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떠냐! 하고 비장의 장난을 펼치는 악동의 표정으로 사하를 간지럽히는 주원. 사하는 간지럼을 견디지 못하겠는디 팔을 휘적대다 주원의 손을 잡아 간지럼을 막았다. 본래대로라면 더 간지럽혀 복수를 해줘야 할 테지만 상대방이 싫어할 정도로 할 마음은 없었기에 얌전히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아직 성에 차지 못했는지 입을 삐쭉 내민채로 그녀를 응시했다. 손은 아직 잡힌채로.
"그건, 그럴지도? 나 간지럽히는건 자신 있으니까."
손가락 끝의 미묘한 감각과 피아노를 치듯 빠르게 번갈아가며 움직이는 그의 손놀림은 아무리 과묵하고 표정이 변하지 않는 사람도 간지럽으로 웃음을 터트리게 하기에 충분한 힘이 있었으니 말이다.
"무릎을 꿇는건 좀 그렇잖아. 왠지 내가 미안해져."
이어 요구르트 젤리 다섯 봉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걸로 용서해줄게. 아, 하나 더."
주원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급하게 하나 더라고 덧붙이곤 가볍게 사하의 머리에 톡 하고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두 어 번 쓰다듬더니 손을 거두었다.
"이걸로 끝! 나 기분 풀렸어. 아, 요구르트 젤리 다섯 봉 잊으면 안된다? 그거까지 포함해서 잊는거니까?"
사라는 황급히 손을 뻗었다. "남용 멈챠!!" 약을 집어올리던 시아의 손을 사라의 양 손이 폭 포개어 감싸쥐었다. "아익, 정말이지..." 얘는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야, 하고 속으로 되뇌어봤으나 답은 나오지 않는다. 사라는 시아의 손을 움켜쥐고는, 짧은 팔 때문에 상반신이 좀 기울어진 상태로 시아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웃음기는 없고, 여전히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그럼에도 시아의 안색을 살피는 사라의 시선에는 분명히 걱정어린 기색이 띄워져 있었다.
약을 입으로 가져가려던 손이 네 자그마한 손에 붙들렸을 때, 나는 놀란 눈으로 널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 아마도 네 눈에도 잔뜩 놀라서 커진 내 두눈이 들어왔겠지. 내 손을 붙들고 나를 올려다 보는 널 보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나에게도 네가 걱정하는게 고스란히 전해져서 나는 입술을 달싹거릴 수 밖에 없었다.
" ...그치만.. "
머릿속에 떠다니는 단어는 너무나도 많은데, 입 밖으로 골라낼 수 있는 단어는 왜 이렇게 없는걸까. 나는 좀처러 잘 움직여지지 않는 혀를 어떻게든 움직이려 하면서 네 기세 넘치는 모습을 바라봤어. 아까까진 네가 멀어질까 두려웠는데, 지금은 네가 이렇게 걱정을 하면서 날 봐주는 것이 어쩜 이렇게 기쁠 수 있을까. 신기해, 너란 아이는.
"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해버린 것 같아서... 평소의 사라라면 나한테 그런 눈을 해보일 일이 없었을텐데, 내가 조금 짖궂게 굴어서 그런 눈을 하니까 멀어질까봐 무서웠어. 그것도 무섭고, 남에게 싫은 행동을 하는 것도 싫어서... "
이게 답이 아닐까 했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는 네 눈과 마주한 체 조심스럽게 대답을 들려줘. 혹시나 너랑 멀어지게 되는게 싫어서. 혹시나 너와 이 공간에서 이런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그랬다고 나는 솔직하게 네게 답을 들려줘.
진심을 다해서 말했다. 더군다나 간지럼이 자신있는 종목인 사람이 상대라면 더더욱 그랬다. 무릎이야 한 번 굽히고 나면 그만인데, 간지럼은 한참 웃다보면 진이 다 빠졌다. 웃다가 빠진 기운이 충전될 때까지 몇 시간이나 누워있어야 할지! 혹시라도 손을 빼지 않을까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원을 보던 사하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안도했다. 이런 걸로 거짓말 칠 성격은 아니라 생각해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애매하게 피곤한 것 같은데, 역시 잠깐이었지만 아까 너무 웃은 탓이라 생각했다.
"그래, 말해."
간지럼 아니고서야 뭘 못 들어주겠니. 체념한 얼굴로 처분을 기다리던 사하가 얼떨떨한 눈으로 주원을 쳐다봤다. 하고 싶은 게 고작 이거였다고? 하는 눈이었다. 간지럼과 쓰다듬기라니, 간극이 너무 크지 않은가. 생각을 굳이 말로 하진 않았다. 꺼내봐야 저만 손해인 말이었으니까. 이걸로 넘어가준다면 땡큐지.
