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청궁에 가도 됐지 않느냐는 질문을 유달리 자주 받는 편에 속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현궁 내부에서 크고작은 사고를 치는 비율중 네가 월등히 높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너는 형광 부엉이를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장난은 치지 않았지만 오르치데우스*를 배운 날에는 머글의 동화책 중 헨젤과 그레텔에서 길을 잃지 않게 빵조각을 뿌렸듯 네가 지나가는 온 길을 꽃다발 천지로 만들기도 했고, 아비스* 마법을 배웠을 때는 새가 유달리 많이 보이기도 했다.
"아-!"
그런 사고뭉치인 너는 최근 금지된 숲 근처로 자주 다녔다. 원내에서 대체 쟤가 뭘 하길래 금지된 숲 입구에서 계속 서성거리느냔 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다만 네가 돌아오는 날마다 머리 위에는 새끼 니플러가 있지를 않나, 아니면 처음 보는 신비한 동물과 빙글빙글 춤을 추며 나오지를 않나, 여러 신비한 동물과 함께 다니는 것으로 보아 다들 늘 그렇듯 네가 동물과 놀다 왔겠거니 싶었다. 정확히는 어제까지는 그랬다는 뜻이다. 오늘은 네가 마법도 아닌 사고를 치는 드문 날이었다.
네가 학교로 돌아오자 학생들이 널 보고 자리에 굳는다. 그도 당연한 것이 네가 맨발로 도도도 달릴 때 뒤에서 무엇이 쫄래쫄래 쫓아왔는가 하면, 바로 문카프다. 대체 어떻게 하면 문카프 한마리를 데려올 수 있는가 싶지만 너는 지금 문카프와 빙글빙글 뛰며 춤을 추는 것이다. 학생이 금지된 숲 근처에서 노는 것은 뭐라고 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지만, 아무리 그래도.
"문카프야, 이노리랑 놀아요?"
신비한 생물을 데려와서 복도를 우당탕쿵탕 뛰어다니지 않은가. 야생에 있어야 할 동물과 친해진 것도 문제지만 네가 정신없이 뛰어다니면 그 뒤를 문카프가 쫄래쫄래 쫓아다니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학생마다 놀라게 하는 것이 문제였다. 오늘 너는 단단히 사고를 치고야 만 것이다.
큰 사건이 있었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모두가 입 다물고 감추기로 했으니 일상은 뒤틀림을 숨기고 언제나와 같은 평온을 가장한다. 교묘하게, 어떤 면에서는 절박하게도. 이질점을 스스로 집어내어 붙잡지만 않는다면 모든 일이 평소와 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좀처럼 가라앉은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어 갔는지 알 수 없다. 지난번에는 현궁의 학생 하나, 이번에는 교수. 비록 후자는 다른 의도를 가졌었기에 참작한다 치더라도 그들이 내부에서부터 숨어들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택영은 아직 자신이 교수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만약에 그가 정말로 무고하다면 과연 그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들에게 섞여들기 돌이킬 수 없는 죄업을 하나라도 저질렀다면 영영 그를 두려워해야 할지.
생각이 복잡했지만 과업에 태만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울적해하면서도 부지런히 원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주변에 별다른 사건사고가 없는지 살펴보는 일을 한 것이다. 움직이니 잡스러운 생각이 덜 드는 듯했다. 생각이 많을 때 고민을 덜어내는 특효약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잡생각 따위가 들 틈도 없이 정신 없는 일에 휘말리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난데없이 사람 하나와 정체 모를 동물 하나가 제 쪽으로 우다다다 달려오는 지금 상황처럼.
