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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학교에 도착해서 학생회실로 들어오니 샌드위치가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있는채로 놓여있었다. 이것도 설마 마니또의 선물인걸까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보니 역시나 마니또의 쪽지와 함께 놓여있었다. 허어, 마지막날까지도 이렇게 챙겨주다니. 부학회장이라서 잘 보이려는걸까 싶기도 했지만 내가 뭐가 되는 사람도 아닌데 그럴리가 없지. 샌드위치의 내용물은 알차게 들어있었고 양도 꽤나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나 밖에 없는데. 내가 집에 가져가서 저녁으로 먹어버릴까 싶었지만 같이 먹으라고 준거니까 그럴 수는 없지.
[선착순으로 학생회실에 오는 사람들한테 샌드위치 나눠준다.]
학생회 인원들이 들어와있는 단톡방에 그렇게 전송해둔 나는 하나를 꺼내서 한입 크게 물었다. 오 맛있어, 버터쿠키는 태워먹더니 샌드위치는 꽤나 잘 만들었네 같은 무례한 생각이나 하면서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단톡을 보고 온 학생회 인원들이 한두명씩 오고 있었다. 오는 순서대로 만들어진 샌드위치를 나누어주고, 마지막 하나까지 나누어주고서 선착순 끝! 이라는 메세지를 보낸다. 못보고 뒤늦게 온 친구들한테는 주머니의 사탕을 주면서 보냈고.
- 샌드위치 잘 먹었어요. 지금까지 준건 다 맘에 들었어요, 특히나 만년필. 소중히 사용할께요.
커피는 결국 못먹고 버렸지만 그런건 모를테니까 굳이 적지 않는다. 내가 못먹는걸 알고 보내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리고 못먹는걸 강제로 먹는 것을 상대방도 바라지 않을꺼라고 생각 ... 아니, 일부러 엿먹으라고 보낸건가 설마?
그가 그의 상처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피부 위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황량한 바람뿐. 그가 통각에 둔감해진 것에는 특별한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런 조그맣고 대수롭잖은 상처 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한 치명적이고 거대한- 평생을 안고 가게 될지도 모를 상처가 가슴 깊숙한 곳에 고통스레 남아있었기에. 자잘한 고통에 둔감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랑이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에 대해 문하가 조금 이상하다고 여기는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문하는 아랑이 잠깐 기다리라는 말에 그대로 그 자리에서 별 저항 않고 순순히 자세를 낮춘 채로 아랑을 기다려주었다.
다만 반창고를 붙여줘도 되냐는 아랑의 제안은 뜻밖이었기에, 문하는 괜찮겠냐는 듯 아랑을 새까만 눈동자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경계하는 것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랑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자기 상처를 너무 가까이에서 보여주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컷팅 몇 개로 저렇게 걱정하는 애한테, 그 친절함에 취해버려서 바보처럼 숨기고 있던 상처까지 보여줘버리게 될까 봐.
늑대는,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대한 팔팔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무리에서 쫓겨나버리니까. 사실, 진작에 무리에서 쫓겨나 외톨이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늑대의 본능적 프라이드는 남아있는 것이다.
문하는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하나만 입 다물고, 멍청한 생각 하지 않으면 돼. 그는 눈을 감고 아랑의 손길에 얼굴을 내맡겼다. 딱히 아프거나 하는 기색은 없는지, 약을 바르는데도 문하는 얼굴근육 하나 미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생각보다 반창고를 좀 많이 붙이네.
"너한테 날아올 일 없잖아."
권투종목 특기생은 아랑이 아니고 자신이었으니까. 어두운 나날들로 걸어들어가는 것은 아랑이 아니고 자신이었으니까. 아랑이 조심스레 손을 떼자, 문하는 자연스레 한 발짝 물러섰다. 그야, 피부 위로 고통은 안 느껴져도, 아랑의 손이 갈수록 떨리는 것은 느낄 수 있었으니까. 아닌 척해도 꺼림칙하겠지. 당연한 일이다. 자기 처지는 자기가 잘 알았다.
"고마워."
