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벚꽃잎 사이에 있는 너를 바라보면서,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이 지켜낸 것은 아니다. 지킬 능력은 없다. 그저 그녀가 기다려준 것 이다. 과분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과분하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것을 포기하거나 단념하고 싶지는 않았다.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
" 응, 예쁘네... "
그런 너와 실없는 담소를 나누면서 이런 순간을 즐긴다. 그저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마저도 행복했다. 또 다시 너에게 행복을 받았다. 그러니까..
" 저기 있잖아 이카나. "
" 사실 의뢰간다는거 거짓말이야, 의뢰가 불발된 것도 거짓말이고. "
답답한 마음을 깨트려 부숴버리듯 움켜쥐고 폐를 짜내듯 말을 꺼낸다.
" 우습게도 말이야, 너랑 만석이가 너무 아늑하게 높은 곳에 가버린 것 같아서 조급해서.. 당장 강해져야지 라는 생각만 떠올라서 도망친거야. 웃기지? ... 사실 너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말이야. "
언제나 그렇다. 에릭 하르트만은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혐오와 질투심에 가라앉어 언제나 일을 그르친다. 아브엘라와 카사의 일도, 하루와의 일도, 만석이와 이카나를 배신한 것도, 시현이와 싸운 일도 전부.. 그의 불찰이다.
" 그래서 이번에도 도망칠려고 했는데...너무 슬프고 자기가 한심해졌는데, 또 문득 네가 보고 싶어졌어. 그래서 다시 돌아왔어. "
" 너의 애인이라는 인간은, 너를 믿지못하고,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해. " " 언제 갑자기 붉은 피의 바다의 여왕이 조종할까봐 두려워서 밤마다 떨고, 앞은 너무나 멀고, 뒤에는 쫓아오는 녀석들이 필사적으로 쫓아와서 불안해하는 소인배야. "
머릿속에 철의 울림이 들려온다. 규칙적으로 깡, 깡 하고,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 마다 가슴이 쥐어 짜여지는 고통이 그를 좀먹는다.
그리고 그런 충격은 그를 강하게 만든다.
" 하지만 이건 약속할 수 있어. " " 내가 너로부터 뺏어간 일상을 돌려줄게. 내가... 만석이와 싸워 이기고... 다시 셋이서 함께하는 일상을 보여줄게 "
" 너의 한심한 남자친구는 언제나 말도 안되는걸 무턱대고 약속하지만, 이번엔...반드시 이뤄줄게 "
별로 이런 관심이 익숙하지 않은지, 아니면 맘에 들지 않는 것인지 민은 성현의 인사를 탐탁지 않아하는 것 같습니다.
>>465 [ 의식적인 살덩이에 있어 가치란 존재하는가? 한때 피가 흐르고 살이 있었던, 지능적인 살덩어리들이 우리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우리들은 무엇이라 설명할 것인가. 피가 흐르는 것과 흐르지 않는 것으로 인간은 산 것과 죽은 것을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피가 흐르지 않는 인간에게는 그들은 죽은 인간이라고 한다. 죽은 인간이란 산 인간과는 다르게 잊혀지는 것이다. 존재는 인간에게 있었던 것이며 산 인간은 존재한다고 한다면 죽은 인간은 있었지만 사라진 것이라 하며 산 것이 아닌 죽은 것이 된다. 존재란 그렇다면 죽은 것에게 있어 사라지는 것이 되며 실존된 것에는 곧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들은 핏덩이에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핏덩이가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칭하며 핏덩이가 기능적으로 멈추는 것을 철학적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 중략 ]
이 이상 읽는다면 정신력에 매우 극심한 피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 이 이상 독서를 이어갑니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판을 톡톡 두드리다 보니 그 기분이 말에도 나온 걸까,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의 채팅이 톡 떠올랐다. 아무리 가디언 후보생이기 앞서 청소년이어도, 자신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걸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후회 없는 청춘을 보낼 수 있을까? 앞으로 더 무모해지면 무모해졌지 신중해질 것 같진 않다는 자각이 있다. ...이렇게 생각할 것까지 포함해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했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랑보다는 친애이고, 의식한다는 게 꼭 성사로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조금 자는 게 좋았을까... 하지만 벌써 들어가고 싶진 않다. 자리를 옮기자, 벚꽃이 안 보이는 곳으로.
