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스트레스를 청소나 정리정돈으로 푸는 사람도 있다곤 하던데. 아무래도 그런 부류는 아닌 것 같았다. 팔을 대충 휘적이며 분필 흔적이 남은 칠판을 지웠다. 칠판에 적힌 <주번> 옆의 제 이름도 지우고 싶었다. 지워봤자 내일 또 적힐 게 뻔해서 행동에 옮기진 않았다. 교탁 위 먼지를 손으로 쓸어 바닥에 버린다. 이젠 바닥을 청소할 차례다. 큰 쓰레기를 대충 주워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다섯 개 중 세 개는 안 들어갔다. 괜히 시간만 더 썼다. 쓰레기통 옆에 떨어진 걸 주워서 버리고 빗자루를 들었다. 이제 작은 먼지들을 청소할 차례. 괜히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하자고 했나. 둘이 했음 벌써 끝났겠다. 잡생각을 하면서 슬슬 바닥을 쓸었다. 무성의한 움직임에 먼지가 날려 재채기도 한 번 했다.
바닥을 빛낼 필요는 없겠지. 대청소도 아니고. 적당히 깨끗해진 바닥을 보고 생각한다. 청소도구함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쏟아내듯 넣었다. 창문도 꼼꼼히 닫았다. 떡볶이……. 세 글자가 뇌리를 스친다. 왜지? 교실문을 잠그다 떠오른 의문은 다른 반을 향해 가다 알았다. 아마도 저와 비슷한 처지였던 것 같다.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순순히 그러자고 할 것 같아?"
한쪽 입꼬리만 씰룩대며 말하다 결국 웃음이 터진다.
"맞아, 가자."
어깨를 툭툭 치기 위해 팔을 쭉 뻗었다. 민규에 대한 반가움의 표시였고, 동시에 떡볶이 연합의 재결성에 대한 기쁨의 표시였다.
역시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생각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사하를 보며 옅게 웃었다. 사람 버릇 어디 안 간다는 옛말은 사실이었다. 한달이나 지난(봄방학까지 합하면 두 달이 넘어갈지도 모른다) 시점에서도, 청소를 하면 이상하게 달짝지근하고 매운 떡볶이가 땡기는 것이었다. 매운 것 못 먹는 주제에, 언젠가 매운 것을 도전해보겠답시고 더 매운 떡볶이를 시켰다가, 결국은 절절매며 콧잔등에 맺힌 땀을 찍어내던 여름이 떠올랐다.
맵기는 보통 맵기로. 덧붙이며 분식집을 향해 갔다. 분식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애초에 먼 곳이었으면 올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 도착한 분식집은 예전 기억과 비슷했다. 문을 밀어 열자 금붕어 풍경이 부딪혀 소리를 냈다. 자리잡고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떡볶이는, 먹을 거고. 순대도 먹을 거고.
씩 웃었다. 피로 맺은 의리니 어쩌니 하지만, 제일은 떡볶이일 거라 생각했다. 피나 떡볶이 국물이나 빨간색 아닌가. 그리고 피는 아프거나 징그럽기만 하지, 떡볶이 국물처럼 맛있지도 않으니까 어느 쪽으로 보든 떡볶이의 승리다.
"와, 대박. 벌써 배고파."
걸음이 빨라졌다. 며칠 굶은 것도 아니고 몇 시간 전에 점심 먹었는데. 괜히 성장기라는 좋은 구실을 내세워본다. 키는 더이상 크지 않는데도.
분식집은 벽이 낙서로 빼곡했다. 이름과 날짜를 적은 낙서 위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적은 낙서, 그 위엔 다시 <숙제 하기 싫어.> 같은 푸념을 적은 낙서가. 무의식 중에 벽을 봤다가 한참이나 낙서들을 읽기도 했다. 그중 몇 개는 천장에 있어서 도대체 어떻게 저기까지 닿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듬튀김에 튀긴 만두도 있지? 좋아."
테이블에 있는 주문서와 연필을 끌어왔다. 떡볶이 2인분에, 삶은 계란이랑 모듬튀김이랑 순대랑 쿨피스. 거침없이 종이를 채워나가던 손이 멈췄다. 잠시 고민한다. 이러다 옆으로 크는 거 아닌가.
"나… 하나만. 너는 몇 개 먹을 거야?"
나 원래부터 양심 같은 거 없었어. 그래도 하나만 먹잖아. 속으로 정신승리하며 민규에게 물었다. 낡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가 이따금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퍽 뻔뻔한 얼굴로 실없는 소리를 했다. 표정만큼은 한없이 진지했다. 아니 뭐, 떡볶이 먹는 연맹 배신하려면 그 정도 각오는 해야하지 않겠어
메뉴판만 뚫어져라 보다가, 사하가 뭐하나 살펴봤더니 벽이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 제 시선도 옮기자 빼곡한 낙서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걸 읽고 있었구나. 낙서를 읽다 보니 꽤나 재밌는 것들이 많았다. '공부 하기 싫다.', 'ㅇㅇㅇ 선생님 사실 대머리', '학교 폭파시켜주세요', '여기 떡볶이 맛있어요' 등등. 심지어 천장에도 몇 자 끼적여놓은 것들이 있었다.
"왜, 너도 적고 싶어서?"
천장 바라보던 사하 보고 입 열었다. 적고 싶어한다면야 동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진짜 하나만 먹을 거야?"
주문서 채워나가는 것 보다가 일부러 짓궂게 물었다.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그래놓고선 제 몫 주문서에는 두 개 적었다. 털털거리며 선풍기가 돌아갔다. 선풍기 바람에 풍경이 닿을 때마다 조금씩 방울 소리가 났다.
>>165 딱히 식도락 여행이 아니었고 애초에 여행도 아니었던데다 일정도 꽤 바빴으므로 먹는 재미도 못 봤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바다 구경은 원없이 실컷 했으니 1승 2패를 거두고 왔다고나 할까 1승이나마 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해인주는 나 없는 동안 잘 지냈어? ( ͡~ ͜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