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들었다. 에릭은 비아가 말한 혁명당해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린 비루한 점장의 이야기 따윈 듣지 못했다. 여전히 표정을 유지하며 난형변상을 사용한다. 유와 강이 공존하는 방패술이라 까다롭기에, 그 역시 유의 기술을 사용하여 그녀를 몰아붙이려고 했을 것 이다.
그러나 한순간 느껴지는 충격은 명확하게 현실을 알려주었다. 의념발화를 통해 강화된 근력이 돌진이 깔끔하게 옆구리에 박히자, 아무리 공훈갑을 입었음에도 충격은 갑주를 넘어 파고들고 있었다. 폐 안에 차오른 산소가 뱉어지는 짧은 탄식에 이어, 두 다리가 떠올려져 밀려나간 에릭은 그 상태로 묘비 근처에 있던 소나무에 처박히고 말았다.
" ..... "
한순간 의식을 잃을 뻔할 정도로 깔끔하게 들어온 공격을 스스로 피드백하며 갈비뼈 부분을 붙잡고 있을 때. 공훈갑의 투구 안쪽.. 귀에 꽂아둔 이어폰을 통해 맥스의 목소리가 전해져 들어왔다.
" 역시 3학년 짬은 어디 안가네요. " " ...비꼬냐.. " " 준비는 다 됐습니다. "
그건 호재로군.
하지만 지금 바로 다시 달려들 순 없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기회를 그녀가 놓칠 일도 없을 것 이다. 고민하던 에릭은 비장의 패로 숨겨둔 그것을 꺼냈다. 갑옷 뒤쪽에 숨겨둔 것을 왼손으로 쥐고, 비아를 향해 쭉 뻗어 겨눈다.
눈을 찌푸리며 자신과 시선을 맞추려는 비아의 모습에 한껏 의기소침해져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 표정은 진짜였을까? 적어도 연기는 아니었겠지. 안 두근거릴 것 같다는 말까지 들어버렸으니. 어쩔 줄 몰라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미안..." 하고 작게 중얼거린다.
" 그 때는 의념으로 강화했을 때고... 지금은 그냥 맨몸이니까. "
생각보다 걱정이 많은 성격인 건지 자꾸만 기웃거리며 비아의 손을 살피는 지훈이었다. 그냥 웃을 뿐인 비아의 볼을, 쿡 누르는 시늉을 하듯 손가락을 펴서 찌르는 척 했으려나. 진짜 찌르지는 않았겠지?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은 중얼거림. 들리지 않았어도 괜찮다. 어차피 딱히 들키고 싶던 말도 아니었으니. 비아가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자 비아를 맑은 얼굴로 빤히 바라본다. 그러다가 톡톡 두드려주는 것을 멈추면, 그제서야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려나. 그 무언의 바라봄이 조금 더 해달라는 뜻이었나보다..
' 재미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
비아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 꺼려하더니, 그래도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려나.. 영화는 점점 끝을 향해 가고,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나 만날 수 있게 된다. 여성은 남성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간다. 여성은 낯선 나라에서 수소문 끝에 남성의 집을 찾게 되지만... 남성은 전쟁의 끝자락에서 숨을 거뒀던 상태였고, 허망하게 남성의 사진을 보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나게 되었다.
하루: 며칠전에 에릭 씨가 저희 집에 놀러왔어요. 근데 제가 기본으로 구비된 돌침대들을 쓰는데요.. 그걸 말해주기도 전에 에릭이 손님용 침대로 뛰어들었고 둔탁한 소리가 났어요… 문제는 그날 이후로 에릭씨랑 전혀 대화를 못하고 있는데 저 괜찮은거 맞겠지요? 에릭: 전치 8주 어떻게 보상할거냐.
경호: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요? 진화: 음… 천국? 화현: 당연히 지옥이지~ 낄낄 성현: 관으로.
