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랬구나. 그랬어? 많이 힘들었겠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중간중간 맞장구치거나 공감해주던 그는 이야기가 끝나고 선하가 그의 목에 얼굴을 부비는 걸 알아채자 귀엽다는 듯 짧게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 그것도 그렇네. 그럼 정정할까. 너도 널 위해 울어주면 안 될까?"
그는 상대 대신 슬퍼하진 않는다. 그는 상대가 자기 자신을 위해 슬퍼하는 게 아니라면 남이 울어준다한들 그게 약간이면 몰라도 전부 해소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동생이 그러했으니.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 부모님이면 싫어?"
거의 초면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자신이 아니라 자신 같은 사람을 가리킨 그는 입 밖으로 내진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구나. 곤란하네. 가정 상의 문제일 경우 상담자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안 얘기할 때가 많다. 살살 달래면서도 파고들 땐 파고들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그 줄에서 떨어지면 더욱.
"걱정해주는 거야? 고마워. 하지만 아무 늑대에게나 주면 내가 원하는 미래에 지장이 가서 그러지 않으니까 괜찮아."
즉, 미래에 지장만 안 간다면 아무 늑대에게나 향을 풀 수 있다는 뜻이다. 귀 가까이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그는 기분 좋게 웃었다. "착하네. 고마워." 하지만 이 말을 하고 난 후 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결심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 아프네.이를 꽉 깨물면서도 웃는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던 그는 고통을 잊기 위해 다른 생각에 빠졌다. 화한테 많이 혼나겠지. 부모님한테도 많이 혼날 거야. 하하, 가족이 화나게 만들다니 나 나쁜 사람이네. ...읏.
모든 게 끝나자 울적해졌던 표정을 다시 방긋 웃는 얼굴로 바꾼다. 더 먹고 싶어? 그럼 더 먹어도 괜찮아. 어차피 뜯긴 거 어쩔 수 없으니 더 뽑자는 마인드였다.
"그래."
부탁하려 했는데 잘 됐다. 붉은 입술에 손가락이 닿자 달처럼 둥글게 호선을 그린다. "그렇구나. 그렇지만 망아지라기보단, 예의를 잘 지켜서 양의 외로움을 달래준 멋진 늑대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작은 금빛 보름달이 초승달이 되어간다. "부모님이 슬퍼하시는 건 나도 싫으니까 이해해. 그렇지만 그렇다고 너무 얽매이진 마. 그럼 부모님은 그걸 더 슬퍼하실 테니까."
형, 어딨어! 도련님!
저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뒤돌아 본 그가 다시 원위치로 되돌려 선하를 바라봤다. 선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그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너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좋은 밤 보내."라고 인사하면 급히 달려갔다. 곧 저 멀리서 버럭 소리치면서 화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빨리 자리를 뜨지 않으면, 그를 매우 아끼는 동생이랑 마주칠지도?
여태 들었던 것과 비슷한 말이 나왔다. 그 힘 빼고 뜨는 법을 모르겠던데. 평소 같으면 잘만 나왔을 말이 앞에서 걸렸다.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공부 엄청나게 잘 하는 사람 중에 설명은 못 하는 사람들 있던데. <저게 왜 안 돼?> 싶어서. 짧게 앓는 소리를 낸 사하가 결국 순순히 털어놓는다.
"나 사실 그게 안 돼. 몸에 힘을 어떻게 빼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물 속에서 서 있는 건 잘 한다? 여기까진 진짜 웃겨질 것 같아서 말 안 했다. 첫인상 중요하잖아. 오늘 사귄 친군데, <쟤 뭐야…….> 하고 도망가면 어떻게 해.
"나중에 꼭 놀러갈게. 못 떠도 물장구라도 치지, 뭐."
초대해줬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고 또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또, 적당한 온도의 물은 좋아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물도 좋구.
"대회 준비하는구나. 잘 챙겨먹으면서 해야 돼."
열심히 하라는 말은 이미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것 같아서 패스. 힘들겠다라는 말은 뭘 하든 체력적으로 힘든 건 맞으니까 당연해서 또 패스. 그랬더니 남는 말이 손주 본 할머니 같은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쁜 말 아니니까 뱉는다. 아직 성장기잖아. 게다가 운동하면 정말로 잘 먹어야 하는 것도 맞고.
조금은, 어쩌면 기분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달라진 말투에 선하를 본다. 금세 웃어주는 걸 보니 역시 기분탓이었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사실 난 동아리 때문에 매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 둘 다 대단한 걸로 하자."
사하도 웃었다.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게 뭐가 힘드냐고도 말할 수 있었지만, 구태여 그렇게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다. 좋은 마음으로 건네준 예쁜 말인데, 그 모양 그대로 받아서 볕 잘 드는 자리에 놓아둔다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