이 뭐꼬……. 그는 가장 먼저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눈을 한 번 가리고 깜빡거릴 때마다 영화의 기법처럼 이노리의 모습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이야 지극히 일상적인 광경이니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사람이 급하면 복도에서 좀 뛸 수도 있지. 다치지 않게 조심한다면 괜찮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노리의 뒤를 따라오는 생물이 점점 생동감을 더해가며 덩치를 키워가니 문제였다. 저건 거꾸로 디비져서 봐도 문카프였다. 일반적인 동물도 아니고, 패밀리어도 아니다. 즉 야생동물을 데려와서 우당탕탕을……! 당장이라도 뒷목을 잡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다. 말리지 않으면 그대로 멈추지 않고 온 복도를 휘젓거나 충돌 사고가 생길 게 뻔하니, 택영은 일단 이노리와 문카프가 달려오는 경로의 한가운데에 서서 두 손을 휘휘 커다랗게 휘저었다. ……부디 이노리가 이 동작을 반갑게 인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막내동생의 연애 소식에 라온까지 찾아왔던 파이몬을 맞이한 건 당사자의 싸늘한 대접과 그런 그녀의 곁에 거리낌없이 다가가는 한 남학생의 모습이었다. 냉랭한 엄포에 굳어버려, 돌아서는 그녀를 바로 붙잡지 못 하다가, 뒤늦게 카페테리아에서 나와 쫓던 중 둘이 같이 있는 장면을 보고 만 것이다.
자신에게는 한겨울의 북풍처럼 싸늘하게 굴던 막내동생이 붉은 머리에 키가 훤칠한- 본인의 표현으로 기생오래비 같은 남학생의 옆에서 한없이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파이몬을 그 장면을 보고도 차마 가까이 다가가질 못 했다. 지금 저기에 끼어들었다간, 조금 전 들었던 엄포가 현실이 될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가서 둘을 갈라놓고 주먹으로 저 놈의 출신성분을 낱낱이 털어내고 싶었다만. 그것은 이루지 못 할 숙원으로만 가슴에 품은 채 그곳에서 나와야만 했다.
풀 길 없는 답답함을 어찌해야하나 싶던 파이몬은 남매들이라면 그나마 대화가 통하지 않을까 싶어 본가로 모두를 불러모았다. 그냥은 안 모일테니 회심의 술을 미끼로 부르자 다들 귀찮아 하면서도 모여주었다.
"이게 얼마만이야~ 라고 해도, 막내 개학하고 얼마 안 지나서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네~" "그러게 말이다. 난 이 시기에 파이가 여기 있다는게 더 신기해." "...보나마나 리체 관련이겠지..." "거 주둥이가 많으니까 한마디씩만 해도 시끄럽다. 야야, 떠들고 말고 잔이나 들어."
그렇게 간만에 남매들끼리 술자리가 열렸다. 다들 한 주량 하다보니 독한 술 두세병을 비울 때까지도 술기운은 티도 안 났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 술이 도는 건 이길 수가 없었으니. 하나들 뭉근하게 술기운이 올라올 쯤 되자 이때다 싶었던 파이몬이 라온으로 그녀를 찾아갔던 일을 슬그머니 꺼냈다.
"야, 내가 있잖냐- 막내 그게 애인 생겼다는 말 듣고 거기, 거 라온까지 찾아갔었거드은?"
알콜의 기운 탓에 다소 말이 늘어지긴 했지만, 가서 무슨 대화를 했고 어떤 대우를 받았으며 저를 그렇게 대한 그녀가 기생오래비-애인으로 보이는 남학생과 얼마나 알콩달콩하던가 상세히 늘어놓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 고민에 동감을 표해줄 줄 알았던 남매들이 보인 뜻밖의 태도들이었다.
"이야- 이 XX 진짜 찾아갔네? 아 이래서 내기하기 싫었는데." "후후! 그 얘길 듣고 가만히 있으면 파이몬이 아니지~ 브리, 나중에 돈 똑바로 내놔? 응?" "재미없긴... 사람이 너무 한결같아도 매력없어..."
