 흔들리거나, 분위기가 깨지는 일 없이 정말 마지막까지 흔들림없이 손을 움직이다 여운을 그리는 듯, 마지막 음을 괜히 길게 누르다가 그 음이 천천히 작아지는 것을 느끼며 하늘은 두 손을 떼어냈다.
아무튼 마니또라. 아니. 진짜 내 생각에는 분명히 하나밖에 없는데 그 한명인 대상자가 뭔가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 이럴 것 같진 않아서 말이야! 지금 하늘주 완전 대혼란상태인거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늘이 음악을 들었다는 설정의 누군가가 있는거야? (동공지진) 이러면 내가 맞출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추리한 대로 가겠어!
>>494 일단 발표될 때에 맞춰서! 주원이 맞아! :3c 혹시 폐가 되었다면 미안... 선관도 있고 해서 주기 적당하지 않을까 해서! 더 줄까 싶기도 했는데 답레 쓰는거 번거로울까봐.. 아무튼 주원이 맞습니다! 딩동댕! 주원이는! 련이를! 아끼고 있다구!(???) 일상은 돌리지 않았지만 자주 도음을 받고 있다는 설정이었으니까!!
>>510 아니야! 음... 바라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꽤 티를 냈으니까... 알아주길 바란다기보단, 누군가 호련이를 생각하고 있다는걸 알아줬음 해서!
>>458 사실 부상으로 레스토랑의 디너티켓을 받았다고 서술한 게,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그런 것을 선물할 수 있을 만한, 팬층이 어느 정도 있는 메이저한 종목' 이라는 걸 드러내주려고 그렇게 정한 건데 부상으로 디너티켓이라면 확실히 권투보단 피아노 쪽이 먼저 연상되겠네. <:3 본의아니게 연막을 치게 돼서 미안한걸. tmi지만 그 티켓은 대회 부상으로 지급된 게 아니라, 대회 끝나고 나서 트레이너한테 어디서 친구랑 근사한 식사라도 하고 오라고 받은 것.. <:3
첫번째 선물은 문하가 먹는 영양보조제들 중 하나... 두번째 선물은 문하가 조깅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 세번째 선물은 문하가 조깅코스에서 찾아낸 경치였어.
이거 두번째 선물이랑 네번째 선물이 시너지를 일으켜서 시아주를 착각하게 만든 걸지도. "내 삶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아름다운 것들" 이라던가 "세번째 선물을 보내고 보니 더 이상 공유할 만한 게 남지 않았다" 는 메시지로 비관적인 인생관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나름 잘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으-음.
참고로 맞추셨다는 사실은 오피셜로 캐릭터도 들고 가셔도 됩니다! 긴가민가했는데 일상으로 만나서 확정~도 괜찮구요 보통은 마니또가 종료되는 날에 마니또가 직접 찾아가서 정체를 밝혀주는 게 예의이지만 그게 불가능하거나 정체를 듣지 못했다면 선생님께 물어봐두 친절히 알려준답니다 ㅎ▽ㅎ 마니또를 가지고 일상 굴리시는 것도, 관계를 이어가시는 것도 물론 환영이에요
1. 하고 싶은 이벤트를 말씀해주시면 빠른 시일 내에 적극 추진해드립니다 2. 언제든 이벤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1회' 면제권을 드립니다 (ex. 만월의 날에 혼자 멀쩡하다!같은) 3. 실현 가능한 선에서 캐릭터의 소원을 들어드립니다 4. 언제든 이벤트에서 사용하실 수 있는 1회 비틀기 권을 드립니다 (누구랑 짝 지어 주세요, 유리하게 시작하게 해주세요, 깍두시켜주세요..등)
중에서 한 가지 선택해주시면 되겠습니다 ㅎ▽< 사실 상품으로 여러분들께 무엇을 드리면 좋아하실지 잘 모르겠어요 ㅠ▽ㅠ크윽.... 좋은 아이디어나 제게 이런 상품 주세요 하시면 다음 이벤트 때 반영하겠습니다
아무튼 다들 이벤트 열심히 하느라 고생 많았어!!!!!! 밝혀진김에 쿠우가 문하에게 주었던 선물, 디오라마식의 크리스탈조각 세 동물인 해마, 알바트로스, 늑대가 의미하는 바는 헌신적인 수컷을 칭하는 거였어! 고래 모양의 하얀 원석은 문스톤, 매 모양의 갈색 빛나는 원석은 캣츠아이!
