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다는 듯 허수아비에게 반란을 일으키며 힘차게 몽둥이를 내리치는 남자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냥 이대로 내버려뒀어도... 알아서 풀고 나오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공용이라곤 해도 허수아비 내구도가 고작 저 정도일 리가 없는데, 이상한걸.
" 아, 저는... "
어이쿠. 뒤에서 정수리를 힘껏 내리치려는 허수아비를 봤지만 '당황해서' 대처하지 못했다. 상대로 워리어니까 괜찮 지않 을까? 그런 기능은 없지만 왠지 입었더니 좀 high해진 느낌에 깨고락지같은 색 슈트로 덮인 팔을 휘둘러 달려드는 허수아비를 밀쳐내고 방패를 꺼내 내리찍었다. 이거면 알겠지.
" ...예, 아시겠죠? 파인애플-맨 2세입니다. 고향은 지구고요. "
어머니. 아버지. 지구에서 태어난 당신들의 딸은 지금 와일드한 남자 앞에서 깨고락지 슈트를 입고 파인애플 맨 2세라고 자칭하고 있습니다. 정말 눈물이 날 뿐이에요...
어느새 강찬혁은 그녀의 이름을 지독하게 꼬아서 바꿔버렸다. 원래는 파인애플-맨 2세였지만, 방금 정수리에 주먹이 찍히면서 잠깐 정신이 오락가락한 탓에 온갖 이상한 명칭들을 붙였다. 2세니까 쾌걸 근육이 생각났고, 파인애플 하니까 과일이 생각났고, 과일이 생각나니까 황도복숭아가 생각나고, 황도복숭아 생각하니 황도복숭아 캔이 생각났다.(참고로, 황도복숭아통조림 12개의 권장소비자최저가는 12900원으로 개당 1000원-1100원 선에서 공정가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강찬혁은 손가락을 딱 퉁기다가, 결국 정정했다.
"아니, 2세는 맞지만 쾌걸 근육 그런건 없었고, 황도복숭아캔도 없었군요. 하여간에... 그러면 Dole 파인애플-맨 2세, 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 Dole만 파인애플을 취급한다는 편견을 버려야지. 편견은 가디언의 적이니까..."
이 사람의 정신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있는 거지? 너무 많은 게 붙어서 돌아왔잖아, 내 가짜 이름... 게다가 황도복숭아통조림의 가격까지 알게 되다니 너무너무 유익해! ...음? 황도복숭아통조림의 권장소비자최저가에 대해 내가 들었던가?
" ...그냥 편한대로 불러주세요. "
말을 말아야지 내가 정말. 근데 모습 완전 달라졌는데 그걸 그대로 동일인물로 인식할 수 있다니 이것도... 신기하다... 이 사람, 어디 정글 속에 던져놔도 그렇구나 하고 적응할 것 같아...
" 타임 코스모스 깐따삐야~ 가 아니라... 이게 어디서 났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전 학원섬에 떨어져 있던 상자에서 주웠는데... "
성별을 일시적으로 바꿔준다던지, 마법소녀 복장을 입힌다던지 하는 것도 있었지. 지금은 전부 회수됐다곤 하지만, 제노시아에서 그걸 연구해서 말썽을 부린다고도 하던데. 다른 생각을 멈추고 일단 상대를 밟는 허수아비를 조금 소극적으로 때린다. ...죽어라! 권성 펀치! (풀파워)
"편한대로... 음... 그러면 파인애플 아나나스 3세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그거 아세요? 파인애플은 영어권에서만 파인애플이라 부르고, 다른 곳에서는 전부 아나나스라 부르거든요. 이렇게 들으니 바나나 생각이... 으엑!"
강찬혁의 머리통을 뒤에 있던 허수아비가 다시 내리쳤다. 강찬혁은 머리를 처맞고 나니 화제가 바뀌어서, 섬에서 주웠다는 온사비아의 대답으로 포커스를 돌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오다 주웠다! 정도로 받아들였을 그런 내용이지만, 강찬혁의 쓸데없는 범죄 관련 지식과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가 그러도록 두지 않았다.
"어... 학원섬에 떨어져 있는 상자에서 주웠다면..."
사실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다. 왜냐하면 강찬혁은 범죄와 완전히 손절했고(지금 하는 짓들이 상당히 심각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태료와 범칙금, 그리고 막대한 액수의 민사소송 선에서 정리될 일들만 저지르고 다녔다.) 이전의 폭력조직과도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옛날에 범죄로 먹고살던 전력이 있어서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듯 하며 경찰서 형사님을 강찬혁은 꼰대라고, 강찬혁을 형사님은 애새끼라고 부르면서 서로 애증을 기르기도 했고, 법적 지식과 폭력조직 내부 정보를 교환하던 입장에서 온사비아의 행위가 무엇에 해당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 뭐냐, 점유이탈물횡령죄라고 해서, 소유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물건도 함부로 주우면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이게 왹져에게도 재산권 등의 권리가 보장되느냐가 문제긴 한데..."
퍽! 퍽! 퍽! 그딴 거 알바냐는 듯, 허수아비가 다시 강찬혁을 두들겨패자, 화가 난 강찬혁이 허수아비를 두들겨패서 박살내버렸다. 그런데 또다시 기억이 리셋되어서 말했다.
"그래서 청월고 출신 쾌걸 근육 파인애플 황도복숭아캔 2세님. 우리 어디까지 대화하고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