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저벅 걷는 조용한 발소리를 내며 윤재는 기가톤케일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뭔진 모르겠지만 정말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기가톤케일의 모습이 윤재의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로 로봇을 꺼내나 싶더니만.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기가톤케일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있는 힘껏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든 후에, 기가톤케일을 향해서 톤을 높여서 그녀를 부르듯 입을 열었다.
"여기서 뭐하는거야? 격투기라도 하려고 로봇을 밖으로 꺼낸거야?"
적어도 그의 눈에 비치는 기가톤케일의 모습은 격투 연습을 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물론 그때의 그 괴물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었으니 단련은 중요한 것이었기에 지금 저 행동에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허나 곧 그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단련을 하는 것은 좋은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안 가게 하는 건 알고 있지? ...문제가 생기면 로봇을 꺼낼 수 있게 문을 열어준 나에게 책임이 온단 말이야."
확실하게 목소리가 들리는 듯 그녀가 팔찌를 송수신기 삼아서 그에게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그걸 피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는 윤재의 뜻을 이해한다는 듯, 순식간에 급상승을 하면서 인간형에서 순식간에 삼두룡 형태로 변신하는 기가톤케일이었다. 저렇게 고고도에서 비행하며 변신을 시도하고 그걸 또 부드럽게 진행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녀가 꽤 많이 훈련을 했다는 걸 알수 있으리라. 잠시후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면서 순식간에 내려오는 듯 하면서도 완만하게 속도를 조절하는 것만큼은 여느 파일럿 못지 않은 수준까지 도달해있었다.
"웃챠!"
기가톤케일의 가운데 머리, 주룡에서 그녀가 내려선다. 안쪽은 그녀의 몸매가 완연히 드러나는 타이즈였지만 그것을 겉표면의 레인코트가 완전히 가리고 있어 그녀의 모습은 확실하게 가려지고 있었다. 몸매를 완전히 드러내는 건 너무 부끄럽다는 그녀의 뜻이 반영된 슈트일 것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기가톤케일은 조용히 몸을 낮추고 두 사람을 둔 뒤 천천히 날개짓을 하며 빅토리아 호로 돌아갔고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건 나도 싫긴 해, 그래도, 또 그때까지는 어느정도 대비는 해놔야지. 혹시 알아? 나름 납득할만한 결과를 낼지도 모르고 말이야."
머리에서 예미가 내려오자 윤재는 그녀가 입고 있는 레인코트 모습에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그녀가 입는 파일럿 복인걸까? 되게 특이한 느낌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삼 초 정도 그녀의 레인코트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올려, 빅토리아 호로 돌아가는 기가톤케일을 바라봤다. 이어 그는 타이밍을 맞춰 문을 열어줬고 기간톤켄일이 다시 들어갈 수 있게 해줬다.
"...뭔가 미안하네. 나 때문에 훈련이 중지된 것 같아서 말이야."
아마 자신이 오지 않았다면 그녀의 훈련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그냥 조용히 구경만 할 걸 그랬나 생각을 하며 그는 머리를 가만히 긁적였다. 그러다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다시 기가톤케일이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했다. AI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면 그냥 생명체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참으로 정교하고 정확한 움직임이었으니까.
아무튼 다시 그녀에게 집중하며 윤재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에 귀를 기울이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넌지시 고요한 톤으로 이야기했다.
"아, 괜찮아. 솔직히 말해서 저 아이들이 너무 배우는게 빨라가지고, 훈련보다는 학습이 필요할 지경이라니까."
너무 그러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면서 천천히 파일럿 복장을 해제시킨다. 아무래도 훈련이 끝나고 땀이 났을때를 대비한 것인지 그녀는 자신이 입는 옷보다 한치수 더 큰 트레이닝 복장을 입고 있었고, 그녀는 좀 몸이 풀른 듯 가볍게 기지개를 펴면서 입을 열었다. 처음의 그 소극적인 모습은 좀 사라지고 지금은 그래도 어느정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역으로, 안 올꺼라고 생각하고 싶네."
차라리 이렇게 조용히 지나간다면, 어느정도 조용히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헛된 망상을 하며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아마 지금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그 구멍을 다시 내고 나올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솔직한 심정이라면 안왔으면 좋겠다는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막말로 지금 온다면 대비가 안된 시점에서 어른들의 반발에도 부딪힐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뒷공작을 안할꺼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제발, 아무일도 없어야 할 텐데.
"솔직히 말하자면 윤재, 네가 제일 부담이 크지 않아?"
