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와 나는 다른 존재다. 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고개를 불쑥 내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기억하노라면 괜히 좋던 기분도 가라앉는 것이다. 이 나이에 고민을 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지만 그 고민이 남들과 다르고 한사람의 삶을 결정짓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잘린 네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7. 고모님께서는 내 자신을 필사적으로 지켜주고 계신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무엇인줄 몰랐으나 학교를 다니면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던 것이다. 이정도로 내게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다. 나는 전주 이씨에 입적되고 나서 단 하루도 마음 놓던 날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산다면 지금보다 배로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9. 내가 현궁을 택한 이유는 후부키가 그립기 때문도 있지만 백궁에 한서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수틀리면 금지된 숲으로 뛰쳐들어가 죽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도 있다. 청궁의 생기는 내게 후부키의 단란한 날을 떠올리게 하여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트롤은 떠날 기미가 없다. MA라 불리는 신의 장난이라고 해도 친해질 수도 없는 존재에게 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너는 포기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포기할 사람은 아니었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죽는 건 아깝기 때문이다. 너는 트롤이 있는 곳으로 분주하게 달리고는 목청을 높였다.
저번에 지팡이로 찔렀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너는 봄을 부르는 봄바르다와 링고가 들어갔으니 사과향이 날것같은 콘프링고 주문을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친구가 알려준 효과 좋은 놀이용 주문을 써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가정교육을 이수한 너의 장의사 친구가 말하기를, '재미 없는 사람도 단번에 재밌게 할 수 있는 주문이 있지. 가운데에 덕(duck)이 있으니 말입세.' 라고 했다. 그 주문은 친구의 특기였다고 했다. 뭐라고 했더라. 꿈에서도 누군가와 싸웠는데 단 한발 빼고 모조리 격추할 정도로 잘 한다고 들었다. 가문 안에서도 말을 듣지 않으면 최근 리덕토를 쓴다고 했던가?
당연히 너는 '그럼 너 다갓에게 사랑 받아요?' 라는 차마 무시할 수 없는 말을 꺼냈고 친구는 네 볼을 꽉 잡고 '다시는 벽을 넘지 말게.' 라고 했지만 말이다. 볼을 대가로 얻은 주문을 쏘아내며 네가 꺄르르 웃었다.
"리덕토!"
퍽 소리가 났다. 꼭 수박이 깨지면 이런 소리가 나고들 한다. 정말 재밌는 주문이 맞다! 트롤의 배가 퉁실퉁실 흔들리는게 꼭 푸딩 같았다. 그 다음 주문은 뭘 써볼까? 역시 재밌었으니 더 써보는게 좋겠다.
"리덕토!"
너는 트롤이 쿵쿵대자 종종걸음으로 달려서 멀리 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뭘 하고 놀아야 할까 고민하더니, 트롤에게 물었다.
"트롤아, 너 혹시 테마리 신님 봤어요? 네가 부순 테마리 고쳐준 신님한테 공물 바쳐야 해? 그런데 어디 있는지 몰라요?"
어떻게 한 번 더 오게 되었다. 트롤과 마주치고서 하루도 지나지 않은 몇 시간 만에, 또 한 번. 시무룩해져서 돌아오는 걸 친구에게 걸려서 좀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부 다 털려버렸다. 그러자 친구가 하는 짓이, 그렇게 속상하면 가서 주워오라며 등을 떠미는 것 아닌가. 다시는 그 커다란 괴물 앞에 나서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원래 잃어버린 물건이나 실종자는 24시간 내에 찾지 못하면 다시는 찾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 너무도 그럴듯해 반박하지 못했다. 완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 사실이라 결국엔 속수무책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택영아 지지 마! 트롤한테 지지 마!"
……얄밉게 묘한 손짓을 하며 응원까지 해대는 친구를 뒷배로 두고서 말이다. 물론 대책이 없는 짓거리는 아니다. 차마 트롤에게 근접할 엄두는 나지 않는 자신이 멀리서 마법을 쏘면 '우정과 의리의 화신'인 친구가 가까이 가서 칼을 빼오겠다 호언을 했다.
"저거랑 붙어가 이기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니나 쫌 조심하고."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포기할 수는 없다. 그는 비장하게 한손을 꾹 쥐고 최대한의 집중을 끌어모아서,
아무리 트롤이라도 세 번 연속 스투페파이면 기절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슬쩍 보았지만 완전히 쓰러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를 어질거리게 하기엔 충분했던 모양이다. 대기하던 친구는 잽싸게 달려가...는 게 아니라, 간단하게 아씨오로 물건을 회수했다.
...아 맞다! 아씨오면 되는데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마법사면서도 비마법적인 사고에 갇혀 있었던 그는 경악에 찬 얼굴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첨부터 이래 어렵게 갈 필요는 없었다는 거 아이가...?"
평생의 심력을 여기에 다 때려넣었는데 이럴 수는 없다. 한순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눈이 뾰족해졌지만, 친구가 장도를 쥐여주자 억울함도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그래, 어쨌든 찾았으면 된 거제... 긴장이 빠져 상체를 축 늘어뜨리다, 조금 늦게 고맙다는 말을 돌려준다. 방에 가서 누워야지, 피곤해서 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