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이러시면....." -"에이 빼지 말고, 고등학생이라면 놀 때는 놀 줄 알아야지!"
학교가 끝나고 가볍게 거리를 뛰며 운동을 하고 있을 찰나에 휩쓸린 상황, 분명히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한 남성이 예미를 향해 헌팅을 가한 것이었다. 확실히 그녀가 꾸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또래보다 잘 발달된 몸과 더불어 온순해 보이는 인상은 남자들을 꼬이게 하기 충분하였다.
"저.... 집에 가야하는데요?" -"아니 잠깐만 같이 놀자니까...!! 왜 그렇게 튕기는건데!"
그녀의 거듭된 거절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끈질겼다. 분명히 그들이 보기에는 예미라는 소녀는 상당히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으니까, 그렇게 대학생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려는 찰나.... 그녀의 손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대학생의 손을 벗어났고, 그녀는 그대로 물 흐르듯 남성의 손을 쳐낸뒤, 가볍게 품으로 파고들고는 안쪽 다리 관절 부분을 가볍게 발 뒤꿈치로 쳐서 무릎을 굽힌뒤 그대로 팔을 뒤편에서 꺾었다. 남자는 그녀의 완력을 무시했는지 그대로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제압된 팔에 가해지는 통증은 점점 강해졌다.
-"이....이익!! 이거 안놔?! 제길!! 무슨 힘이....!!" "어 음..... 그러니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변호사를 쓸 돈이 없다면,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이 권리가 있음을 인지했습니까....? 맞나?"
그녀의 입에서 유창하게 미란다 원칙이 흘러나온다. 경찰도 아닌, 일개 고등학생인 그녀의 언밸런스한 발언에 다들 벙찐것인지 그녀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지금 이 근처를 지나가는, 자신의 동급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갑작스러운 시선의 주목에 남자를 제압한 모습 그대로 어쩔줄 몰라하기 시작한다. 이럴때 쓰려고 배운 무술들이지만, 렇다고 해서 이렇개 주목받는 상황을 바란 것 까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그 자세 그대로 어쩔줄 몰라하던 찰나, 그녀의 귓가로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엉?"
그 순간 그녀의 무게 중심이 엇나가고, 계속 발버둥 치던 남성이 풀려남과 동시에 그녀가 가볍게 쓰러지며 그대로 자세를 바로 잡았고, 남자는 뻐근한 팔을 연신 주무르며 예미를 바라보다가 두고보자! 같은 삼류대사를 내뱉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예미만 있다면 모르겠지만, 분명히 진혁의 통화내역 일부를 들었기에 하는 판단인 것이리라. 그렇게 어안이 벙벙해하던 순간,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예미였다.
"ㅈ, 잘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몸 하나 가눌 정도만....."
그렇게 더듬더듬 자신없게 말하는 것치고는 정말로 본격적인 움직임이었다. 부드럽고 유려하지만 힘있고 날카로운 그 동작은 그녀가 년 단위로 단련해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서둘러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해내기 위해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눈이 핑핑 돌아간다. 아까 자기 소개 했을때 혀까지 깨문 덕분인지 그녀는 지금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인지 이내 신색을 겨우 가다듬으며 오렌지 빛 눈동자로 상대방을 직시하며 가볍게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혀를 깨물어 버렸어요. 실제로 밖에서 실전을 해보는건 꽤 오랫만이라가지고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가볍게 몸을 풀어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행동과 더불어 확실히 불필요한 행동 자체가 없어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말들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마침 돌아가는 길이기도 했고, 방향이 맞다면 같이 가자는 뜻일것이다.
"다친 곳은 없지. 다만 나같은 얘에게 헌팅이라니.... 다들 나이에 맞는 행동을 좀 했으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못알아먹을 것 같지만, 만약 출석 순을 키로 했다면 제법 뒷쪽에 위치했을것 같은 키에, 충분히 서양인의 피를 이어받은 그녀로서는 나이를 정확히 지칭하기는 좀 애매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범죄도 그렇고 지진도 그렇고 뭔가 있는건지.... 왜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지 모르겠네."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인지 그녀는 전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렌지빛 시선에 담긴 감정은 분명히 진지함 그 자체, 아마 자기같은 인상의 여성보다는 반 아이들 같이 지금 나이대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더 인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그녀였다.
"그래도 뭐, 큰 지진은 아니니까, 별일은 없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금은 불안한 듯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구 멸망, 말이 지구 멸망이지,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떠한 아비규환이 벌어질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상상하는 것 자체도 어처구니 없는게 사실이었고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이어지는 말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딘가에 사는 히어로, 히로인씨가 구해줄지도 모르고 말이지."
이런걸 믿을 나이는 지났다 생각하면서도 만약 진짜 있다면 웃길거 같아서, 끝을 얼버부리는 건 비밀아닌 비밀이었다.
맨날 본인이 느끼기엔 옷입는 법도 모르고 운동이랑 공부만 하는 여자가 뭐가 재밌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지 잘 모르는 것인듯 했다. 나름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정쩡하게 한다면-물론 본인 기준에선- 그것은 전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던가, 꽃이 이뻐야지 그 값어치를 해내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향이 좋더라도, 결국 골라주는 이가 없다면 그것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던 찰나 그의 말에 살짝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연다.
"하하..... 만약 그런거라면 당장 지금 마켓같은데 부터 가서 물품을 사둬야 하지 않겠어?"
뭐 어지간한 것은 대다수가 기우로 그치는 법이고 결국은 잠깐의 해프닝으로 스쳐지나가는 그런 일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 어른이 되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해나가는 것이겠지. 그녀는 잠시간 그렇게 생각하며, 히어로의 정의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는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모르지, 옛날 만화영화처럼 여기 모두가 히어로일지, 결국 히어로라는 동전의 뒷면은 평범한 인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