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걸이에 대한 칭찬에 공손히 감사를 전한다. 그것이 뱉는 목소리에는 어떠한 과장도 섞여있지 않았다. 어조의 높낮이중 높아지는 구간의 폭이 적어 차분한 느낌을 준다. 과장스러울 성격도 아닐 뿐더러, 큰 소란을 불러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금 내뱉는 말이 누군가를 그저 띄우기 위한 빈말이 아니냐는 얘기를 미연에 방지하고 싶을 정도로 절도있는 사람이었다.
질문이 끝나자 볼 안에 고이 모셔둔 사탕을 혀로 굴린다. 은인의 말대로 복숭아 맛이 났다. 이것이 정말 복숭아 그대로의 맛이냐기엔 조금 단맛이 더 많지만 제법 귀여운 맛이다.
"마노, 홍 마노..예. 마노 경. 혹 백정 경이라 하여도 괜찮을지요. 저는.."
그것은 은인의 이름을 익히기 위해 한번 발음하고는 백정탈에 시선을 옮긴다. 이름을 알려주었으니 그것의 이름 또한 밝혀야 하나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는 이로하, 너라면 어찌했을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곤 빙그레 웃는 것이다. 이는 이노리가 말마따나 그것이 가지게 된 이름이기 때문이며, 은인이 참으로 원내의 사람이라면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하여 그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고 성씨를 대신 알려주기로 한다.
"..후부키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이마저도 어려우시다면 눈보라로 치환하셔도 됩니다."
와중에 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는데, 발언을 듣자하니 어째 그것의 머리로는 따라가기 힘들었다. 초랭이에게 배우는 것은 그럴법 하지만, 모두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신비한 동물도 한 존재가 어떠한 행동을 시작하면 그걸 배우고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무리지어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고 그 집단의 사회적 상징이겠거니 단정짓는다. 타 사회의 문화를 배웠다는 셈 치는 것이다.
"본인이 만족하는 방법을 선택하면 되는 법입니다."
하고 답한 뒤 그것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뻗는다. 당과점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먼저 안으로 드시지요." 하고 문을 열어주는 모습이 제법 자연스럽다.
그 게 괴수는 시간 지나니까 없어졌는데, 이 트롤은 어지간히도 체력이 좋은가보다. 나타난지 제법 날이 되었음에도 좀처럼 쓰러지질 않는 것이다. 덕분에 이 기숙사 저 기숙사 할 것 없이 좋은 샌드백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 그녀의 귀에도 알음알음 흘러들어왔다.
"흐음."
후원에서 리치에게 빗질을 해주는 그녀의 곁으로 지나가던 학생들이 즐겁게도 떠든다. 오늘은 어디를 어떻게 하니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 하고 웃기까지 하더라. 과녁이 크니 맞추는 맛도 제법 쏠쏠하다나. 뭐, 잘 맞기는 맞았지. 그 덩치를 못 맞추면 지팡이 꺾고 마법사 접어야 하지 않을까.
"그치, 리치리치?"
냐아?
다소 뜬금없는 부름에 무릎 위에 늘어져있던 리치가 고개를 들며 반문한다. 무슨 소릴 하냐고 되묻듯이 말이다. 반응이야 어떻든 그저 사랑스러운 자신의 패밀리어를 들어 정수리에 볼을 부벼주니 그르륵 그르륵 목을 울리며 반응해온다. 얼마간을 그렇게 이뻐해주다가, 어깨에 올리고 일어섰다. 그리고 함께 학교 앞 숲으로 나갔다.
숲 앞에 도착하자 고개를 들 필요도 없이 트롤이 곧장 보인다. 여기저기 이것저것 맞은 듯 흉해진 외관에 너도 참 고생이라며 지팡이를 빼들었다. 나무들 사이에서 트롤을 피해 돌아다니는 니플러를 보고 리치가 사냥 본능을 일으키려고 하는 걸 막으며, 지팡이를 치켜들고 주문을 읊었다.
"글레시우스."
일단 저 무식한 움직임을 막고 둔하게 만들기 위해 냉기 마법을 쓰고,
"리덕토."
강렬한 충격으로 정신 못 차리게 만든 다음,
"레라시오."
폭발계 마법 중 써본 적 없는 것을 골라 날린다. 그렇게 차례대로 공격한 뒤 트롤이 얼마의 피해를 입었을지 보이는 부분으로나마 가늠해본다.
후부키라는 단어에 그것은 충분히 알려주었다는듯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후부키라고만 알리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냐 싶겠지만 앞서 말했듯 언젠가는 연이 닿으면 알게 될 일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유일한 후부키雪吹의 피를 물려받은 자기 때문이었다. 그것 자체가 후부키吹雪인 것도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백정이 안으로 들어서자 뒤이어 당과점의 안에 들어선다. 무더운 여름날의 물기 섞인 내음과 달리 당과점의 단내가 물씬 끼쳤다.
"아무렴 많을지렵디다."
대답할 무렵 손가락의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환청 케이크가 보인다. 그것 또한 좋아하는 간식이다. 먹는 동안의 환청은 그렇게 재미난 것이 아니지만, 그 환청이 되레 먹는 도중에 드는 불안이나 감정을 확고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와라비모찌나 약과와 달리 입에서 녹는다. 먹기 편한 것이 제일이지 않은가.
"그럼 이것 또한 사도록 할까요. 주인장, 환청케이크를 조각이 아니라 한판으로 준비해주실 수 있으련지."
그것은 당과점의 주인에게 주문을 하곤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손에 이것저것 들린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참 닮았기 때문이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숲의 밖으로 나가는 날마다 저렇게 한가득 쥐며 이것도 저것도 외치던 모습이 겹쳐보이는 것 같아, 어쩐지 경박하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레몬 캔디를 본다. 다가와 병을 집어 고이 품에 쥐어주려 헸다. 흰 머리카락이 어깨 너머로 한터럭 내려온다.