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은 힘 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머릿속이 빙빙 돌고 슬혜의 페로몬에 취해간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달콤하며 상큼한 감귤을 계속 입 안에 집어넣고 온 몸을 그 감귤이 채울 때까지 밀어 넣고 밀어 넣고 밀어 넣고 목이 메이고 막혀 게워낸 후에도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사건이다.
그래야만 했다.
여기에서 초월적인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 할 수록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예감이 주원의 몸을 가득 채운 슬혜의 페로몬가운데 유일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얌전히 먹히지는 않겠다는거야? ...어느쪽이든."
주원은 일부러 넘어지는 그녀를 보곤 고개를 들곤 침을 꼴깍 한 번 삼켰다. 눈 앞에 있는 것은 잘 차려진 상이 아니다. 언제든지 먹어도 되는 '나의 케이크'가 아니었다. 그것을 주원은 계속 스스로에게 주입시키고 있었다. 고개를 든채로 도수 없는 안경을 고쳐쓴 주원은 몸을 돌려 두 무릎을 굽히고 그녀에게 등을 내밀었다.
"업혀."
그리곤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휘어잡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블러핑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먹음직한 양을 향해 말했다.
(99%이현주는 자러 갔지만 1% 불면증 찌꺼기가 눈을 반짝인다.) (두리번거리며 레스들을 살피던 찌꺼기는 모두의 인사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찌꺼기는 배은망덕한 찌꺼기라 별로 귀여운 드립이라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고 캐팁한테 항의한다!) (게다가 이 찌꺼기는 쓰레기라 이현이 말고도 자기한테도 인사해달라고 두루미 님께 쨍알거린다. 어차피 안 잤으면서! 마치 여우 같다.) (골똘히 생각하다 여우에게 사과한다.) (주원주는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대화하는 거냐고도 쫑알거린다.) (이 찌꺼기는 역시 음식물 쓰레기에 버려야 할 찌꺼기인 것 같다.)
"응, 그렇게 알아들었지. 하늘이랑 더 친해지고 싶다는 뜻이었어! 전 전교회장 백가예, 라고만 기억되는 건 아쉬우니까."
인간 불신이라는 말에 낯빛이 미세하게 바뀌었다가 눈살을 구기며 익살스레 웃었다. 사람을 믿고 싶어서 더 확인을 받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을 누르고. 굳이 적극적인 제스쳐를 취하지 않을 뿐이지 무난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아이구나. 행진곡이 끝나면 건반 위의 손가락은 실없는 멜로디를 만들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보다 자세히 묘사하려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즐거워져서 소성을 흩어놓았다. 자칫 건조해보이는 사람도 좋아하는 것을 설명할 때 이렇듯 순수해지는구나. 되돌아온 질문에 덩달아 따라서 골몰한다.
"생각 안해봤지만, 친구들? 사람이랑 만나서 노는 게 좋더라."
지금은 고삼이라 잘 못하지만. 손을 내저으며 해명이라도 하는 듯한 태를 가만히 바라보다 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고 쉽게 생각한 적도 없고 싫어한다고 해도 눈치 채는 편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거이거 놀려주고 싶은데. 그래도 참자. 오랜만에 웃었네. 선반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고 장난스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 웃음짓는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남아있는 이성이 버티지 못하고 폭풍우를 만난 것 처럼 흔들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만 눈을 돌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거센 폭풍우 속에서 등대라도 발견한 것처럼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직시했다.
그녀는 겁을 먹은게 분명했다. 끌어안고 있는 몸이 뻣뻣하게 굳은게 느껴졌다. 남은 이성이 끊어지기 직전의 비명을 지르고 있을 무렵, 아랑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것은 좋은 신호였다. 오히려 거절당했다면 그것을 참아내느라 끊어졌을지도 모르는 이성이, 허락받았다는 안심 덕에 그나마 끊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녀가 허락하자 그는 멈췄던 고개를 다시 밑으로 천천히 내렸다.
" 그거 다행이네. "
이제 거의 완전히 가까워져 숨이 닿을것 같다고 생각될 무렵, 그녀의 대답을 듣고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눈을 슬며시 감으며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나갔다.
" 나도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깨물었다. 본디 깨문다는 행위는 고통을 동반하곤 하지만, 그는 아랑이 사전에 요청한 대로 최대한 살살 깨물기 위해 노력했다. 깨물자마자 퍼져나오는 만족감을 잠시동안 맛보다가, 이 정도면 이성을 유지할 정도는 되었다 싶을 무렵에 입을 열고 고개를 다시 들었다.