다들 고생했어~~~ 덕분에 넘 재밌게 놀았다 '-^)~~! 다 보는 재미가 있고.. 처참하게 다 틀려버렸네..... 완벽한 은신 대단해.... 앗 마저 그리구 지구캡틴 시간대나 날짜 지정해서 부탁한 거 있었는데 부탁한대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얘기하려고 했는데 깜빡했네 고마워 ^ㅁ^)~~
>>639 알고 있어!!!! 그래서 첫번째 선물 주고나서 간간히 보이는 문하의 딥다크한 모습 때문에 뜨끔했다구!!!! ;3 근데 그렇다고 선물을 번복할 수도 없으니... 꾹 참고 그냥 보내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양아치는 이런거 말하는 타입 아니니 절대함구 하겠지만 그래도 기분 나빴다면 미안한거야!!!!!!!!!!!!!!
다들 이렇게 선물에 대한 계기를 푸는군! 이 괴도 H 이런 것은 다 확실히 눈에 담아두지! 하늘이는 그냥 해인이가 뭘 좋아할지 (캐입으로는) 도저히 몰라서 그냥 이것저것 학생회실에는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배달한거야! 사실 쿠키를 태운 것도 하늘이가 그쪽으로는 잘 못하기도 하지만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것은 잘 만든다는 설정이라던가 있고 그렇다!
새까만 물로 채워진 우물 같은 눈의 가장 깊다란 곳에서, 푸르스름한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이 보았다.
문하가 주저주저하다가 한 발짝 다가왔다. 무릎을 구부려 시선을 맞춰주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응, 그건 나도 알아. 겁쟁이인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너무나 겁쟁이라서 삶에 있어서 불편함을 남들의 배로 겪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을 뿐이다.
ㅡ...아파해도 돼. 울어도 돼. 엄살 부려도 되고, 무서워해도 돼. 까지는 금아랑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ㅡ다른 사람한테 털어놓고 기대도 돼. 네 잘못이라거나, 자신이 약해 보인다고 자책하지만 마. 까지는 (가족이 아닌 사람 앞에서) 금아랑이 할 수 없거나 꺼려하는 일이다.
ㅡ그게 정말로 스스로를 죽이는 거야.
당신의 말을 얌전히 경청하던 아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어설픈 모양새로 하는 조언일지언정 네가 어렵게 꺼낸 진심이구나. 실천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별개의 일이겠지만 호의는 소중히 받아놔야지.
무릎을 구부려 시선을 맞춰줘서, 손을 뻗으면 머리가 닿는다. 아랑은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에 제 손을 폭, 눌렀다.
“ 고마워, 하야. ”
작고 가냘픈 손이 꽃송이가 내려앉는 것보다 살짝 닿았다가 떨어진다. 희미하게 떠올랐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을까.
“ 좋아하는 과자 있어? ”
새까만 물로 채워진 우물 같은 눈에서, 푸르스름하게 일렁인 것은 인간적인 온정이었을까.
생각하며 꺼낸 아랑의 말은 다소 엉뚱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적인 온정을 건네준 건 물론 기쁘고 고마운 일이지만, 문하 너는 그 깊다란 우물 밑바닥에서 퍼 올린 온정 같은 것을 좀 더 자신을 위해 아껴두고 남한테서 받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작고 따스하고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우물의 색이 바뀌었을 즘에는 누군가에게 받은 것들을 되돌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고보니, 지금 일상은 2개나 돌리는 중이라 하나 더 늘릴지 말지는 더 생각해보고... 선관은 언제든지 구합니다! 제 캐릭터 매력이 부족해서 여러 선관을 정하시긴 힘들지도 모르지만... ._.) 아무튼 어떤 관계든 좋습니다! 거의 대부분을 OK할 수 있으니 연호랑 하고싶은 선관이 있다! 아니면 해보고싶었는데 막상 누구 찌르기가 힘들었다! 하는 선관들 있으시면 찔러주세요~
떨어지고 있던 책에 온 신경을 쏟았던 탓에 들리는 목소리를 조금 뒤늦게 인지했다. 책을 잡은 손에서부터 천천히 시선을 위로 한다. 잘 아는 목소리고, 얼굴이다. 경아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간다. 평소의 소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다. 늘상 지니고 있던 옅은 미소에 비한다면야 정말로 환히 웃는 것처럼 보일 테니. 반대로 소녀를 어릴 적부터 알던 자라면, 그마저도 흐리다는 사실을 알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경아가 정말로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이 흐려지지는 않는다. 호선을 그린 입술이 그러했으며, 조근조근하던 것에서 한 톤이 올라간 목소리가 그러했다.