자신이 어떻게 할지를 두고 내기를 한 듯한 블리스와 헬리아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그나마 자신과 비슷한 마음일거라 생각했던 델피니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아닌가. 어느 누구도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해주거나 알아주지조차 않는 상황에 파이몬은 그나마 들었던 술기운도 깰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남매들의 입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본인에게로 화살이 돌려졌다.
"뭐 내기야 그렇다 치고. 파이 너도 참 징글맞어. 리체는 더이상 그 때의 꼬맹이가 아냐. 그렇게 득달같이 굴 필요 없다고." "아니 그래도 아직 성인도 안 된 애인데," "그래서 뭐, 언제까지 싸고 돌 건데? 어? 나이 차면 다 컸구나 하고 놔줄려고?" "그건 그 때 가서 생각-" "하! 야, 말만 보면 아주 그냥 평생 돌봐주기라도 할 거 같이 구는데, 팩트만 까볼까? 우리 중에 가장 먼저 그 애를 포기했던 건 너잖아."
파이몬의 가장 아픈 곳, 아니, 가장 양심의 가책을 찌르는 말에 일순 자리가 조용해진다. 술맛보다 쓴 말을 들은 파이몬이 조용히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블리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를 대신하듯 헬리아가 나긋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때 정~말 정말 큰 일이었지~ 우리 귀여운 막둥이가 매일 매일 바닥만 보고 다니는데, 그거 달래주느라 얼마나 고생했던지~ 그래도 딱히 파이를 원망하진 않았어. 응.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 "2년이나 돌봤으니까 그만하면 고생했고, 나랑 브리가 졸업한 해에 나갔으니까 그렇게 무책임하지도 않았지. 그러니까~ 우리는 그럴 수 있지 하고 파이의 만행을 넘어가줬어. 나중에 돌아왔을 때, 리체도 아무 말 안 했잖아. 우리는 널 봐줬는데, 넌 왜 그래?"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아니? 뭐가 다르다는 거야. 같은거잖아. 파이가 제멋대로 나간 거랑 리체가 제멋대로 연애하는게 뭐가 달라. 따지자면 리체의 대처가 더 현명하지. 사후 보고긴 해도 말을 해줬잖아. 그런데 파이는? 말도 없이 나가서 2년 동안 아무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돌아왔었지? 뻔뻔하게 웃는 얼굴로 기어들어온 너를 책망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었나? 그런 대우를 받아놓고, 이제와 무슨 낯짝으로 리체에게 행실이 어떻니 따위를 따질 수 있어?" "...젠장..."
블리스가 묵직하게 치고 들어간다면 헬리아는 특유의 나긋함으로 차근히 짓밟는 스타일이었다. 그것도 정확히 팩트만 짚으니 파이몬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죄인마냥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자신의 답답함을 들어달라 하려고 만든 자리에서 이렇게 역풍을 맞을 줄이야. 반쯤 마음이 꺾인 파이몬을 보고도 누구 하나 달래주지 않는다. 형식상의 위로도 없다. 델피니는 질린다며 술잔을 들고 자리를 피하고, 블리스와 헬리아만이 쿵짝을 맞춰 대화를 나눌 뿐이다.
"아, 맞다~ 브리, 그거 알아? 내가 진짜 재밌는 얘기를 하나 들었거든?" "재밌는 거? 뭔데?" "저~기 어느 나라에 우리랑 비슷한 약소 순혈 가문이 있는데, 유일하게 대를 이을 장자가 지병으로 죽어서 가문의 맥이 끊기기 직전까지 갔었다더라구. 여식도 있긴 한데 걔도 오늘내일 했나봐~ 그래서 그 가문에선 여기까진가보다 하고 가문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어떤 순혈 마법사가 나서서 그 가문의 맥을 이어주겠다고 했다는거야~" "뭐야 그게. 그런게 가능해?" "방법이야 없지는 않지? 듣자하니 이번엔 그 마법사가 그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걸로 했다던데?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여식의 병을 낫게 할 특효약까지 구해왔으니 가문 입장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런데 참~" "왜, 그거 말고 뭐가 또 있어?" "있지~ 그게 말야, 그 여식이랑 그 마법사의 나이 차이가 무려-"
쾅!