" ....나는. "
그 자신도 잘 알고있었다. 지금 자신의 기분은 혼자 발산할 수 없는것이다. 늑대로써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도없이 맛보았던 이 불쾌한 기분. 그것에 더불어, 양들이 힘들어하는것도 알고있었다. 지금까지는 이성을 유지하느라 미처 생각지 않았던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랑은 양이다.'
너무나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상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 중요한 것은 다른 어디에도 없었다. 아랑은 어쩌면 몸집이 작으니 의지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지하는데에 몸집이란 상관이 없을테다. 집채만한 사람이 겁이 많아 전혀 의지가 되지 않을때가 있고, 키가 작은 어린아이라도 그의 용기에 의지가 되는 일도 있는것이다.
아무튼 지금 이 순간에 진실은 딱 하나뿐이었다.
" 난 네가 아니면 의지할 수 없어. "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밝게 올라오는 달을 의지할 수는 없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의지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의지할 것은, 내 곁에 있는 너. 아랑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를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며 그녀에게 몸을 조금 기대었다. 말로만 의지하는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자신도 의지하고 있으니, 너도 그러고싶어하지만 말고 의지해라' 라는 말을 담았을테다. 그녀가 알아차려줄지는 둘째치고서.
" .....더 도와줄건? "
기꺼이 깨물게 해주었으니 그녀가 원하던 '도움'을 가능한 주고 싶었다. 덕분에 이성이 버틸 수 있었으니까.
자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그 말에 그의 눈빛에 살짝 의아함이 흘렀다. 물론 자신도 다른 누군가와 친한 사이를 유지하는 것은 좋았기에 별 말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알게 되고 만나면 또 친해질 수도 있는거고, 적어도 그가 아는 인간관계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완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이들에게는 비할 수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럼 친하게 지내요. 그럼 되잖아요? 지금은 아는 사이지만, 만나서 인사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교류하면 친해질 수도 있을테고요. 그 어떤 피아니스트도 처음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와 4분의 4박자를 배우는 것처럼요."
묘사가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나, 그에게 있어선 이것만큼 탁월한 묘사도 없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또 다시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친한 지인이 늘어나는 법이니까. 아무튼 그녀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충분히 이해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삼이면 힘들 것 같네요. 지금만 해도 공부해야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기도 하고. 저도 내년에는 어쩔 수 없이 연습량을 조금 줄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포기는 못하겠지만."
괜히 소리를 내어 웃으면서 다시 한 번 건반을 꾹 눌러 높은 한 음을 길게 내다 하늘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정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요. 좋아하지 않은 것에 그렇게 신경쓰고 싶지 않아요. 세상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도 모자랄 정도니까요. 설사 그게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해도, 제가 선택한거니 후회는 안 해요."
단순히 사람만일지, 아니면 다른 것이 포함되어있을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말을 하며 부가설명을 하지 않으며 하늘이는 숨을 약하게 내뱉으며 이야기했다.
그의 힘없는 쓴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그저 웃어보일 뿐이었다. 다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와 조금 들뜬듯한 입매가 약간의 즐거움마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말도 안되는 농담까지 던져가며 굳이 그의 반응을 확인하려고 했던 걸까? 어느쪽이던 얄궂은 질문임엔 변함이 없었다.
"그대야가 생각해도... 얌전히 당해줄 양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후후후후~"
불필요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부러 교태를 보이는 것은 분명 그녀의 본성이라, 그것을 받아넘겨 무시하던, 그대로 물어뜯던 하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다만 그 역시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진 않겠다는듯 그녀에게 등지고서서는 몸을 웅크렸을까?
둥글게 말린 그의 등은 그의 말 뿐만이 아니라도 업히란 제스처를 내포하고 있었고, 그녀는 순순히 그의 등에 몸을 맡기는가 싶다가도 더 달라붙어서는 오른손을 뻗어 가볍게 팔을 그의 목에 휘감았다. 왼쪽 귀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가던 손은 가볍고 약했지만 마냥 가녀리게만 느껴지던 손길이 더이상 갈곳이 없자 그의 목에 손톱자국이라도 남기려는듯 그러모아 살짝 힘을 주었다.
>>688 :D ((다행이다)) 편한대로 쓸게요! 길게 써지면 길게 가져오고, 짧게 써지면 짧게 가져오고! 연호주도 편한대로 해주세요...! +)이것도 쪼꼼 고민하고 있는 게, 연호주는 포곤포곤한 분위기가 좋으세요. 살짝 잔망 떨어보는 분위기가 좋으세요...? :3 (이것도 아랑주 맘대로...??)
>>689 전... 떽띠 치명을 보고 싶은 건데요... ^ㅠ... ((하지만 치명적 레벨인 건 기쁘다...)) 아랑이 귀여워 해줘서 언제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