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신이 난 규리한테 글 쓰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로 무뚝뚝하다 못해 무심한 대답이다. 동영 체육관? 하고 목적지를 되묻는 말에도 고개 한 번 끄덕이고 말 뿐이다. 그저 규리가 그 체육관 근처로 간다는 말에, "그러네, 잘 됐네." 하고 맞장구를 칠 뿐이다.
규리가 인정사정없이 언어의 격류를 와르르 쏟아내는 게 적응하기 조금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 다행인 점은 그 쏟아지는 말들 중에서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답하지 않으면 저절로 그 다음으로 쏟아지는 말들이 그것을 덮어준다는 정도일까. 음료수 줄게, 하는 말에 문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들었다. 재밌는 사람이라는 말. 이쯤되니 나 진짜 재밌는 사람인가 싶다. 제 말에 웃는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진짜 재밌는 사람 축에는 끼지도 못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재미를 나만 모르고 있나? 사람들은 다 나 재밌다고 하는데 나 혼자 모르는 그런 거. 하지만 역시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내가 그 정도로 웃기면 TV에 나오고 있겠지.
"어… 조금?"
그래도 아주 최근에 두 번이나 들은 말을 아주 부정하고 싶진 않아서 애매한 대답을 뱉었다.
"그렇구나. 고양이 매너 익혀서 환심도 사볼까 봐요."
고양이 키우는 친구를 간절히 바랐는데, 주변에 다 저 같은 사람밖에 없었다. 액정 속 고양이들만 보며 부럽다는 말 반복한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물론 친구라고 하기엔 오늘 본 후배였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글쎄랑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눈 마주치면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그것 참 곤란한 의뢰네요……."
사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맛있는 신호등 치킨?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말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클래식한데 모던한 디자인 같은 거. 애초에 과일맛 치킨이 맛있을 수 있는 걸까. 생과일로 만든 소스라면 고민 좀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
"음, 그것도 다음에 만날 때까지 고민해볼게요."
<엄청 친절하다. 처음 만난 사람 간식도 챙겨주고.> 사하가 웃으며 말했다. 동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던데, 이 말은 꽤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들려온 대답은 애매했지만 애초에 대답을 예상하고 했던 말이 아니다보니 살짝 의문을 가진 그녀에게 그저 싱긋 웃어보였다. 생각만큼, 생각보다 착한 사람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가 스쳤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고양이의 안위와 기분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엉뚱한 사람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
"후후후... 그것도 나쁘지 않죠~ 평범한 사람과 매너를 제대로 알고 지키는 사람의 차이 정도의 효과는 볼 수 있겠네요~
고양이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몇 안되는 역사 깊은 동물 중 하나기 때문에 사람의 의사소통이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엄청나게 신경쓴다구요~"
어떤 때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어서 고양이 외계인 설이 돌기도 하니, 물론 그만큼 눈치가 빠른 동물이란 의미일까.
"그래도 뭐, 그런 경우는 정말 거의 없으니까요~ 연중행사정도라고 할까~ 대명절 같은 수준의 패턴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하기 꺼려지는 도전일 뿐이지 막상 하고나면 나름의 뿌듯함도 있기에, 괴식도 미식이라는 말이 있지 않을까? 물론 그녀나 자신이 그것을 진심으로 믿을지는 미지수지만.
"후후... 어떤걸 부탁하실지, 기대해도 되는 걸까요?"
어쩌면 단순히 뭔가 만들어주는걸 좋아할 뿐일 수도 있고, 같은 관심사로 묘하게 정이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원래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데는 거창한 이유가 없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