"해인아,"
받아줘서 고마워. 뒤눚게, 장소를 고려한 것인지 목소리를 낮춰 마저 속삭인다.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사다리에서 내려온다. 그러고나서야 당신을 제대로 마주선다. 온화한 녹빛의 눈이 측면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책을 건네받으려 하는지 손을 내민다. 그러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을 옮긴다. 의아함은 곧 또다른 기쁨으로 번져나간다.
"물론이지."
당신의 물음에 나즉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답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 소녀는, 꼭 당신처럼 단 것을 좋아했다. 벌써부터 들뜬 것이 확연히 눈에 보일 정도로.
"나 생각나서 가져온 거야?"
묻는 목소리에 장난기가 섞여 있다. 알면서 묻는다는 점에서 짓궂으나, 이 정도면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 해인주. 오히려 내가 더 늦어버려서 사과를 받을 입장도 아니고...
다들 선물썰 푸는 것 같아서 나도 구구절절 풀어보겠읍니다........ * 간식 - 싫어하는 사람 없을 것 같아서... 젤 무난한 선물을 1등으로 * 베개랑 이불 - 선관짤 때 둘이 조는 거 서로 목격하기도 했구 민규가 like에 잠이 있으니까 '-^ * 밴드랑 부적 - 운동하다 다칠 수도 있잖아요~~! 부적은 기분 좋으라구..ㅋㅋㅋㅋㅋ * 엽서 - 일상에서 나온 겨울 산이랑 소원비는 독백 참고했읍니다 사실 영화의 한 장면이라는 설정이 있었는데 넣는 순간 이름 쓴 거랑 똑같아질까봐 뺌 * 다육이 - 요건 봄=식물이니까.. 다육이 손 덜 간다고 하구 작아서 귀엽잖아욧 '-^ 적당한 관심이라고 쓴 건 <관심>보다 <적당한>에 초점이 있었는데 민규 반응에 찝어준 듯한 내용이 있어서 사하주 좋아서 주먹 물었다고 해요(;) * 네임펜 - 일상에서 낙서할 때 썼는데 민규는 없는 거 같아서 종류별로.. 이거 올리는 순간 백퍼 들킨다 생각했는데 언제쯤 알았는지 궁금해졌읍니다
>>686 혐관이나, 사촌 관계, 혹은 가족관계에 덕통하면 답도 없자나요.... ㅇ<-< (눕) 새로웠다면 되었습니다.
>>690 하늘주... 카멜레온... ☆ 아냐 근데 다들 너무 카멜레온처럼 잘 숨었어... 흑흑..... 마니또 맞추신 4분은 코난이셔.....
>>691 저.. "하야." 라고 부르는 게 지뢰일줄 알고 떨면서 썼다고요.....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번 일상 때 없을 것 같다면 되었습니다... 이제 아랑주 아랑주 감보다 문하주 감에 신뢰가 간다... ㅇ<-< (유명한탐정짤) 다음레스는 좀 더 편하게 써볼게요!
나를 바라보자 경아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진다. 평소보다는 좀 더 밝은 미소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흐리게만 보이는 미소. 다시 만났을 때는 어릴때보다 어른스러워지고 침착해진 모습에 살짝 놀랐지만 다시 만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이젠 이 모습이 익숙하다. 내려오는걸 보고 사다리를 잡아주고서 줏어든 책을 그녀에게 건네준 뒤에 목소리를 작게 하여 말했다.