카사: 에릭! 내 목걸이가 없어졌어! 에릭: 지금 네 목에 있는 건 뭔데? 카사: 어? 내 목걸이! 에릭: 네가 찾고있는 건 뭐냐.. 카사: 내 목걸이!! 에릭: 그럼 네 목걸이는 어디 있냐? 카사: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장마철 비 오는 날~ 은후: 정훈아… 역시 우산은 내가 들어야 할 것 같아…, 내가…… 그… 고개가 너무 아프네.. 정훈: 은후야! 이건 내 우산이야! 은후: 알았어…….
다림: 나쁜 분이네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라지요! 비아: 그건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해, 다림. 다림: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뒤로 넘어졌는데 마침 하늘에서 돌멩이가 떨어져서 코를 깨트릴지도 모르잖아요. 비아: 아니 보통은 그런 일이… 다림: 언니. 인생을 그렇게 단편적이고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비아:
시현 :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루지만 시현 : 지금 자면 잠을 이룬다 시현 : 잠★은 이루어진다! 하루 : 시현 씨…….
막아내려고 하면, 혹은 공격과 공격이 부딪치려고 하면 버티지 못한다. 나는 공격을 흘려내려고 할 때 상대는 방패를 흘려 빗겨내고 공격으로 이어나가니까. 상대가 방패를 흘려도 공격으로 잇기 힘들도록, 방패가 몸이 있는 반대쪽으로 향하게 하며 전진해 빗기는 게 최선. 거기까지 오는데 몸에 몇 개의 상처가 새겨졌고 아까전에 당했던 특이한 기술 같은 검으로 들어올 때는 어지럽게 흔들리다가도 방패를 방어구가 아니라 무기로 쓸 때 오는 필연적인 틈을 정확히 찔러들기 때문에 마땅히 대처조차 할 수 없었다. 다행인 건 상대의 검이 무척이나 날카로운 '명검'이라는 것. 무딘 칼은 의외로 질긴 사람의 살갗에 보통 약간 뜯어지거나 밀린 듯한 상처를 내지만, 예리한 칼은 깔끔하게 자른다. 의념으로 강화된 재생력으로 상처가 조금씩 원래 형태를 찾아가려고 한다. 이걸로 출혈이 조금이나마 줄고 움직이는 데 덜 지장이 되겠지. ...상처가 낫진 않겠지만.
" 핫...! "
무모한 수였다, 하지만 들어갔다. 갑옷을 뚫으려 하기 보다는 강한 충격이 갑주 안까지 전해지도록 하는 게 공략의 정석. 그 점에선 방패는 그럭저럭 적절한 무기였으나...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밀쳐내서 나무에 부딪친 것까지 확인했지만 의념각성자 기준으로 좀 튼튼하면 저 정도는 그냥 털고 나올 수준이니까. 그러니 상대는 낮고 자신은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짧은 시간 안에 더 타격을 입혀야 한다. 내가 방패를 들고 뛰려는 찰나였다.
" 총? "
저 총은. 언젠가의 전시회에서 스쳐 지나간 물건을 닮은 듯한─ 오버랩된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 총성이 무덤가를 울렸다. 주인이 바란다면 이 무덤 옆에 한 자리를 더 만들고 말 탐욕적이지만 주인에 충실한 도구. 들어올린 방패 뒤 몸을 숨기며 손뿐만이 아니라 팔로도 방패를 지탱했지만 큰 울림이 몸에 전해졌다. 금속 울부짖는 소리. 이번 공격과 방어의 대결은 패배에 가깝다. 뚫리진 않았지만 전쟁도 20%가 죽으면 전멸이라 불린다. 하지만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이 방패도, 보석도. 숨겨놓은 수는 그것뿐? 아니, 분명 더 감춰둔 게 있을 것이다. 네 카페에서 메뉴판을 보여주던 드론, 중간에 나타나서 나를 주시하던 그건 어딨지? 전에 그 드론이 널 마비시켰지. 지금 꺼낸다면 분명 몸을 추스를 여유 정돈 우습게 날 텐데. 그건가? 보지 않은 건 믿지 않겠다. 지금은 그저 너를 공격하기 위해 너덜한 것들을 이끌고 뛰어갈 뿐이다. 한 걸음.