빅토리아 호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납득할만한 선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자신의 경우 보조하는 인공지능인 아이들이 3명이나 있었지만, 윤재는 저 거대한 전함을 혼자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게. 안 오면 좋겠는데. 솔직히 전의 일은 꿈이 아닐까 싶지만 이게 있는 걸 보면..."
윤재의 고개가 살며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빅토리아 호를 조종하고 출격시킬 수 있는 팔찌의 모습이었다. 이게 있는 한, 그리고 방금 들어간 기간톤케일의 모습으로 보아 그것은 절대 꿈이 아니었다. 결국 괴물은 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거고, 경우에 따라서는 또 다시 출격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만화 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면서 그는 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만화같은 상황은 보는게 좋지, 그 등장인물이 되고 싶진 않았는데. 아무튼 난 괜찮아.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아. ...애초에 빅토리아 호는 전투보다는 보조나 조사에 좀 더 특화된 느낌이고."
무장을 조사해봤지만 정말 최소한의 방어 무장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아마 앞으로도 전투에 직접적 도움은 못 될거라고 이야기를 하며 윤재는 사과를 표했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자신은 그저 뒤에서 조사만 해야했으니 그에 대해 자괴감이 어느 정도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직접 전투를 하는 쪽이 제일 부담이 크지 않을까? ...전의 그 두더지. 안 무서웠어? 직접 싸우면서."
드릴을 회전하며 돌진하거나, 드릴 미사일을 쏘거나, 드릴로 강타하거나. 직접적으로 마주하면 보통 무서운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윤재는 예미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싸울때도 느꼈다. 처음보는 사이였지만 그 아이들은 기꺼이 자신을 위해 몸을 던지고 있었고, 미숙한 자신을 위해 자신들이 사용할수 있는 기술을 전부 선보이면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서포트 하고 있었다. 그것을 최대한 상부상조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도 지금은 알고있다. 그렇기에 그녀가 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리라.
"그리고 뭐랄까, 가면 갈수록 익숙해지는 느낌이야."
실제적인 충격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마 기가톤케일 자체가 고통을 격감시키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리라. 맞는것이야 옛날부터 운동하면서 스파링을 뛸때 상당히 많이 경험했던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싸움에 익숙해지면 안되겠지만 최소한도의 필요만큼은 적응해야하지 않을까.
"결국 가능성을 배제할순 없는 것이겠지, 기가톤케일, 특히 주룡은 더 그걸 느끼고 있을껄."
자신과 가장 가까운 주룡, 기가톤케일의 주인격으로서 가장 자신을 보좌하려 하는 존재. 그가 그리 느끼고 있다면 절대로 무시해선 안될 것이리라.
영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듯이 윤재의 눈빛이 도끼눈으로 바뀌어서 빤히 예미에게 향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자신인 물은 대상은 그녀였다. 허나 돌아온 대답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이 그로서는 조금 애매한 느낌인 모양이었다. 허나 이해는 한다는 듯이 그는 더 그 관련으로 말을 하진 않으며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빅토리아 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안에 있는 로봇들은 앞으로 얼마나 필사적인 사투를 하게 될지. 그것은 피할수 없는 운명인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윤재는 고개를 돌려 구멍이 있었던 곳을 바라봤다. 물론 거기엔 더 이상 구멍이 없었다.
"...가족은 괜찮대? 나는... 말리지만, 그래도 네가 꼭 해야겠다면 하래. 대신 다치진 말라더라."
자신의 부모님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윤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가족이 되어준 존재. 그렇기에 그런 두더지 같은 이가 설치는 것은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절로 몸을 부르르 떤 후, 윤재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다가 괜히 소리를 내어 피식 웃어보였다.
"말은 이러지만, 빅토리아 호는 싸우진 못하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그 점만큼은 미안하네. 직접 같이 할 수 없어서."
"그래도 나는 직접 맞는 입장은 아니잖아. 그 아이들은 진짜 맞는다고, 저번에 검룡이 머리에 드릴 맞았을때, 나는 잠깐 찌릿 하고 말았지만 걔는 맞고 성질 부리더라, 야."
물론 윤재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싸우는 걸 보자면 자신보다는 기가톤케일이 더 열심히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보다는 기가톤케일 쪽이 좀 더 걱정이 되는게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리 답한 것이리라. 물론 윤재의 도끼눈은 애써 회피하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걱정하시더라. 그 걱정이 우리가 다치는게 아니지만."