" 달리 나눠먹을 사람이 없어서. "
여러명 떠오르기는 했지만 다들 뭐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도 했고 학생회 특성상 간식이 남는 일이 종종 있어서 이런게 생기면 한번씩 도서실에 들러서 경아에겐 나눠주고 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이유에서 케이크를 들고 도서실로 찾아온 것. 수업이 끝난 시간이라 그런가 도서실은 한가해보였다. 물론 몇몇의 학생들이 있어서 시끄럽게 하면 안되기는 하겠지만.
" 학생회 친구가 주고 갔어. 저번에 뭘 나눠줬었는데 그거에 대한 답례라고 하던데. "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게 조심조심 케이크를 비닐봉지에서 꺼낸다. 사각형으로 잘려있는 조각 케이크였는데 크기가 꽤 큰게 비싸보이는 것이었다. 공짜로 받은 샌드위치 나눠준건데 이런거 받으니까 좀 더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 준건 준거니까.
" 요즘 자주 보기는 힘드네. 학생회가 좀 바빠서 "
많이 바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학생들보다야 할 일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도서실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 들어있는 일회용 포크를 꺼내들었다. 센스있게 포크를 두개 넣어준 모습에 작게 감동하며 하나를 경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744 익숙해져야겠다, 하고 의식하고 생각하는 것보단 릴렉스하고 느긋하고 천천하게 캐릭터와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걸 권장해. 경아는... 이걸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모르겠는데 유연하고 부드러운 캐릭터니까 그렇게 하는 게 더 자연스럽게 경아라는 캐릭터에 이입할 수 있을 거야.
예상하지 못 했던 청에 새슬이 고개를 들어 문하를 마주했다. 퍽 놀란 눈치였다. 아주, 아주 짧은 정적. 작은 숨을 삼킨 새슬이 시선을 떨구었다. 바닥에 부딪힌 물방울이 그리는 작은 파형, 그와 비슷한 형태로 제 속에 잠잠히 퍼져나가는 것. 만족감, 혹은 기쁨과 닮아있는 그것을 내리누르며, 새슬은 잠시 갈등했다. 매정하게 내칠 것인지, 자신의 작은 이기심에 흐름을 맡길 것인지. 오랜 고민을 하기에는 애석하게도 새슬의 목이 너무 말랐다. 한 번만, 이번 한 번만이라면. 같이 있기만 하는 정도라면. 떨군 시선을 다시 들어올려 눈을 맞추며, 새슬이 웃었다. 말간 미소였다. 좋아.
공원에 도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운동기구 몇 개, 아이들이 노는 작은 놀이터, 그리고 짙은 갈색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정자가 한 개. 물에 젖은 기둥 표면이 유난히도 반질거린다고 생각하며, 새슬이 먼저 정자 아래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선 퍽 능청스럽게도 와서 앉으라는 듯 제 옆자리를 톡톡 치는 것이다.
“소나기 치곤 꽤ㅡ무겁게 내리네에.”
젖은 옷이 체온을 야금야금 앗아가는 것은 시간문제. 일부러 춥다는 말 따위는 입에 담지 않은 채 양 손에 거머쥔 저지 끄트머리를 조금 더 끌어당겼다. 그리곤 평온한 얼굴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처마의 끝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문하를 바라보며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이,
“이대로 비가 안 그치면, 계속 같이 있는 거야?”
시덥잖은 농담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있어도, 없어도 좋다. 아무래도 상관 없었으니까.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새슬이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수박씨는 글쓰기에 자신을 가져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글을 내려 읽었다. 특별히 뭘 더 안해도 좋다고 말했지만, 나는 ‘특별히 더 가지고 싶은 매력’이 있는데. ...평생 가도 못 가질 거 같지이... 내 삶이 짧다면 더욱. 못 가지겠지.
가지지 못할 것을 쳐다보며 갈망하는 것은 손해 보는 짓인데도, 왜 인간은 손해 보는 짓을 하고야 마는 걸까. 금아랑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글로 만나는 비밀친구라서 좋다. 표정 관리 안 해도 돼서 편한 점도 있으니까.
...이대로 쭉 비밀 친구인 게 좋나? 싶다가도 마니또 기간이 끝나버리면, 더 이상 받지 못할 편지 –속의 무해한 상냥함이- 가 그리울 때가 있을 것 같아서. 아랑은 또박또박 글을 채워나갔다.