둘이 술잔을 기울이며 노닥이고 있던 중, 그 때까지 가만히 있던 파이몬이 돌연 술상을 주먹으로 내리쳐 소음을 일으켰다. 마치 헬리아의 말을 끊으려는 것처럼. 그 의도를 읽은 듯 모두가 말을 멈추고 행동을 멈춘 채 파이몬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짓고 있던, 기가 꺾인 표정 대신 은근한 분노를 드러내는 파이몬을 보고 곧 헬리아가 시니컬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어머, 파이, 그렇게 발끈하면 애써 이름을 감춘 보람이 없잖아. 아, 혹시 감춰서 화난거야? 오. 난 네가 열두살짜리 님펫(Nymphet)을 들인게 그렇게 자랑스러울 줄은 몰랐는데?" "뭐야. 파이 얘기였어 그거? 아니 그보다 뭐? 님펫? 몇살?" "...하, 누가 말려. 저 성질머리..."
꽤나 충격적인 얘기에 블리스는 대놓고 놀랐지만 저만치서 듣고 있던 델피니는 이미 알고 있던 얘기인 듯 미간만 찌푸렸다. 이번에도 화두의 중심이 된 파이몬은 좀더 선명히 화를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지만, 이 파문을 일으킨 헬리아는 되려 소리높여 웃으며 그를 조롱했다.
"헬리아, 너...!" "아하하하! 왜, 왜 그러는 건데? 난 감춰주려고 했는데 파이가 그렇게 반응하니까 감춰주기 싫어지잖아. 자초한거야. 듣기 싫어도 꾹 참았으면 그대로 지나갔을텐데." "됐고. 니가 그걸 어떻게 아는거야. 분명 어머니 밖에 모르실텐데." "후후. 알다시피 내가 발이 좀 넓잖아~ 단골 손님 중에 하나가 마침!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었거든. 파이는 몰라도 '스피델리' 라는 이름은 아니까, 성이 같은 나한테도 얘기가 들어온거지. 아, 멍청한 파이몬. 알려지는게 싫었으면 적어도 성은 가렸어야지~ 우흐, 흐흐, 아하하하!" "이.... XX!!!"
자신의 일을 갖고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파이몬은 끝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식당을 나갔다. 제법 무게가 있는 문을 쿵! 울릴 정도로 닫고 나가는 걸 보며 남매들은 각자 웃고,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파이몬이 나간 뒤 제자리로 돌아온 델피니를 향해, 헬리아가 웃으며 물었다.
"그 가문 여식의 특효약 만든 거, 너지? 델피." "...알면서 뭘 물어봐..." "아니~ 뭔 수를 써도 안 낫던 병을 고치는 약을 만들었다니까~ 대단해서 그렇지?" "어, 그러게. 뭘 어떻게 한 거냐?" "......리체랑, 비슷했으니까... 그래서 가능했어..." "흐음, 그렇구나." "뭔 소리야. 니들만 이해하지 말고 설명 좀 해봐 이것들아!"
대화 중간에 끼어든 블리스가 성을 냈지만 남은 둘은 입이 붙기라도 한 듯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저만 따돌리는 상황에 성이 난 블리스에게서 다시 쌍소리가 나오려 하자, 헬리아가 근처에 있던 과일조각 몇개를 그의 입에 쑤셔넣어 말을 막았다. 그런 다음 태연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우리 꼬꼬마 리체도 애인이 생겼으니 곧 그게 오겠네. 잘 견딜 수 있으려나?" "저번에... 약 보냈어. 그러니까, 괜찮아." "그럼 다행이고~ 아, 델피는 아직 모르지, 그거? 엄청 아프다구~ 누가 심장을 쥐고 이렇게 비트는 것 같이 아픈데-" "아 아 아아아! 아파! 아픈거 알았으니까 그만해!" "어머, 미안. 살짝 예시만 보여준다는게~"
헬리아가 설명과 함께 정말로 델피니의 왼쪽 가슴을 비틀었기 때문에 아픈 비명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잘 다듬어진 손톱이 파고들었던 옷 위를 문지르며 궁시렁대는 델피니를 보면서 잠시 키득댄 헬리아는 그제서야 쑤셔넣었던 과일조각을 다 먹은 블리스를 발견하고 말했다.
