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에 앓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어리석은 바보짓으로 인식되곤 하지. 세월을 좀더 살아가면서 첫사랑과 비슷하거나 더 무거운 시련들이 삶에 얹히기에, 빛바랜 옛날 추억의 무게는 그만큼 쉽게 잊혀져가곤 하거든. 정확히는 그것에 적응해간다고 해야 하나 무덤덤해져가는 거지.
그렇지만 문하는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고, 작년에 있었던 일을 문하는 올해 초까지도 극복하지 못했어. 무기력하게 현실에 발을 두고 살아갈 줄만 알던 어린아이한테, 마음도 시간도 모두 멈춰버리는 충격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일이겠지. 문하가 흑백의 세상에 무덤덤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거야.
그러고 보니 픽크루 출처 링크하는 걸 잊었네. https://picrew.me/image_maker/54346
귀여운걸 너무 많이 봤다가 잊어버릴것 같다. 라는 이야기에 조금은 의문을 품을만 하지만 그래도 납득은 빠른 편이었다. 원래 사람이란게 여러개를 늘어놓아도 결국 하나만 파고들곤 하니까, 가령 지금 상황에서 코끼리땃쥐의 귀여움을 설명한다면 고양이는 또 금방 잊어버리는게 사람이다.
"그렇게 마시멜로식 딜 같은거 하지 않으셔도 된다구요~ 고양이는 많이 볼수록 좋은 거잖아요?"
기다리면 하나 더, 라던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그녀가 원하는만큼은 보여줄 심산이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여진 말에 그저 웃어보였을까, 단순히 조심스러운 편인지, 그저 눈치를 많이 보는편인지 모를 행동을 하는 선배님이라곤 생각했지만 그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사람관계란건 무조건 수그리는 것도 사는데 불편하겠지만 주변 따위 알 바 없다는듯 행동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테니까, 자신은 어느쪽이냐면 아무래도 후자였기에, 만사가 귀찮고 불편한 고양이의 까탈스러운 삶이란 늘 그런 법이다. 어쩌다 들어맞은 이해관계가 아닌 이상은...
"걱정 마세요~ 이래뵈도 무리다싶으면 칼같이 거절하는 타입이니까요?"
그래도 작은 언행 하나하나에까지 세심하게 반응하며 꼭 말해야겠다 싶은 부분은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모습이 썩 괜찮게 와닿은 것은 사실이었다. 좋게 말하면 배려심이 많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그만큼 자신을 잘 나타내지 않는 거고...
"길고양이들의 움직임을 알아챈다는게 더 신기한 일이니까요~ 그것까지 감지해낸다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닌 고양이죠~
후후후... 안될 것도 없죠? 오히려 환영이라고 해야 할지~ 그러고보니, 간식 같은거 꽤 좋아하시나보네요?"
가예가 늘어놓는 잔소리 비스무리한 것들을 들으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한다. 머리가 짧은게 아니라서 이렇게 엎드려서 자고 나면 앞머리가 엉망진창이 되곤 하는데, 정리하는게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다. 짧게 칠까도 생각했지만 별로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았고. 그나저나 아까 문 열리는 소리가 너였구나.
" 아까 들어왔을때 일어났는데 금방 다시 잠들어버렸지 뭐야. "
아직도 몸 구석구석이 피로에 잠겨있었지만 누워서 자는 것도 아니고 엎드려서 자면 온 몸이 비명을 계속해서 질러댈 것은 자명할 일이라 부족한 잠은 집에 가서 자기로 결심했다. 가예가 가져다주는 찬물을 마시자 정신이 확 들면서 조금 감겨있던 눈이 완전하게 떠진다. 그래봤자 큰 눈은 아니라서 미미한 변화였지만.
" 보고싶었지~ 하루에도 몇번이고 찾아갈까 고민했다니까? "
바로 옆반이니까 말이야. 장난 섞인 웃음으로 응수하고선 맞은 편에 앉은 가예를 바라보았다. 작년보다 턱이 얄쌍해진게 그녀도 3학년이 되면서 이것저것 고생을 하고 있는듯 했다. 그래도 성격은 어디 안간 것 같아서 다행이네. 남아있던 물을 다 마셔버리고 들려온 질문에 답한다.
" 아무래도 아르바이트 끝나고 공부까지 하려면 수면시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데다가 " " 재능을 사용할 일이 아무래도 많아져서. "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남들 앞에서 얘기할때나 공적인 대화에서는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거라서 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재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지쳐가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충전을 아무때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렇게 전체적인 컨디션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 어쩔 수 없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숙명으로 여기고 사는 수 밖에. "
그리고 이 재능으론 먹고 살 생각이 없거든. 그렇게 계속해서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계속 부스스한 상태가 지속되자 나는 앞머리를 만지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 너도 많이 힘든가보다. 예쁜 얼굴 다 상하겠어. "
진심으로 걱정되는 얼굴로 바라본다. 나야 원래부터 이런 삶이었으니까 익숙하지만 대다수의 고3 들은 바뀐 패턴에 한동안 적응을 못하던데.
생각보다 더 착한 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작정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대체로 사하가 타인에게서 받는 첫인상이 그렇지만. 이왕이면 좋게좋게 생각하는 게 좋잖아. 혹시 몰라 그러다 안 풀릴 일도 잘 풀리게 될지.
"나 그런 걸로 상처 잘 안 받으니까 싫은 거 있음 딱 잘라 거절해요."
은근히 다정한 것처럼 보이면서 또 단호하긴 엄청나게 단호하다. 고양이를 닮은 건 비단 눈꼬리만은 아니었을지도. 사하가 웃었다. 오히려 이렇게 확실한 편이 다가가기엔 편할 수도 있겠다. 다 알려주면 들은대로만 하면 되니까. 다 괜찮은 척, 아닌 척하면서 숨기고 있는 게 더 어려웠다. 남의 마음 읽는 능력 같은 건 없어서.
"그럼 우리 통성명 할래요? 사실 명찰 보긴 했는데 그래도 말로 듣는 거랑은 다를 것 같아. 나는 은사하구요, 3학년. 간식은… 싫어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나?"
자문하듯 중얼거린 사하가 슬혜를 바라봤다. 고양이 눈인사하는 것처럼 가만히 보다 은근슬쩍 손을 내밀었다. 어쩌면 조금 촌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악수를 청하는 손이었다.
안녕 좋은 점심~~ 답레만 남기구 이따 다시 올게! 참 주원주 물어본 거 봤는데 사하가 딱히 자기 연애한다고 누구한테 얘기했을 것 같진 않아서 ㅋㅋㅋㅋㅋ 근데 또 엄청 숨기는 것도 아니라.. 눈치채고 물어봤음 어 맞는데..? 하긴 했을 거여... 눈치 빨라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뭐 그런 사이 아녔을까 생각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