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때라도, 끝을 알리는 종은 어김없이 울려왔다. 다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진하게 남은 여운과 일말의 아쉬움일까? 그의 머뭇거림 덕분에 결국 자신도 가벼운 입질만 당했을 뿐인지라 이렇다 할 수확은 없긴 했어도 그것이 그의 조심스러움, 상처입히기 싫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임엔 틀림이 없었기에 그녀는 그부분만으로도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개처럼 유순히 따르면 어떠랴, 늑대처럼 제멋대로 굴면 좀 어떠랴, 결국 알맹이가 그라는 사실은 어떤 가죽을 덮어쓰더라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에, 그녀는 약간만이라도 그에 대한 경계심을 풀기로 했다. 그것이 그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꿈이 달콤한만큼 깨어나긴 싫은 법, 그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거부하듯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던 그는 손가락을 튕기는 작은 소리가 끝나자마자 그대로 마법이 풀린 인형마냥 힘없이 몸을 늘어뜨렸다.
"...... 후후후... 잠꾸러기 선배님인가요?"
그 순간만큼은 정말 그가 제정신을 차리고서 천천히 의식의 끈이 놓아졌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 이전이 꿈이었는데도 이제서야 꿈을 꾸러가는 사람처럼,
두 팔에 힘이 없어지고나서야 자유의 몸이 된 그녀는 가볍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다가도 정말 잠든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통금 같은게 있는 것도 아니고, 밤은 어차피 지나간지 한참 오래다.
이젠 평범한 일상을 맞이할 시간이니까.
"손님을 초대해놓고 먼저 잠들어버리시면 곤란한걸요~"
장난스러운 말투와 함께 눈을 휘며 그를 유심히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움직이지 않는 것보단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 할수 있을 정도로 발갛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이 언뜻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를 놀릴만한 게임판에서 먼저 자리를 뜨려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나중에 놀리는 편이 더 재밌을거 같아서,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손에 쥐어져있는 그의 자취방 열쇠가 굳이 그 주인을 당장 일으켜세울 필요가 없었음을 증명했기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은 잠들었음을 표현하려는 그를 잠깐 보다가 다시금 몸을 숙여 그의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침대에서 주무셔야죠? 그대야?"
부러 끊어말하는 목소리가 평소보다도 더 낮게 재잘거리듯 이어져 그를 자극하고는 언제 그랬냐는듯 멋대로 자리를 떠버렸다. 물론 그가 또 언젠가 그녀를 부른다면 다시 이곳에 나타나겠지만 말이다.
##4. 1번이 선택되어서 자러가는 척 하다가 막레 써버리기!! 이제 진짜 잠! 즐거운 고양이의 날 + 이벤트 였다! 이제 순한맛 양아치로 돌아가기~~~~~
라고는 당연히 묻지 않는다. 용감해 보이더라도, 본인의 용감하지 않은 부분은 오직 본인만이 알고 있을 테니까. 이럴 땐 함부로 말 얹지 말고 가만히 들어주는 게 예의야. 하지만, “연호의 겁쟁이인 부분도 싫지는 않을 거야.” 덧붙이며 작게 웃어 봤어. 가만히 들어주는 게 예의이긴 하지만, 네가 의기소침해하는 것은 싫거든.
위로는 그저 말없이 머리를 더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걸로 충분했다. 오히려 처음 만난 늑대가 어떤 늑대인데? 라고 물어봤다면, 만월의 힘으로 인해 느슨해진 눈물샘에서 눈물부터 펑펑 흘러나왔을 테니까.
*
그리고 마법의 시간이 풀리고 난 후의 금아랑에게는 큰일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금아라앙, 미쳤나봐아....
흐뭇하게 웃다가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마주친 것은 만월의 밤에 보았던, 어딘가 다정한 느낌의 눈동자가 아니라 혼란에 빠진 눈동자. 금아랑은 일단 머리를 박고 –근데 그게 화연호의 가슴팍이었다- 얼굴을 숨긴 채로 일단 과거의 자신에게 욕부터 하고 봤다. (물론 속으로만 했다.) 미친 건 화연호가 아니라 제대로 먹은 억제제가 듣지 않아서 감정 과잉 상태라고 할까, 감정에 고삐 풀린 금아랑인 게 분명했다. ....근데, 연호도 좀 이상하지 않았나? 종잡을 수 없다고만 생각했지. 야성적이면서 젠틀... 이런 건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는데.... 생각에 빠진 금아랑의 얼굴이 하얘졌다, 빨개졌다, 파래졌다, 다시 하얘졌다. 고삐를 제대로 잡고 있는 금아랑은 감정이 이렇게 투명하게 드러나는 사람은 아닌데, 정말 많이 당황한 모양이지.
“ ... ”
금아랑, 진짜 미쳤나 봐... 어떻게 수습하려고 사람 –그것도 늑대의- 가슴팍에 머리부터 박았어? 라는 생각은 늦게서야 들었다. 얼굴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숨고자 했는데, 숨으려고 한 장소가 영 글러먹었다. 이성은 돌아왔다. 돌아왔기 때문에 더 문제인 것이다. 숨고자하는 본능과, 현실에서 해결책을 찾아야하는 이성이 싸운다. 어떻게 하지, 도망부터 갈까아... 싶다가도. 연호에게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금아랑은 양이다.’ 라는 것을 타인에게 발설하지 말라는 약속.
아까... 둘 다 좀 이상해져 있을 때 받아냈어야 하는 건데에. 너무나 통탄할만한 일이었다. 어떤 얼굴로 고개를 들어야 할까. 곤란한 얼굴? 응석 부리는 얼굴? 진지한 얼굴? 그것도 아니면 울먹이는 얼굴...?
“ 있지이, 부탁이 하나 있는데에. 연호야아. ”
평소처럼 애교 있게 울리지만, 어딘가 물기가 묻어 있는. 곤란에 빠진 사람 같은 목소리로 금아랑이 화연호를 불렀다. 고개는 여전히 들지 않아, 연호는 아랑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겠지만. 목소리만으로 충분히 곤란함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 ....들어줄 수 있을까? ”
그러나, 들어줄 수 있을까? 라고 묻는 것은 묘하게 신중한 어조로도 들렸다. 곤란함에 빠져 있어도, 신중함을 잃지는 않는. 명징하면서도 별사탕처럼 사랑스러운 음성에 마법에 걸리지 않은 화연호가 어떻게 답할지 금아랑은 아직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