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의 명찰. 2학년이구나. 명찰에는 양홍현이라는 이름 석자가 잘 보이게 적혀있었다. 물론 귀에 들려온 자기소개로도 그녀의 이름이 양홍현이라는걸 알 수 있었지만. 근데 말하는게 좀 더듬거리는게 긴장을 했나 싶었다. 내가 그렇게 높은 사람은 아닌데.
" 그럼 말 편하게 해도 괜찮죠? "
기본적으론 모르는 사람에겐 말을 높이지만 같은 학생들을 대할 때는 말을 편하게 하려는 주의였다. 어차피 같은 학교에서 다니는 학생들이니까 편하게 하는게 더 가까워지기 좋을 것 같고. 지금은 3학년이니까 나랑 같은 학년이거나 후배일테니 무조건 말을 높여야하는 사람도 없었다.
" 아, 딴건 아니고 약학부가 밤에 빛이 새어나온다는 말이 있어서요. "
새어나와봤자 얼마나 새어나오겠냐만은 근처에 사는 기숙사생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테니까. 그리고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것도 좋은 행동은 아니다.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위험하거든.
>>704 양아치주가 바라는 목표도 그거야!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자신이라고 가면이 필요 없이 당당하게 내비치는거! 그래서 얘가 친해질수록 자기 본성을 드러내니까 점점 양아치가 된다 그런거구... >>705 입술? 음... 🤔🤔 얼굴에 매직클로 3연타 맞고 싶다면야. ^^...
>>706 (찔림)(뜨끔) 사실 만월일상때 주원이가 정말 아무것도 안했다면 오히려 양아치가 물었을 거야. 마치 사냥할줄 모르는 새끼에게 직접적으로 가르치듯... 얘! 니가 사냥감이 되어보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방금 해인의 말은 조금 의외였을지도 모른다. 뭔가, 굉장한 야망이 있을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말이지. 조금 지친 걸까? 아니, 그냥 내가 성격을 지나치게 지레짐작한 걸 지도. 그래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 사람은 싫지 않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에 가까웠다.
"나중에 심심해지면 귀농하러 내려와."
복숭아 과수원 한 켠 정도는 떼줄게, 장난스레 덧붙였다.
"경제랑 통계라.. 둘 다 어울리는데. 수학 좋아하나봐, 응."
해인이 말을 잘 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를 수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 또한 개인의 몫이지.
"힘이라도 세야지."
해인의 어깨를 수고했다며 두들겨주려 했다. 땀이 조금씩 삐질삐질 배어나왔다. 덥다, 중얼거렸다.
이번엔... 정체불명의 큐브가 자리에 놓여있었다. 마치 우주를 담아놓은듯한 기묘한 상자, 그리고 함께 있던 쪽지엔 <저번에는 너무 무례한 말을 써놓은것 같아 사과드립니다. 이번에는 재미있는 선물로 준비해봤습니다. 좋아해주시려나요?> ...라고 써있었을까?
"딱히 무례한거 같진 않았지만요..."
그것보단 다소 엉뚱한 사람인것 같다, 정도의 생각을 했을까? 몽환적인 상자를 열자 그 안에 또 상자, 그리고 또 안에 다른 상자, 그러곤 진짜 상자 안에는 사탕 속에 파묻혀있는 고양이 마트료시카가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마트료시카를 좋아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떻게 보면 까도 까도 똑같은 자신을 닮은듯해 좀 재미있었을까? 마트료시카를 싫어하지도 않을뿐더러 사탕 역시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이건 오히려 분에 넘치는 장난감이 아닐까 싶었다.
<딱히 불쾌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재치있는 발언이다 생각했지만요~ 그러니 사과하실 필요 없답니다! 이번에 주신 것도 꽤 마음에 들었어요! 그냥 받는건 좀 그런것 같아서 저도 나름대로의 성의를 표시하도록 할게요~> 라는 쪽지와 함께 있을리 없는 엄지를 치켜올리는 하얀 고양이 스티커와 설탕범벅으로 유명한 모 도넛 회사의 베이직 세트를 답례로 놓아두었다.
...이전에 도넛을 주었던 사람에게 도넛으로 받아치는건 조금 그러나? 하지만 그녀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것 같진 않았다.
[오늘 카레 만들건데 먹을래?] [올거면 연락해.] 슬혜에게 톡을 보내둔 뒤 적당한 시간이 흐르자 주원은 "읏샤."하고 일어서서 남색 앞치마를 입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만들기로 한 것은 바몬드 카레. 카레는 만들기도 쉽고 왠만해선 맛을 실패하지 않으니 말이다. 양을 조절하지 못하는게 아니면. 먼저 감자, 당근, 양파,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싹둘썰기 한다. 주원이 칼이나 날붙이를 다루는 것은 요리보단 무언가를 만들때긴 하지만, 그만큼 익숙해져 있다보니 재료를 써는 것도 능숙했다. 균등한 크기로 잘린 감자, 당근, 고기를 먼저 넣고 볶은 뒤 고기가 반쯤 익었을 때쯤 양파를 넣고 마저 볶는다.
"이대로 밥 비벼먹어도 맛있긴 하겠다."
카레를 포기하고 밥을 함께 볶을까 하는 유혹이 드는 냄새. 그러나 카레를 만든다고 했는데 왠 고기야채 볶음이 되어있으면 그건 이상하지 않겠나. 주원은 그 유혹을 억누르며 나무 뒤집개로 재료들을 볶았다. 양파가 투명해질 즈음 4인분 정도의 물을 넣고 카레를 꺼낸다. 마침 카레는 1인분이 하나의 블록으로 되어있어 구분하기 쉽다. 4개의 카레 블록을 잘라 넣고 뒤집개로 천천히 젓기 시작했다.
"원래 이렇게 묽은가? 양이 틀린건 아니겠지?"
의심이 들 정도의 묽은 색이었지만 어느정도 볶고 있다보니 카레의 색이 점점 진해지며 카레의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방을 채웠다. 묽은 색에서 어느정도 붉기를 띄우자 주원은 인터넷에서 본대로 꿀을 한 스푼 넣은 뒤 다시 카레를 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