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피를 보고도 고통스러워 하지 않으며 되레 이 일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지도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 너를 싫어한다면 그럴 이유가 있기 때문에 넘겼고, 괴롭힌다면 행복하면 됐다며 넘겼으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면 할 말이 없으니 수긍했다. 피를 닦아주자 너는 고개를 기울인다. 피가 났냐는듯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 반응하지? 너는 눈을 고양이처럼 느긋하게 감았다 뜬다. 이후의 표정은 미묘하게 달라졌는데, 아마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 조금 내려간 눈꼬리와 눈썹, 그리고 굳게 다물린 입술 뒤로 표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수줍던 모습도 금세 사라지고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제법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래보여요?"
미치는 한이 있더라도 붙잡으라 했지만 이미 놓친 걸 다시 쥐기엔 너무 죄인이 아닌가 싶고, 텅 비어버릴지도 모른다지만 이미 비어있기 때문이다. 이를 몰라서 다행이다. 채우기 위해서 뭐든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안 된다. 그 절망감에 빠지다보면 다시 일어서게 되고, 기어이 또 하나를 데려온다. 너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리치를 바라보던 너는 손을 잡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윽고 친구 이야기에 고개를 기울인다. 뻐꾸기 여덟번 울 시간은 지났기 때문이다.
"좀 늦긴 했는데 아마 곧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고 고개를 기울이다 당신 너머로 무언갈 보고 배시시 웃는다. "왔어요?" 하는 인삿말 뒤로 손을 붕붕 흔든다. 발걸음 소리도 없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장신의 남성이 다가온 것이다. 남성은 잠시 회중시계를 꺼내 바라본다. 지금의 시간은 오후 8시 47분 32초다. 본인이 늦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요구한 적은 없었기에 둘을 바라보곤 상황을 설명하라는듯 미간을 구겼다.
"내 굳이 지금 이 상황에 해명을 요구해야하나?" "여전히 친구 싸가지 없어요? 내 나중에 설명할게요? 안녕, 펠리체. 다음에 또 봐요? 그때는 이노리 많이 채워서 봐요?"
너는 펠리체의 제지가 없다면 한바퀴 빙그르 돌고 토도도 달려 친구의 곁에 서려 한다. 종이로 만들어진 조잡한 비행기처럼 바람에 몸을 싣고 휘날리듯 떠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친구가 뒤로 돌아 에스코트를 하듯 너에게 손을 뻗으며 입술을 벙긋거리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함은 "저녁부터 기분 나쁘게 왜 실실 웃고 그러나." 였다. 그러자 네가 눈을 기묘하게 휘며 명백한 소녀의 목소리로 조근거리기를. "채울 것이 생긴지라 일단 들개부터 길들일까 하여." 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아무도 알지 못하리라.
"어머.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 여보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을까. 응?"
알려줘. 우리 허니. 조금 부끄러운 애칭을 입에 담아 부르고는 뒤늦게 후회하기 시작하는 주양이었다. 당신이 사용하는 그 달달하고도 귀여운 호칭들을 자신도 한번 사용해보고자 싶은 마음에 써 보기는 했는데, 이렇게까지 부끄럽고 쑥스러운 이야기일줄은 몰랐던 것이다. 살짝 볼을 붉히고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 주양은 다시 히죽 웃었다.
"흐응~ 정실으로써 후실은 용납 못해. 역사적으로 다른 왕비들이 다 그랬듯이 말이야~?"
오직 나만 바라보고. 오직 나만 사랑해주고. 오직 나한테만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여줘. 너의 시선을 뺏어가고, 나한테만 주어질 애정을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건 절대 용납 못해. 주양은 히죽 웃으며 다시 당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신 역시 남들에 대한 소유욕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고, 그것이 자신의 연인이라면 더더욱 그랬으니까. 거리를 좁혀 당신을 마주보고 미소짓는 것도 잠시였다.
당신의 입질이 멈추고. 주양은 당신에게 한껏 몸을 기댄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 여보. 이렇게 날 자극해줄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하며, 주양은 간신히 다시 미소지었다. 아직 몸에 남은 자극이 가시지 않아. 한참동안 당신을 끌어안고 있다가 다시 몸을 살짝 뒤로 물렀다.
"그치만~ 아무런 이야기도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일 터지고 나서 이야기하는것보단 낫잖아? 같이 방법을 생각할수도 있고~ 만약의 상황이 온다면,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고. 라고 할 뻔~"
내기에서 진다면 서주양이 아니지. 그치? 그렇게 뒷 말을 이어나가며 주양은 다시 곱상하게 미소지었다. 손만 잡고 잘수는 있느냐는 말에 주양은 대답을 덧붙이지 얺은 채 마냥 웃을 뿐이었다. 꼭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지 않느냐는. 그런 뜻이었지만, 차라리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 더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뒤늦게서야 들었다. 당신이 피니테를 쓰려 하자, 주양은 다시 거리를 확 좁히며 당신이 못 움직이도록 끌어안고. 한껏 입을 맞춰왔다. 꽤 시간이 지나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던 주양은, 자신의 숨이 딸릴때쯤 되어서야 천천히 입을 떼어냈다.
".. 아직.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해. 적어도 내일쯤은 되어야 풀만하지 않겠어? 응? 여보, 우리 자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