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신의 마법이 아무리 막히더라도, 정말 그것을 불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더 초조하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훗날. 지금 받은것의 제곱으로 상대에게 돌려주면 그만이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는 때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법이기도 했다. 당장 탈들과 그들의 주인에게 왠수 비슷하게 찍힌 자신이 하기에는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이었으나, 그걸 자각하고 멈춘다면 그건 주양이 아니었다.
".. 어머나,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니.. 당신의 뜻대로."
아니. 그게 아닌데. 하는 이성마저도 달콤한 황홀경 뒤로 파묻히고야 말았다. 지팡이는 각시탈이 아닌 제 연인을 향했으며, 그 행동에는 한치의 머뭇임조차 없었다.
금지된 저주가 난무하고 공격하는 사람은 단 둘밖에 없을 상황에 처한다. 너는 이런 상황을 놀이라고 생각할 사람이었다. 무지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새 배운 것이 몇 있답시고 기분이 또 나빴다. 네가 알기로 붉은 머리의 후배는 아주 좋은 사람인데 괴롭히기 때문이다. 너는 고개를 기울인다. 그리고 잠시 발을 동동 구른다. 그리고 쏜살같이 튀어나간다.
"과연 영민하신 분이십니다."
몸을 날리더니 손을 쭉 뻗어 향한 것은 목이다. 제 또래를 훨씬 웃도는 악력과 더불어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난 손으로 목을 틀어쥐려 한다. 너는 그리고 낮게 "이매 경과 같은 길을 걸으시려 하다니, 두분의 우애에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속삭이고는 아이처럼 쿡쿡 웃는 것이다.
빗나가는 부적을 보고 아랫입술을 짓씹다, 까칠한 어조로 또다시 말을 쏘아낸다. 이렇게 대치만 하는 사이에 시간은 계속 더 흘러갈 뿐이다. 안 좋은 예감이 들자, 생각이 많아지고 짜증이 쌓인다. 이내 익숙한 두통이 찾아와 뇌를 압박해오자 스베타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안 좋은 예감은 언제든, 틀린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방금 전과 같이 상대의 팔에 화상을 입힐 생각으로 부적 두 장을 쥐고 내던진다.
정신을 잃거나 하지 않은 건 통증이나 고통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겪고 있는 고통에 더 큰 고통을 덧씌우면 도리어 무뎌지고 만다. 단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호흡이 딸려서 두통이 더 심해지고 조금 더 아플 뿐. 자신을 안고 다독이는 연인의 모습이 뿌옇게 흐릿한 시야에 닿아서 단태는 연인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다가 능청스레 웃음을 흘렸다. 부러워? 하는 말을 내뱉으려다가 단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어진 주문은 임페리오였다.
"하."
헛웃음을 흘리며 자신에게 날아오는 주문을 막지 않고 그대로 맞으면서 단태가 주양의 몸을 붙들어 끌어당겼다. "내가 널 어째야할까. 응?" 들리지 않을 말을 주양의 귓가에 나직히 속삭이고 단태는 지팡이를 들어 각시탈을 겨냥했다.
그토록 찾던 윤이 품에 안겼음에도 그녀는 순수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줄이 떨어진 꼭두각시마냥 멍한 표정을 한 모습에 되려 마음이 아팠다. 빈자리 하나가 그에게 어떤 상실감을 안겨줬기에 이렇게까지 된 걸까. 그녀는 모르는 일이기에 입술만 꾹 깨물었다.
뒤에서 레오가 뭐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도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곳에 그녀와 윤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디핀도로 잘린 밧줄을 성급하게 풀어 내쳐놓고 재차 윤을 끌어안는다. 여전히 멍하게 늘어진 제 연인을 안고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그녀 역시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윤을 보고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요. 같은 말을 다시 중얼거리고서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한박자 심호흡을 하고, 휙 하고 움직인다. 윤의 뺨을 쳐서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한번이 뭐 그리 힘들었는지, 그 새 입술이 터져 붉게 물들고 있었다.
임페리오에 걸린 사람을 제압하는 주문은 알고 있었다. 배웠고, 실습도 해봤지만 실전에서는 단 한번도 성공해보지 못한 주문. 크루시오에 맞았던 몸은, 뒤이은 주문에 맞았음에도 통각이 무뎌졌는지 은은한 통증만 주고 있었다. 참을만 하다는 소리였다.
주양을 붙들어 안고 있던 한팔에 힘을 주면서 단태는 지팡이를 다시 명확하게 각시탈을 향해 겨눴다. 통각이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이유없는 통증과 크루시오로 인한 고통. 그 위에 덧씌워진 엑스펄소 주문까지 연이어 겹겹히 쌓인 통증에 잘게 손이 떨리는 것과 흐릿한 시야를 바로 잡지는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