<수박씨가 웃어줬다니 됐어! 수박씨는 음... 수박 세 통만큼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더 가져도 된다고 생각해!
나는 글로 알려줘도 좋고, 직접 만나는 것도 좋아. 직접 만나는 쪽이... 지금은 쪼꼼 더 끌리는 거 같네.
향이 없는 쪽이라 마음에 들어! 빨리 흡수되는 건 더 마음에 들어! 잘 쓸게, 수박씨! (。☌ᴗ☌。)
p.s. 수박씨는 향이 있는 핸드크림이 좋아, 향이 없는 핸드크림이 좋아? 향이 있는 핸드크림을 좋아한다면 어떤 향이 좋아? p.s. 응! >
명랑한 글이 적힌 귀여운 포스트잇과 함께 놔두는 오늘의 선물은 볼펜이다. 수박이 뚜껑에 달린 붉은 볼펜. 레몬이 달린 노란색 볼펜. 키위가 달린 초록색 볼펜. 과일들의 나열인데 색감이 꼭 신호등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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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씨가 보고 싶다면 가져와야져! 네이비한 부분은 < > 위의 쪽을 읽어주십시오. ㅇ.< TMI1. 금아랑은 표정 관리에 자신 있는 편, 단, 무섭거나 두려울 때는 얼굴은 웃어도 (혹은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어도) 손이나 몸이 떨리거나 움츠러 들지도 모름. TMI2. 일부러 표정 관리 안 할 때도 있을 것임. 혼자 있을 때나, 아니면 관리하지 않은 표정이 상대에게 더 통할 것 같다거나 싶을 때. TMI3. 금아랑의 현재 귀여움은 금아랑 본인이 노력해서 쌓은 것이 반임. (50%) 그래서 노력 없이 천연 100%로 귀엽다 느끼는 상대에게 약할 때도 있을 것 같음.
제품명 : ANDROID-FSDM4981 등록된 제품명 : 【강규리】 보고된 오류내용 : 지나친 사랑 위주의 행동양상을 보입니다. 원인검증결과 : 외부 데이터의 비정상적 유입. 해결책 제안 : 해당 명령어 체계 삭제 / "사랑해" #shindanmaker #안당오 https://kr.shindanmaker.com/1039103
아랑이 받아온 상처들을 발견한 순간 문하의 눈 속에서 언뜻 비쳐보였던 것만 같은 그 푸른색은 무엇이었을까. 그래... 해석에 따라서는 아랑의 짐작이 맞다고 할 수 있겠다. 어찌되었건 그것은 문하에게서 찢겨져나갔던 무언가였고. 열기를 띈 것이었고, 아랑을 위하는 서투른 마음이 촉매가 되어 잠시 동안 그 미약한 불길을 다시 밝힌 것이었으니까.
이런 말을 남에게 해보는 것은 처음이라 이 말이 아랑에게 어떻게 가닿을런지 문하는 알 길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그렇기에 문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올리는 아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걱정스레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그렇게 가만히 아랑을 바라보던 눈이, 아랑의 손이 머리에 닿자 잠깐 꼭 감겼다. 짧은 손길이 끝나고 나서야 눈이 다시 떠진다.
그리고 돌아온 고마워, 하는 말에 문하는 잠깐 어쩔 줄을 몰라 굳었다. 더 나쁜 경우들을 예상해두고 있었는데, 그 경우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바람에 잠깐 생각이 멈춰버린 것이다. 예기치 못한 답변에 아랑을 멍하니 바라보던 문하는, 시선을 비스듬히 기울여내렸다.
"별 것 아냐."
하고 대답하는 문하의 시선은 여전히 죽어있는 검은색인 채로였다. 그렇지만 아랑에게로 들려올라오는 그 시선은 왜일까 전보다 조금 더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편안해진 것 같다.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네 쪽이잖아? 지금까지 날 챙겨준 건."
문하는 책상을 눈짓했다. 거기에는 아랑이 오늘도 챙겨주려고 했던 밴드들이며 가정통신문이 놓여 있었다. 문하는 몸을 일으키며 보스턴백의 지퍼를 지익 열고는 가정통신물을 조심스레 차곡차곡 접어 집어넣었다.