"자! 아직 술 남았으니까 한잔씩 더 하자~ 브리, 거기서 안주만 축내지 말고 잔 들어~ 아직 밤은 길다구~" "이 망할! 내가 축냈냐 니가 먹였지! 이 화상아! 오늘이야말로 너랑 나 둘 중에 하나는 죽을 때까지 마실 줄 알아!" "오! 나야 환영이지! 델피, 저기 창고 가서 몇병 더 꺼내와. 오늘이야말로 결판을 내보자구?" "...에휴... 밑 빠진 술독들 같으니..."
그렇게 남매간의 술자리는 최초의 목적을 잃고 파탄 직전까지 간 끝에, 날이 밝을 쯤 블리스와 헬리아가 동시에 쓰러지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파이몬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으며 뒷정리는 그 때까지 조용히 자작하던 델피니의 몫이었다고 한다.
너는 신나게 복도를 누볐다. 복도를 뛰는 건 버릇없는 짓이라고들 하지만 재밌는 일이 있는 걸 어쩌겠나. 문카프는 막대기처럼 쭉 뻗은 토실토실한 몸을 좌우로 흔들며 열심히 네 뒤를 쫓았다. 그 광경이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 같았지만, 그 크기가 달랐다. 너는 여타 1학년 학생과 비등할 정도로 아담했고, 문카프는 너보다는 하나정도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런 두 존재로 인해 원내는 당연히 소란스러워진다. 문카프는 야행성이고, 수줍음이 많으며, 보름달이 뜨는 날 모습을 드러낸다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활기차게 달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소수의 인원은 문카프가 작은 줄 알았지만 제법 컸기에 놀랐던 것도 있으리라.
"야!!! 이누리!!! 멈춰!" "그럴 재간이 있으시다면 어디 한번 멈춰보시든지요." "너 진짜 그럴..악!"
당연히 너를 제지하려 했던 사람도 있다. 한서다. 소란이 있다는 소리에 너를 막아세우려 했지만 그는 문카프의 폭신한 몸에 맞고 쓰러졌다. 방해물을 흘끔 돌아본 너는 메롱, 하고 혀를 쭉 내밀더니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리며 쿡쿡 웃었다. 그리고 다시 질주를 시작했고, 너를 막을 사람은 없어보였다.
"안녕-! 이노리도 안녕이에요?"
단 한사람을 제외하면 그렇다는 소리였다. 너를 누구보다 잘 다루는 원내의 존재 중에는 택영이 있는데, 칭찬 세례를 받다보면 어느새 쳤던 사고도 말끔하게 정리가 되는 편이었다. 누군가의 염원이 무색하게도 너는 택영의 행동을 인사로 받아들였고, 점점 속도를 줄였다. 당연하게도 안기 위해서다. 이대로 안아버리면 넘어질게 뻔했으니 너는 다다닥 달리던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더니, 어느 지점에서 노련하게 폴짝 뛰더니 나무에 매달리는 매미처럼 착 그를 끌어안으려 했다. 아이처럼 꺄르륵 웃은 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금지된 숲 근처에서 놀고 있는데 친해졌어요? 문카프야- 인사해!"
문카프는 몸을 뒤뚱뒤뚱 움직여 택영의 근처로 다가온다. 뾰로롭 소리를 내며 폴짝폴짝 뛰는것이다. 너는 당연히 이 상황이 재밌다는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