반창고투성이 얼굴이라도 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처투성이보단 나아보인다. 문하의 트레이너가 옆에 있었다면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어떤 닥터도, 자신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고. 반창고가 붙은 얼굴을 매만져보던 문하가 자기 책상을 한번 흘끔 바라보더니 아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137 흑흑 친절해(꼬옥) 좋아요 화력에 휩쓸리기 쉬운 우리 스레지만 그래도 파이팅 파이팅
다들 프롬파티 이야길 하고 계시는군요... 새슬이는 도저히 드레스를 갖춰입고 파티에 서성거리는 게 상상이 안 가는 것... ㅇ)-(.... 대충 평소의 세일러복 차림으로 옥상이나 뒷뜰 한켠에서 음식이랑 무알콜 샴페인같은 거 한 잔 가져다가 야금거리면서 농땡이 칠 것 같은데... ^.^....!!!!!
조심스레 손가락을 뻗어 다육이 잎 끝을 톡, 건드렸다. 잎 안 쪽도 만져보려다가 말았다. 식물은 사람 체온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댔지. 조금 거리를 둬야 하는 걸까. 다행히도 최민규는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햇볕에 잘 드는 창가에 두고, 가끔 잎을 닦아주고. 물을 언제 주었더라, 가물댈 쯤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학교에 화분을 계속 두면 분명 언젠가 사고가 나겠지. 누가 화분을 엎거나, 하다못해 잎 하나가 똑하고 떨어져버릴 수도 있다. 결국 최민규는 오늘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집에 가기로 했다. 양 손에 작은 화분을 소중히 들고, 조심조심.
'저는 햇볕을 좋아해요. 햇볔이 잘 드는 창가에 놓아주세요.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아파요. 잎이 말랑해지면 흠뻑 물을 주세요. 적당한 관심을 주면 기쁠 거예요.'
펜을 들고 답장을 썼다.
[같이 기다리는 거면, 너도 아직 겨울인 걸까. 그래. 혼자보다 둘이 기다리는 게 더 즐겁겠지.
그동안 고마웠어. 나중에 정체를 안 뒤에 만나게 되면, 꼭 고맙다고 직접 말해주고 싶네.
그리고 다육이 이름은 펭귄으로 지으려고.]
팻말처럼 말풍선 스티커를 창문 근처 벽에 붙이고, 그 아래 선반 위에 화분을 뒀다. 여기가 제일 햇볕이 잘 들어왔었지, 아마.
매직을 꺼내 화분 옆면에 '펭귄'이라 서툴게 적었다. 한동안 최민규의 최근 검색이 '다육이', '다육이 기르는 법' 등으로 도배될 것이 틀림없었다.
"늑대는,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대한 팔팔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무리에서 쫓겨나버리니까."
TMI) 이 습성은 체코슬로바키아 늑대개에게도 있는 습성이야. 그래서 수의사들 사이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늑대개는 최악으로 꼽혀. 병에 걸려서 골골대도 골골댄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기 때문에, 우연히 진단을 했다가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게 아니면 병이 더이상 숨기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고 나서야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하거든.
억지로 잊으라고 한 주제에 정작 자신은 잊지 못했다니, 그녀는 스스로의 무능함과 미련을 저주했다.
애써 떨어뜨리고나서의 일곱밤, 그리고 해가 돌아 다시 이곳에, 마음을 정리하는동안 자신에 대한 것도 정리할만하거늘, 완전히 내려놓진 않은 건지 당신이 다시금 손을 뻗어오자 그녀는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까맣고 긴 비단을 흐트려놓은듯한 머리카락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갈색빛의 눈동자도, 가느다란 팔다리와 뺨에 어린 풋풋한 분홍빛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그때는 억지로 피했던 얼굴을 다시 마주해보면, 어째서 이런 사람에게 손을 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가녀리면서도 아름다웠다.
...뒤늦게나마 그녀 역시 당신이 품었던 생각을 쫒는것 같았다. 이미 늦은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왜인지 모르게 당신이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밝은 미소와 함께 자신을 끌어안듯 목에 팔을 두르자 그녀 역시 당신의 행동을 따르듯 조금 뻣뻣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것조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어 다행스러우면서도 한켠으론 아쉬웠을까, 그래도 그녀는 그저 당신이기만 하면 그걸로 만족한다는듯 부드럽게 자신쪽으로 끌어당겼다.