방아쇠를 당기며 방페를 세워 다가오는 너를 주시한다. 다시 한번..다시 한번. 의념을 무식하게 집어넣어 방아쇠를 당긴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에 나에게 주지. 그렇다면 나도 괜히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그저 지금에 만족했을 것 이다. 괜히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떨어질 때 아팠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의지가 넘치는 듯한 눈동자가 퍽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같은 녀석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래도, 지기 싫었다.
" 잡았다 "
왼손의 손가락에 걸어둔 의념사를 당긴다 맥스가 이곳 저곳에 걸어둔 의념사들이 조여들며, 비아의 주변에 하늘거리던 의념사에 연단의 의념이 불어넣어지며 압박하려했다.
라고 말하면서 슬쩍 지훈이의 안색을 살폈다. 이번엔 정말로 기운 없어진 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할지 잠깐 안절부절하다가 " 안 그럴 수도 있어... "라고 짧게 덧붙이면서 지켜보겠어 포인트를 0.1 깎는다. 이걸로 지켜보겠어(1.9).
" 괜찮아. 아직 튼튼해. "
하고 힘을 빼서 만지면 얇은 살이나마 말랑하게 느껴졌을 손에 힘을 줬다. 손바닥을 눌러도 단단하게 만져지도록. 웃다가 갑자기 볼을 찌르려는 것처럼 올라오는 손가락을 피하려고 잽싸게 뒤로 물러나면서 자연스럽게 지훈이가 살펴보는 손도 빼려고 했다. (´ ω`)ノ≡≡≡3
" 정말 고양이 닮았네. "
하고 속마음을 내뱉으면서 지훈이의 검은 머리카락에 손을 뻗고 뒤로 두어번 쓸어내리려고 한다. 뭔가 친한 사람이 궁디팡팡 해줘서 꼬리가 올라가는데 갑자기 멈춰서 꼬리가 쭈욱 내려가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고양이 같달까. 묘하게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가상의 고양이를 떠올리다가, 후배를 동물 취급하면 안 된다는 (당연한) 생각을 떠올렸다. 이쯤 해야지. -
" 이제야 겨우 만날 거 같았는데 낚시라니이... "
。:゚(。ノω\。)゚・。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는 텅 빈 집에서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는 여성의 잔상을 곱씹으면서 슬픈 결말의 여운에 젖어 있었다. 전쟁이 끝났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국민의 이득이 아닌 지도자의 이득만을 위해 목숨이 터져나가는 전쟁은 끝이 나고, 전쟁의 기억이 흐지부지된 뒤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그전까지 전쟁을 하던 나라로 태평하게 여행을 떠나는 여자를 가족마저 손가락질하고, 낯선 나라에서 금방까지 적국이었던 나라의 여인이 찾아나서는 남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어느 여자의 동정으로 여주인공은 마침내 남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주워듣고, 모든 고통을 보상받을 달콤한 사랑을 찾아간다. 고생 끝에 달콤함이 온다, 그렇게 이 영화에서 제일 달콤했고 점점 쓴맛으로 흐려졌던 둘의 만남보다 더 희망차고 밝게 그려지던 장면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잘 관리된 집의 문을 열었을 때, 그녀를 맞아준 것은 단지 관리인이었다. 남성이 없어진 집을 단지 선의로 관리해 주던 관리인이, 아무것도 모르고 희망에 차 있던 여주인공에게 현실을 들이민다. 남성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깔끔하고 삭막한 집에 장식품으로 남아 있던 사진 한 장, 그게 아무도 남기려고 하지 않았던 유품이었다...
" 쿠훌쩍... " 。゚(゚´Д`゚)゚。 양손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사이, 감상을 묻는 누군가의 질문은 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