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군가를 걱정하며 슬퍼하곤 한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은 아니다. 네가 손을 멈추자 리치는 가방 안으로 들어간다. 당연한 일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고개를 올렸다. 할 말을 고르는 표정은 아니었다. 너는 순수하게 그 말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는다. 당신이 하는 말을 모두 듣고자 함이었다. 이윽고 미소를 본다. 초승달처럼 휘는 금빛 눈동자를 보던 네 입술이 잠시 다물렸다.
사람은 끝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건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된다고 하던들, 어쩐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광인을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너는 고개를 들어올리고 가볍게 기울인다. 당신의 말이 옳기 때문이다. 당장 머글 학생이 실종되어 크루시오에 맞았어도 누구 하나 걱정하였나? 이 원내에 출입하려던 어둠의 마법사를 저지하다 죽은 오러는? 없다. 그저 한순간의 안타까움일 뿐이다. 이미 죽은것이 다시 한번 죽어도 눈하나 깜짝 안할 원내의 학생일터이니 그 이전엔 얄량한 동정심을 유발할 생각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입술에서 호선을 그어올리는데, 오로지 입술만 올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감정이 담겼을 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미 선택한 사람을 보는 것의 시선이 잔잔해진다. 그리고 그대로 옹송그리던 것을 무릎을 꿇어내더니 손을 공손히 모으는 것이다.
"이 미천한 자가 펠리체 양의 강한 심상을 알아보지 못하고 선택을 종용하는 실언을 저질렀으니 이 모두 저의 죄이렵디다. 부디 용서해주시어요. 용서해주시어요. 용서해주시어요.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어요."
나긋하게 흘러나온 발음 뒤로 네가 머리를 크게 땅에 박고 절한다. 한번, 두번, 세번. 기어이 네 이마에서 피가 나던 그 순간 고개를 번쩍 치켜올린 네가 아이처럼 말갛게 웃는다. 아프지도 않은 것처럼 "아- 이노리가 이노리 안에 있을까요? 그러면 좋을 텐데. 영원히 남아있어야 해요." 하고 종알거리던 목소리는 방금 전까지 부끄러워하던 소년의 것이다. 이윽고 방금 전 상황이 재미난 놀이였던 마냥 손을 모아내며 뺨 근처로 가져다대곤 손등에 볼을 부비며 아이처럼 작게 피히히 웃는 것이다.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던 주양은 어깨를 으쓱였다. 또 다시 기숙사 점수를 차감당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점수를 끌어올려야 하긴 하는데, 요즘 의뢰를 자주 안 뛰다 보니 점수가 그대로 유지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조만간 다시 주궁 학생대표로써 출발해야겠지. 이윽고 들려오눈 말을 들으며. 그리고 대량으로 풀려 정신 사납게 날아다니는 골든 스니치를 보며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ㄱ..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빠른데요...?"
맙소사. 퀴디치 경기를 뛸 때도 이렇게는 안 잡아봤는데. 씁 하고 입맛을 다시던 주양은 결국 이번에도 꼼수를 부려보기로 했다. 괜히 저걸 따라 날아다니다가 빗자루에서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길 바에야, 존버 또 존버하는 메타를 쓰겠다는 것이었다.
"좋아. 한 마리만 걸려라~!"
마치 포수처럼, 날아올 방향을 대충 예측해서 그리로 손을 뻗어보았다. 동시에 균형까지 잡아야 하니, 아주 지옥이 따로 없었다..
장난스럽게 키득키득 웃으면서도, 이윽고 자신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것에 안도하며 주양은 웃었다. 그래. 역시 퀴디치 선수 짬이 어디 가겠냔 말이지. 동체시력..을 썼다고 호언장담하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꽤 잘한 축에 속할거라고 믿으며 뿌듯한 기분으로 미소지었다.
"좋습니다~ 바로 갈게요!"
빗자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주양은 행여나 놓칠새라 골든 스니치를 쥔 손에 힘을 잔뜩 주고서 균형을 잡으려 애를 썼다. 방해하러 온다면 너네 기숙사점수는 없다. 하고 눈빛으로 한참 주변 사람들에게 경고를 날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해석해도, 괜찮을 것 같은걸. 로맨틱한 느낌으로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내 뻔뻔스러운 모습까지 좋아한다니 나를 그정도로 사랑하는지 몰랐어. 우리 토끼 아가씨?"
