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가 달리기에 탁월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았다. 운동을 하는 선하 입장에서는 달리기에 서투르구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하는 내색 않고 있었다. 애초에 상대도 저도 전문가가 아닌지라 함부로 평가하지 못한다. 선하가 집중하고 언급해야할 부분은 시아의 노력이지 실력이 아니었다. 슬쩍 시아의 옷차림과 운동화를 캐치해낸다. 신경쓴 티가 났다. 어렴풋이 작년 자신이 이맘때즘 치룬 시험을 떠올린다. 그때 자신도 달리기를 했었다.
"아마 맞지 않을까? 난 3학년이거든. 친구는 몇학년이야?"
선하의 시선이 떨어지는 땀방울에 머문다. 그 다음에는 그 물자국이 머문 볼,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잠시 지켜보았다. 이런 작은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를 못한다. 퍽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이런, 내가 널 놀라게 했나보네. 어떡하지, 내가 네게 부담을 준걸까? 그게 아니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네 곁에 있을게."
애증인지 앓는건지 모를 소리 뒤에 일단 내뱉고 보는 자신의 말에 그가 볼을 잡은 힘을 주려다가도 이내 느슨해진듯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의심을 거둔 것은 아닌지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지켜보던 그였지만 이내 위험한 행동을 했던 그녀를 걱정했다는듯한 의사를 보냈다. ...그렇다고 잡은 볼을 쉬이 놓아줄 양상은 아닌듯 하지만...
마치 대답을 기다리는듯한 그의 행동에 그녀는 잠시 옷을 뒤적거리다 어딘가에서 안경을 꺼내 쓰곤 살짝 치켜올리며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치지 않는답니다! 어릴적에 친구들 따라 주공아파트 2층난간에서 뛰어내린적도 있으니 이정도는 낙법으로 쉽게 무마시킬수 있죠! 게다가 고양이니까요~"
볼만 잡히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넘어갈만한 언변력도 통하지 않을만큼 다소 황당한 마무리를 지은 그녀는 다시 안경을 벗어 도로 집어넣고선 생긋 웃으며 볼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치만 침대에 누우라 하시는건 조금 설렜네요~ 저희, 침대도 공유할 정도의 사이인가요 선배님?"
몰래 숨어든사람치고는 다소 천연덕스러운 말이었을까? 어쨌든 그제서야 포기한듯 손을 떨어뜨리고선 다시 카레쪽으로 향하는 그의 말대로 소파에 앉아있던 그녀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설마하니 직접 요리할줄이야. 그가 부실에 있는 자신을 찾으려 했던 전례도 있는만큼 나가서 먹는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도중에 생각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익숙한듯 찬장에서 나오는 햇반의 모습에 그녀는 정색한 표정과 함께 소리없이 이마를 쳤지만 어쩔수 없었다. 보통 자취하는 사람에겐 밥 같은건 어려움을 넘어서 귀찮음일테니까, 자신처럼 요리가 일상인 사람이면 몰라도 보통 사람에겐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닐테다.
물론 뒤돌아있는 그의 심경이나 표정을 알 턱이 없기에미세하게 헤죽거리는 웃음 뒤 막바로 들려오는 헛기침소리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네~"
대답은 간결하게, 그가 말했던 상은 싱크대쪽에 눕혀져있는 하얗고 둥근 것인가보다. 그것 말곤 딱히 없는것 같기도 하고, 주변을 살피며 적당한곳에 다리를 펴 놓아두었던 그녀는 그 위를 손가락 끝으로 싹 쓸어 유심히 살펴보더니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애매한 표정으로 한동안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다 그가 움직이는듯 하자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872 그거 열개 모으면 상품은 뭐가 있어? 혹시 큰 스티커 하나와 교환된다는 그런 건 아니겠지? 아무튼 말이 착하다고 해야할까. 그냥 아무말대잔치인데. 사실 그렇잖아. 다들 일상 돌리는데 일상 돌릴 사람 없다고 이 자식들이 2멀티, 3멀티 하면서 왜 나는 자리가 없어! 이러면 이건 그냥 이상한 놈이잖아. 일상 돌리는 사람은 돌리는 것이 맞는걸. 사실 뭐 구하다보면 누군가는 돌리자 이러겠지. 뭐. (끌려나감)
시아는 당신을 바라보았어. 다리가 풀려 주저 앉아버린 것이 못내 부끄럽지만 선배가 다가와서 말을 거는데 부끄럽다고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미안해지니까. 하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볼은 아직 더 남았다고 더욱 더 붉어져. 아무래도 이런 못난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은 몇번이든 부끄러운 모양이니까.
