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그 판돈이라면 듣는 사람도. 그리고 그 당사자도 굉장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굉장히, 매우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될것만 같은 기분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껏 자신은 자기 자신의 짜릿함을 중점으로 두고 패밀리어와. 그리고 애인을 내기에 걸었으나, 머리카락도 한번 걸어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청이 대머리독수리가 된다거나, 자신이 자체발광하는 빡빡이가 되는 것은 사양이었지만.
"그럼요! 자고로 그런 맛은 자기 자신이 먹는것보단 남한테 그럴싸한 맛으로 뻥치고 주면 반응이 훨씬 재밌답니다? 너무 자주 속아서 더이상 받지 않으려고 할 때를 대비해 중간중간 정상적인 맛도 섞어주세요!"
어느샌가 자신이 내기 전도사에서 온갓 맛이 나는 젤리 판매원으로 바뀐것같은 기분이 들어 잠깐 표정이 묘해졌다. 내기에 관련된 이야기내용이 순수하게 남을 골탕먹이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느낀것도 한 몫 했다. 이게 이 방향으로 흘러가도 되나. 눈 앞의 순수한 선배님을 이렇게 타락시켜도 되나. 잠깐의 고민이 들었지만 결국 늘 그래왔듯 머릿속에서 금방 지워버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앞가림은 잘 할수 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저런. 맛잘알이 아니라 그냥 단거 엄청 좋아하시는 분이었구나~ 그래도 뭐. 단건 늘 옳잖아요? 가끔 기분 잡칠때 하나씩 먹아주면 당 보충에도 도움이 되기도 하구요~"
생각해보면 자신은 기분 잡칠때 단것을 먹는 대신 폭력을 휘두르며 분풀이를 하기는 했다. 탈과의 조우에서 지팡이가 말을 들어먹지 않던 날. 주궁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전부 가지치기되어 당분간 관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을 떠올리자면 당 보충에도 도움이 된다는 그 이야기는 사실상 주양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자신이 겪은 일마냥 말하는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일단 뭐든 움직이는 건 전부 신기해하는구나. 당신에 대해 조금은 알것 같았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니 마치 리틀 감쌤같은 느낌이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해 흥미를 가지며 호기심을 보이는 부분에서는 더더욱.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감 선생님은 인간 찬가에서 그치나 당신의 호기심은 인간을 넘어 다른 것들에게까지 전부 작용된다는 부분이라고 혼자서 그렇게 지레짐작하고는 웃었다.
"오호라. 나름 깊은 뜻이 담겨있었던 모양이네요. 그동안 그냥 머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인가, 선배님이 노마지라고 하니까 꽤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주양 자신은 당신의 말뜻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어째서 다르게 부르는지 아주 조금정도는 알것 같았다. 그저 마법이 없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 그들 역시도 마냥 얼간이는 아니겠지. 허나 그렇게 확 와닿는건 아니기에 금새 웃어넘기고 마는 것이었다. 주양 특유의 오만함은 이번 역시도 어김없이 그 빛을 한껏 발하고 있었다.
"그, 그래도 건물 빼고 다 사달라고 하는건 선배한테 너무 손해가 큰 거래 아닐까요~..? 이렇게 되면 제 승부욕도 가만히 못 있는데. 내기 안 하실래요? 제가 졸업하고 나서 1년 안에 선배님한테 이 당과점을 사줄수 있는지 없는지."
저는 사줄수 있다는 데 제 애인을 걸게요~ 하며, 또 다시 무지성 급발진 내기욕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당과점 내부의 달달하면서 은은한 공기를 즐기는 건 그 뒤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분명 그것 역시 여기서 만났었지. 주양은 지금 자신이 제대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설마 이것도 그것이 보여주는 환각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어 괜히 손으로 눈을 살짝 비비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저 멀쩡한 당과점의 풍경에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많이까지는 아무래도 좀 그러니까~ 그러면 환청 케이크 정도만 하나 추가할게요? 주스랑 같이 먹을만한 간식이 있다면 분명 행복할테니까요~"
호박 주스를 마시면서 누군가 끊임없이 속삭이는 묘한 기분을 느끼는건 영 찜찜하기 그지없었으나, 이미 그것과의 대화에 익숙해진 이상 환청 정도로 겁먹을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표정에서 아주 약간의 쓸데없는 자신만만함이 묻어났다.