창술부에 들어서니 공방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열기가 물씬 풍겨옵니다. 그곳의 첫인상은 익숙함과 어색함입니다. 간단한 기본 동작을 반복하며 수련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이끌어 가르치는 몇몇 엘리트들. 무인이 창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장인이 쇠를 두드리는 것을 겹쳐 봅니다. 그러나 공방에서는 가르쳐주는 이가 없어도 제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무언지를 알고 자연히 행동하게 되지만, 이곳에서는 무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배우려고 왔음에도 괜히 마음이 초조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중앙의 거대한 고목이 없었다면, 수많은 학생들이 수련하는 모습에 사로잡힌 시선을 떼어놓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點槍剡瞬. 성어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춘심이는 '창 끝을 날카롭게 주시하라'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쿵.
소리를 따라서 고목을 올려보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갑니다. 거대한 풀 플레이트 아머와 어두운 피부가 인상적인 학생입니다. 그에게 다가선 춘심이는, 제 쪽으로 창을 뻗으며 질문을 던져오는 그와 눈을 맞춥니다.
"칼 밥이나 먹으려고 온 건 아니에요. 제대로 배워서, 열심히 노력해서 어엿한 가디언이 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손가락으로 그의 플레이트 아머를 가리키며 "기사요." 하고 한마디 덧붙입니다. 칼 밥을 먹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무작정 무술을 배워서 칼과 창을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강윤이처럼 앞장서서 동료를 이끌고 지켜줄 수 있는 워리어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으니까요. 더 나아가, 수업 시간에 배운 심화 클래스, 나이트가 되겠다고 다짐한 적은 여태 없지만, 거대한 갑옷을 걸친 그를 보고 이번에 마음을 확고히 정했답니다.
나는 언제나처럼 허리를 깊게 한번 꾸벅 숙이며 힘차게 인사했다. 그나저나 장현 선배님도 그렇고, 두분 다 중국계통 가문이구나. 조금 신기하다. 우연인걸까? 가볍게 등을 두드리면서 다시금 동생을 부탁한다는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 만약 만나게 된다면 가능한 도와줄게요."
내가 남 챙길만큼 그렇게 잘난 사람이란 생각은 솔직히 안하고 있지만, 그래도 신입생에게 이것저것 알려줄 정도는 될 것이다.
.....될 거야. 그렇지?
"그런데 아까부터 느꼈는데, 조여명 선배님은 동생분을 참 아끼시는 것 같아요. 사이가 좋으신가봐요."
옆에서 보면 팔불출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끼고 있는게 보이니까, 왠지 모르게 흐뭇해져서 미소지었다. 저런걸 보면 역시, 가족이란 좋은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슬그머니 떠오르는 옛 기억에 조금 울적해질 것 같아서, 나는 웃으며 한마디 더 덧붙이기로 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허리를 깊게 한번 꾸벅 숙이며 힘차게 인사했다. 그나저나 장현 선배님도 그렇고, 두분 다 중국계통 가문이구나. 조금 신기하다. 우연인걸까? 가볍게 등을 두드리면서 다시금 동생을 부탁한다는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 만약 만나게 된다면 가능한 도와줄게요."
내가 남 챙길만큼 그렇게 잘난 사람이란 생각은 솔직히 안하고 있지만, 그래도 신입생에게 이것저것 알려줄 정도는 될 것이다.
.....될 거야. 그렇지?
"그런데 아까부터 느꼈는데, 조여명 선배님은 동생분을 참 아끼시는 것 같아요. 사이가 좋으신가봐요."
옆에서 보면 팔불출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끼고 있는게 보이니까, 왠지 모르게 흐뭇해져서 미소지었다. 저런걸 보면 역시, 가족이란 좋은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슬그머니 떠오르는 옛 기억에 조금 울적해질 것 같아서, 나는 웃으며 한마디 더 덧붙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