" ... 선배 때문에 주저 앉은건 아니에요.. 그냥 저, 운동 같은 건 못 해서 연습하다가 그런거지.. 선배 탓은 아니니까요. "
자신에게 다가와 무릎과 허리를 굽히고 시선을 맞춰오는 선하를 보며 시아는 눈을 잠시 이리저리 굴려. 분명 땀냄새라던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아무래도 익숙치 않은 운동, 서툴기 그지 없는 행동들을 한 탓인지 평소보다도 땀이 많이 난 상태였으니까. 그래도 다행인건, 오늘도 약을 잘 챙겨먹었다는 점일지도.
" 네..네에.. "
여전히 거칠게 호흡하다가 선하의 나긋한 말에 이끌리듯 천천히 숨을 고쳐, 그러다 자신의 다리를 살펴보는 선하의 모습에 괜스레 두손을 가슴팍에 모은 체로 꼼지락거려. 별다른 감정 없이 그냥 성한지 확인하려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얇고 새하얀 다리를 보이는 것이 괜히 부끄러운 모양이야.
" 선배도 체육관 쓰시러 오신거에요..? 혹시 방해라도 된 건 아닐지... "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한다. 몇번이고 달싹이던 입술은 할말을 정하고 시선을 다시 선하에게로 옮긴 시아가 조심스럽게 속삭여. 혹시나 자신이 이런 못난 모습을 보이면서, 체육관을 쓰는 것도 방해한 것은 아닐지 걱정을 하는 듯 해. 이래저래 연기 같은 것은 아닌게, 누가 보아도 시아의 성격 그대로인 듯한 모습이야.
선배든 언니든, 별로 신경쓰지 않겠다는 투였다. 실제로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고. 달아오는 얼굴에 선하가 웃음을 픽 터뜨린다. "너 그러다 토마토되겠다."라고 말하는 데에 얄망궂은 구석이 있었다.
저때문에 주저앉은게 아니라는 말에 선하는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야 잔뜩이었지만 괜히 질척거려서 부담스럽게 굴 생각 전혀 없었다. 그정도의 상식은 있었고, 19년간 배워먹은 게 있었다. 선하는 굳이 운동을 못한다는 말을 끄집어 내지 않는 대신 마구 칭찬해주기로 했다. 흑심이라고는 없었다.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모종의 친근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대견하기까지 했다.
"수행평가 준비하는거지? 체육 점수 신경 안쓰는 애들 많은데 넌 따로 연습까지 하는구나? 멋진걸."
예리한 신경이 시아의 반응을 잡아냈다. 땀 흘린 걸 신경쓰는 걸까? 그러나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괜한 오지랖인 걸 알면서도 선하가 중얼거리듯 툭 말한다. "땀 흘린게 신경쓰여? 난 오히려 열심히인 것 같아서 좋던데." 이내 별 말 아니었다는 듯 푸스스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얼핏 보면 잘못들었다 착각할 정도였다.
"음... 사실 난 그냥 심심한 것 뿐이야."
혹여 문제라도 있을까 싶어 한 행동인데, 너무 유심히 봤나 싶어 멋쩍게 웃는다. 그제야 고개를 들고 질문에 답한다. "마침 네가 보여서 말을 걸었고. 방해는 내가 되겠는 걸." 굽히고 있던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방해되지 않게 일어나겠다는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상대가 원치 않으면 돕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나마 자외선 때문에 형광빛이 난다 해도 변질된 것은 아니고 시간을 두면 원상복귀되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칫했으면 이 비타민들을 다 버리게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에 홍현은 확실히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건의사항은 없었다. 아직 약재가 부족하지도 않았고 있는 장비들 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회용품들이 많이 사용되긴 했지만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저렴한게 대부분이었고 자금이 부족해질 정도로 자주 모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홍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건의사항은 없는 것 같네요. 그래도 나중에라도 건의사항이 생기면..바로 학생부로 가서 건의하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