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도 덩달아 점프하며 글 쓰는 제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퍽 우스꽝스러운 꼴이었다. '여기 떡볶이 맛있어요'가 아닌 'ㅇ• _\ ㄱ ㅣ ••'. 천장 위에 의미없는 펜자국이 쿡쿡쿡. 닳아버리는 펜촉까지 다다른 최민규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5년만 어렸다면 진짜 점프해서 천장에 글을 쓰려 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다시 벽에 시선을 짧게 두었다.
"벽에 아무거나 써볼래?"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그저 미련에 불과하다. 아무리 1년이 한참 남았다 해도, 1년 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조금은 아쉬워지기 마련이었다.
"세상에, 자비로우셔라.."
옅게 웃으며 주인집 아주머니가 떡볶이며 순대, 오뎅, 튀김을 놓을 자리를 만들었다. 떡볶이는 당연히 식탁 정 중앙에 자리잡았다. 사하 앞에 앞접시를 놔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부하면 뇌세포 죽는대."
시덥잖고 근거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공부를 안 하면 오히려 똑똑해지지 않을까- 하는 괴상한 논리도 함께 펼쳤다. 결국엔 그래도 잘 지냈다니 다행이네, 하며 결론맺었다. 종종 잘 못 지냈다며 우는 소리를 하는 동급생들도 몇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그가 꺼내들고있는 그 사탕은 아무래도 민트초코맛인 모양이다. 참고로 필자는 민초와 연을 끊고 산지 벌써 몇년째다. 아무튼. 그는 피식 웃으며 그녀가 뻗어주는 손을 붙잡고 난간 아래로 폴짝 내려왔다. 원래라면 이 정도 높이는 내려가는데에 있어 문제가 아니다. 혼자 내려가는 거여도 점프해서 공중제비를 3바퀴 정도는 돌고 착지까지 할 수 있울 정도다. 하지만 오는 호의는 거절하지 않는 주의로써, 기꺼의 그녀가 내밀어준 손을 잡고 내려온 것이다.
" 안 돼. 안전장치가 없어서 위험하다고? "
내로남불이란 이런걸 두고 이야기 하는걸까. 하지만 위험한 것도 맞는 말이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엄두도 안낼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서 이리 태연한건 배짱 덕분일까.
" 역사. 덕분에 수업중에 지루하다고만 100번은 생각한것 같아. "
사실 역사가 아니었어도 그는 지루해했을거다. 어떤 수업이든 지루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였지만, 어째 날에 따라, 기분에 따라 지루함의 정도도 달랐다. 참고 버틸 수 있는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다면, 오늘처럼 못참고 뛰쳐나오는 지루함을 느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는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느 구름을 정확히 짚고있는진 모르겠지만....
가방을 열어 한참 뒤적거리더니 책 사이에서 굴러다니는 네임펜을 꺼냈다.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자랑스러운 듯 웃는다.
"이걸로 쓰면 어디에 써도 잘 보일걸."
이미 낙서로 빼곡한 자리는 조금 힘들겠지만, 구석자리를 공략해 잘만 쓰면 나중에 와서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졸업하고도 남아있으면 재밌겠다.> 작게 중얼거렸다. 아직도 마음은 2학년인 것 같은데, 어쩌다 3학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시간 지나면 먹는 게 나이라곤 하지만.
"그치, 머리 너무 많이 쓰면 안 돼."
선생님이 들으면 기함할 소리에 더한 말로 맞장구쳤다. <땡큐.> 앞접시에 가볍게 인사하고 포크를 들었다. 제일 먼저 먹는 건 떡볶이다. 역시 청소하고 난 다음엔 떡볶이지. 고개를 끄덕이다 민규를 빤히 쳐다본다.
"…너 은근히 부지런한 거 배신감 느껴지는 거 알아?"
민규가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꽤 잘 하는 것도 알지만, 제게 운동이란 다분히 생산적으로 느껴지는 행위였기에. 난 방학동안 최선을 다해 숨쉬는 것 말곤 안 했는데! –반쯤은 장난인– 배신감을 표출하며 김말이 하나를 먹었다. 떡볶이 국물에 콕 찍어서.
"겨울산이면 눈 쌓인 것도 봤어?"
눈 쌓인 풍경을 꽤 좋아했다. 높은 데서 보는 눈 쌓인 풍경이라, 상상하니 꽤 낭만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