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달린다. 나도 달린다. 내가 달린다. 버스는 정거장에서 멈춘다. 의념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달리기로만 달려서 경주를 시작한다. 중간 중간 신호나 사람을 태우고 내리기 위해 멈추는 것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가능했다. 그런식으로 달리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미나즈키는 의자와 기다림을 번갈아 쳐다봤다. 의자는 하나고 사람은 둘인데. 혹시 쉬는 김에 의자뺏기라도 하자는 뜻인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는 뜻은 알고 있지만, 그냥 농담 같은 의미로 해본 생각이었다.) 어쨌건 다림을 세워놓고 혼자 앉아있기는 미안하고, 그렇다고 다림에게 앉으라고 해도 거절할 것이 뻔하고. 미나즈키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둘 다 앉을 수 있는 방법을 겨우 생각해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무릎 위에 다림을 앉히는... (그리고 정확히 이 시점에서 미나즈키는 평범하게 아는 사람 관계인 경우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같이 떠올렸다.) 그러니까, 미나즈키는, 말도 못 꺼내고 그냥 의자에 앉은 사람이 됐다는 뜻이었다.
번갈아 쳐다보는 것에 고개를 갸웃합니다. 하쿠야 씨가 앉고 싶은 게 아니었나요? 아닐 텐데요...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하쿠야 씨가 앉았으니 된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다림은 하쿠야가 무슨 말을 꺼내려 했다거나 무슨 행동을 하려 했을지에 대해서 상상도 못하는 채로 다림은 하쿠야를 의자에 앉혔습니다. 의념을 켜면 못 견딜 것도 아니잖아요?
"처음 하는 분들은 보통은 자꾸 앉고 싶어 하더라고요." 저희(알바생들)은 익숙해져서 한계치가 늘어났지만요. 라고 농담을 말하듯 말하려 하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좋아하는 음료 있으신가요? 라고 물어봅니다. 하나씩 제조해서 먹어도 된다는 말이네요. 이런 게 은근한 복지죠.
아직이라고 말했는데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훈이를 보고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아직 화 안 났다니깐. —하지만 이 표정의 이유가 더 못 놀리는 게 아쉬워서라면 꿀밤 한 대 예약이다.
" ...뭐 찔리는 구석 있어? "
떳떳한 사람의 이럴 때 반응은 "아니야, 이런 걸 보러 가는 건 너뿐이야!"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 저 돌아가는 눈 하며 합리화하는 말투. 지켜보겠어.
" 아플 리가 없잖아. "
좀 늦어서 왜 그랬지 하고 후회할 정도의 엄살이었는데, 이런 건 또 속다니. 아웅다웅하며 뛰어다니다가 보호자가 쓰러진 척을 하면 꼬리를 내리며 종종종 옆으로 다가오는 까만 댕댕이를 보는 느낌이다. 어디 아픈 구석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손을 잡고 이리저리 보는 것에 웃음을 터트리며 지훈이의 손을 잡아 올렸다 내렸다. 뭔가 한 방 돌려준 느낌이라 시원하기도 하다.
" 쿠폰이 있으니까 쓰자는 것도 아니고, 이미 예매해 둔 것처럼 속였으니까 문제지. 다른 사람이랑 영화 볼 때 써. "
( ̄^ ̄) (´・ω・`) 조금 심술궂은 말투 같은 말이 나갔다. 그래, 괘씸한 것도 있지만... 아, 아직 난 커플석 같은 건! 좀 부담스럽고! 그, 내가 앉아본 적은 가족과 같이 앉은 거 외엔 없지만, 두 사람이 한 좌석에 앉을 수 있게 해놓은 거지. 그렇게 가깝게 붙는 건 좀 그러니까, 우리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 음, 친구긴 하지만. 아무튼 말야.
" 응. "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지훈이가 예매하는 걸 옆에서 열심히 살펴보다가...
" 정말이네... "
정말로 좌석이 없는 사태가 일어나다니. 어쨌든 같이 놀러왔는데 슬픈 영화 같은 걸 보면 분위기가 가라앉을 거 같아서 후보에서 제외했는데.
" 그러면 2번이라도 보자. "
아무것도 안 보고 이대로 돌아가거나 어색하게 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래도 커플석은 안 돼, 라고 미리 해놓은 게 다행이다. 붙는 게 부담스러운 것도 있지만 눈물이라도 터졌는데—난 흔히 신파극이라고 하는 눈물 쥐어짜기에도 못 버티는 편이다!— 지근거리에서 빠안히 쳐다봐진다고 하면 수치심을 못 참았을 것 같아. 커플이라면 그런 슬픈 로맨스를 보면서 우는 연인을 옆에서 끌어안는다 같은 건 두근거리는 시츄에이션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랑 지훈이 사이에 그런 걸 기대할 순 없으니.
다림은 말을 해도 그렇군요.. 라며 납득을 했겠지만 하쿠야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에바라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요(대체) 다림주가 다림이 복지 안해주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러면... 초코딸기 프라푸치노로 괜찮을까요?" 그걸로 괜찮다고 하면 하쿠야 몫은 그걸로 만들려고 합니다. 다림의 몫으로는 아이스 워터....어라. 그냥 얼음물인데? 초코딸기의 레시피는 대충.. 초콜릿 시럽+딸기청+얼음+이것저것... 차가운 크림 위에 딸기 하나로 화룡점정을 찍으려나?
미나즈키는 다림이 빈속에 산화수소를 쏟아붓는 극악무도한 행위를 할 예정이라는 것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생긴 쉬는시간에 다림이 너무 고생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미나즈키는 그놈의 무릎앉기인지 무릎베개인지 하는 생각을 떨쳐내는 데에 집중하느라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미나즈키는 다림이 마시고 있는 게 얼음물인지 모르고 그냥 맛있는 걸 마시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프라푸치노를 쭈우욱 들이켰다. 자신도 청월 학생이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여기서 커피를 들이부어가며 공부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오늘도 대타로 나오지 않았다면 기숙사에서 하루종일 공부할 예정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