"기억 못할 리가 있겠나요..."
아마 집에 돌아가자마자 오늘이 무슨 중대한 날이었는지 달력을 미친듯이 훑어보았을 것이다. 결국 찾은 거라곤 미팅날짜만 가득 적한 비지니스캘린더였지만 그녀는 그날을 제법 소중하게 여겼었다. '기념일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
당신에게서 들려온 말은 오히려 무언가를 돌려받는 느낌이었다. 분에 넘치는 사람, 차마 욕심내어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귀했던 사람,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옆에 두어선 안되는 사람... 오히려 자신이 그런 느낌을 받고 살아왔노라 말하고 싶어도 굳이 꺼내지 않았다. 다만, 마찬가지였다는듯 조금 애잔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을 바라보았을까?
천천히 뺨을 맞대고, 상냥하게 부비적대던 그녀의 얼굴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눈을 접어 웃어보이는 당신을 바로 볼수 있었다.
"미안하고 죄송스러운건... 저도 마찬가지인걸요..."
살랑살랑, 자신의 뒷머리를 매만지는 손길 그러다가도 가볍게 입술이 맞닿자 저도 모를 찌릿한 느낌에 움찔거렸는지 당신을 안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저도, 부족했으니까요... 마주할 용기도, 사실을 말할만큼의 배짱도 없어서... 그리고 이쯤 되면 알겠지, 같은 무책임한 생각만 해서..."
제법 가까워진 거리인만큼 그녀는 서로의 코끝을 건드리듯 톡톡 부딪히다가도 살살 쓸어보기도 하고, 다시 짧게 입을 맞추다가도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듯, 체취를 다시금 기억해내려는듯 당신의 목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그것이 어째 다리에 몸을 부비며 자신의 소유임을 나타내려는듯한 고양이들의 행동과 다를게 없어 스스로가 우스웠지만, 이젠 구태여 거리를 벌릴 필요도 없었기에 장난스럽게 당신의 목덜미를 물어보기도 했다.
빗 속에 혼자 둘 수는 없었다고 둘러대는 작은 변명에, 새슬이 조그맣게 키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게ㅡ. 덕분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되었네. 고마워. 말하는 도중 새슬의 안색이 아주 미묘하게 변했으나, 금방 나른하게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아주 찰나의 순간. 뚫어져라 새슬의 얼굴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할 빠른 변화였다.
“멋진 이름이야.”
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이름을 나지막히 입술에 담아 본다. 새슬은 특이하지만 퍽 근사한 이름이라고 어렴풋한 감상을 남겼다. 어떨 땐 기쁨의 소리로, 혹은 탄식의 소리로, 수만 가지의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한 글자를 이름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억하기 쉽다. 머릿 속으로 몇 번 더 하, 문하, 하고 이름을 되새긴 새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비가 그치면, 여름이 올까.”
흐릿 잿빛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름의 하늘을 떠올렸다. 높고 푸르른 창공, 뭉게구름. 새파란 녹음 같은 것들을. 그런 것들을 눈 앞에 두고 여름의 냄새를 만끽하다 보면 마음 한 켠이 그나마도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새슬은 여름이 좋았다. 중간에 걸린 장마와 태풍은 견뎌내어야 할 지독한 시련이었지만. 새슬이 다시 물었다.
목을 끌어안으며 몸을 가까이하자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는 슬혜의 손길이 느껴진다. 어색하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자신의 몸을 감싸안는 슬혜의 감촉이라서 한순간 아찔함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더 힘을 주어 슬혜의 목을 감싸안고 몸을 밀착시켰다. 지금 느껴지는 슬혜의 온기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슬혜의 대답에, 한순간 목을 감싸안고 있던 시아의 눈이 커지고 순간 조용히 내쉬던 숨이 멈춘다. 몇초간의 정적, 그러다 기쁜 듯 슬혜에게 들뜬 목소리로 속삭이며 뒷머리를 사랑스럽다는 듯 쓸어내려준다. 정말로 따스하고 기쁜 일이다. 자신만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는 확신과 그 증거를 얻게 되니 혼자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뺨을 맞대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은 듯 부비적거리던 시아는 천천히 떨어져선, 자신의 웃는 얼굴을 제대로 슬혜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 이해해.. 나도 무서웠으니까, 혹시라도 널 만나면 제대로 내 마음을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무서웠으니까.. 그런 생각을 한 건 다 이해할 수 있어. "
코를 톡톡 부딪혀오는 슬혜에게 답례를 하듯 똑같이 따라서 톡톡 코를 부딪히고, 부비적대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한번 입을 맞춰오는 슬혜가 조금이라도 더 기분이 좋아지도록 열렬히 호응하면서 점점 희미해가던 슬혜의 체취를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겨넣는다. 이토록 달콤했었지. 시아는 그렇게 아찔할정도로 달콤한 슬혜의 향을 되새기다가 자신의 목에 얼굴을 묻어오는 감촉에 자신도 모르게 귀여운 소리를 흘린다.
