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민 오라버니- 아니, 초랭이탈이라고 해야할까. 어찌됐든 오라버니의 취향이 그럴 줄은 몰랐네요. 아니면 탈들은 전부 다 크루시오로 사람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그런 새디스틱한 취향이 있는걸까."
초랭이탈의 말에 단태는 흘끗, 시선을 그쪽으로 옮기면서 중얼거리다가 다시 중탈에게 시선을 옮겼다. 눈앞에서 갈라지는 탈 안쪽의 얼굴을 본 단태가 지팡이를 다시 겨눴다. "내가 본게 있어요." 드러난 그 얼굴은 혜향 교수님이었다. 어째서? 라는 물음도, 왜? 라는 물음도 필요없다는 듯 단태는 말을 계속 이었다. 정확하게는 혜향 교수님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교수님이 지키고자 하는 건 이 학원의 학생들인가요?"
영화나 만화에서 나오는 영웅과 히어로라면 그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성은 그저 한명의 소년일 뿐이었다. 책임감도 강인함도 그저 다른 이들과 비슷한 한명의 소년일 뿐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분노도 부끄러움도 없이 이 고통을 끝내길 원했다. 침과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추해진 얼굴을 가리지도 못한 채 불과 1분전까지만해도 박살내고 싶어했던 그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교수가 학생들을 괴롭히고 용서받지 못할 주문을 쓰는 놈들과 한패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리고 동료들의 공격으로 초랭이탈이 쓰러지자 주문에서 풀려난 그는 고통으로 예민해진 몸을 진정시키려는 듯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얼굴을 옷소매로 닦았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서서 초랭이 탈을 노려보았다.
" 릭투셈프라 "
크루시오로 고통받고 있던 직후에 썼던 터라 주문 조준을 제대로 할 수는 없었다.
명중시) 간지럽히기 주문. 보통은 장난으로 상대를 괴롭게하다가 마는 주문이다. 그러나 아성은 이 주문을 그칠 생각이 없었다.
"처음 1분간은 즐거울꺼야. 그런데 1분 후는 어떨까? 말을 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이성적인 사고도 힘들꺼야. 그래, 크루시오같은 주문을 왜 굳이 써야할까? 이런 재밌는 주문이 있는 데"
레오는 들고있던 지팡이를 떨어트리고 사고와 몸이 정지해버렸다. 깨진 탈 속에서 보인 얼굴이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으니까.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 뭐냐고 물으면 레오는 항상 '신비한 동물 돌보기' 라고 말했다. 동물을 보는것도 즐거웠고 교수님도 좋았으니까. 그래서 가끔 신비한 동물을 보러가는 날이 되면 전날엔 긴장되서 잠이 안오기도 했었고 문카프 사건때는 몸이 아프고 친구들이 당한것보다 그 좋아하는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이 엉망이 됐다는 것에 더 화가 났었다.
" 교수님이 왜 거기계세요..? 아니, 잠깐만요. 잠깐잠깐. 교수님이 왜 거깄어요? 교수님이 왜 거기있어? "
허, 참. 레오는 헛웃음을 치고는 한 걸음을 더 다가갔다. 느릿느릿 다가가선 자신이 본 게 맞는지 한 번더 확인하고는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히스테릭하게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웃어젖히던 레오는 한 순간 뚝 하고 웃음을 멈추곤 싸한 눈빛으로 교수님을 아니, 중을 바라보았다.
" 야, 이 개새끼야. 묻잖아. 니가 왜 거기있냐고. ...대답안해? 그래, 하지마 그냥. 하지말고 너 이리와. 그냥 내가 쳐죽이는게 속이 더 풀리겠다. 더러운 위선자새끼. 뭐, 신비한동물이 좋아? "
여태껏 속고 있었다. 계속 기만당하고 있었다. 얼마나 비웃었을까. 얼마나 무시했을까. 그 모든 감정이 뭉치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가 떨리고 꼭 쥔 주먹이 떨린다. 화가 잔뜩 나는 감정. 증오와 분노가 깊은 한 숨에 배어나는 느낌. 이러면 안된다는 건 잘 알고있다. 로아나는 철과 같아서 주변 환경에 너무나 쉽게 동화된다. 그러니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면 그건 버틸 수가 없잖아.
" 너, 이따 보자. 네뷸러스 " *안개를 뿜어내는 주문
주워든 지팡이에서 안개가 퍼져나간다. 끝도 없이 퍼져나간다. 한 치앞도 분간하기 힘들만큼 안개는 레오를 감쌌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하게끔 퍼져나갔다. 레오는 잘 알고있었다. 지금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이런 깊은 증오와 분노 그리고 화를 꼭 안고 있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봐두었다. 레오는 안개를 펼치고 또 펼쳐 자신을 완벽히 가리곤 초랭이가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 안녕? "
그리고 레오는 미소지었다. 입이 귀에 걸리도록 크게 미소를 지었다. 검은 머리와 노란색 눈은 검은색 표범을 연상시키기엔 충분한 것이었고 밤이오면 그 눈이 빛나는것만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레오는 지팡이를 겨누었고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초랭이탈의 속삭임에 그녀는 웃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애초부터 기대도 안 했지만 말이다. 너무 순순히 알려주면 재미 없잖아.
옆에서 탈이 부서져 얼굴이 드러난 중탈- 혜향 교수를 보고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고, 그 정체가 어쨌든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부적을 맞고 쓰러지고도 시끄러운 초랭이탈을 보고서 그녀는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그걸로 초랭이탈을 공격할까 싶다가도 돌아서 학생들을 향했다. 그리고 들으란 듯 말한다.
"이대로 잡혀가면 재미없으니까, 이번만이에요."
그리고 주문을 읊었다.
"프로테고."
그녀의 행동은 언뜻, 그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일 법 했다. 그녀의 앞을 막는 것이었으니까.
손을 뻗으려는 모습에 가만히 묶인 매듭이 있는 부분을 쭉 내밀던 너는 탈이 세로로 갈라지자 가면 속의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아, 저 사람. 네가 아는 사람이다.
"아- 세스트랄 교수님-"
너는 가면 속의 눈을 휘었다. 혜향 교수님의 패밀리어는 매, 원내에서 만날 수 있다 했던 추종자인 마노 경, 배신자가 학교를 떠나면 너흰 죽고 배신자가 남아있으면 계속 공격받아. 어떻게 할래? 라고 묻던 책. 소속되지 못하는 자를 광인이 어찌할지 궁금해하시던 분이여, 참으로 영민하시며 저를 꿰뚫고 계시옵디다. 그것이 히죽 웃었다. 너는 느슨해진 줄을 홀로 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면을 벗었다.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얼굴을 덮어 가리는 손을 조막만한 손으로 꼭 쥐려 한 것이다.
"이노리 가면이라도 쓰고 계셔요? 얼굴 계속 잡으면 아야해."
너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교수를 한참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손가락을 튕기자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 저 멀리서 한 물체가 날아오지 무언가. 아주 단단해보이는 그것은 한눈에 보아도.. 짱돌이었다. 어딘가 익숙해보이는 자세를 취하며 그 돌을..
"이노리랑 야구해요? 이거 못 쳐내면 바보야?"
초랭이의 머리를 향해 던지려 한 것이다. 그리고는 뒤로 휙 돌며 외쳤다.
"세스트랄 교수님 공격하면 안 돼-!! 이노리 세스트랄이랑 못 친해졌어요? 책님도 안돼안돼- 했어요? 이노리한테 배신자가 학교 떠나면 우리 다 죽는다고 했단 말이야-? 이노리 아야한거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