>>775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 답레에도 적어 뒀었지만 새슬이에겐 웬만큼 의미가 담긴 게 아니면 먹을 거 주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ㅇ)-(..
목걸이, 반지와 같은 악세사리 -> 뒹굴거나 오르내리면서 망가지거나.. 잃어버리거나.. 불편해함..... 사용법이 복잡한 도구 -> 일단 열심히 해 보려고 하지만 결국 안됨.. 활용이 힘듦..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 -> 처음 며칠은 열심히 하겠지만 사소한 건 금방 까먹음.....
이렇게 되어버려서요... 먹을 것 이즈 베스트 선택 ^.^)b....!! 챙겨주셔서 감사했읍니다 해인주.. (넙죽넙죽) 그와 별개로 첫 번째 레스부터 사실 눈치를 딱 까버렸다는 후문이
내가 쉬이 추앙하지 않음에도 너의 숭고함을 동경했던 것, 그로 인해 기어코 네게 신성한 이름을 붙인 것. 혹은 그러한 계기.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 #shindanmaker #Prevail_Law https://kr.shindanmaker.com/1020419
//뭔... 뭔 X소리야!!!!!!!!!!! 뭐라는거야!!!!!!!!!(이해불가능)
진단 결과 제품명 : ANDROID-KAQI1972 등록된 제품명 : 【남주원】 보고된 오류내용 : 원하지 않은 감정/애증 표출행동을 보입니다. 원인검증결과 : 감정 리소스의 누적. 해결책 제안 : 본체 소프트웨어의 강제 다운그레이드.
옷장, 눈꺼풀 위로 내려앉는 월광에 안도하던 시절, 네가 뻗은 손으로 하여금 내가 홀로 어둠에 남을 수 없게 된 것, 혹은 그 숭고한 공존. 나의 겨울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 #shindanmaker #Prevail_Law https://kr.shindanmaker.com/1020419
(문학 너무 어렵다 증맬;) (다른친구들 진단 마구퍼먹기)
ㅡ 연호주 다녀오세용 >:3~~
>>800 말투에서 딱 알아챘어요. ~할께! 하는 말투는 제가 본 바 해인이밖에.. 없었기 땜에..... (옆눈) 그리구 콜라라는 별명도 해인이가 탄산음료 좋아하는 데에서 나온 줄 알았는데 그냥 붙이신.. 거였나요? :0
>>807 그 많다는 기준이 애매아니 질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하늘이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틀림없이 피아노와 맞먹을 정도로 좋아할 것이 분명하단 말이야. 그렇기에 아마 자신이 상대의 1등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할 거라고 생각해. 물론 그 이전에 자신 역시 상대의 1등으로 있고 싶어서, 정말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쓸 것 같긴 한데..
어라. 집착에 질투가 많네? (절레) 이 위험한 하늘이는 뒤로 슬며시 치울테니까 다들 안심하라구!
일단... 마니또에 대한 언급이나 반응을 가예주가 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리네요. 첫 번째 사진이 궁금하다는 걸 항상 생각하고 말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매번 말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답변으로서 충실하게 대응하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려문주가 가예주의 이벤트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 부재에 기분이 상하든 상하지 않으셨든 상호 소통성이 적용되는 이벤트에 미흡한 태도였다고 생각하여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반응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약간 심통이 난 표정이지만 어째 웃는 얼굴과 뒤섞여 기분나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당신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란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에 딱히 반박할 생각도 없었지만...
"음... 어떤면에선 정말 제네바 협약하고 비슷하네요... 뭐, 그런 거라고 할게요~"
팩트로 때리면 안된다는 협약, 과연 그녀가 그걸 얼마나 지킬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눈치는 어느정도 있는 사람이니 굳이 긁어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물론 작정한다면 뭐든 할수 있다지만, 사람이란게 염치가 있고 정도란게 있는 법이니.
"...진짜 선배님 재밌는거 알아요?"
무의식적으로 받아내긴 했는데 저렇게 태연하게 엄지를 들어올려보이면 갑자기 괴롭히고 싶어지는게 사람심리였다. 지금이라도 휙 피한다면 피할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알아요~ 어디까지나 농담이니까요~?