주양의 말에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대꾸하는 단태의 목소리는 역시나 뻔뻔스러웠다. 그렇게까지 말하면서도 절대 너는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거북하게 느껴질만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건가. 잠시 생각하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단태는 주양의 장난스러운 말에 볼을 잡아당기고는 "나는 네가 후실 한명 정도는 모르는 척 넘어가줄거라고 생각하는데?" 하며 능청스레 대답을 건넸을 것이다. 비슷하게 장난기가 담긴 목소리였다.
약속만 잘 지켜주면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단태는 주양의 목과 어깨를 깨물고, 입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땅히 어떻게 대답해야할지도, 대답을 원하고 하는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지만. 잘근잘근 입질을 할때마다 더 가까이 붙다못해 더 세게 끌어안는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힘조절을 안하고 세게 물 뻔해서 고개를 뒤로 물러냈다. 하마터면 진짜로 물어버릴 뻔했다. 아니, 진짜로 세게 물어버렸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사실 계속 그러고 있다가는 정말 무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내가 걱정하지 않길 바랬다면 그 이야기를 먼저하는 게 아니었지 않나."
뻔뻔하게 느껴질만큼 능청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리며 불만을 토로하려던 단태는 결국 주양의 자신만만한 웃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보였다. 저렇게 나오는데 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그냥 이제부터는 내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기도 했고, 손만 잡고 자겠다는 주양의 대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자꾸 대답할 말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인데. 단태는 슬쩍 눈썹을 찡그리면서 생각했지만 곧 주양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가져다댔다.
"정말? 손만 잡고 잘 수는 있고? - 막이래."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단태는 헤죽- 하고 웃어보였다. 방금 전까지 입질에 반응하는 모습에 갈등하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뻔뻔스럽게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우리 자기가 그렇게 말하니까 방음 마법은 풀어도 되지?" 하고 단태는 주양을 감싸고 있던 팔을 풀어서 놓아주며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피니테 주문을 외우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이해받길 원했다면, 지금처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되려 자신을 숨기고 적당히 보기 좋은 꼴을 꾸며내어 그것이 제 진실인 양 굴었겠으나. 그녀는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타인 뿐일까. 피를 나눈 가족은 물론 심지어 그녀의 연인에게조차 빈말로라도 하지 않겠지. 그녀에게 이해란 믿음의 일부 같은 것이었으니.
저는 당신이 다치고 죽는다 한들 걱정은 커녕 슬퍼하지조차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지키듯 그녀는 이노리가 땅에 머리를 박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하나, 둘, 셋. 어렴풋한 광기마저 느껴지는 행위가 지나간 뒤 다시 좀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노리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동안 이노리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가방이 아닌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낸다. 아직 쓴 적 없는 새하얀 무명 손수건으로 이노리의 이마에서 나는 피를 닦아주려 하며, 혹은 그 손수건을 건네 쓸 수 있도록 하며 나직하게 속삭인다.
"남아있길 바란다면, 미치는 한이 있어도 붙잡고 있어요. 이노리 선배. 이미 잃은 건 돌아오지 않고, 그나마 남은 것마저 사라진다면 선배는- 텅 비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그녀는 이노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이름, 학년, 소속, 그런 걸로 그 사람에 대해 무얼 알겠다 하겠는가.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영원히 남아있길 바라는 걸 제대로 붙잡고 있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먀오오옹...
정체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듯, 혹은 환기하듯, 리치의 울음소리가 길게 울렸다. 놀만큼 놀았으니 돌아가자는 의미였다. 그래그래, 하고 가방을 토닥여 리치를 달래주고 앉았던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엉거주춤한 가방 끈을 다시 고친 다음, 이노리도 일어나게 도와주려는 듯 한 손을 내민다. 곧게 뻗은 흰 손이 얼마든지 잡으라는 것처럼 보였을거다.
"리치가 보채기 시작했으니 전 이만 돌아갈까 싶은데, 선배 친구분이 올 시간은 아직이려나요?"
이미 어두운데 여기서 더 어두워지면 이 작은 선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진 않을지 걱정하는 말 같아도, 그저 말뿐인 것이었다. 늘 그렇듯. 모두에게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