그리고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그만큼 아직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강한 힘이 주어졌고, 그럴수록 힘에 휘둘리기 십상이었으니, 스스로를 정의라고 생각하지 말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달라는 조언으로 암묵적인 동의를 내렸다는 말을 윤재에게 전하면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가 도와주겠다고 하긴 하셨는데.... 모르겠네, 응.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아버지도 난감하지 않으실까?"
실제로 생각해보면, 로봇타는 고등학생들을 어떤 사람들이 법률적으로 문제을 제기할까란 생각에 그녀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던 와중 팔찌를 통해 기가톤케일의 상태를 바라보던 그녀가 풉, 하고 웃음을 내뱉고야 만다.
"얘네..... 함선에 꼬리 박아두고 자는데? 무슨 충전지인가?"
실제로 기가톤케일의 출력은 굉장했다. 그런 다량의 에너지를 뿜어내고서도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생산하는 에너지가 소비하는 양보다 월등했으니까. 그렇기에 그 남은 잉여분의 에너지를 전부 빅토리아 호에 공급하고 있는 것이리라.
"...군인이나 경찰이 와서 사적 무기 소유로 문제 삼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것 같은데."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고등학생이고 로봇은 따지고 보면 병기였다. 그런 이들이 개인 소유를 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문제가 되는 일이었고 윤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뽑힌 이상,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른들의 입장에서 고등학생은 전쟁터로 내보낼 수 없는 존재들이니 결국 충돌할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윤재는 난감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그땐 부탁할게. 너네 아버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커피 좋아하면, 끓여줄 순 있어."
당장 자신이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카페에서 배우고 연습한 커피를 끓이는 정도의 일이라면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하며, 윤재는 괜히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히 다가가 그녀의 팔찌를 바라봤다.
"충전식 로봇이야? 그럼 전투 하다가 충전이 다 되면 다시 빅토리아 호에 와서 충전하고 싸우는거야?"
뭔가 정말로 살아있는 로봇 같다고 생각을 하며 윤재는 작게 감탄하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러다 순간 헛기침을 하면서 살며시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것보다는, 얘네가 빅토리아 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인거 같은데? 잉여 에너지분을 싹다 빅토리아 호에 공급중."
팔찌를 보여주자 화면으로 도식이 보인다. 실제로 기가톤케일의 에너지원을 과부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보면 계속 순환을 일으키면서 천천히 에너지를 사방으로 뿌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에너지는 그렇게 퍼지고 또 소모되면서 기가톤케일을 안정화시키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말하는 와중 꼬리를 제외하고 천천히 몸을 말고 자는 모습은 말그대로 생명체의 그것과 가까웠다. 각자 자는 방식마저 다른 걸 보면 말이다.
"물론, 아버지라면 기꺼이 찾아가실껄, 바빠서 가실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버지라면 종종 찾아가실지도 몰라."
응, 이미 들르셨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버지를 떠올린 그녀였지만, 이내 키득키득 웃으며 법정에서 그렇게 열변을 아버지를 떠올리고 만 그녀는 풉하고 재차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그대로 비상식적인 장면이니 말이다.
"용이라기 보다는 강한 존재를 연상시킨거겠지? 그게 카이저 기도라였고 말이지."
잠시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그녀가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린다. 그 모습은 기가톤케일과 비슷하지만, 좀더 사악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였다. 동일 개체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갭이 존재하는 괴수의 모습.... 그것이 기가톤케일의 모티브가 되었으리라.
에너지를 공급한다니. 정말 생각도 못한 말에 윤재는 당황해서 예미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도 그렇지 않은가. 에너지를 받아가면 모를까. 오히려 줘버리면 나중에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에너지원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중이니, 일단 지금은 저대로 두는 것으로 하며 윤재는 나중에 빅토리아 호에 가서 이것저것 조사를 하기로 다짐했다.
"...적어도 난 만난 적 없어."
들르셨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에 윤재는 만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어른들과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만난다면 인사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든든한 아군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와중 카이저 기도라라는 말에 윤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뭔데? 그러니까 용의 한 종류야?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그런 거?"
이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곧 윤재는 기가톤케일과 이미지를 비교했다. 그러다가 괜히 풋 소리를 내면서 정말로 닮았다는 말을 하면서 크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어 윤재는 빅토리아 호를 바라보면서 난감한 표정을 다시 지었다. 그에겐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있었으니까.
"...나는 딱히, 빅토리아 호를 연상한 적이 없어. 너희들은 다들 스스로 만들었지만, 나에겐 있는 것이 주어졌어. ...왜 나만 그랬던걸까. 그리고 말이야. 봤어? 구멍 속에서 보였던 그 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