펄떡 일어나는 당신의 모습이 마치 놀란 강아지같아서 조금은 쓰다듬어보고 싶었지만, 바로 그 생각을 거두었다. 이래서 친해지면 바로 장난치는 버릇을 줄여야 하는데...
그래도 뭐든 받아주려 하는 당신에게 그녀는 분명한 호의를 받았고, 언젠간 그에게 다시 그 호의를 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후후... 저도 즐거웠답니다~ 오늘도 알차게 보낸거 같지 않나요?"
나쁘지 않은 하루, 딱히 나쁜 기억이 남을 일도 없는 하루, 당신이 정리를 하고서 자신을 보낼 채비를 하자 여느때처럼 조용히 나가려 문을 열었던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그것을 잠깐 만지작거리다 알수 없는 웃음을 지었을까, 물론 뒤돌아서있었기에 당신이 그 표정을 알리는 없겠지만...
>>862 당신의 예상이 맞읍니다..... 지옥의 밸런스 게임이라 생각하고 골라죠... >>86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너무 무해한 질투 아니야....??? 너무 귀여운데 뭔 일이여........ㅠ 헉 민규도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사하한테 얘기해주기.. ㅇ.<
>>880 너를 미루면 내일 넌 지금과 똑같은 마음일까? 계속해서 널 미루고 주기적으로 보기만 하면 조금 늦더라도 너와 내 관계를 되찾을 수 있을까? < 이거너무좋아요 하늘아........................................ 이런 완벽한 남자같으니라고 ㅁㄴㅇㄹ
1차 등장 대사(문자)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할 수 있나요?」 2차 등장 대사(보이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요?』
성능 평가 :: "이 정도 성능이면 뽑는 보람이 있죠" #shindanmaker #당가등 https://kr.shindanmaker.com/1050391
현슬혜, 사랑이란 건 뭐지?
내가 쉬이 추앙하지 않음에도 너의 우미함을 동경했던 것, 그로 인해 기어코 네게 신성한 이름을 붙인 것. 혹은 그러한 계기. 나의 가을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 #shindanmaker #Prevail_Law https://kr.shindanmaker.com/1020419
현슬혜 > 지압 슬리퍼를 즐겨 신음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81043
현슬혜 님은 핫핑크색 이미지로 다크서클 눈을 가졌으며 작은 날개에 아프로 머리, 찌질한 무성형 악마입니다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339501
제품명 : ANDROID-JKSA7214 등록된 제품명 : 【현슬혜】 보고된 오류내용 : 지정되지 않은 상대에게 「애증」행동을 표출합니다 원인검증결과 : 논리체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류발생. 해결책 제안 : 방문 A/S 서비스를 권장합니다. #shindanmaker #안당오 https://kr.shindanmaker.com/1039103
같이 있기만 하는 정도라면. 버림받아 비루먹은 늑대의 외로움은 양들의 외로움과 그 결이 거의 같다. 그래서 이 순간, 문하는 우연히도 새슬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공원에는 정자가 있었다. 스쳐지나가면서 곁눈질로 봤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비를 피하러 온 사람은 문하와 새슬뿐인 듯했다. 새슬의 뒤를 따라, 까만 우산이 까마귀 날개 접듯이 접힌다. 물을 훌훌 털어낸 문하는 정자로 들어오다가, 어디쯤에 앉으면 좋을지 몰라 잠깐 허둥거렸다. 다행히도 새슬이 자리를 짚어준 덕에, 문하는 새슬이 짚어준 자리에 별 이의를 표하지 않고 그곳에 앉았다. 확실히 봄 소나기치곤 무겁게 내린다. 이 소나기가 개이고 나면 새슬의 말마따나 이 세상의 계절이 여름으로 바뀔 모양이다. 자신만을 겨울에 남겨둔 채로. 상관없다. 꽤 오래 전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문하는 자리에 걸터앉으며 새슬을 잠깐 바라보고는, 새슬의 시선이 향하는 처마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만 역시 새슬의 옷이 체온을 뺏을 것이 신경쓰였던지 문하는 보스턴백에서 수건을 다시 꺼내기 위해 가방으로 시선을 내리며 지퍼를 쥐었다. 새슬의 질문이 날아들어온 게 그 때였다. 문하는 손을 멈추고 다시 새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새슬의 시선은 다시 앞으로 돌아갔으나, 문하의 까맣게 죽은 눈은 새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몇 초 정도, 침묵.