" 슬혜...야앗.."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오는 슬혜에게, 상대방의 기분이 들뜰 수 있게 하는 법을 아는 듯 귀여운 소리를 한번 더 흘리며 슬혜의 팔 사이로 팔을 밀어넣어 끌어안고는 몸을 더욱 밀착시킨다.
" ... 다시 봐줄거야? 이젠 슬혜 옆에 있어도 괜찮은거야, 나..? "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슬혜의 말을 듣던 시아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기울이곤 입술을 겹친다. 그리곤 어리광을 부리듯 슬혜의 아랫입술을 혀 끝으로 훑어주곤 오물거리다 떨어진다. 두사람의 호흡이 그대로 서로에게 바로 와닿는 거리에서 눈을 마주한 시아가 천천히 손으로 슬혜의 등을 쓸어내리며 반짝이는 눈동자를 고정시킨 체로 속삭인다.
눈 앞의 슬혜가 늑대가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왠지 이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는지, 어리광을 부렸던 아랫입술에 한번 더 쪽하고 입술을 맞춰주곤 소곤소곤 속삭인다. 이미 두사람이 있는 빈교실은 두사람만의 공간이 되었음에도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이고 마는 시아는 수줍은 소녀 같았다.
가볍게 말하지만 주원의 인생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설령 어떤 맛이라고 해도, 그 맛을 깊이 느끼고 즐긴 만큼 다른 맛 또한 깊게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 한가지 맛만 추구하다보면 언젠가 질리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니 주원은 다가오는 모든 인생의 맛을 즐기기로 한 것이었다. 그의 인생관이 저 한 마디로 슬혜에게 전달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 아무튼! 그건... 그 머시기... 그 머시기 협약에 위반되는 것으로오오..."
말도 안되는 변명을 머릿속에서 지어내며 말해보지만, 그녀의 환하게 웃는 얼굴에 이제 변명은 어찌되든 상관 없는지 함께 미소짓는다. 서로 장난스럽게 장난으로 슬쩍 깨물고, 놓고, 어지럽히고. 친구들은 많았고, 친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이런 경험은, 주원에겐 처음이었다. 친구와 함께할 때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즐거움. 단순히 즐거움이 아닌 좀 더 간지럽고 웃음이 나오는 그런 경험. 그것은 슬혜의 어떤 단편적인 한 부분에서만 느낀 것이 아닌, 지금까지 본 그녀의 모든 부분에서 느낀 것이겠지.
이렇게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걸어오는 장난 하나 하나가 크고 작은 깜짝 선물처럼 느껴져왔다. 그리고 그 내용물이 어떻던, 전달 방식이 어떻던, 감정은 최종적으로 '행복한 웃음'에 다다르는 그런 선물. 함께 있어주겠다고 한 건 자신인데, 어째서 반대로 선물을 받고 있는 것인지.
슬혜가 입으로 무언가 소리를 내며 어서 숟가락을 놓으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주원은 거기에 "으으으으음!"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젓는 것으로 지지 않겠다는, 먼저 놓지 않겠다는 응전의 의사를 보였다. 거기서 슬혜는 치사하게도 손가락의 손잡이를 홱 놓아버린다. 숟가락을 쥐고있던 슬혜의 손에 어느정도 몸을 기대고 있던 탓에 갑작스레 그 힘이 사라지자 주원은 그만 자신이 쥔 숟가락을 놓아버림과 동시에 슬혜쪽으로 고꾸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