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꽃말은 아름다운 정신(영혼), 정신적 사랑,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학생들에겐 통용되지 않는 꽃말이다. 흔히 학생들에게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로 벚꽃이 필 때쯔음 중간고사 기간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교정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때 아름다움을 보고 탄식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벚꽃과 관련된 시간의 흐름을 깨닫고 탄식을 내뱉는 사람도 적지 않았으리라.
중간고사 기간에는 당연히 공부를 하는 것이 마땅하기에 나도 열심히 공부를 시작하긴 했지만 역시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 열시쯔음 아르바이트가 끝나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서 씻고 공부를 시작하면 1시~2시 사이에 잠을 잘 수 있었고 일어나는 시간은 7시 정도니까 평소보다 한 두시간은 덜 자게 된다. 초반엔 괜찮지만 이게 쌓이고 쌓이다보면 피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고 결국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사태가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오늘은 다행히도 내가 아르바이트를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조용한 학생회실에서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엎드려서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자고 있을때 학생회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지만 아직도 수면을 요구하는 몸은 금방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때 책상을 똑똑,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힘겹게 눈을 뜬다. 눈 앞에 보이는건 애쉬 브라운 색의 긴 머리, 진회색 눈동자.
" 아녕 ... "
금방 잠에서 깨어나서 그런가 입이 맘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부정확한 발음을 흘려버렸지만 그런거에 일일이 신경 쓸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거슬리는 왼쪽 머리를 손으로 걷어내며 시간을 확인했다. 곧 야자 시작할 시간이네 ... 그것 때문에 깨운건가. 작년에 같은 학생회로 많은 시간을 보낸 가예는 지금도 종종 얼굴을 보는 일이 있었다.
" 아까 들어온게 너였구나. "
반쯤 졸린 얼굴로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역시 이 정도 쪽잠으로 피로를 해결하는건 불가능했나보다. 그래도 어쨌든 몸을 깨워야하기 때문에 의자에서 한차례 기지개를 편 나는 웃으면서(상대가 보기에는 헤픈 웃음 같을지도 모르지만) 말했다.
" 내가 보고 싶어서 온거야? "
조금 더 자고싶어하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강제로 깨우기 시작한다. 정말 얼른 방학해야 잠이라도 많이 잘텐데.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 그것은 남주원이 고심 끝에 만들어낸 동아리였으며, 1학년 2학년. 그리고 3학년에 걸쳐 부원은 자기 혼자인 1인동아리인 것이다. 부실을 갖기 위해 그럴듯한 동아리를 신청하는 학생들을 많았으나 남주원이 애매한 형태로나마 동아리 부실을 받고 동아리로 인정받은 이유는,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찾는 과정을 1학년 때의 학생회장이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사실 여러가지 방법으로 구슬리기도 했지만.)
물론 조건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학년 때의 학생회장이 내건 조건은 2개. 하나는 활동 내역을 레포트로 작성하고 제출할 것. 그리고 하나는 부원을 5명까지 늘릴 것. 이었던 것이다. 첫번째 조건은 클리어 했지만, 아쉽게도 두번째 조건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크개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고 싶은 학생들은 정해져있지 않은 활동에 난색을 표했고, 하나는 단순히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동아리를 찾는 학생들은 반대로 무언가 해야한다는 것이 귀찮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노력하기 위한 동아리와 땡땡이치기 위한 동아리. 그 어느쪽에도 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으며 결국 아직까지 1인동아리인 상태였다.
1학년 때의 학생회장은 그 판단을 2학년 때 학생회장을 맡은 가예에게 맡겼고, 가예는 1학년 때의 학생회장과는 달리 난색을 표했다. 그것이 당연한 반응이라면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하지만 주원의 필사적인 설득 끝에 아예 폐부가 되는 것은 막아내고, 정식 동아리에서 격하되어 '특별활동부' 가 된 것이었다.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결국엔 '동아리'로서 인정받지 못한 학생 주관의 활동이었기에 동아리 활동비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부실도 배정받지 못할 터였다. 가예의 배려라고 해야할지, 동아리로 배정하기 애매한 낡고 다른 동아리들보단 좁은 애매한 동아리방 하나를 배정받았고, 현재는 주원 혼자 그 곳에서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며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늘은 바로 학생회장 '지구'와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에 대한 존폐를 갖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 아마 잔뜩 털리고 폐부가 될 가능성이 높은 - 주원에게 있어서는 학교의 성적표를 받는 것보다 더 떨리고 중요한 날이었던 것이다. 상대는 온지구. 주원이 직접 만난적은 없지만, 주원은 지금까지의 학생회장중 가장 어려운 상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동아리->특별활동부->폐부 의 절차를 밟더라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발버둥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아직, 주원의 고교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주원은 학생회의 문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이고, "으음..." 하고 할 말을 떠올리거나 노크를 하려다 그만두는 등 망설임의 망설임 끝에 학생회의 문을 두드렸다.
"저기...."
'제발 아무도 없어라. 그리고 어떻게든 도망쳐 다니면 애매하게나마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