역시 동물로 변한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봄바르다, 크루시오. 온갖것들이 날아다니는 와중에 맨 몸으로 버티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 그렇다고 프로테고를 쓴다던가 하는 것은 반응이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안하느니만 못하게된다. 그렇기에 동물적인 감각으로 보고 피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는 것이 레오의 판단이었다. 지금까지 날아드는 공격을 제대로 피한 것을 보면 역시 옳은 답인것같다.
" ... "
레오는 번쩍이는 두 눈으로 펠리체와 윤을 바라보았다. 잠깐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으르릉, 하고 낮게 우는소리를 내면서 몸을 낮추었다. 전부 본능적인 것들이다. 어떻게 사냥을 해야하고 어떻게 공격을 해야 효과적이며 어떻게 몸을 숨겨야한다는 것들. 레오는 몸을 낮추고 있다가 이리저리 정신사납게 뛰어다녔다. 이 쪽으로 튀어오르고, 저 쪽으로 튀어오르고 그렇게 이리저리 정신사납게 몸을 움직였다.
상대방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집중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몸을 숨길만한 깊고 어두운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 왜인지 모르게 그것을 알고있었다. 본능은 대단한거였어. 그리고 적당한 풀숲을 찾아 몸을 던졌고 가만히 숨을 죽이고 노려보았다. 으르릉, 하고 낮게 울면서 저주파를 쏘아대던 레오는 한 순간 튀어올랐다.
고통이 가시기 전까지 살려달라고 줄곧 되내었다. 남이 보기엔 이 고통이 괴로우니 살려달라 하는 것 같았지만 절규의 방향이 미묘하게 달랐다. 살려달라는 주체가 어딘가 엇나갔기 때문이다. 본디 3인칭을 썼지 살려달라며 비는 것이 꼭 타인같다. 그러다 기어이 헛구역질을 한다. 나오는 것은 없다. 대신 땅을 박박 긁어내며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계속 어머니를 되내이고 아버지를 되내이며 이노리를 찾았다. 오열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저 때문에.."
두루마기로 가려져 어둠이 드리우자 입술을 꽉 깨물었다. 흐느끼듯 한번 사과를 중얼거린다. 사감 덕분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나 손은 확실하게 보였는데, 몸을 웅크리고 땅을 긁어대다 부러진 손톱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그것은 손을 두루마기로 가려진 범위 안으로 슥 밀어 들여보냈다. 언뜻 보였던 손가락은 길쭉한 편이라 진짜 이노리라면 검지 손가락을 손바닥으로 쥘 수 있을 정도였다.
이윽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오리의 안주머니에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손바닥만한 유리병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져온 것이었다. 비록 2~30분 정도의 분량이지만 이것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코르크 마개를 열기 위해 손을 가져다대고 떨림이 멎을 줄 모르는 손으로 집었던 순간이다. 건 사감이 크루시오에 직격했던 것이다. 이윽고 떨림이 멎을 줄 몰라 마시는 것 반 턱을 타고 흐르는 것 반이었지만 아무튼 성공적이다. 20분의 효력이 10분으로 줄었을 뿐이다. 점점 두루마기로 감싼 몸이 줄어들었다. 흘러내린 두루마기 사이로 보인것은 주스로도 가려지지 않는 환한 미소였다.
"절망하는 모습이 보고싶다 하였습니까. 경의 경망스러운 품행과 언사로 보건대 거울을 보고 만족하는 것이 훨씬 이롭지 않겠습니까. 봄바르다 막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