"자비로운 우리 남주원 선생님, 젤리 당연히 사다 드려야죠. 제가 내일 반까지 안전배송 해드릴게요."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에 학생회에 일이 있어서 학생회실로 가고 있는 중이다. 슬슬 벚꽃이 필 시기인지 거리의 벚꽃나무에는 꽃망울이 슬슬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니까 얼마전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동아리 모집을 진행했었던것 같은데, 아직 누가 무슨 부로 들어갔는지 명단을 받지 못했다. 급하게 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빠르게 주면 좋을텐데. 2학년 교실을 지나쳐서 가고 있으니 날 알아본 애들이 인사를 건넨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인사는 공들여서 하는구나. 가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며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여기부턴 1학년 교실이었던것 같은데. 1학년들은 명찰 색으로만 내가 3학년인걸 알고 내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니까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사실 나도 이게 편해서 그저 복도를 가로질러서 학생회실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주원은 사하의 칭찬인지 아부인지 모를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 하늘 높이 쳐들곤 "핫 핫 하! 내가 좀, 자비롭지!" 하며 사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곧바로 주원의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고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확인한다.
"아차. 이제부터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 활동 시간이야. 그럼 내일 요구르트 젤리 다섯 봉 잊으면 안 된다?"
두 무릎을 굽혀 사하와 시선을 마주한 주원은 사하를 빤히 바라보다가 코를 검지로 가볍게 톡 누르곤 소년과 같이 때없는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럼 나중에 또 같이 영화 보자. 아, 그 땐 속이면 안 된다? 진짜 속였다간.."
주원은 말을 줄이다 사하를 향해 할로윈 날 늑대인간 분장을 하고 위협을 하듯 두 팔의 손가락으로 발톱을 만든 뒤 "어흥!" 소리를 내보인다. 그리곤 다시 손을 흔들며 영화 감상부를 나서, 려고 할 때 조심히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숨을 죽이고 천천히 문을 열고 나선다.
또 그러다 말고 고개와 팔을 휙 부실 안쪽으로 밀어넣어 그녀를 향해 미소짓곤 손을 흔들었다. 그 후 천천히 소리나지 않게 부실의 문을 닫은 주원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막레입니다! 수고하셨어요. 사하 귀여워... 속이는 사하도 귀엽지만 미안해하는 사하도 귀여워! 앗 간지럼.. 역시 물어볼걸 그랬나요! 쓰면서 조금 망설이긴 했는데.. 괜찮았을까요?
>>839 나도 혐관 좋아하는 사람이라 행복혀..... 구애인 설정 따라와서 구하기 어려울거라 생각했는데 고마워 ㅇ.<! 담에 일상에서 혐관 뿜뿜 해봅쉬다 >>840 주원이 늑대되는날(이미 늑대지만,,) 왠지 작고 소중한 조카(?? 다 키운 느낌날 것 같아.... 벌써 눈물 좔좔이다..
복도를 걸어다가다 난데없이 들려온 선배님이라는 소리. 여기는 1학년 교실 앞쪽의 복도이고 오면서 다른 2학년이나 3학년을 본적은 없으니 필시 나를 부르는 것이겠지.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키가 큰 후배님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란 명찰인 것을 보면 1학년인것 같은데 키가 이렇게 커서야. 온지구도 신이현이고 최민규고 죄다 키가 커서 목에 디스크가 올 지경인데 길을 지나가던 1학년마저도 이렇게 키가 큰 것을 보면 여긴 거인의 학교인걸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 서예부? 여기서 좀 가야하는데. 마침 내가 가는 길에 있으니까 같이 가면 되겠네. "
명찰에 쓰인 이름은 강규리. 서예부에 입부한 1학년인걸까. 보라색의 긴 머리와 녹안이 인상적인 이 1학년은 꽤나 당돌한듯이 보였다. 사실 1학년들은 3학년들한테 말을 잘 안걸기도 하고. 뭐 그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근데 키가 진짜 크네. 그냥 목에 고리를 걸어서 위만 바라보고 다녀도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피하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 1학년이구나. 서예부에 입부한거야? "
서예부 생각보다 인기가 없는것 같았는데 꾸준히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알음알음 부원이 계속 생기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펜글씨는 그럭저럭 알아보게 쓰는 편이지만 서예 같은건 수전증이 있어서 잘 못하기 때문에 나름 신기하기도 했다. 슬쩍 시계를 바라보자 시간이 좀 애매했지만 반대쪽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은 길이니까 겸사겸사 데려가자는 생각과 함께 손짓을 하며 발걸음을 땠다.
" 취미 활동인걸까? 서예 같은 취미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니까. "
물론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글씨는 알아보게만 쓰면 되는 것을. 사실 누가 무슨 일을 하던 나랑 하등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우선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았다. 괜히 적을 만들어서 좋을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