"그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제서야 문하도 새슬을 따라, 처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래줄 수 있어."
새슬의 체온을 앗아가고 있는 옷만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여기서 영영 비가 그치지 않는 것도 괜찮을 성싶었다. 문하는 가방을 마저 열어서는 수건을 꺼내 새슬의 무릎에 덮어주었다. 춘추복을 입을 시기라 블레이저를 옷장 속에 처박아둔 게 못내 후회됐다.
홍현의 대답을 토대로 보면 따로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문제는 먹을 약이 바닥으로 쏟아진 것이다. 이러한 초조함을 일단은 드러내지 않고 괜찮냐는 질문에 선선히 대답하며 둥글게 모은 손아귀를 플라스틱 약통으로 가져간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투과되는 남색 머리칼, 빗질을 한지 시간이 흐른 듯 흩어진 머리. 그리고 하얀 가운.
"먹어야 하는데 다 떨어져서 어쩌지."
바닥 위로 떨어진 약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는 섣불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늘어뜨린 눈썹 끝으로 미안함을 표현했다. 섞여 있는 약도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지만 문제가 된다면 어느 정도는 배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본인이 먹는 억제제와 꼭 닮은 약을 약통 안에 톡 넣었다. 아무래도 다른 학년인 것 같은데 과학실험부인가?
"가운인 것 같은데 부 활동이라도 하고 오는 거야? 아니면 보건실에 갔다왔나."
약 받으러. 여자는 겉옷을 걸치는 시늉을 하며 홍현이 바깥에 걸친 가운을 가리킨다. 전에 과학실에서 실험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웃으며 중학교 때나 봤던 것 같은데, 하고 덧붙였다.
저리 가라는 얘기에 지구는 짧게 웃음을 흘리며 사하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이려 했다. 가란다고 가고 오란다고 오면 그건 개지. 나는 아무 개나 안 해. 그리고 넌 물리지 않은 게 다행이지. 생각은 머리를 스쳐갈 뿐이다.
"위험하다니까."
자꾸 사고쳐. 어디 요주 인물 기록부에 이름이라도 적어 놔야 마음 편할까 싶다. 무방비를 핑계로 재미를 얻는 사고뭉치가 어디있나 했는데 눈앞에 있는 거고. 그런 말을 뱉는 사하는 또 너무 즐거워 보여서 괜히 한숨을 뱉었다. 어차피 백번 말해도 이백 번 듣지 않을 걸 알아서 괜한 오지랖 부리기 싫다가도 사하가 철없게 구는 모습을 보면 괜히 제 여동생들이 생각나 자꾸만 언질을 하게 된다. 제멋대로 구는 인간을 제어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기가 센 편은 아니라 신경을 끄는 게 맞는데. 지구는 뒷목을 쓸어내리며 눈을 얕게 찌푸렸다.
"앞으로 평생 그렇게 불러라."
비굴하게 구는 사하의 모습이 퍽 안 어울리기도 해서, 지구는 터져나오는 웃음에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 큭큭 웃다가 말을 마저 뱉고는 한칸 아래에 있는 사하를 내버려두고 얼마남지 않은 칸을 저 혼자 밟고 올라간다. 그야 학생회실은 2층에 있었으니까. 당연하게도 금방 도착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칠칠치 못한 사하를 데려다 줄 생각이었으나 저렇게까지 싫다고 하니까. 절이라도 시켰으면 꽤 귀여웠을 것도 같은데 지나가는 학생들의 오해를 풀 자신이 없다. 업혔다가 계단에서 우당탕탕 구르기도 싫고.
"먼저 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대충 흔들던 지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가.. 아. 그러고보니 결국 그녀 덕분에 한 대도 태우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구겨진 표정으로 홀로 마른 세수를 했다. 지금이라도 가자니 너무 늦었다. 뒷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한숨을 쉬는 지구가 학생회실 쪽으로 힘없이 향한다.
//막레로 치셔도 되고 막레 주셔도 됩니다! 너무너무 길어지고 늦어져서 죄송해요 사하주 ㅠ▽ㅠ그치만 사하랑 땡땡이 칠 수 있어서 너무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